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미국 여행

(남서부 자동차 여행)

 

 

      2003.    8.    4     月.     맑음.              陰七月七日.

세를 낸 5000cc 8기통 8인승 밴을 아침에 가져 왔다. 샌디에이고-라스베가스-그랜드캐년-요세미티-샌프란시스코-샌디에이고로 미국 남서부를 종횡으로 누빈다는 생각으로 설렌다. 자리가 모자라 상훈네가 빠지게 되어서 너무 아쉽다.

먼저 라스베가스를 향해 9시 40분 출발. 바스토우에서 주유하고 나서 15번 도로를 달리니 사막 지대가 펼쳐진다는데, 모래 대신 누런 땅에 잡초만 듬성듬성 있을 뿐, 산도 벌거숭이다. 화씨 100도(섭씨37도)가 넘어서 버린다. 해발 1000m에 이르는 오르막길을 시속 80마일(128km)로 두어 시간을 달려도 똑같은 풍경이니 어이가 없어진다. 역시 미국이 얼마나 넓은지 탄성이 나게 한다.

베이커란 조그만 마을에서 쉬면서 만들어 온 핫도그로 점심. 샌디에이고에서 530여 km를 계속 달려 온 끝에 3시가 넘어서야 라스베가스에 들어선다. 시내를 구경부터 하자고 거리를 돌았다. 뉴욕, 파리, 베네치아, 등의 명소들을 모조한 건물들이 눈길을 끈다. 한글 간판 음식점도 눈에 띄니 더욱 신기하다.

낮의 라스베가스는 너무 더워서 다닐 수가 없다. 여관(inn)부터 구해서 쉬었다. 침대에 누우니 그지없이 편해 꼼짝하기 싫어서 저녁도 사양하고 말았다. 해가 넘어갈 즈음 야경을 구경하러 가자는 소리에 밥은 굶어도 구경은 해야지 하고 일어나 따라 나섰다.

세계적인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는 카지노, 스트립쇼, 그리고 야경으로 대표된다는데 우리에겐 야경만이 해당될 뿐이라. 해질 녘인데도 아직도 한낮의 열기로 숨이 막힐 듯 후끈하다.

 

여관 앞 웨딩 채플이 눈에 먼저 띈다. 보통 승용차 2, 3대를 이어 붙여 놓은 것 같은 길다란 초호화 리무진이 신기하다. 아마 세계에서 결혼하기 쉬운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라스베가스의 중심인 스트립 거리를 산책하며 즐비한 초호화 호텔들을 눈요기하다. 시저스팰리스의 고요한 분수, 벨라지오의 노래에 맞추어 화려하게 춤추는 분수쇼, 미라지호텔의 화산 쇼 등 호텔마다 특색있는 테마쇼로 경쟁을 벌리고 있다.

유명하다는 트레져아일랜드의 해적선쇼는 휴관이라서 구경할 수  없었는데, 한 여름 비수기라 공사 중인 건물이 많다.

조카들이 걷기 힘들다고 징징대어 돌아가야 했었는데 여동생이 더 구경하고 싶은데 혼자는 무섭다고 같이 가자고 휠체어를 밀고 다녀서 너무 신날 수밖에.

 


밤이 깊어지면서 서늘해져 구경하러 다니기 알맞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불야성을 이룬 거리엔 인파로 넘쳐 난다. 라스베가스라면 도박, 퇴폐가 연상되고 범죄가 들끓어 험악한 곳이란 인상과 달리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이상하다. 여기 치안을 마피아가 담당하고 있다는데 영업에 방해되는 수상한 놈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막으로 끌고 가서 처치한다나?

초입에 있는 뉴욕뉴욕엔 밤을 잊은 채 청룡열차가 돌고 있다. 길을 건너려 하니 육교가 있는데 모두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도 있어 타고 건너가면서 건물 안도 구경할 수 있었다. 건너편 거리는 베네치아, 파리의 모조 건물들을 멋지게 꾸며 놓아서 그 곳에 와 있는 착각이 들게 한다.

