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소록도 캠프

 

 

 

자오나눔선교회의 소록도 방문에 참가한 이야기

 

         1999.   8.      2.      月.     흐리고비.       陰六月二十日.

깜짝 놀라 깨어 보니 6시 50분, 어머니께 왜 안 깨었냐고 하자 재해 방송을 보고 계시다가 저런데 아예 갈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퍼붓는 빗소리가 겁나게 만든다. 그래도 얼마나 기대하며 준비해 왔는데, 간단히 그만 둘 수는 없기에 비행기가 뜨는지 공항에 전화를 해 보았다. 비행기가 뜬다는 말에 바로 행장을 갖추고 나섰다.

차를 타고 공항까지 가는데 비가 그야말로 억수로 내리는 것이다. 이래도 가겠느냐고 하는 것 같다.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났겠다는 마음도 드는데, 공항에 도착한다. 8시 20분.

항공편 인솔자인 김일심집사님이 먼저 온 회원들과 기다리고 있었다. 자오나눔 행사에는 처음이라 모두 낯설었는데 두리하나 정모에 같이 참가했었던 유미와 그제 세이로 인사했던 노경수가 끼어 있어서 반가웠다.

9시 10분 탑승했는데 역시 악천후로 30분을 대기하고 있다가 겨우 이륙할 수 있었다. 비를 퍼붓는 시커먼 구름을 뚫고 구름 위로 날자 새파란 하늘이 보이고 양털을 깔아 놓은 듯 새하얀 구름이 끝없이 깔려 있다.

마치 지옥을 뚫고 천국에 올라와 있는 것 같다. 이를 두고 '초극'이라 했던가! 이와 같이 이번 캠프에서 극과 극을 맛보게 만들어 주었다.

50여분 만에 여수 공항에 도착. 잔득 흐린데 걱정되었던 비가 오지 않아 안도가 되었다. 대기해 있었던 김태화, 윤영락님 등 여수팀과 소록도로 향했다. 소록도에 가기 위해서는 여수반도를 거슬러 올라가 고흥반도의 끝 녹동항까지 2시간이 걸린다.

배(바지선)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거의 1시간이나 잡아먹는다. 바지선은 차째 싣고 바다를 건너는데는 3, 4분이니 배보다 배꼽이 너무 컸다.

2시, 드디어 소록도에 도착. 캠프 장소인 동생리에 있는 동성교회에 내리니 먼저 차로 도착한 회원들이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교회가 바닷가 언덕 위에 있어서 바다를 한 눈에 굽어보는 전망 좋은 자리다.

라면으로 점심을 들고 잠시 쉬자, 마을에 가서 집집마다 끈끈이를 붙이라는 첫 봉사 명령이 떨어졌다. 같이 가서 봉사를 견학하라고 동행하게 한다.

50년이나 넘은 낡은 집에서 노령에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불편하신 몸으로 살아가신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시니 오히려 감사했다.

다 붙이고 아이들과 바닷가에 갔다. 창욱이와 인섭이가 짓궂을 정도로 열심히 밀고 다녀서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었다. 갯벌에까지 내려가니 조개, 고동 등이 많았는데 같이 줍고 있는 기분이다. 해안 길을 한가로이 산책하듯 낚시터까지 가니 너무나 시원하다.

너무 돌아다녀 야단맞겠다고 돌아오니 간사장인 양집사님이 중앙공원에 가자고 나서는 것이다. 또 쫓아갈 수밖에...

몇 십 년을 두고 주민들이 불편한 몸으로 나무들을 가꾸어 왔는데, 나무들마다 기기묘묘하게 만들어 놓아서 영화 <가위손>의 정원같다. 한 가운데 세운 구나탑(救癩塔) 앞에서 양집사님이 한센병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관절의 신경이 마비되어 관절이 떨어져 나가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 무서운 질병이라고. 자기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나병으로 알려진 이 질병은 한센에 의해 세균 감염임이 밝혀짐으로서 간단히 치료되게 되었다. 95%의 사람들에겐 감염되지 않는데도 무지에 의해 격리 수용되어 왔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1916년 강제 수용이 시작된 이래 탈출을 하려다 붙잡히면 감금실에 갇히게 된다. 그 건물이 유물로 전시되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완전히 감옥이다. 진짜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이 음침하다.

한센병 절멸책의 일환으로 거기서 나오는 조건으로 단종(斷種) 수술을 받게 된다. 그 옆 건물이 검시실인데, 단종이 자행되던 곳이다. 검시실 앞에 거기서 강제로 단종 수술을 받은 사람의 시가 적혀 있다.

 

그 옛날 나의 사춘기에 꿈꾸던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여기 나의 25세 젊음을

파멸해 가는 수술대 위에서

내 청춘을 통곡하며 누워 있노라

장래 자손을 보겠다던 어머니의 모습

내 수술대 위에서 가물거린다

정관을 차단하는 차가운 메스가

내 국부에 닿을 때/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  
                                      -이동-

 

둘째 날
새벽기도에 들어갈 땐 별이 보였는데, 나올 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점점 세차지면서 걱정하던 태풍 "올가"가 다가왔다.

세력권 한복판에서 보는 태풍의 위력은 정말 무서운 것이었다. 꼿꼿이 서 있던 커다란 나무들이 스러질 듯 바람에 꺾여져 흔들린다. 바람이 워낙 세차서 어른들도 걷기가 힘들 정도였고 겁없이 나간 아이들이 바람에 날릴 만큼 세었다.

주택 봉사와 해수욕으로 잡혀 있던 일정이 모두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오전엔 교회 안에서 레크리에이션으로 대치됐다. 오후엔 독방에 연금 상태로 있었다. 중증 남자 장애우는 나 뿐이라 혼자 있게 되어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비가 멎고 바람이 잦아들자 해방된 듯 밖으로 나왔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폭격이라도 맞은 듯 바람에 부러지고 날아온 것들을 봉사우들이 말끔히 치우는 것을 지켜보며 마음조차 시원해진다.

