통신의 세계로 나간 - 나의 386DX 시절(1993~1996)

 

 

 

 

PC를 사용하면서 모든 기능에 익숙해질수록 그 한계를 느끼게 되고 업그레이드를 꿈꾸게 된다.

특히 PC통신과 새로 나온 아래아한글2.0을 쓰고 싶은데 XT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업그레이드를 열망할 수밖에 없었다.

주머니 사정상 고민하다가 차라리 새 PC를 살 계획을 몇 년 뒤로 미루고 여유있게 살 것인가 고심하고 있는데, 논문 작성을 위해 PC가 필요해진 여동생이 내 PC를 제가 쓰고 보태 줄 테니 PC를 새로 사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구세주를 만난 듯 당장 하자고 했다.

그렇지만 어떤 PC를 사야 할지가 더 골치 아픈 문제였다. 8비트에 비해 16비트의 놀라운 기술이라는 XT는 진보된 기술이라는 AT에 자리를 내 준지 오래 되었고 32비트의 386 전성시대로 접어들어 있었다. 486이 새로 나오기 시작해서 새로 사는 것 이왕이면 486을 사는 게 났다고 했지만, 용도와 비용을 따진 끝에 386DX로 결정했다.

그 다음은 어느 제품을 어디서 살 것인가가 문제였다. 대기업 PC는 품질이나 AS가 보장이 되기에 좋지만 원하는 사양을 갖춘 걸 살려면 너무 비싸다. 그래서 처음부터 비용대 성능면에서 훨씬 유리한 조립을 택하게 되었는데 10여 가지 부품들을 궁합을 잘 맞추기만 하면 AS를 부를 일 없이 잘 돌아가기 때문에.

당시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던 신촌컴퓨터에 원하는 사양을 주문해 사오게 되었다.

그 때로선 가장 빠른 9600 팩스 모뎀에 사운드카드를 장착한 미들 타워형 386DX에 감히 엄두도 못 냈던 14인치 컬러 모니터까지 가히 환상적이다. 그동안 그리던 기능을 거의 다 갖추어 놓은 것이다. 플로피디스크드라이브가 1.2 MB 2HD 5.25인치와 1.44 MB 3.5인치가 달려 있었다. 램 4 MB에 하드디스크가 170 MB여서 20평짜리 단층집에서 살다가 170평짜리 3층 호화 저택으로 이사 온 듯 최신 기능에 촌놈처럼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최초의 사운드카드인 옥소리 프로그램들이 신기했다. 노래방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유아용 한글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조카에게 유용했는데, 내겐 TV에서 감탄하면서 보았던 입력한 글자를 읽어주는 TTS(Text To Speech) 기능이 언어장애의 한을 풀어줄 가능성이 열린 것 같아 환상적이었다. 기계음이라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겐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수준이지만.

가장 신나게 해준 건 노턴유틸리티에 포함된 노턴커맨더였다. PC를 켜면 제일 먼저 이게 나타나게 해서 하드디스크에 있는 모든 파일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관리할 수 있게 해주고 프로그램들을 단축키로 한방에 실행시켜 주어서 더 없이 편리했다.

아래아한글2.0을 번들로 들어 있었는데 일반용이라 기능 제한이 많았지만 글자 크기를 자유롭게 확대 축소가 가능해져서 깨알 같이 글자가 찍히던 9핀 도트프린터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래아한글2.0 전문용을 구해 설치해 보았는데 칼라 화면과 다양해진 글자체가 맞춤법 기능과 함께 눈에 먼저 띄었다. 맞춤법 기능이 정말 신기했는데 많은 기능들이 추가되어 오히려 혼란스럽게 했고 프로그램 자체가 너무 비대해져서 느려졌다.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인지 복제의 문제인지 자주 다운이 되는 바람에 불안하게 글을 써야 했다.

그래서 정품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는데 94년 7월 아래아한글2.5가 새로 나와서 사전 기능이 제외된 일반팩을 예약해서 샀다. PC를 산지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돈 주고 사게 되었던 것이다.

아래아한글 2.5는 본전이 아깝지 않게 도스용 한글 워드프로세서로서 거의 모든 기능을 갖췄다고 할만 만큼 편리성과 안정성이 뛰어난 프로그램이었다. 표기능이 새로 등장해서 문서 작성의 수준을 끌어 올렸고 팩스 기능까지 갖춰서 윈도용에서 이들 기능들을 갖추기 위해선 여러 번의 업그레이드를 해야 될 정도 였다.

한편 이번 업그레이드에서 가장 강조했었던 것 중 하나가 한글 코드여서 통합형 한글카드를 달았는데 KS 완성형으로 쓴 dBASE와 LOTUS의 파일들의 한글이 깨져 나와 안타깝게 만들었다. XT에서 쓰던 KS 완성형이 오래전에 나온 것이라 새 한글 카드와 호환이 안 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데이터의 한글을 새로 입력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새로 입력한 한글도 프린트하면 깨져 나온다는 것이다. 다니던 베데스다선교회에 도움을 요청했었는데 94년 7월에야 성결교 총회 본부 전산실의 전도사님을 특별히 초빙해 주어서 해결할 수 있었다.