문을 열어 놓은 카지노를 호기심에 기웃거리며 영화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처럼 숫자를 모조리 외울 수 있는 비상한 능력을 이용해 도박장에서 큰돈을 벌어서 라스베가스에서 떠나는 그랜드캐년 관광 헬기를 타고 가면 하고 공상을 해 본다. 내일 종일 그랜드캐년까지 가야 하는 나그네의 한 여름밤의 꿈!

라스베가스의 화려함 뒤에는 부근의 후버댐 건설에 고용된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을 갈취하기 위해 카지노가 만들어졌다는 비극적인 역사가 숨어 있었다니 씁쓸해 진다.

7시 반에 나왔었는데 여관에 돌아오니 1시가 다 되어 가고 있다. 라스베가스의 야경을 원없이 눈요기했다.


      2003.    8.    5.     火.     맑음.              陰七月八日.

9시 반, 차에 올라 시내를 둘러보며 나와 그랜드캐년을 향했다. 라스베가스를 벗어나자마자 황량한 벌판이 펼쳐진다. 93번 도로로 달려가는데 후버댐이란 이정표가 나와서 구경하고 가자고 했다.

11시쯤 도착해 내리니 뜨거운 공기가 엄습한다. 바짝 달군 콘크리트 화덕에 잘못 들어간 것이

다.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오르내려 보았지만 별로 볼 것이 없다. 전망대에 찾아 들어가니 에어컨이 있어 살 것 같다. 커다란 유리벽으로 댐과 미드호를 볼 수 있었는데 소양강댐과 별 차이 없어 보인다.

30 몇 년 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와서 어린 마음에 굉장한 걸로 각인되었었는데 그 땐 소양강댐이 없어서 그랬나?

1920년대 미국이 대공황에 빠져 있었을 때 루즈벨트대통령이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콜로라도 강에 후버댐을 건설해 고용과 투자를 촉진시켜 대공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교과서에 소개되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도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기에 국어 교과서에 나왔었으리라.

아무튼 이 뜨거운 화덕 속에도 관광객들로 넘쳐 나고 있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역사가 짧은 미국이 사막으로 둘러 쌓인 벽촌에다 70년 전에 만든 댐이 무슨 명승고적이라고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다니..... 길 하나 잘 닦아 놓은 덕인가..... 너무 더워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떠나야 했다.

93번 도로를 계속 달려 애리조나의 모하브 군 소재지 킹맨까지 130km 사막지대를 통과하다. 가도 가도 누런 모래뿐이다. 40번 도로로 200km 떨어진 그랜드캐년 입구 윌리암스로 가는데 산세가 기암괴석으로 일변한다. 대협곡의 서막을 알려 주는 듯이.....

윌리암스에서 그랜드캐년으로 북상하는 길은 또 다른 풍경을 보여 준다. 보호림 지역으로 큰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숲 사이로 난 길을 달리니 모처럼 상쾌한 드라이브를 즐기는 기분이다. 미국에 와서 처음 보는 숲이라 새삼스럽다.

 

 

5시 반, 마침내 그랜드캐년에 도착하다. 내 어린 시절이래 수많은 책들과 TV로 보고 상상하던 그 웅장함을 내 눈으로 본다. 사진으로 보던 그대로인데 아득하게 펼쳐진 거대한 암석 절벽이 압도한다. 이쪽 절벽에서 저쪽 절벽까지 약 4Km 정도 되고, 그랜드캐년의 깊이는 약 2Km 정도 되고, 길이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이로 약 500Km 정도라고 한다.

암석 지층이 균일하게 층층이 쌓여 있는 것이 신기하다. 오랜 세월을 두고 풍화 작용으로 쌓였다는 설과 대홍수 같은 지각 변동에 의해 일시에 지층이 형성되었다는 설이 맞서 있어서 이 웅장함이 더 신비스러울 뿐이다. 하늘은 그지없이 짙게 푸른데 땅은 온통 누렇다.

