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요한복음 5:2~4 개역개정판)

 

 

내가 이 연못가를 처음 찾았을 때 두 가지 물음이 깊은 충격으로 주어졌다. 그 중의 하나는 내 자신이 장애인이지만 가지각색의 장애인이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라는 놀라움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장애란 하나님의 실수라고 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실수가 많아서야 어찌 하나님일 수 있겠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물음을 묻게 되었다. 또 하나는 자원봉사자라는 사람들이 그에 못지않게 많은 수가 그 속에 함께 섞여 있다는 의아함이었다. 피서다 뭐다하면서 서로 향락을 찾으려 경쟁하는 세상에서 정말이지 가까이 하기 힘든 사람을 속에 들어와 온갖 시중을 하며 땀 흘리는 모습을 대하면서,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에 사로 잡혔었다.

전혀 낮선 사람들 속에서 며칠을 지나는 동안 두 가지 물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양육강식의 역사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랑의 역사」가 지속되어 왔기에, 인간의 역사가 망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성장해 올 수 있었다는 어느 사상가의 말을 생생한 현실로서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사랑의 사의 근원은 십자가 고난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그 형상을 잃어버린 죄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죄된 인간이 되어, 그 죄된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수치와 저주를 끝까지 당하신 그 십자가의 고난에서, 장애라는 고난의 의미를 찾게 되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극히 유한한 존재인 죄된 인간이 되셨다는 것이야말로 엄청난 장애를 몸소 겪으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장애라는 이 고난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신 그 십자가 고난을 가장 가까이에서 체험하고 있는 의미 있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리라.

그러기에 비장애인도 사랑의 수고를 통해 고난의 동반자가 되어 고난을 통해 베푸시는 사랑의 역사에 함께 참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고난의 골이 깊을수록 사랑이란 물줄기는 더 깊이 흘러드는 것이기에, 이 연못가는 사랑이 늘 용솟음치는 자리임을 다시 찾을 때마다 깊이 체험하게 해준다. 이기심도, 교만도, 부끄러움도 사라지고 가장 낮은 자가 높아지고 높게 여기던 자가 낮아지는 자리!스스로 섬기고 섬김을 받으면서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서, 그리고 손을 맞잡고 찬양과를 드리는 가운데서 높게만 보이던 천국이 지극히 낮은 연못가에 임하심을 다 같이 하나 되어 체험케 된다.

지극히 낮은 이 연못가도 높아서 바라보아야 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사랑의 물줄기를 더 낮은 자리에서 솟아나 올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이 함께한 모두에게 있음을 세 번째로 찾은 이 연못서 새롭게 깨닫는다.

1990. 8.베데스다 캠프에서

내가 사는 이유(나의 신앙관)                                                                                   장애와 재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