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범서의 [가치관연구](나남, 1992)

 

 

 

 

우리나라 대표적 윤리학자인 저자가 인간은 <가치 선택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과 나라의 운명은 각 개인의 가치관에 달려 있다는 것이 자신의 신조이라면서 이 신조에 이끌려서 2년간 생각하고 느끼고 분개하고 감격하면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했듯이, 그와 동일한 심정으로 읽었다.

저자는 토풀러의 <제3의 물결> 문명론을 자세하게 원용해 우리 사회를 설명하고 있다. 수천년 전 신석기 시대에 일어난 농경 사회와 3백년 전에 시작된 산업 사회, 그리고 최근에 시작된 정보 사회는 각기 독자적인 생활 방식과 그에 맞는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경우는 농경 사회에서 불과 30년 동안 압축 성장으로 산업화를 이루어낸 끝에 정보 사회로까지 진입해 있다. 한 세대 안에 세가지 사회를 경험하며 그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동시에 섞여져 있으니 지금의 혼란은 당연한지 모른다. 이럴수록 가치관의 정립이 시급하다.

인간은 그저 먹고사는 생존적인 차원으로만 만족하지 못하고 실존적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인데, 지금 우리는 온 힘을 기울려 경제 성장으로 생존적인 문제는 해결하고 나서 추구하여야 할 가치를 정립하지 못해서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문명이 발달할수록 종교의 역할이 중요해져 간다고 강조하면서 지금의 종교도 거듭 나야 한다고 한다. 생존적인 차원의 快樂(쾌락)에만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실존적인 차원의 喜樂(희락)과 종교적인 悅樂(열락)으로 승화시켜 주어야 한다고.

한마디로 먹기 위해 살기에 급급했던 사람들에게 살기 위해 먹으며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고 누릴 수 있도록 한다고 말이다! (요즘처럼 살기 어려울수록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고 말씨름을 하게도 되지만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사람이란 살기 위해 먹는다는데 동물과 구분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한다.)  

오늘의 가치관 혼돈에서 야기된 문명의 위기는 물질 문명의 눈부신 성장을 정신 문명이 따라 가지 못하는 불균형에서 초래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보편적인 교양 교육으로 정신적 가치관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실패하고 있지만, 그래도 교육에 기대하고 있다.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나 그 환경을 만들어 주는 사회가 오염되어 있다면 올바른 교육이 나올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내일 종말이 올지라도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지금 이 나라에는 미래를 내다보고 이끌어 갈 지도자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도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지금처럼 과거와 현실 지향적 사고로 현실적인 이해 관계에만 집착해선 地球村(지구촌) 시대에 낙오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래 지향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지닌 지도자가 필요하다면서, "사회의 각 분야에서 리더쉽이 자발적으로 발생해서 그것이 전 사회적으로 확산케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새로운 지도력이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국민 속에 그리고 각 자 속에 잠재해 있으며 그것을 불러 일으켜서 영향력이 발휘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 국민의 잠재력을 동원해 내고, 성취 의욕 분발력을 자극하여 발동케 하기 위하여 가능성이 보이는 목표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력, 다시 말해서 비전이 있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서 국민의 역량을 동원해 갈 수 있는 리더쉽이다."(440-1)

앞으로의 세상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점점 더 살기 편리해져 갈 것이다. 생활이 편리해진다고 해서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기가 편해질수록 무엇을 해야 하고 말아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하는 인간의 몫은 더 중요해진다. 바로 가치관에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