미국에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도 다 있는데 그랜드캐년 같은 건 없다고 할 것 같다. 

 

 

까마득한 밑바닥 한 가운데엔 콜로라도강이 뱀처럼 기어가고 있으니 하루 종일 콜로라도강을 따라 다닌 모양이다.

여기에서 일박을 하려고 호텔을 알아보고 캠프장을 구해 보는데 다 찼다는 것이다. 방부터 구해 놓아야 되는 것을 몰랐다. 10마일 아래쪽 호텔에 빈방이 있다고 알려 주어서 깜깜해진 길을 차를 타고 내려가서 방을 겨우 얻어 늦은 저녁을 먹고 쉬다.


      2003.    8.    6.     水.     맑음.              陰七月六日.

그랜드캐년의 일출이 장관이라고 해서 꼭 보고 싶었지만 운전사들이 못 일어나니 꼼짝없이 누워 있을 수밖에.

그랜드캐년을 한번 더 보고 떠나자고 해서 서둘렀다. 야밧포인트에서 보는 그랜드캐년은 또 다른 경치를 보여 준다.

 

 

 

 

그렇지만 2000m의 계곡을 계단으로 내려가서 바닥을 구경하고 인디언들의 유적도 둘러 볼 수 있도록 등산로가 멋있게 형성되어 있는데 시간이 없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10시 20분, 서둘러 다음 목적지 요세미티로 향했다. 거리가 멀어서 오늘 안으로 가기 힘들어 가까이에 있는 프레스노까지 가는 게 오늘 목표인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제 왔던 길을 거슬러 가다.

점심을 먹기 위해 1시 반, 킹맨에 들르다. 전기 밥솥을 갖고 다니며 모텔에서 눈치껏 해 먹었기에 처음으로 외식을 해 보게 되었다. 취사를 하면 벌금을 물린다는 모텔도 있지만. 우리같이 모텔에서 밥을 해 먹으며 미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알뜰하기 짝이 없지...!

맥도날드점에 들어가 햄버거로 점심. 밖은 40도를 육박해 더워 견딜 수 없는데 에어컨으로 그지없이 시원하다. 에어컨 없으면 살 수 없는 곳. 킹맨은 시골 마을인데 식당 안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으니 교통의 요지인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짜게 먹는다고 어느 나라 사람들이 했는지 모르지만 미국 음식은 훨씬 짜다. 또 단 것은 너무 달아 먹기 힘들 정도이니 미국 사람들은 입맛이 자극적인 만큼 성격도 자극적인 모양...?

330km 떨어진 바스토우까지는 그야말로 황야 지대. 허허 벌판에 민둥산, 서부 영화에서처럼 인디언들이 산 위에 숨어 있다 뛰어 나올 것 같은 풍경이다. 지도에 드문드문 표시된 점들을 지나 가보면 집 몇 채가 주유소 주위에 모여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똑같은 풍경이 이어지는데 화물 열차가 지나가며 눈길을 끈다. 화물칸을 끝없이 달고 가는데 세다가 지칠 정도. 기관차 하나에 30개 화물칸을 달고 가는데 기관차가 2, 3대가 붙어서 가면 끝이 안 보이게 줄지어서 간다.

5시 쯤 바스토우에서 쉬려고 내리니 흐덥지근하기 짝이 없다. 쇼핑몰이 있어서 에어컨 바람을 찾아 재빨리 들어갔다. 물건들이 엄청 싸서 저마다 집어 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점포 정리였다고.

58번 도로를 타고 저무는 해를 따라 서진. 모하비 사막의 풍차 지대를 통과하다. 풍력 발전을 세워 놓은 풍차들이 하얗게 민둥산을 수놓아서 지루함에 지친 눈을 신기하게 한다. 미국은 놀고 있는 땅이 아직도 엄청나게 남아 있는 것 같이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선 후손에게 물려 줄 땅이라고 하나 보다.

