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며 생각하며

 

 

 

 

 

약수터에까지 갔다가 오는 길에 중간에서 쉬었다 갈까 말까 하며 둘러보는데 컨디션이 나빠서 더 힘들어 보이는지 인사도 않던 한 아가씨가 "쉬었다 가세요"라고 한다. 상냥한 말씨가 고마와 토방에 걸터앉으니 "그렇게 걸으면 나아지나요"라며 말을 건넨다. 말하기 힘들어 대충 끄떡이고 일어섰다.

돌아오며 왜 힘들게 걷는지 새삼 自問해 보았다. 사각 목발로 처음 혼자 걷는 연습을 시작하면서 계속 안 하면 그렇게 걷는 것도 잊어버릴까 봐 좁은 마당에서 하던 산책이 오랜 습관으로 굳어져 이젠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 버렸다.

온 동네가 내 마당이 된 지금 동네 사람들을 팬으로 얻게 된 것이다. 해로운 일이 아니면 보기에 싫은 모양일지라도 꾸준히만 하면 사람들을 반하게 만드는가 보다. 돈 한푼 들어 갈 것도 없고 나올 것도 없는 산책조차도 꾸준히 하니 감동 어린 눈빛으로 보아주고 인정해 주고 있다.

 

짓궂게 놀리던 골목대장들이 몇 년 사이에 자라서 점잖아지고 오히려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도와주는 것을 대하게 될 때 대견스럽고 더 정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오래 전에 그 녀석들이 날 놀리던 일이 이제는 향수처럼 떠오르곤 한다. 언젠가 차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골목에 사는 조그만 녀석이 며칠 전부터 고래고래 악을 쓰며 놀리는 걸 무시해 버렸었는데, 하루는 큰 녀석들도 합세해서, 야단치자 더 신나서 야단이다. 날 치려고 등뒤로 달려들고 연탄재까지 던져 걸을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청해도 날 무시할 뿐이라, 녀석들은 더 의기양양이다. 정말 난감해지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 때 내 열렬한 팬인 한 할머니가 지나다가 또 나왔냐고 인사한다. 얼씨구나 하며, 손으로 녀석들을 가리키자 단밖에 알아듣고는 이 놈들하며 누구누구네 아들들이라고 호통치자, 그 때까지 귀가 먹었었는지 집안에 있던 애 엄마들이 일제히 나와서 혼내며 끌고 가니 야단치는 소리와 울음소리로 그 좁은 골목 안이 떠들썩했다. 그지없이 통쾌하면서도 조금은 미안스러워 걸음을 재촉하는데 "저렇게 운동하는 것도 고마운데..." 라고 하던 동네가 정말 고맙기만 하다.

또 어느 날엔가 속상하다가도 저 사람을 보면 가족들이 건강하다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하는 소리를 등뒤로 들으며 그저 좋아서 하는 내 형편없는 산책이 남에게 위안을 주게 되다니 오히려 천사가 된 기분이 이었다.

그런데 전형적인 달동네의 인정을 풋풋이 맛보게 해주던 지저분한 골목들이 차례로 빌라가 들어서서 말끔하게 변해 가고 정든 얼굴들이 떠나가 오히려 삭막함을 맛보게 된다.

 

또 어느 날 걷고 있는데 취한 듯 무심코 발길을 옮기는데 놀고 있던 유치원 짜리 아이들 가운데 하나가 내 걸음이 우습다고 "야 저것 봐"하자 10여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깔깔대는 것이다. 한 두 명도 아닌지라 겁이 나게 만들 정도였다.

그 속에서 한 아이가 정색을 하고 나서며 "너희들이 저렇게 아프면 저렇게도 걷지도 못하고 울기만 할거다."라고 하자 일제히 머쓱해진 듯 슬그머니 놀던 대로 돌아간다. 깜짝 놀란 마음으로 그 아이가 가는 것을 한동안 지켜보며 똑같은 키에서 저런 차이가 나올 수 있을까 했다.

그것은 순전히 부모의 교육이리라. 손잡고 가면서 인사하는 부모의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마주 쳐도 깍듯이 인사를 한다.

 

아이들 교육상 장애인을 보면 나쁘다고 하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는 게 아닐까?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은 건 인지상정(人之常情)일 것이다. 온갖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과연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 보여 주고 싶다고 그렇게 할 수 있을 부모가 있을까?

어떤 것을 보아도 좋은 것을 발견하고 취할 수 있는 판단력을 길러 주는 부모가 진짜 좋은 부모가 아니겠는가.

 

어린 장애우들에게                                                                                      장애인이동봉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