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업그레이드 - 나의 펜티엄 Ⅲ 시절(1999~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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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GB 하드디스크를 몇 년 쓰다 보니 살림살이가 늘어나서 불필요하다는 것들을 제거해도 한계가 있기에 또다시 업그레이드를 꿈꾸게 만들어 주었다. 결국 99년 봄에 업그레이드를 대비해 가능한 큰 하드디스크를 사려고 했었는데 IBM 8.4GB를 구입하게 되었다.

6년간 쓴 170 MB를 떼어 내고 새 HDD를 마스터로 하고 8.4GB를 파티션 분할해 5GB와 3.4로 나누어 C와 D 드라이브로 그리고 기존의 1.6GB를 백업용으로 함께 쓰게 됐다.

OS로 새로 나온 윈도98을 설치했는데 펜티엄-120에 램이 48 MB인 PC에선 어림도 없다고 해 걱정이었는데 윈도98이 무난히 돌아가니 허풍이었다. 대용량 하드디스크를 다니 오히려 시스템이 전체적으로 빨라진 모양이었는데 원하던 프로그램들을 대부분 다 설치하고 나니 이전의 윈도95 때보다 응용 프로그램 시작이 2, 3초 정도 느려졌지만,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16평을 별채로 쓰고 84평으로 이사한 셈!

윈도98이 95에 비해 좀더 날씬해지고 안정적이 되어서 쓰기 편해졌다. 도스와 공존할 수 있었던 95에 비해 도스와 멀어져서 윈도98에서 작업하도록 만들게 했다.

아래아한글의 첫 윈도용 버전인 3.0b를 써보았는데 매크로 등 애용하는 주요 기능이 빠져 있어 쓰기 나빠서 웹서핑하면서 자료를 가져 오기 편하게 되어서 인터넷 서핑 할 때만 쓰곤 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 때까지 번들로 깔아 준 도스용 아래아한글3.0으로 쓰게 되었는데 좀더 편리해진 기능에 아래아한글에서 덧실행으로 통신을 할 수 있는 한네트와 확장 한자가 있어서 좋았지만 2.5와 별 차이가 없었다.

아래아한글96에 이어 아래아한글97이 한컴오피스에 포함되어 나오는 바람에 너무 비싸서 학생판을 학교에서 사 오게 해서 4분의 1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아래아한글97은 96에 비해 MS워드와 비슷하게 메뉴가 확 바뀐 것이 거부감이 느끼게 했지만 여러 모로 보다 향상된 새로운 기능에 도스용 아래아한글에서 애용하던 기능들을 갖추게 되어서 원도용에서도 글을 쓰기가 편하게 되었다. 덤으로 갖고 싶던 넷스케이프의 새 버전 4.02에다, MS오피스에 맞서기 위해 백화점처럼 각종 프로그램이 많이 들어 있어서 이 가격이면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다.

또한 도스 명령어에서 구원해 준 것이 노턴커맨더였다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윈도탐색기에서 구원해 준 것이 윈도커맨더였다. 토탈커맨더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두 개 창으로 구성되어 마우스 끌기로 하는 파일 복사/이동시 발생하곤 해서 골탕 먹이던 실수를 막아 주고 FTP 등 여러 부가 기능이 단순한 윈도탐색기를 확장시킨 파일관리 프로그램으로 윈도 환경에 친숙해지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와 같이 윈도98과 함께 윈도용 프로그램들을 확보하게 되어 윈도에서 모든 작업을 하게 되었다.

 

1998년 8월에 한벗장애인이동봉사대의 취업대학에 인터넷 고급반이 생긴 것을 알고 지원을 했다. 물론 인터넷은 어느 정도 하게 되었지만 선생님에게 체계적으로 배워 보는 것이 평생의 한이었기에 오랜 기다림의 결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원자가 많아서 입학시험을 치르고 입학해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수업 받으러 다니게 되었다. 이제껏 혼자서만 책과 PC와 씨름하며 공부하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는데 지도를 받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더욱이 인터넷 검색, 홈페이지 제작, 웹 디자인 등으로 5개월 과정이었는데 꼭 배우고 싶었던 것들이라...