8시가 넘어서 결국 베이스필드에서 묶기로 하다. 오늘 하루 종일 차 속에서 흔들리며 540km를 타고 달렸나 보다. 늦은 저녁을 해서 먹고는 골아 떨어졌다.


      2003.    8.    7.     木.     맑음.              陰七月九日.

오늘 목표는 요세미티와 샌프란시스코를 찾아가는 것이다. 거리는 어제보다 훨씬 짧아도 둘러 볼 게 많아 8시 45분, 일찍 출발하다.

베이커스필드를 출발해 캘리포니아 최대의 농업도시인 프레스노를 거쳐 북상하는데 어제까지 달려온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캘리포니아 대농장지대와 평원지대라고 한다.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아몬드, 무화과, 파스타치오 농장과 목화밭 지역이 펼쳐져 있다.

11시, 요세미티에 도착하다. 미국 제2의 국립공원인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설악산같이 바위와 나무가 어울러지고 있는데, 입구에서 터너뷰까지 한 시간 정도 올라가는 길이 깎아지른 듯 굽이쳐 올라가는데 지리산보다 더 웅장하다.

 

 

해발 1000m가 넘는 터너뷰에 내리니 엘카피탄, 바위를 칼로 잘라놓은 것처럼 서있는 하프돔 등 웅장한 암벽이 양쪽에 버티고 서 있고 면사포폭포가 멀리 보인다. 그리고 까막득한 계곡아래엔 푸른 숲이 빽빽이 들어 서 있다.

아래에서 흰 연기같은 것이 보여서 구름이 피어나나 했었는데 산불이 난 거라고 한다. 여기에선 자연 발화된 산불은 그냥 놓아둔다고 한다. 자연 그대로 보존인가 보다.

요세미티에 대해 팸플릿에 나온 대로 번역해보면 “요세미티 계곡의 깎아지른 듯한 암벽과 편평한 지면은 고지대의 빙하가 머시드 강의 협곡을 따라 흘러 내려가면서 생성되었다. 빙하가 화강암의 보다 약한 부분을 조각내고 깎아내고 연마했지만, 엘캐피탄 같은 원래 단단한 부분은 남겨 놓은 것이다. 머시드 강이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연속된 융기를 통해 조각낸 협곡을 빙하가 확대시켜 놓았다. 마지막 빙하가 녹을 때 말단부의 빙퇴석이 녹은 물을 막아서 U자형 계곡 안에 고대 요세미티 호수를 형성했다. 결국에는 퇴적물이 호수에 채워져 오늘날의 평평한 계곡 바닥이 만들어졌다. 빙하가 머시드 계곡에 도달하지 못하고 그 강의 V자형 측면은 요세미티 계곡의 깎아지른 듯한 암벽과 두드러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 요세미티 계곡은 야생화와 꽃피는 관목, 참나무가 혼재된 광활한 초원 그리고 폰데로사 소나무(큰 잣나무의 하나), 향나무, 미송 등의 혼합 침엽수 숲이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다. 왕나비에서부터 사슴과 흑곰에 이르는 야생동물이 상이한 공동체를 이루며 번성하고 있다.”

 

 

면사포폭포로 이동하다. 면사포처럼 바람에 날리 듯 춤을 추듯 흔들리며 떨어진다고 붙인 모양이다. 좀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휠체어를 밀고 구름다리 아래까지 올라가 보았는데, 다리를 건너서부터 기어올라가야 한다고....

이렇게 높은 산 속에 드넓은 숲과 초원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올라오는 차마다 자전거를 매달고 오는 것이 궁금했었는데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숲 속을 신나게 달리는 것이 신기하게 보인다. 여기에서 꼭 캠핑하고 싶어지게 만드는데 짧은 일정이 아쉽기만 하다. 언제 다시 온다면 4박 5일쯤 캠핑하며 요세미티를 감상하고 싶다. 그만큼 요세미티는 거대하다.

