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미국여행(출발 준비부터 샌디에이고까지)

 

 

 

회사 주재원으로 미국에 근무하게 된 동생네가 살고 있는 샌디에이고에 꼭 오라고 했었는데, 제수씨가 추진하게 되어서 2003년 여름 얼떨결에 미국 다녀오게 되었다.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었던 미국이라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된 듯 가기로 결정이 되자 마냥 설레었다. 그런데 비자 발급부터 긴장하게 만들었다.

일곱 식구가 신청을 했는데 나만 인터뷰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필 제일 힘든 내가 찍히게 된 건지 의아하고 걱정스러워지게 만들어 주엇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조사해 봤더니 인터뷰를 하는 목적이 가서 눌러 살 작정인지를 가려내는 것이라고. 즉 비자 신청자가 증거를 제시하기 전까지 비자심사관은 모든 신청자를 이민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 내가 눌러 앉을 가능성이 높다고 찍힌 모양이다. 그러니 눌러 앉지 않을 거라고 확인시키면 되는 것이다.

 

 

      2003.    7.    10.    木.     흐리고맑음.        陰六月十一日.

인터뷰하러 가는 날, 9시까지 미국대사관에 나오라고 해서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해야 했다. 동생이 7시에 온다고 나와 기다리고 해서 먼저 차비하고 혼자 현관에 나가 기다렸다.

어머니가 돈이 쪼들려 가기 싫다고 은근히 미끄러지기를 바라시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언제 올 건가. 꿈같은 일로 바래 오던 일이 눈앞에 다가 왔는데 놓칠 수는 없건만, 나만 인터뷰를 해야 한다니 잘못 되는 것 같아 조마조마......

동생이 7시에 와서 바로 출발했다. 출근 시간이라 길이 막힐 줄 알고 일찍 서둘렀는데 잘 빠져 한 시간 만에 도착했다. 인터뷰를 하러 온 사람들이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줄을 서서 따라 들어가니 장애인은 줄 서지 말고 먼저 가서 얘기하면 된다고 해서 창구 앞으로 갔더니 통로가 좁아 휠체어가 못 들어가게 되었다고 길가 창구에 가서 기다리면 영사가 나와서 인터뷰를 한단다.

먼저 신청을 대행한 여행사 직원을 만나 같이 가야 되는데 우리가 일찍 오는 바람에 한참 기다려야 했다. 9시가 되어 만나서 서류를 접수시키고 창구 앞에서 대기했다. 직원이 자신있게 대답하라고 조언해 준다.

영사가 서류를 검토하고 나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미국인 영사가 한국 여자 통역관을 대동하고 난 동생을 통역관으로 대동하고. 영사의 첫 질문은 방문 목적지가 어디냐고 해서 나도 모르게 선뜻 샌디에이고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한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느냐고 질문해서 못 받는다고 했더니 매우 의아하다는 표정. 현재 한국 정부는 경제 능력이 없는 장애인이라도 집이 있으면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는다고 동생이 설명했다.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표정(집만 갖고 어떻게 살지?).... 이게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아닐까.

그리고 방문 목적은 주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동생네 방문을 포함한 여행, 기간은 2주 정도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영사가 비자를 내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말을 알아듣고 대답 잘 하니 구경 잘 할 거라면서........

얼마나 염려하며 기다리던 허락인가. 그 허락 하나 받기 위해 근 한 달을 걱정했었는데 드디어 어렵게 여기던 또 하나의 고비를 속 시원하게 넘어서게 되었다. 역시 난 찬스에 강하군. 주여, 할렐루야~!

 

      2003.    7.    11.    金.     맑음.              陰六月十二日.

항공권이 8월엔 매진되어서 30일에 출발하는 걸 예약을 했다고 한다. 반갑지만 성수기라서 할인을 받을 수 없어서 비싸게 가게 되어서 문제다. 내 비자가 늦게 나오는 바람에 여동생과 제수씨가 조카들을 데리고 먼저 떠나게 되었지만 항공권까지 예약했으니 진짜 가는구나!