폭풍에 의해 정전되어 어두워지자 섬 전체가 칠흑같은 어둠에 싸인다. 경수와 유미가 휠체어를 타고 나가는 걸 보고 미행하듯 무조건 쫓아 나갔다. 창욱이와 인섭이가 또 신나게 밀어 주어 어둠에 싸여 있는 섬을 돌아보았다.

자가 발전기가 있는 병원만이 밝고 몇몇 집에만 촛불 빛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 빛은 더욱 총총하게 빛나 보이는 법인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밤하늘의 찬란함에 고개 아픈 줄 모르고 넋을 잃고 쳐다보게 만들었다.

돌아오니 조개 구이 파티를 벌리고 있었다. 하모니카를 신나게 연주하고 있는 양집사님에게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신청해 불렀다.

태풍 때문에 오늘 일정이 날아가 버려서 안타깝게 했지만, 휠체어를 밀어 주고 식사를 함께 하며 도와주던 이영욱님 일행(창욱, 인섭, 명덕)이 오늘 돌아가려던 계획이 발이 묶여서 더 지내게 된 것이 기쁜 일이었다.

 

셋째 날,
오늘도 새벽기도에 들어갈 때만 해도 별이 총총했었는데, 나올 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태풍이 지나 가서 큰 걱정이 사라졌다고 안심했었는데, 또 비가 세차게 내리니 걱정이다.

할 수 없이 대체 프로그램으로 오전에는 차로 섬 일주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봉고에 나누어 타고 화장터, 만령전, 해수욕장 등을 둘러보았다.

오후에도 비가 계속 내려 또 연금 상태. 어제는 오늘을 바라고 인내할 수 있었는데 또 이렇게 갇혀서 지내야 되다니 하나님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으신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집에서 스킨스쿠버를 한다고 자랑했었는데 스킨스쿠버는커녕 모처럼 해수욕장에 와서 해수욕도 못하게 되다니 야속하다. 그보다는 비가 와도 방에만 있다 오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세찬 빗줄기에 속수무책으로 있어야 된다는 것이 더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비만 어서 그치길 기다리며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4시쯤에야 드디어 멎어 주었다. 곧바로 나가긴 했는데 봉사를 나가서 밀어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무조건 바닷가에 가겠다고 발로 밀고 가니 혼자서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김인순집사님이 보고 밀어 준다.
마침 해수욕장으로 가던 한나네가 보고 태워 주는 것이다.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먼저 찾는 법이라 했던가!

잔잔한 바닷가, 조용히 내 앞에 부서지는 파도... 비좁은 방에 있다가 탁 트인 바다에 서니 태평양이 내 안으로 파도 치며 들어오는 것 같다. 극과 극의 대조를 맛보게 해 준다

 

돌아오자 봉사를 마치고 온 김태화님이 한바퀴 돌자고 한다. 원래 나의 짝인데 여수에 갔다 오는 동안 대신 해 준 이영욱님 일행이 아침 배로 나가자 돌아온 것이다. 어려운 내 말을 기가 막히게 잘 알아듣고 척척해 준다.

이리저리 다니다 만령전까지 가게 되었다. 주민들에게 물어 물어 길을 찾아갔다.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박양희님과 가파른 길을 밀어 주어서 올라가 볼 수 있었다.

여기 소록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해서 유골을 이 곳 만령전에 안치해 놓는다. 주민들은 없는 돈이지만 자신의 시신을 치워 줄 사람들을 대접하기 위해 저금해 놓는다고 한다. 이 작은 섬에 한번 들어오면 다시는 떠날 수 없기에 사랑하는 가족과 그리운 고향을 그리며 평생을 살다가 죽어 간 영혼들이 한스럽게 잠들어 있는 곳. 소망할 것은 오직 신앙뿐이었기에 평생 기도하며 살던 그들 영혼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부활의 때가 어서 오길 간구하게 된다.

그들의 신앙을 증거하듯 크지 않은 섬에 7개의 교회와 2개의 성당이 있다. 교회마다 매일 밤 12시 반이면 어김없이 기도가 시작된다. 이 나라와 자신들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 소리가 뜨겁다.

소록도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섬이다. 세상에 소망이 없는 자의 기도이기에 세속에 짙게 물들어 가는 시대를 지켜 주는 파수꾼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모른다.

 

마지막 날.

아침을 들고 짐을 꾸리기 바쁘게 중앙전시실을 관람하라고 내 몬다. 너무 빨리 휠체어를 밀어 주는 바람에 주마등처럼 볼 수밖에 없었다.

꼭꼭 숨어 있던 볕이 아침부터 쨍쨍 비친다. 해수욕하기 딱 좋은 날인데 11시, 윤영락님이 정확히 봉고를 몰고 와서 항공편 이용자들을 태우고 여수로 향한다.

처음 인사할 때만 해도 서먹서먹하던 회원들이 3박 4일을 지내는 동안 한 가족처럼 정이 깊이 들어 버렸는데 벌써 작별해야 되다니 아쉬워진다. 집 떠나면 모든 것이 불편한데 최대한 편하도록 정성을 기울어 준 회원들에게 무어라 감사할 수 없다. 뜻밖에 만난 태풍과 폭우에 행사 계획이 망가져서 아쉽지만, 그 때문에 총 책임자인 양집사님이 가장 고생해야 했으리라.

그래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아무 사고 없이 큰 나눔을 나누며 건강하게 돌아 올 수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감사일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보는 하늘은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이 무한대의 자유로운 조각을 환상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올려다 볼 때와는 달리 입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