4시에 구비 구비 돌아 내려와 요세미티를 빠져 나오니 하늘에서 떨어져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듯 길을 헤매야 했다. 지도와 도로 표지판을 대조해 샌프란시스코를 길을 찾다.

오늘도 석양을 향해 서진하게 되었다. 스톡턴을 거쳐 작은 산맥을 넘어 오클랜드로 가는데 여기도 풍차가 하얗게 수놓고 있다.

오클랜드에서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이브릿지를 건너 7시 반,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서는데 바다 저쪽으로 금문교가 보인다. 석양의 금문교, 이렇게 타이밍을 맞출 수 있을까!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시내로 들어서는 바람에 잦은 교통신호에 걸려 해가 다 넘어 가고 만다. 이제껏 미국의 시골에 난 고속도로로만 질주하고 다니다가 처음으로 대도시에 들어와 보는 것이었다. 교통 체증이 서울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샌프란시스코가 LA에 비해 오래된 양반 도시라고 알고 있었는데, 고층 빌딩과 함께 2, 3층 짜리 아담한 건물들이 아기자기하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시커먼 사람이 도로에 나와 손을 내밀고 있어서 순간 소름 끼치며 차 문을 꼭 잠그게 만든다. 시가지를 겨우 빠져 나와 금문교에 들어서니 벌써 어두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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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으로 건너서 금문교 공원에 내렸다. 두꺼운 옷을 껴입었는데도 바람이 한 겨울 바람처럼 너무 세차서 덜덜 떨게 만든다. 일몰을 놓쳤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야경이 더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영화 때문에 감옥으로 유명해진 알카트래즈 섬도 가까이 보인다.

방을 구하기 위해 다시 금문교를 건너 왔는데 도심이라 허름해 보이는 여관도 비싸고 분위기 좋지 않아 망설이다가 산호세에서 묶으라는 말이 생각이 나서 산호세로 가는데 도심의 오래된 건물들이 샌프란시스코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 같다. 

76km 떨어진 산호세에 도착해 방을 구하는데 방을 찾아다니다가 아침 식사까지 제공하는 호텔을 구해서 처음으로 비싼 데서 묶게 되었다. 방에 들어가니 11시가 넘어서 씻고는 그대로 쓰러져 자고 말았다.

      

      2003.   8.      8.      金.     맑음.   陰七月十日.

마지막 날, 고급 호텔에서 묵었는데, 일상 용품이 거의 다 갖추어져 있는 것 같다. 식사를 하러 1층에 내려가 빵으로 아침을 들었다. 방을 늦게 구한 덕에 미국식 아침 식사를 먹어 보게 되었다.

오늘은 늦게 출발을 하자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 뭘 할까 하다 그냥 누워 있었다. 샌디에이고까지 800km를 차를 타고 가야 하기에 끔찍해서 보신 삼아.....

10시 55분, 호텔 출발해서 12시 세븐틴마일즈 도착했다. 페블 비치 해안가 작은 마을을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다. 숲과 해안을 빨간 점선으로 17마일의 드라이브 코스를 그려 놓아 환상의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자동차가 나오기 전엔 마차를 타고 다니던 드라이브 길이라고 하니 역사가 오래 되었나 보다.

점심을 들고 아름다운 해변에 파란 골프장. 그 유명한 페블 비치 골프장, 링크스 잔디를 휠체어를 밀고 들어가 보았다. 짙은 초록 잔디가 황야만 보아 오던 눈을 맑게 해 주고 잔잔한 바다는 유난히 짙푸르니 가슴 속을 탁 트이게 해준다.

따갑게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시게 이 아름다운 순간을 비춰 주고 있다. 빨간 덩굴장미로 담을 친 아담한 집들. 진짜 은퇴해 살고 싶은 곳이다.

넋을 잃고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감상하고 있는데 파란 눈의 여자가 다가 와서 “help you"라고 묻는다. ”no, thank you”라고 대꾸하니 내 말을 확인하고는 가 버린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영어 한 마디 해 보게 되었다. 내 영어 발음이 얼마나 의사소통이 될지 궁금했었는데 좀더 얘기해 보지 못해 아쉽다.