 

      2003.   7.   29.   火.     흐림.              陰七月一日.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부지런히 떠날 차비를 하면서도 먼 여로에 오른다는 실감이 안 난다. 계속 비가 와서 떠날 준비로 외출이 잦은 어머니를 성가시게 하더니 오늘로 그치고 해가 간간이 난다. 오늘도 분주히 뛰어다니셔야 하는 어머니께 부조해 주는 것 같다.

선물할 음악CD 2장을 굽는데 곡을 선택하느라 시간을 다 잡아 먹고 만다. 또 온 정성을 기울려야 제대로 구워지기 때문에 하루가 다 갔다. 그 바람에 새벽에 일어나야 되는데 3시까지 씨름하며 만릿길 떠나듯 짐을 점검하고 PC의 데이터를 2중 3중으로 백업해 놓고 암호를 걸고 전기 코드를 뽑아 놓았다. 문단속까지 하고 자리에 들었다.


      2003.    7.    30.    水.     맑음.              陰七月二日.

난생 처음 해외여행, 그것도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가야 하는 먼 여정을 출발하는 날. 10시 20분 비행기 시간에 맞추기 위해 5시 미명에 일어났다. 2시간도 채 못 자고도 깨우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후닥닥 일어났다. 어떠한 경우에도 출발 시간에 못 깨어서 쫓아가지 못하는 일은 나의 사전엔 없기에! 꼭두새벽에 떠나면서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부지런한 어머니 덕에.

행장을 갖추자 동생이 윤기 외삼촌 차를 타고 와서 6시 13분 장도에 올라 인천 공항까지 먼 길을 덕분에 1시간 만에 편안히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는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범계까지 택시를 예약하려 했었는데 너무나 감사하다. 일찍 도착한 덕에 여유 있게 기다리며 공항 안을 구경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뜨이니 역시 국제공항이로구나 느끼게 해 주웠다.

출국 심사를 받으러 줄을 서자 휠체어는 옆문으로 들어가라고. 그래서 들어갔더니 곧바로 심사 받도록 안내해 주어서 간단히 통과! 8시 50분, 출국 심사장을 빠져 나오자 이제부터 대한민국을 빠져 나온 거라고 한다.

외국으로 가는 통로엔 면세점 지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진치고 있었다.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벌이는 경쟁 속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선글라스. 볕이 센 곳이라 선글라스가 필수품인데 사려다 못 샀기 때문에 눈길이 사로잡힌 것. 싸고 멋이 있는 게 있어 동생이 생일 선물이라고 사 주었다. 구경만 하려다 횡재했다!

10시가 되어 가자 탑승장에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게 해 주었다. 내 휠체어를 짐으로 부치고 항공사의 폭이 좁은 휠체어를 타고 기내까지 들어가야 된다면서 직원이 밀어 주었다.

대한항공과 델타항공이 제휴한 일본 경유, LA 행. 10 20분 이륙. 일본 나리다 공항까지 2시간 남짓. 승무원들이 교체되고 승객들도 새로 타는 사이 공항에 내려서 기다려야 되는데 현지 여직원이 휠체어를 가져 나와 쉴 곳까지 밀어 주었다. 공항 내이지만 뜻밖에 일본도 와 보게 되었는데 장거리 여행이 걱정되어서 벤치에 누워 기다리고 말았다.

다시 탈 시간이 되자 그 여직원이 나와 타게 도와주어서 맨 먼저 탔다. LA까지 10시간여의 비행이 시작되었다. 평균 11,000m 고도에 900k/h로 비행. 좁은 일반석에서 어떻게 긴 시간을 지낼지 걱정이 되었는데 원하던 창가에 안게 되어 창 밖을 내다보니 재미있었다. 영화가 재미없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는데 거의 두어 시간마다 음료수와 음식을 주어서 맛있게 먹느라 별로 지루한 걸 못 느끼게 만들어 주었다.

잘 시간이 되어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좀 길게 자고 보니 날짜선을 넘어섰다. 창을 열어 보니 시커먼 하늘 저편에서 붉은 빛이 피어오르며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붉은 빛이 빨갛게 불타오르며 빨간 공같은 해가 떠오르면서 순식간에 눈이 부셔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11,300m 상공에서의 장엄한 일출을 보는 행운이다!

