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바다로 향한 몸부림 - 나의 펜티엄 Ⅰ시절(1996~1999)

 

 

 

PC통신은 국내 네트워크에 한정되어 있는데다 문자로만 이루어져 있어 새롭게 도래하고 있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한계가 있었다. 인터넷도 초기에는 문자 중심이었지만 93년 멀티미디어 기반인 월드와이드웹(WWW)이 개발되면서 대중화되게 되었는데, 96년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란

1) 전세계를 연결하는 컴퓨터 통신망 또는 그 정보

2) 여러 통신망들이 합쳐서 만들어진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3) 네트워크를 통하여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자원 또는 그 정보

4) TCP/IP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전세계에 연결된 컴퓨터 통신망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그런 인터넷이 PC통신과 같은 시내 전화요금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는 당장 해야겠다고 나서게 되었다. PC통신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인터넷이기에.
 

그런데 인터넷을 하려면 새로운 운영체제인 윈도95가 필요하고 그를 돌리기 위해선 펜티엄PC로 업그레이드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게시판을 다니며 업그레이드 정보를 수집해 보는데 386을 펜티엄으로 올리려니 바꿔야 할 부품이 생각보다 많아서 새 걸 사는 게 어떨까 할 정도였다.

바꿔야 되는 것 중 하나가 모뎀이었다. 9600bps 팩스 모뎀이지만 통신사들이 그 속도를 지원을 하지 않아서 2400bps로 접속이 되기 때문에 1 MB짜리 파일을 다운받는데 두 시간이나 걸리는데 도스 상황에서는 다운받는 동안 아무 것도 못 한 채로 숨죽이고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통신하다 보면 모뎀이 느려 터져서 속상해 빨리 바꾸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지만 그 때까지 모뎀 값이 비싸서 쉽게 바꿀 수 없었다.

96년 여름 OS 동우회의 공동 구매란에 28.8K모뎀을 구매하는 것을 알고 바로 신청해서 처음으로 통신 주문하게 되었는데 두 시간이나 걸리던 1 MB짜리를 다운받는데 5~6분으로 단축되어 놀라웠다. 그렇게 드디어 28.8K모뎀으로 바꾸게 되었는데 인터넷을 할 준비를 시작하게 된 셈이다.
 

게시판에서 경험자들의 글을 찾아보니 쓸데없이 유행에 따라 업그레이드시켜야할 건 없지만 업그레이드를 꼭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때를 기다릴 것 없이 돈에 맞추어서 하란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로 궁리 끝에 최소한의 추가로 업그레이드할 것인가, 새 걸 살 것인가로 정리해서 어머니에게 전화로 단골인 신촌컴퓨터에 문의해보니 그 때 한창 가격 파괴로 소문난 세진에 비해 훨씬 싸서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펜티엄 120에 램이 16 MB로 추천하는 업그레이드 사양에서 내가 원하는 조건을 자세히 적어서 어머니에게 신촌컴퓨터에 가서 흥정하게 했는데, 정작 신촌컴퓨터에서 컴맹인 어머니와는 곤란하다는 듯 내게 전화하는 바람에 역시 컴맹인 여동생이 통역해서 직접 흥정하게 됐다. 그래픽 환경인 윈도95에서 원활하게 인터넷을 하려면 VGA를 2 MB로 해야 한다고 해서 올리고, 필수품이 된 CD-ROM 8배속을 추가하면 20만원이 추가된단다. 그래서 하드디스크를 2.1GB에서 1.6GB로 줄이고 쓰던 램을 보상을 요구해서 10만원을 낮추자 동생이 딱하다는 듯 모자라는 걸 보태 주겠다고 해서 흥정이 만족스럽게 되었지만 또 몇 년 모은 저금을 몽땅 바쳐야 했지만.

업그레이드한 PC를 가져 오기로 한 날, 신촌컴퓨터에서 전화가 오기를 사운드카드가 오래돼서 윈도95에 맞지 앉는다고 새것으로 바꾸던지 윈도3.1을 써야 된다고 해서 어머니에게 알아서 해 주십사 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꿀 때 다 바꿔야 된다고 보태 주셔서 또 한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펜티엄 120에 램 16 MB, VGA 2M, 8배속 CD-ROM까지 꿈같다. 드디어 펜티엄 시대 개막!

지금까지 동생들이 골라서 사온 것을 무조건 쓰기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동안 쌓인 경험과 통신을 통해 배우고 조사한 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양을 선택해서 조립을 의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또 항상 돈이 부족해 286을 사야 할 때 XT를, 486을 사야 할 때 386을 사야 했었는데 처음으로 최신의 사양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지만 인터넷이란 거대한 바다로 나가기 위해 윈도95라는 전혀 새로운 환경을 넘어야 했기에 더 골치 아픈 씨름이 시작됐다. 처음 만난 윈도95를 다루기가 정말 난감했었다. 역시 마우스 때문에.

콕콕 눌러 주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마우스 때문에 쓰기 힘들어 386 시절 윈도3.1을 애물단지처럼 여기다가 삭제해 버렸었다. 마우스 포인터를 원하는 위치에 갖다 놓기도 어려운 노릇이었지만 애써서 갖다 놓고 콕 누를 때 손이 흔들려서 <확인>을 누르려다 <취소>를 누르기 일수라서 도저히 쓸 수 없었다.

그래도 자꾸 쓰면 나아진다고 윈도95와 실수를 연발하면서 고약한 마우스를 그런대로 움직이며 빈약한 단축키를 최대한 활용하니 쓸 만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 정도 마우스를 놀릴 수 있게 되어 <내게 맟는 옵션>의 마우스키보다 마우스를 쓰는 게 편한 만큼 익숙해지게 되었다.