이번 미국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집밖에 나가면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 건 똑같고 한글이나 영어나 글을 읽는 건 마찬가지인지라.....

야속한 시간에 떠밀리듯 차에 올라야 했다. 1번 도로를 타고 샌디에이고로 태평양을 따라 남진. 오늘 안으로 집에 들어갈지 시간과의 승부다! 한쪽엔 끝없이 바다가, 다른 쪽엔 농장 지대가 이어져 간다.

 

 

끝없이 뻗어 있는 1번 도로를 달리다 7시가 넘어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하며 지도를 보다가 피스모 비치가 눈에 띄어서 찾아 들어갔다. 주립 공원이라고 돈을 받는데 모래사장에 나무 테이블과 취사대를 만들어 놓았다.

 

 

캠핑을 할 계획으로 버너를 갖고 다녔지만 쓸 기회가 없었는데 마지막에야 쓰게 되었다. 옆에선 고기를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라면을 끓여 먹다. 온통 붉게 물든 석양의 바닷가에서....

 

 

장엄한 일몰이 아쉽게 자취를 감추고 어두워지자 검은 하늘에 달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밤바다에 어린 달빛은 더 아름답다. 미국 남서부를 누빈 4박 5일의 여정을 고요히 축하해 주는 것 같다.

다시 1번 도로를 타고 달리는데, 군데군데 도시만 불이 밝혀져 있을 뿐, 깜깜해서 밤길을 헤드라이트로 비추며 곧장 집으로 달려야 했다. 샌디에이고까지 일사천리로 잘 찾아왔는데, 정작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을 찾기 힘들어 헤매고 말았다.

낮선 땅을 장장 3500km를 누비고 1시가 다 되어 무사히 집에 오니 감사하다. 모두 건강하게 편안하게 다녀왔는데, 매제가 우리끼리만 보내 놓고 내내 자책을 했다고. 이번에 여행한 건 50개 주 가운데 3개 주 뿐이었으니 말이지만, 이국의 초행길을 지도와 이정표만 대조해서 가고 싶을 곳을 다 찾아다닐 수 있었으니 미국이란 나라가 기초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한다.


      2003.    8.    9.     土.     맑음.              陰七月十一日.

4박 5일 동안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지겨워서 오늘은 꼼짝 않고 집에 있어야지 했었는데, 나간다고 하니 또 따라 나갔다. 사흘 밖에 안 남았으니.....

오늘 일정은 시내 관광버스로 샌디에이고 일주하기. 버스에 휠체어 리프트가 있어서 타 보았는데 탄 다음 휠체어를 고정시켜야 되는데, 기사가 할 줄을 몰라서 그냥 좌석에 앉았다. 버스가 몹시 흔들려서 정신없이 흔들려 혼났다. 여자 기사가 요란하게 설명해 주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샌디에이고의 다운타운을 구경해 보았다는 것.....

리프트가 오르내리는 것이 오래 걸어서 내릴 때는 부축받아 앞문으로 내렸더니 지팡이 짚는 노인들도 힘들다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리프트를 이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남들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서 비켜 주려고 서두르는데 미국 사람들은 자기 차례에선 남에게 신경을 안 쓰고 할 것 다 하고, 남들도 그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단다. 그게 개인주의인가 보다.

오늘이 생일이라고 잔치해 준다. 비자가 나오기 전에 동생에게 생일을 여기 와서 해 먹겠다고 하고도 믿지 못했었는데 그대로 이루었으니 감사할 뿐이다.

여기 온 목적 중에 하나가 지팡이를 사는 것이라고 했었는데 지팡이를 선물로 사 왔다.


      2003.    8.    10.    日.     맑음.              陰七月十二日.

지난주처럼 주일 예배를 드리려 집 근처 교회에 가다. 담임 목사님이 출타해서 다른 목사님이 설교하셨는데 알아듣기 어려워 답답했다.