교육 과정에 인터넷 정보검색사 2급 인증 시험에 응시한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다. 막상 시험공부란 것을 난생처음 해 보면서 걱정하던 것보다 할 만 했다. 가르쳐 준 범위와 방법대로만 하면 되니까 빚쟁이에게 쫓기듯 초조했지만 오히려 편했다.

인터넷에 관련된 시험은 인터넷에서 해결하라는 말처럼 인터넷에 시험에 관련된 정보와 기출 문제가 많이 있어서 그걸 찾기 위해 인터넷을 더욱 많이 활용하게 되어서 실력을 쌓을 수 있었고, 덕분에 시험을 무난히 치르고 합격하게 되었다.

나 같은 중증 장애인에게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는 건 보통 일 같이 여겨지지 않으리라. 이제까지 추구해 온 배움의 길에는 장애도 나이도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시험을 치루고 나서 홈페이지 제작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홈페이지 디자인을 위해 필수라는 포토샵을 함께 배우게 되어 마우스 때문에 걱정스러웠는데 담당 선생님이 포토샵 전문가답게 설명을 잘 해주면서 단축키 위주로 가르쳐 주어서 훨씬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설명하는 것을 받아쓰려고 하지 말고 이해하고 따라 해 보라고 강조하면서 몇 번이고 숙달될 때까지 반복하게 만드는 완전히 스파르타식이었다.

그 덕에 포토샵의 기초를 확실하게 닦을 수 있었는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 같은 포토샵의 매력에 팔이 아픈 줄 모르고 열심히 따라 했더니 말 안 듣던 손이 마우스를 제법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 갔다.

또 언젠가는 꼭 만들어 보고 싶었던 홈페이지 제작을 배우게 되면서 생각보다 일찍 만들게 되었다고 좋아했지만 막상 홈페이지 제작을 배우며 만들어 가다 보니 실제 집을 짓는 일처럼 중노동이라고 하고 싶었다. 물론 선생님이 지도하지만 홈페이지에서 보여 줄 재료(콘탠츠)를 고르고, 그를 어떻게 구성할지를 설계하는 스토리보드와 어떤 모양으로 그를 꾸미는 디자인은 내가 결정해서 보이지 않는 사이버 공간에다 직접 설계를 하고 혼자서 모든 공사를 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포기해 버리고도 싶었지만 그를 통해서 내 인생과 경험을 남과 공유하게 되었다는 것이 두려우면서 보람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지을 수 있었다.

2000년 1월 22일, 교육 마지막 날에야 드디어 힘겹게 만든 홈페이지를 네티앙 서버에 올렸다. 올리기 전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하며 만전을 기했지만 올려놓고 보니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이 띄어서 일주일은 수정하는데 바쳐야 했다. 그러고 나서 동생들에게 선포했었는데 읽을 내용이 많아 좋은데 디자인이 후졌다고 바꾸라는 것이다. 그게 숙제인 것이다.
 

교육 기간동안 문자 입력 공공근로 일을 해서 모은 걸로 99년 12월, 업그레이드하게 되었다. 이번엔 동생이 조립을 배워서 직접 해 주게 되어서 더 알뜰하게 할 수 있어서 비싸다고 바라지도 않았던 펜티엄Ⅲ-500에 램 64MB, VGA는 동생이 쓰던 SAVAGE 3D 8MB를 주어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사양이 되었다. 여기에 새로 나온 17인치 플래트론 모니터까지, 그 때로선 이보다 좋은 순 없을 정도였다.

동생이 새로 사 온 부품을 갖고 와서 조립을 했는데 전에 쓰던 HDD, FDD, CDROM, 사운드카드, 모뎀을 그대로 쓰고 중요한 건 다 바꾸어 업그레이드시켰다.