질문지만 보고는 모르겠고 직접 해 보아야 한다고 하더니 먼저 팩스를 조작해 보더니 경로 지정이 잘못 되어 있다고 고쳐 주니 제대로 작동이 되었다. 송신에 이어 수신이 산뜻하게 성공해 손으로 큼직하게 쓴 글씨가 화면에 나오고 프린트되어 나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 다음 한글 카드인 불랙박스가 한글이 깨져 프린트되어 나오는 문제는 해 보고 안 되는 건 9핀 프린터에 한글이 내장되어 있지 않아서 안 되는 것 같다고 결론 내려 주었다. XT에서는 글자를 그래픽으로 인쇄하게 해주는 그래픽 프린팅 카드가 있어서 한글 인쇄가 가능했었는데 프린터를 바꾸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반년이나 골치를 썩이며 걱정하던 문제를 단번에 후련하게 해결해 주었는데, 반 년 사이 PC와 그 부품들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향상되어서 모뎀 한 버 써 보지도 못하고 고물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팩스를 보낼 수 있게 되어 날개가 생긴 기분이었다. 그 때까지 회보에 실을 원고를 써 놓으면 와서 가져갔었는데 서로 편해지게 되었다.

dBASE의 프린트하기 위해 아래아한글로 불러오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아래아한글에서 편집하는 것이 훨씬 편했다. 프로그램 간의 데이터 교환이 어려웠던 도스 시절로서는 획기적인 성과였다고 할 것 같다.

새로운 돌파구가 될 PC통신을 어서 하고 싶었지만 전화 요금이 엄청나게 나올 거라는 걱정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그 무렵에 PC 통신 책을 뒤적이다가 통신 에물레이터인 HICOM20.EXE이 있는지 PC를 켜 보았더니 있어서 실행시켜 보니 작동이 되어서 시험해 볼 수 있었다. 마침 출판 전문으로 9월에 유료화되는 나우컴이 시험 서비스를 시작해서 가입까지 하게 되어버렸다. 언제 통신에 가입할 것인가 고심해 왔었지만, 무료이기에 부담없이 연습해 볼 수 있게 되어서 잘 되었다.

통신 프로그램인 이야기 5.3이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애용하게 되었는데 아주 깔끔한 외양에 편리한 기능들을 다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94년 가을에 드디어 하이텔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하려는 욕심에 이야기 유료 버전 6.1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원하던 통신 세계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완전히 미지의 세계 속에 들어가게 되어서 무얼 어떻게 할지 몰라 방황하곤 해야 했다.

자료실, 게시판, 동호회들을 들락거리면서 맨 처음에는 자료실에서 공개 자료들을 다운 받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게시판에서 남의 글을 읽어보는 것만 해도 상당한 공부가 되었다. 특히 그 동안 갖고 있던 PC에 대한 궁금증들을 대부분 풀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방법들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통신 자료실에서 다운받는 맛에 세월 가는 줄 모르던 시절, 몇 십분이나 걸려 다운받은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면 “out of memory”하고 죽으면 그 허망함이란 무엇에 비하리요....

메모리 1, 2k의 차이로 프로그램이 실행이 되고 안 되고 하니 피말리는 메모리 확보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메모리를 확보하기 위해 통신 게시판을 다 뒤져 좋다는 방법을 모두 써보며 시행착오를 거쳐 상당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컴도사님들이 모여 있어서 유명했던 OS 동우회을 알게 되어 가입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PC에 모르는 것이 생기면 혼자서 끙끙 앓아야 했었던 PC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마음 놓고 질문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정확한 답변을 신속히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PC를 배우려면 통신부터 하라는 말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바로 게시판에 질문을 쓰고 답변을 기다리는 일이 생활이 되어 버렸다. 그 때까지는 모르는 것이 생기면 혼자서 골머리를 썩여야 했었는데 이젠 통신에 가입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내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켜 주었다.

특히 전화 한 통이면 간단히 풀 수 있는 것도 직접 할 수 없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PC로 글을 써서 프린트해 가족들에게 대신 전화하게 해야만 했었는데 통신에 가입한 다음부터는 게시판에 쓰거나 메일로 보내면 나 혼자서 간단히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호기심에 대화방에도 들려 보곤 했었는데 손이 느려 할 말을 쓰기 바빠서 화면을 볼 수 없었는데, 한번은 어떤 여자인지가 내 이름을 갖고 뭐라고 장난했는지 귀속말로 미안하다는 것이다. 느려서 우물쭈물하니 또 귀속말로 자기 때문에 화가 나서 대화를 안 하느냐고 하면서 화를 풀고 대화를 즐기라고 하고 퇴장해 버린다. 날 밝히지 않아서 공연히 오해를 일으키고 말았나 보다. 대화에 끼기 위해 부지런히 말을 쓰고 보면 화제가 바뀌어서 난처하게 되어버리기 일 수여서 안 들어가게 되었다.

재활동호회인 두리하나에 가입해서 처음엔 게시판의 글들을 읽는 데에만 열중하게 되었다. 요긴한 재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장애우들이 온 몸으로 말하는 듯 한 삶의 이야기들에서 적지 않은 자극을 받게 되었다.

나만이 겪는 줄 여기고 있는 아픔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다는 것을 몰랐었는데 그래서 나의 이야기도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통신은 이제 내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갔다.(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