오기 전엔 귀국 항공편을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예약을 바꿀 수 없어로 갈 수밖에 없게 되어 너무 짧아 아쉽지만 구경하고 싶었던 것을 다 했고 집 떠나면 불편한 법이라 미련없이 가야겠다.

귀국할 준비로 선물 사러 간 조용한 오후, 모처럼 한가히 책을 읽으며 PC 게임하기 정신없는 상훈이를 구경하다.

저녁에 서점에 갔다. 미국에 왔으니 책을 사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서 동생에게 서점에 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었고 어머니께 책을 사게 돈을 달라고 했더니 50달러를 주셨다. 그런데 동생이 지금 밖에 시간이 없다고 가자는 것.

동생들이 다 따라 나서서 모처럼 네 형제가 함께 외출하게 되었다. 근처의 보더스 서점에 갔는데 꽤 큰 규모다. 카펫이 깔려 있는 넓은 홀에 각 분야별로 큰 책장을 3면으로 배치해 칸막이로 삼고 소파를 놓아서 책을 읽으며 대화도 나눌 수 있게 해 놓아서 서재에 온 분위기. 천천히 살피며 고를 수 있었다.

역사, 철학, 사회학, 신학에서 한 권씩 골라서 계산하려고 저울질하는데 동생이 두 권을 계산하겠다고 해서 모두 살 수 있었다. 역시 동생들을 잘 두었나 보다.


      2003.    8.    11.    月.     맑음.              陰七月十三日.

돌아 가야 하는 날이 내일로 다가 왔다. 미국 사회에서 부러운 건, 규칙 엄수. 그리고 개인 지상주의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신, 그것은 기회 평등을 철저하게 보장해 주고 그 바탕 위에서 경쟁을 하게 한다는 것!

또한 지폐에 “We Trust In God"라고 쓰여 있으니 미국이 아직까지도 세계 최강국이 된 바탕이 남아 있다고 할 것 같다. 그런 것을 통해 자본주의의 정신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아직도 미국 사회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리라.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자본주의가 유물화 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그걸 분리시켜 받아들였기에 자본주의의 온갖 폐해를 견제할 장치가 없는 것이다.

저녁 밥 먹고 상훈이를 졸라서 산책을 나섰다. 서늘한 저녁 바람이 기분 좋은데 인적이 드물다. 운동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선수들 뿐. 상훈이가 까불며 휠체어를 밀어 주면서 집 옆에 있는 자기 학교에 대해 설명해 준다. 너무나 아쉬운 시간이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2003.    8.    12.    火.     흐리고맑음.        陰七月十四日.

11시 비행기라고 새벽같이 출발해야 한다고 해서 5시 20분에 일어나 밥을 먹고 떠날 채비하다.

6시 반, 상훈이, 현경이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차에 올랐다. 제수씨도 꼭 함께 왔으면 하는데, 예약을 6주로 해 놓아서 다시 이별! 2주는 너무 아쉽고 6주는 너무 길고 4주가 알맞은데 항공권 예약이 마음같이 안 되어서 아쉽기만 하다.

LA 공항에 9시 도착하니 11시 55분에 출발이라고 하는 것이다. 잘못 알고 서둘렀다. 그 덕에 배웅 온 동생과 한 시간 동안 한가로이 얘기할 수 있었다. 시간이 되자 맨 먼저 탑승시켜 주었는데, 가운데 자리다. 한 눈 팔 게 없어 책을 꺼내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 같다. 이번에도 일본을 경유해서 가는데 10시간 반만에 나리다 공항에 내려 쉬었다. 날짜가 하루를 건너 뛰어 13일 오후 3시.

5시에 다시 탔는데 우리 신문을 보름만에 보게 되었는데 보기 싫은 뉴스 뿐이다. 그동안 안 본 것이 진짜 휴가였다고 할까?

7시 40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니 이번에도 윤기 외삼촌이 마중 나와 쉽게 오게 되어서 감사했다.

1부(출발 준비부터 샌디에이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