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을 맞으며

 

 

 

오늘도 추운 날이다. 매서운 바람에다 뭔가 쏟아질 듯한 하늘이 썩 내키지 않게 했지만 어제 추워서 쉬었기에 오늘도 쉬면 안 된다는 일종의 의무감에 오후에 산책을 나섰다.

 

비라면 걱정이지만  눈을 맞게 되면 일부러 맞고 싶을 정도니 오히려 첫 눈을 맞게 된다는 설레임에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발짝 나서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잊었던 친구를 만난 듯 반갑기 그지없다. 걸어 갈수록 눈발이 굵어지면서 세차게 내린다. 첫 눈치고 드물게 보는 큰 눈이다.

 

느린 걸음에 한 시간 반을 눈보라 세례를 흠씬 받았다. 내 어렸을 때도 눈만 내리면 나가자고 보채서  어머니가 날 업고 동네를 돌으셔야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인적이 드물어진 골목에 너댓살짜리 아이 하나가  중무장을 하고 눈을 신기한 듯 맞으며 좋아하고 있다.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이래서 눈이 동심을 불러 일으킨다고 했던가.

 

낙엽이 진 텅빈 정원에 서 있는 벌거숭이 나무에 눈 옷을 푸짐히 차려 입힌 모습에서 차가운 눈이 주는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눈을 좋아서 맞는 사람에게나, 어쩔 수 없이 맞는 사람에게나, 창으로 지켜보는 사람에게나  눈이 연상시켜 주는 동심, 은총, 환희라는 옷을 푸짐히 차려 입고서 살아가길 기원한다.

 

모든 차이를 넘어서 똑같은 빛깔의 옷을...

 

1998년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