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만의 물리 치료

 

 

 

 

걷는 연습을 혼자서 계속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버려 매일 산책을 하지 않곤 못 견딜 정도가 되었지만,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걷는 연습을 많이 해서 보통 사람처럼 걷는 것을 바란 적은 없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연습을 해 오다 보니 몸이 땀에 흠뻑 젖을 만큼 힘든 연습이 취미가 되어 버린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자세를 교정하면서 걷는 연습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혼자서 걷다 보니 걷는 자세가 나빠져 가게 되어 갔다. 물리치료를 다시 받아 보고 싶어졌지만 병원에 가기 힘들어서 물리치료를 받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2000년 초에 의왕시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2002년에 보건소에서 간호사님이 방문해서 내게 물리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물리치료를 받게 해 주었다. 의왕시 보건소에서 용인대학교 물리치료과 학생들을 보건소에 나오기 힘든 환자를 방문해 물리치료 운동을 받게 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었는데 그 혜택을 입게 된 것이다. 그 때까지 보건소에서 이런 일을 하는지 몰랐다. 이제까지 정부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살아왔기에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감사했다.

처음부터 물리 치료를 하러 오는 줄 알았는데, 아주대학교의 재활의학과의 교수님이 와서 검사하러 왔다. 검사를 하는데, 예전엔 상상도 못할 만큼 세밀하게 온몸의 모든 부분의 근력을 측정해 기록하는 것이다. 물리 치료 운동은 용인대 학생이 하지만 일년에 한 두 번 와서 검사를 하고 있다.

첫 번째로 연결된 학생이 날 처음 보고 우선 굽어진 다리를 펴게 해서 똑바로 걷게 해 주고 싶었다고 한다. 어머니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날 보면 똑바로 못 걷는 게 안타깝다고 무조건 걷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던 것처럼......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걷는 연습 일변도가 되어서 다른 부분들이 소홀하게 되었다. 뇌성장애인인 내겐 걷는 것보다 일상생활에서 손동작과 언어표현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나이가 들수록 절감하게 되고 있다. 

이런 점을 학생에게 얘기하자 운동시키면서 이 점을 곧 깨닫고 교수님들과 상담 끝에 걷는 건 현재의 자세로 균형을 잘 잡고 걸을 수 있게 해 주고 손동작을 향상시키는 운동을 하는데 중점을 두기로 전략을 바꾸었다.

상지 운동을 처음으로 받아 보게 되었는데 팔 운동한 다음 며칠은 팔이 너무 아파 찜질을 해야 했다. 그만 두자고 하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팔이 이렇게 아팠던 건 세 번째인 것 같다. 

첫 번째는 15년 전 컴퓨터를 맨 처음 사서 배울 때 키보드를 치기가 힘들어 팔이 아팠었다. 그래도 내 생각을 똑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기뻐서 아픈 줄 모르고 계속 쳤더니 익숙해져서 아주 느리긴 해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동생이 컴퓨터를 사 오면서 내가 과연 키보드를 칠 수 있을지 걱정했었는데 예상보다 잘 쳐서 안도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몇 년 전 인터넷 취업 교육을 받을 때 마우스를 많이 써야 됐을 때다. 특히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포토샵을 배워야 됐는데 내 손으로 마우스를 쓰기엔 무리라고 할 정도였다. 몇 십분 동안 애써서 작업하고 나서 저장하기 위해 마우스를 힘들게 확인 버튼에다 갖다 놓고 클릭하는 순간 손이 흔들려서 옆에 있는 취소 버튼을 클릭하기 일쑤여서 마우스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했었다. 선생님이 포토샵을 단축키로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서 보다 쉽게 할 수 있었고 포토샵이 재미있어서 열심히 따라 했더니 마우스를 쓰는 것만큼 손이 적응되어 가서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나서 한 달 정도 팔이 아파서 약을 먹어야 되었다. 

팔이 아플 때마다 한 단계씩 도약을 했었으니 이번에도 또 다른 도약을 위해 받는 진통이라는 생각에 찜질을 하며 운동을 계속 받았다. 몇 주 계속 하자 적응이 되었는지 아프지 않고 잘 따라 할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집중적인 상지 운동의 효과로 손이 안정이 되어 갔다. 전에는 숟가락질할 때 손이 흔들려서 밥을 많이 흘렸었는데 덜 흘리게 되었고 땅콩같이 작은 것을 손으로 집어서 먹는 것보다 숟가락으로 퍼먹는 게 편해지게 되었다. 이제는 손가락 운동이 숙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리라. 

또한 마우스로 하기 힘들었던 정교한 작업도 별 문제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지만 포토샵 예제집을 보며 따라 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 버렸다. 

일주일에 한번 받는 물리치료를 통해 불안하던 동작들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물리치료 운동을 시키기 위해 땀을 흘리는 학생들을 보면서, 또 이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뒤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을 생각할 때 더 똑바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제까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편안하게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온갖 시중을 해주시며 언제까지나 건강하실 것 같았는데 근년에 들어 눈에 띄게 노쇠해지셨다. 몸이 편찮으시다고 하실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않곤 하는 때가 요즘 들어 많아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없이 어떻게 살지 하게 된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손이 나아지면서 이젠 혼자서 살면 되지 하는 자신감이 들게 되었다. 지난 몇 년 사이 일어난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와 단 둘이 생활하다 보니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길 수밖에 없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학생이 와서 운동을 시켜 주면서 대화 상대가 되어 주고 있어서 운동 못지 않은 생활의 활력을 주고 있다. 그래서 매주 한 시간의 짧은 데이트를 기달리는 것이 생활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2004년 7월부터 정부 기관이 토요일 격주 휴무제가 시행되면서 이 사업을 주간하는 보건소도 해당되어서 학생들이 격주로 올 수밖에 없게 되어서 큰 지장이 생기게 되었다. 더구나 2005년 7월부터 주 5일제가 전면 시행되면 방문 서비스가 존패 위기에 놓이게 되어 걱정이다. 학생들이 수업이 없는 토요일밖에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ps-

결국 한 달에 세 번으로 줄어 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