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동봉사대

 

 

 

장애인에게 외출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는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비록 몸이 불편해도 나가고 싶고, 나가야 할 일이 있는데도 그 사정을 이해하고 도와 주려는 사람을 찾기란 거의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애인이 이동이 불편한 사람일뿐이란 걸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이란 게 들면서 가능하면 나가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그런데 장애인의 이동을 도와 주는 이동봉사단체들이 생겨 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한벗장애인이동봉사대라는 단체가 있다. 차량을 가진 사람들을 차량 이용이 필요로 하는 장애인과 연결해서 외출이 가능하게 해 주는 곳이다.

이동봉사대를 알고 부터 외출하기가 쉬워졌다. 더욱이 한벗의 취업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수업 받으러 다니게 되었다. 그 전까지 차를 타고 외출하는 일이 몇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였었는데 말이다.

첫 교육을 받으려 가는 날이었다. 8시 반에 차량 연결된 봉사우가 일산에서 목동에 있는 우리 집으로 떠난다는 전화를 받고 차비를 서둘렀다.

9시, 완전 무장하고 대기하고 있는데 9시 반에 길이 막혀 늦어진다는 전화가 왔다. 수업 시간 10시가 넘어도 안 와서 한벗에 사정을 알리고 들어 와 책이나 읽기로 했다. 그 상황에서 읽혀질 리가 없었다. 진짜 속이 타서 찬물을 들이키며 그 분은 더 목이 타겠다 싶어서 음료수를 사다 놓고 기다렸다.

10시 반이 되어도 감감 무소식, 뭔가 잘못 됐나 싶어 한벗에 그 분에게 연락해 보라고 하면서 힘들면 그만 두라고 했다. 잠시 후 그 분에게서 거의 다 왔다는 연락이 와서 진짜 다 왔는 줄 알고 대문 밖에 나갔다. 다리가 아플 정도가 되도록 올 줄 몰라 의자를 내다 놓고 앉아 기다리기 시작. 무려 11시 반에야 왔다. 을지 훈련 교통 통제에 걸려서 그렇게 늦어졌단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었으니 늦었어도 갈 수 있게 된 것이 고마웠다.

 

말이 쉬운 일이지 운전 봉사란 시간과 정성을 바쳐야 가능한 일이다. 출발지까지 가서 태우고 목적지에 실어다 주고 와야 되니 봉사하는데 드는 시간은 배가 더 들어야 한다. 함께 타고 가는 차안에서 서로 친구가 되어 얘기를 나누며 가게 된다. 운전에 지장이 없는 한 친구가 많지 않은 장애인에게 좋은 말벗이 되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장애로 설명하기 불편해 PC로 약도를 그려서 가지고 다닌다. 어떤 봉사우 한 분이 그걸 보고 아주 반가워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지난번에 말을 전혀 못하는 사람과 가게 되었는데 길을 몰라서 고생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약도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도 집을 찾아가 임무를 완수하셨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그 분이 그 때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하면서 운전 봉사란 마음의 봉사란 생각이 들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장애인이동봉사가 가능하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약도를 보완하게 된다. 처음 나 온 봉사우가 약도를 보고 안심하고 가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30분 거리를 세 시간을 헤맨 적이 있다. 하도 고생해서 아마 다시는 안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나온 것이 아닌가. 어떻게 가게 될지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이젠 걱정하지 말라고 지도를 보고 연구해 왔다고! 그 덕에 30분도 안 걸려서 집에 올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꾸준하고 노력하는 봉사우들을 대할 때 존경스러워지고 그 분들의 정성을 위해서라도 더 똑바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된다.

[새가정] 2000년 2월호 테마 에세이 원고

 

산책하며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