8시 반, 30분 연착해 LA에 착륙했다. 휠체어를 갖고 나온 미국인 할아버지 직원의 안내로 입국 심사대를 무사통과해 미국에 들어섰다. 짐을 찾는데 마중 나온 동생들을 만났다.

LA의 인상은 공항부터 허름했다. 인천 공항은 아주 넓고 최신식인데 비해 낙후된 시설로 한국과 일본에 있는 아주 깨끗한 최첨단 장애인 화장실도 없이 일반 화장실 한 쪽에 있는데 아주 지저분하다. 장애인 천국이라는데 화장실만은 의아하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의 최첨단 장애인 화장실은 전시용이 아닐런지.......

차를 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폭우로 쏟아진다. 사막 기후인 여기에선 몇 년 만의 폭우란다. 샌디에이고까지 2시간 거리, LA 지역을 빠져 나오자 비가 그치고 볕이 쨍쨍해 경치 좋은 길로 돌아서 드라이브했다. 한 쪽엔 잔잔한 해변이 펼쳐져 있는데 반대편엔 얕으막한 언덕에 아기자기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이 그림 같다.

캘리포니아 남부와 애리조나 네바다 등 미국 남서부는 사막 지역으로 나무가 자라지 않는데 멀리 떨어진 콜로라도 강에서 물을 끌어와서 스프링클러로 나무를 길러 인공적으로 만든 도시란다. 푸른빛이 도는 곳엔 스프링클러가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로수들이 한여름의 무성함을 찾아 볼 수 없고 풀죽어 있다.

늘 보고싶은 조카들이 있는 집에 점심때가 되어 도착해서 1년 반만의 해후!  스페인 풍 2층집으로 10식구가 비벼 대어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널찍하다. 저녁에 동네 구경시켜 달랬더니 상훈이가 휠체어를 갖고 장난치며 광란의 질주를 시켜 준다. 1년 반만에 맛보는 스릴을 더 힘이 세어져서 안심하고 즐길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인들만 살게 되어 있던 실버타운으로 중학교 고등학교가 이웃해 있는데 축구장, 테니스장 등 각 운동장이 따로 있는데 모두 끝없이 넓고 모두 단층 건물들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2003.    7.    31.    木.     맑음.              陰七月三日.

어제 졸립다고 낮에 자면 시차 적응이 안 되어 고생하게 된다고 자지 말라고 해서 졸리는 걸 참고 버터서 밤 12시에 잤다. 그랬었더니 10시 반에야 깨워서 일어났지만 시차 적응이 완벽하게 되어 가뿐하다.

점심 때 근처의 포웨이 호수로 소풍가다. 널따란 호수가 시원스러운데 나무가 둘러싸여 있어서 더 시원스럽다. 한가로이 미국의 인공적으로 만든 자연을 즐기다.

 

 

그 사이 동생들이 다음 주 여행에 필요한 렌터카를 계약하고 왔다.

 

      2003.    8.    1.     金.     맑음.              陰七月四日.

시월드에 가다. 식구가 열이라 차로 두 번 날라야 되는데 오늘은 날 먼저 실어다 주어서 좋아했는데 사막 지역의 땡볕에 새까맣게 타 버린다. 콘크리트 바닥이 더 뜨겁게 해준다.

여기 볕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겁지만 그늘 속에만 들어가면 금방 서늘해진다. 그늘도 별로 없는 땡볕 속인데도 시간이 갈수록 관광객이 밀려드니 인종 전시장에 구경 온 것 같다.

 

 

시월드가 오리지널인지 모르지만, 서울대공원에서 본 것과 거의 비슷하다. 물론 규모와 기술면에서 더 다이내믹한데 조련사가 범고래 등에 올라타고 가는 것이 멋지다.

더 구경거리가 있다는데 장사진에 끼어서 뙤약볕에 구워지는 게 끔찍해서 먼저 돌아오고 말았다.

 

      2003.    8.    2.     土.     맑음.              陰七月五日.

