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길들이기

 

 

 

 

행인들로 붐벼서 감히 밖에 나가 산책할 엄두도 못 내게 하던 대로변에서 살다가 야트막한 야산으로 둘러 쌓인 한적한 이 동네에 이사와서 산책하게 된지도 8년이 넘었다. 처음 보는 사각 목발을 두 다리에다 여덟 개를 더해 짚고서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듯 힘들게 걷는 모양은 행인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야 만다.

똑같은 내 걷는 모습을 보고, "힘들어도 집에만 있는 것보다 세상 구경도 하면서 운동하는 것이 훨씬 몸에 낫다." 는 긍정론과  "저렇게 힘들게 걷느니, 차라리 집에나 편히 있지 무엇 하러 또 나오느냐." 는 부정론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구경할 테면 실컷 하고 잔소리할 테면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걷겠습니다 하고, 눈이 멀고 귀가 먹은 양 꾸준히 걸었다. 그러면서 실력도 훨씬 향상되고 사람들을 대하는 내 태도도 나아지고, 또 정도 들면서 적극적으로 부정론을 펴던 사람들부터 긍정적으로 되어 가서 더욱 자신 있게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처음엔 누가 쳐다보기라도 하면 그 사람이 실컷 보고 지나 갈 때까지 몸이 얼어붙어 있어야 했는데, 이제는 볼 태면 보라고 어떤 표정으로 날 구경하는지 나도 같이 구경하곤 한다.

사람 얼굴이 가지가지이듯이 그 표정도 제 각각이다. 입은 꼭 다물고 눈이 튀어나오게 쳐다보는 사람, 한숨을 푹푹 쉬며 불쌍해 죽겠다는 사람, 그 모양을 하고 어디 가겠느냐 업어다 주겠다고 따라 오는 사람, 오늘도 또 나왔느냐 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는 사람, 며칠 못 본 것 같으면 날 나무라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기에 오히려 재미있는 마음으로 걷는다. 그 가운데는 정말 얄미운 사람도 있는데 철없는 아이들이 날 놀리는 것을 보고서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다.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경우도 당하지만, 걷는 것이 더 좋아서 추우나 더우나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만 빼고는 어김없이 오후엔 산책을 나선다. 신기한 눈으로 불안하게 바라보던 동네 사람들도 이제는 한 가족이 된 것처럼 마주치면 반가워하며 잘 걷는다고 칭찬해 주게 되었다. 넘어지거나 지팡이를 떨어뜨리게 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달려와서 도와준다. 아이들이 공놀이하다가 내가 지나가면 10분간 휴식하고 길을 비켜 준다. 그 가운데 한 아이가 그 전보다 더 빨리 걷는다고 말해 준다. 내게는 그것이 최고의 칭찬이다.

이젠 처음 보는 사람들이 멋모르고 잔소리했다간 동네 사람들에게 단번에 면박 받고 만다. 나만큼 이웃 사촌이란 말을 실감하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자랑하고 싶다. 그래서 나로서는 신망애 사건과 같은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처음 산책을 시작할 때에는 대부분의 골목들이 포장이 안된 흙 길이여서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더구나 야산으로 둘려 쌓여 거의가 비탈길이라 더 고생스럽게 만들었다. 해마다 도로 포장을 한 끝에 골목 구석구석이 이제는 완전히 포장이 되어서 흙을 밟기 힘들 정도로 걷기가 훨씬 쉬워졌다. 그래서 내 걷는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동네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게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이사 온 이래 뒷산을 볼 때마다 오르고 싶어도 산길이 험해서 감히 혼자서 오를 생각을 못하고, 몇 달에 한번 마음먹고 어머니나 친척을 졸라서야 오르곤 할 수 있었다. 그 뒷산이 공원으로 조성되면서 정상까지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경사가 심한 몇 미터만 부축을 받으면 혼자서도 올라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엔 오르고 싶으면 언제든 산밑까지 가서,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부축해 달라고 부탁하기만 하면 알아듣기 힘든 발음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꺼이 부축해 주어 쉽사리 정상에 오른다.

얼마나 동경하며 바라만 보던 정상이었던가! 그런데 이제는 장난감처럼 펼쳐진 온 동네와 한강을 굽어보면서 바로 이것이 "자유"라고 하며 환희에 젖는다.(이어짐)

(1991년 12월  KBS 라디오 내일도 푸른하늘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