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농민전쟁원인론을 읽고
구양근의『갑오농민전쟁원인론』(아세아문화사, 1993)을 갑오농민전쟁 발발 100주년 기념 출판이라는 표제가 부쳐져 있듯이 그런 취지에서 사서 읽게 되었다. 100년이 지나오면서 그 명칭이 무수히 변해 왔을 뿐 아니라, 지금도 커다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주로 참여 계층과 주도 세력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논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갑오농민전쟁의 제일 요인을 토지 제도를 둘러싼 국가의 제도적 운영의 모순에서 들고 있다. "토지는 조선의 통치 기구를 유지하는 기반이며, 조선 농민의 기본적 생산 수단으로서, 그 직접적인 이해관계야말로 농민으로 하여금 반봉건 투쟁으로 일어서게 하는 요인"이라면서 토지 제도의 고질적인 허점으로 국결(國結:국가 부세의 대상이 되는 토지)의 감소로 국가 재정이 파산지경에 이르렀다고 1편을 서술하고 있다. 또한 지방 행정의 난맥상이 관리들의 수탈을 방조함으로써 農漁村의 궁핍화를 지적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5세기나 지속되어 온 왕조의 운영 방식이 시대 변화에 대처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편에서는 월등히 앞선 기술과 자본을 앞세운 일본 상인들의 침투까지 겹쳐서 생존마저 위태로워진 농민들로서는 돌파구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런 상황에서 반일 의식이 고조되어 반봉건과 함께 반제(反封建反帝)의 기치를 들게 되었다. 서양 문물의 도래로 경제적 위기 못지않게 전통적 사고 구조도 위기를 맞게 되었다. 몰락 양반으로 소외된 지식인이었던 최제우가 서양의 사고 구조인 西學에 맞설 사고 구조를 세우기 위해 在來 사상들에서 취합해서 신흥 종교를 창설하게 되었다고 3편을 전개하고 있다. 변혁 사상이 강한 정감록에 큰 비중을 두게 되자, 역시 농어민 등 소외된 계층들의 심성에 큰 호소력을 갖게 되어 급격히 확산하여 갈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동학이 제시하는 변혁 이념에 모여드는 민중과 그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지도자(엘리트) 집단이 동학이란 조직으로 집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의 농민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통치력을 상실한 정부는 이미 침투하기 시작한 외세에 의존해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특히 일본 쪽의 자료를 검토함으로써 일본군이 진압에 주동적으로 나섰다고 4편에서 밝히고 있다. 무기의 열세에다, 지휘 체계를 통합시키지 못함으로써 각개 격파되는 운명을 지니고 싸울 수밖에 없었다. 거듭되는 패전으로 엘리트들을 잃게 되고 전세가 불리해져 갈수록 민중이라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오히려 혁명 단축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민중이란 엘리트의 지도력이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믿을 때만 결속력을 지속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민중론자들은 그 점을 항상 간과하는 것 같다. 어느 사회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압박 당하는 최하층 민중의 힘만으로 혁명을 일으키거나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상승 욕구가 좌절된 민중이 주력 부대가 되고, 그들의 욕구를 대변해서 혁명을 일으킬 이념을 정립해 주고 혁명으로 이끌어 줄 엘리트들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갑오농민전쟁의 패인은 일군과 관군의 공격이 주원인인 것은 물론이지만 거기에 못지않게 내부의 문제나 한계성도 많았다. 농민군은 '동학'의 조직망을 거점으로 하였고 마지막까지 동학 교단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전쟁의 대열을 갖추지 못하고 말았다. 농민들은 애국충혈의 의지는 충만하나 군사적인 지식이 부족하며, 아무런 훈련도 없는 순박한 농민이기 때문에 대세에 무척 약했다. 그 때문에 대세가 기울어질 성싶으면 최후까지 싸울 사기가 급속도로 저하되고 통솔이 곤란해진다." 內外의 위기에 직면해 통치력을 상실한 조선 왕조이지만, 5세기나 지속시켜 올 수 있었던 이데올로기에 대항할 새로운 이념을 동학이란 이념 집단을 중심으로 모인 엘리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농민 전쟁에 동학의 교리가 직접적으로 작용을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도록 엘리트와 민중이 결합할 수 있는 조직과 이념을 제공해 주었다. (반상(班常) 의식이 철저했던 사회에서 극복하게 해준 평등 등) 따라서 <갑오 동학+농민 전쟁>이라고 해야 보다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