정말 놀랄 만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목적을 위해 꼭 해야겠다고 달려들면 불가능이란 없을 것 같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윈도95를 막상 써보니 처음에 몇 번 다시 설치해야 했으나 별로 말썽없이 잘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도 도스가 편해 도스용 아래아한글로 글을 쓰고 이야기 6.1로 통신을 하고 윈도는 인터넷을 할 때 주로 쓰는 식이 돼버렸다.
 

인터넷 S/W는 통신에서 다운받아야 된다고 해서 업그레이드한 날, 통신에 들어가 보니 새로 업그레이드한 상용인 네스케이프 3.0을 만 명에게 오늘 저녁부터 무료로 배포한다는 공지가 눈에 띄어서 당장 다운을 받게 되었는데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인터넷을 하기 위해 업그레이드한 것인데, 도스 상에선 통신이 되는데 윈도에선 통신이 안 되어 인터넷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조립하신 분이 윈도나 인터넷에 대해 전혀 몰라서 AS와도 속수무책이라 게시판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는데 여러 번 질문해도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아 애를 태워야 했다.

여러 차례 수정해 질문을 한 끝에 OS 동우회 만능문답의 최두홍님이 S3 계열인 그래픽 카드가 윈95에서 콤4를 기본적으로 쓰고 있어서 윈도에서 통신이 안 되는 것이라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다. 모뎀을 콤4에서 콤2로 바꾸어 연결해 주어야 되는데 할 수가 없어서 제어판을 통해 그래픽 가속을 Disable시켜서 당분간 그래픽이 이전보다 느려질 수밖에 없는 대가를 치루고 해결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두 달 만에야 윈도95에서 통신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드디어 인터넷 항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렇게 악착스럽게 원하는 답변을 구하기 위해선 명확한 질문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제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문이 열린 것 같았다. 그렇지만 겨우 인터넷을 하게 되었지만 산 너머 산이라고 인터넷을 하려면 인터넷 제공 업체의 계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처음엔 동생이 쓰는 천리안 계정을 쓰기로 해서 다행이었지만 동생 사정에 따라 무료 계정을 찾아 옮겨 다닐 수밖에 없었다. 제공업체마다 접속 설정을 새로 해주어야 했는데, 아주 복잡해서 프린트해 놓고 보면서 해야 했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하이텔 이용자에게 인터넷 요금이 무료가 되는 98년 말에서야 인터넷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내 PC 역사는 시대를 앞서 가느라 고생한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업그레이드할 때 램을 32 MB로 하고 싶었지만, 예산상의 이유로 16 MB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음 해, 자금이 생기자 램 32 MB를 추가해 48 MB로 늘이면서 이 기회에 모뎀의 콤포트를 com4에서 com2로 변경하기 위해 세진컴퓨터에 본체를 가져가는 수고로운 방법을 택하게 되었다

지리 정보 프로그램이 시작하는데 5분이나 잡아먹던 것이 램을 추가하고 그래픽 가속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1분으로 단축되고 화면 이동이 실시간으로 되어서 그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내게는 두어 달에 한 번씩 책을 사 오는 일이 커다란 낙이자 골치 아픈 일이었기 때문에 큰일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르는 것도 보통 노릇이 아니었지만 사 오도록 하는 일이 더 골치 아픈 일이 되었기에 말이다.

그 무렵 장애우 권익문제 연구소에서 공공시설에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설치하도록 요구하는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을 함께걸음 을 통해 관심있게 보고 있었는데, 첫 대상으로 교보문고에 요구한 결과, 교보 측에서 들어 주려고 노력했지만 구조상 어렵다면서 북클럽에 무료로 가입시켜 주겠다고 한시적으로 연구소를 통해서 신청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신청했더니 가입되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인터넷 교보 북클럽에 가입해서 책을 검색하고 주문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많은 책을 사 왔지만 한번도 서점에 가 보지 못하고 사야 하기에 늘 답답했었다. 하이텔에 가입하면서 ID를 HIBN(Hong Ik Book Net)의 약자로 정했을 정도였는데, 이제 인터넷에서 그 한을 풀게 되었다. 이제까지 책 심부름을 어머니가 맡아서 해주셨는데 어머니께서 점점 다리가 아프셔서 무거운 걸 들고 다니기가 힘들다고 하셔서 안타까웠는데, PC뱅킹을 개설해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송금해서 택배로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젠 어머니께 시킬 일을 하나 줄이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었는지 모른다.
 

역사책들을 읽을 때 부록에 나오는 왕위계승표들을 대조해 보게 되는데 XT 시절에 PC로 조선왕조 왕위계승표를 작성해 보기 시작해 중국의 왕위계승표와 대조한 일부를 한국사동호회의 자료실에 등록시켜 보았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남들이 미처 하지 못한 꼭 필요한 것을 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되어서 차례로 작성해 등록시키게 되었다.

96년에 한국역대왕위계승대조표를 완성해 하이텔의 공개 자료실에 등록시켰더니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전송을 해 가서 깜짝 놀랐다. 하이텔 소식지 꿈따라의 추천자료에 실리기까지 했다. 항상 제일 먼저 주의 깊게 살펴보는 난인데 내가 끼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내가 필요해 만든 것이 남들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때까지 해온 책 공부와 PC 공부가 만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만하다.
 

어느 게시판에서 “지금까지 PC를 들인 돈이 천만원이 넘는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니었다고, 그 돈을 책을 사서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그 중 한 사람의 고백을 공감하면서 그래도 책을 우선적으로 사서 읽으면서 PC에 집중 투자해온 것이 감사하게 여겨진다. 결국 내 자신을 위한 투자였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