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산책

 

 

 

 

 

 

어느덧 이 5월도 마지막 주일로 접어들다니 날짜 한번 정말 무섭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새삼 들게 된다. 한창 만발해 있는 빨간 장미가 계절의 여왕다운 자태를 보여 주고 있건만 이 절정의 시간도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수록 순간 순간을 열정을 다해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읽고 쓰는 생활이 느려서 답답하지만 똑같은 반복이 새로운 도전처럼 즐겁기도 하다. 책에서나 생활에서 날마다 새롭게 배워 나가게 되니 말이다. 어제 그제 온다던 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태풍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유난히 투명하도록 해맑은 날씨다. 쉬운 책을 빨리 마치고 뒷산에 올랐다...

마중 나올 시간을 어머니와 약속하고 나서서 마음 놓고 오를 수 있었다. 늘 부축 받아야 하는 오르막에서 한 할아버지께 잡아 달라고 하니 내 발음 때문에 담배 달라는 소리로 잘못 알아듣고는 담배 피우지 말라고 타이르시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잡아 달라고 하는 거라고, 한참 옥신각신하고서야 알아들으시고 잡아 주셔서 오르는데 결정적으로 부축이 필요한 4, 5미터 앞에서 힘들게 다 올라가지 말고 앉았다가 가라고 훈계하신다. 가파로워서 혼자선 내려 갈 수도 없는데 말이다.

어머니와 약속했다는 설명도 통할 리가 없다. "오직 잡아 줘, 가"라는 말만 통할 뿐이라 결국 가시라고 하고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했다.

나이가 든 아저씨에게 부탁하니 기꺼이 부축해 주는데 방법을 몰라서 힘들다. 설명을 하려 해도 안 된다. 그 아저씨도 어떻게 해 달라는데 알아들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마의 몇 미터를 올라가게 해주셨다.

거기서부터는 약속 장소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었다. 그 몇 미터 때문에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말 몇 마디만 제대로 할 수 있었으면 서로 훨씬 쉽게 할텐데 그 조금이 항상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어쩌면 모든 인간이 겪고 있는 고난이란 그 조금이라는 차이 때문에 겪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이 "천국이란 지금의 현실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 안을지 모른다"고 한 말씀이 생각난다.

그런 것처럼 지금의 현실보다 조금 더 넉넉하고 자유로워서 그 조금이라는 차이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난이나 고통이 없는 세상인지 모른다. 아니 그 조금이라는 차이를 느낄 필요가 없는 세상이 천국일 것이다.

내가 몇 미터도 못되는 뒷산을 오르고 싶어하는 욕심 때문에 그 조금이라는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여기며 안타까워하게 되지만 그런 도전이 있음으로써 조그마한 진보라도 계속 일어나는 것이리라.

오늘도 똑같은 반복 속에서 새롭게 배운 하루였나 보다.

1998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