오늘은 미션 비치에 소풍 가다. 샌디에이고는 해안 도시이지만 집이 바닷가에서 떨어진 주택가에 있어서 바다까지 가려면고속도로를 타고 한참 가야 된다. 이 쪽 지방은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은 잡초만 듬성듬성 있을 뿐인 황야 지대 속에 놓여 있는 점에 불과해 그 사이를 고속도로가 연결해 주고 있는 것이다.

 

 

미션 비치, 해안선이 굽이치며 끝없이 펼쳐져 있어 시원하다. 바람이 심해 그늘에선 추어서 있을 수가 없을 지경. 볕을 맞으며 해변 산책로를 따라 돌아 다녀야 했다. 해수욕하기 안성맞춤인데 해수욕하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 벌렁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고, 여유가 있으면 요트를 탄다. 이상하게 모래사장이 없는데 그래서 해수욕을 안 하는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코로나도 반도를 들르다. 바다 위에 놓은 긴 배이브릿지를 건너가는데 여러 종류의 배들이 빽빽이 있다. 군함도 눈에 띄는데, 미국이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남서부를 멕시코와 전쟁을 해서 빼앗은 거라고.

그래서 이 쪽 지명(地名)들은 거의 모두 멕시코 시절에 지어진 것들이고 멕시코인들이 태반인 모양이다. LA가 우리나라의 부산이라면 샌디에이고는 진해에 해당된다고 할 것 같다.

 

 

해변엔 고급 호텔들이 늘어서 있는데 한 군데 들어가 구경하다. 해수욕장에 연결된 호텔인데 마릴린 몬로가 주연한 영화에 배경으로 나무가 있어서 관광객이 많은 찾는다고 해서 배경 삼아 사진을 찍다.

 

      2003.    8.    3.     日.     맑음.              陰七月六日.

주일 예배를 드리려 집 근처 미국인 교회에 가다.

HOPE UNITED METHODIST CHURCH, 첫 인상은 역시 땅이 넓은 나라여서인지 주차장이 운동장같이 넓고 본당을 비롯해 부속 건물들이 모두 계단이 없는 단층이어서 부럽다. 강단 뒤가 벽 대신 유리로 되어 있어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배경이 되어서 시원스럽다.

일반 교회인데도 휠체어와 보행기를 대기시켜 놓았고 본당엔 장애인과 남녀노소가 어울리는 그림이 걸려 있어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 교회만 그런 건지 모르지만, 미국 교회엔 노약자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거기 노인들은 걷기 불편하면 휠체어와 보행기를 타는 것이 흔하기 때문이다.

예배 시작할 때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함께 입장해서 먼저 강단 앞에 나와 앉게 하곤 교사가 5분 정도 이야기하고 교실로 데려 간 다음 본 예배가 시작하는 것이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어린이라고 해야 같이 간 조카들을 포함해도 열 명도 안 되니 가능할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성가대 석은 있는데, 성가대가 없어서 솔로로 대신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교인이 4, 50명도 많이 모인다고 하는데 거의 100명 정도 모이니 꽤 많이 모이는 교회인데도 역시 노인들이 많다. 그래서 성가대에 설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영적인 축복이 이스라엘에서 유럽,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왔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목사님 설교를 어떻게 알아들을까 걱정했었는데, 발음을 똑박똑박해 주셔서 대략 무슨 내용인지 따라 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 헌금에 이어 오늘은 마침 성찬이 있었는데, 큰 빵을 떼어 포도주에 찍어 먹는 것이 이채롭다. 나올 때 목사님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신다.

돌아와 냉면으로 점심을 먹으며 내일 떠날 여행 계획으로 작전 회의. 차를 대절해 운전할 동생은 매제가 인터넷을 검색하고 지도를 주고 상세히 가르쳐 주는데도 걱정이 태산. 

인터넷으로 구체적인 길을 검색해 보니 야후에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면 길 안내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꼭 프린트해 내야 되는데 잉크가 떨어져 안 되는 것이다. 상훈이가 흑백 잉크가 떨어진 거라고 해서 워드에 복사해 글꼴 색을 컬러로 바꿔 주자 프린트가 된다. 준비 끝!

2부(미국 남서부 자동차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