그런데 키보드 연결 단자가 본체 슬롯에 맞지 않아 그냥 모니터와 연결해 시험해 보았더니 키보드 에러라고 부팅이 안 되어서 2천원짜리 어댑터를 나가서 사 와서 연결하니 성공이다. 백만원짜리가 만원짜리 때문에 쓸 수 없다니 기가 막힌다고 하며

처음 두어 달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다운되어서 조립한 것을 후회했었다. 하드웨어를 해체해 하나씩 조립하며 확인해 보아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의심하게 되었는데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전과 똑같이 쓰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했다. 시작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제거해 보라고 해보라는 동생의 말에서 유일하게 추가한 시작 프로그램이 마우스에 딸려 온 프로그램이라는 걸 직감하고 제일 먼저 그걸 제거하자 시도 때도 없이 다운되는 일이 없어졌다.

플래트론 17인치 모니터까지 거의 백만원이 넘는 거금이 들어간 업그레이드가 7천원짜리 마우스에 딸려 온 것 때문에 그렇게 고생해야 했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긴 어쩌면 세상사가 다 그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고....

그렇게 업그레이드한 큰 홍역을 치루고 나서는 아무 말썽 없이 잘 돌아가서 감사했다.

 

교육기간 동안 문자 입력 공공근로를 얻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스캐너가 필요했었는데 동생이 졸업 선물이라고 스캐너(엡손 PF 610)를 사 주었다. 그렇지만 공공근로가 몇 달 만에 끝나 버려서 써보지도 못하게 되어 너무 아쉬웠다. DJ 정부에서 생산적 복지를 주창하며 장애인도 일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공공근로를 주기 시작했지만 바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바람에 돈 안 생기는 사진 스캔만 하게 되어 내심 미안했었지만 스캐너가 그 이상의 가치를 주었다.

어느 게시판에서 스캐너 드라이버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최신 드라이버를 다운받으려고 엡손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 갔었는데 프리미어 스캐너 클럽 1기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고 가입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으로 가입했었는데 처음 활동 한 회원이 대여섯 명 뿐이지만 모두 포토샵 고수들인데다 가족적인 분위기가 맞아서 푹 빠져 매일 들락거리며 글동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열심히 활동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날 밝힐 필요를 못 느껴서 밝히지 않고 활동해도 전혀 눈치를 챌 것이 없어 얼마나 갈지 궁금했었다. 우연히 밝혀지게 되어 시원섭섭했지만, 활동하는데 별 상관이 없었다. 정팅에도 참가해서 대화의 흐름에 따라 하고 싶은 말을 다 나눌 만큼 타자 속도도 빨라져 갔다.

사진을 스캔한 다음 화질이나 색감을 보기 좋게 보정하고 편집해 저장해야 모니터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포토샵을 마스터하는 것이 필수인 만큼, 열심히 따라 배우다 보니 실력에 비해 각종 이벤트를 휩쓸게 될 만큼 포토샵 실력이 향상되어 갔다. 필름 사진 만이 아니라 디카로 찍은 사진도 PC로 불러 들여야 하는 그 과정에서 동일한 보정과 편집이 필요한데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포토샵이 최고봉인 것이다.

그런 포토샵과는 보통 인연이 아닌 듯싶다. 버전업될 때마다 우연찮게 곧바로 구하게 되었고 온라인교육까지 무료로 받게 되었었는데, 특히 그 무렵 방송대학 TV에서 포토샵 강좌를 시작한다는 방영 일정을 클럽을 통해 알았지만, 우리 아파트에 유선 방송이 들어오지 않아서 안타까워해야 했었는데 거의 동시에 들어와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유형별로 잘 만들어진 홈페이지를 캡처해 놓고 포토샵으로 만들어 보는 것인데 포토샵의 기능이 거의 무궁무진한 것 같았다. 재방을 두어 번 보고 포토샵에 눈이 떠진 것 같다.

문제는 그럴수록 상상력의 빈곤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라고 하지만, 1%의 영감만 있으면 99%의 노력은 절로 신나게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1%의 영감이 아쉬워질 뿐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 싶은 만큼 마음같이 안 되지만 그래도 둔하기 짝이 없는 손으로 거의 다 따라 하게 되어 갔으니 그런 덕에 내 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PC와 씨름하는 가운데 PC 뿐만 아니라 내 불편한 몸과 상상력의 한계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 갈 수 있었다.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