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나

(나의 학문관)

 

 

 

내가 공부해 나가고 있는 분야를 살펴보노라면 그야말로 좌충우돌, 좋게 말해 자유분방이요, 마구잡이라고 비꼴 만하다. 역사, 사회학, 철학, 신학 등 그 중 하나만 붙들고 늘어져도 한 평생도 부족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기존 학문 體系에 대한 내 앎의 욕구의 도전인지도 모르겠다. 學問이건 人生이건 가장 중요한 건 <自己眼目(자기안목)>을 길러 내어 人生觀, 世界觀, 歷史觀등을 발전시켜서 사회와 역사에 기여하는 것이라 할진대, 종잡기 힘든 내 知的 遍歷(편력)은 내 관심의 다양한 표현이요, 多樣(다양)함 속에 一貫性(일관성)을 확보해 가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한마디로 인문·사회 과학 분야의 原材料를 총체적으로 다룬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학문의 Disk-Jockey라고 하겠다.

인간을 흔히 <사회적 존재>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다른 인간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존재임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구성된 사회 속에서 사고하고 행위 할 때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 수단인 언어를 지닌 유일한 존재로서 문자라는 永久的인 수단을 개발해서 사용하게 됨으로써 경험의 공간적 확대는 물론 다음 세대로까지 경험을 전달할 수 있게 되어 경험을 축적해 자신들의 사회를 향상시켜 나가는 <역사를 지닌 존재>이다. 나아가 경험의 축적을 통해 자신이 존재하는 의미와 환경과의 관계를 반성하면서 경험을 향상시키려는 욕구를 지닌 <철학적 존재>이다. 더 나아가 이성적 사고로만 만족할 없는 자기 초월적인 <종교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간의 활동들을 연구 대상하기 위해선 기존의 <분과 중심의 학문>에서 <문제 중심의 학문>으로 전환해 가야만 한다. 내 持論(지론)인 Inter-disciplinary approach에서 더 나아가 Anti-disciplinary approach가 대두되고 있는바 무척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각 영역의 고유성을 견지해 나가면서 상호 협동이 바람직 할 것이다.

특히 역사와 사회학은 상호 보완해 나가야 서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공통된 관심 영역이다. 같은 인간 사회에 대해 역사학이 그 변화해 온 과정을 밝히고 체계화하는 것이라면 사회학은 현재의 모습을 관찰하고 전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事象(사상)들에 대해 개별 기술적 방법을 강조하는 역사학과 보편적 법칙성을 강조하는 사회학은 강조점의 차이일 뿐, 서로 협동해야 입체적인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특히 역사의 생장점인 현대사의 무대는 사회학의 대상이기에 구분하는 것이 부자연스런 일이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들의 발견에 초점을 맞추는 社會史와 거시적 변동의 규칙화를 추구하는 역사사회학은 양자의 교배종이다(T. Skocpol, 『비교사회학 II』(열음사, 1992)에서 재인용).

사회학과 철학 또한 그러하다. 사회학이 현상에 대한 엄격한 관찰과 분석이라면 그 작업에 대한 철학적 의미 규명이 필연적으로 뒤받침 되어야 할 것이다. 철학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한낱 理想論(이상론)으로 그치지 않기 위해선 사회학적 시각과 성찰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생활을 제약을 가하는 물리적 환경으로서의 <사회의 흐름>과 그것에 의해서 파생되면서 그것을 지배하는 모든 종류의 <사상의 흐름>의 대응 관계에서 각 시대의 특징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지식 체계의 사회적 뿌리를 규명해 내는 지식 사회학이 그 사이를 연결해 주고 있다.

철학과 신학의 관계는 훨씬 미묘한 문제이지만, 긴장과 대화가 늘 필요한 것이다. 틸리히가 말한 철학의 물음과 신학의 응답의 상관 관계, 자유주의 신학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도인 동시에 학문인 신학의 특수성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신학이란 학문의 성립 자체가 세상 지혜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이 신앙의 자기 이해를 논술하려면 철학으로부터 그 논술의 엄밀성을 배우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세상 지혜와의 만남은 이미 우리 자신의 인격과 문화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김광식, 『토착화와 해석학』(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p227. )라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解釋學(해석학)과 토착화 신학이 공유된 연구 영역이다.

이렇게 學際間(학제간)의 상호 유기적 관계를 통해 상호 보완해 감으로써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나의 인간관)                                                  내가 사는 이유(나의 신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