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담론』(돌배개, 2004)
신영복의 『담론』을 마쳤다. 동양고전을 강의한 『강의』에 이어 그의 마지막 강의라는 『담론』을 읽는데, 이제까지 내가 공부해 온 것을 종합해 정리해 주는 듯 막힘이 없고 표현을 절묘하게 해서 받아 적고 싶어서 읽기가 더뎌지게 할 정도로 좋았다. 원래 경제학 교수였는데, 그것도 육사 교관으로 있을 때 간첩 조작에 엮여서 무기수로 감형되어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옥살이가 아니었으면 절대로 못 했을 동양고전을 제대로 공부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석방 후 다시 경제학 교수가 되었지만, 동양고전도 강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강의라는 만큼 그의 생각을 종합하고 요약한 것으로 다른 책의 내용을 많이 언급했는데 전반부는 먼저 읽은 『강의』를 요약해 복습하게 했고 후반부는 감옥에서 겪은 성찰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통찰했다. 무기수로 20년을 복역한 감옥이야말로 최고의 학교였다고 했듯이 감옥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워 잘 읽혔다. 그가 말하는 인간학은 관계론이라고 한다. 무기수로 20년을 어떻게 견딜 수가 있었을까 하게 되는데 오히려 감옥에선 무기수가 왕이라고 할 수 있기에 감옥 생활을 즐겼다고 할 정도로 그 속에서 갖가지 수단들을 활용해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책에서 받은 위안이 아니었겠는가 하게 된다. 책에서 받는 위안,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떤 경우에도 긍정적으로 살게 만들어 준 것은 책을 통한 깨달음이었다. 절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것이지…! ---------------------------------------
고전 공부는 고전 지식을 습득하는 교양학이 아니라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고전 공부는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는다는) 삼독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테스트를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는 탈문맥이어야 합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이든 공부는 당대의 문맥을 뛰어넘는 탈문맥의 창조적 실천입니다. (19) 추상은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압축하는 것이고, 상상력은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문사철(文史哲)이 개념과 논리로 압축하는 것입니다. (52) 중요한 것은 추상력과 상상력 하나하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을 적절히 배합하여 구사할 수 있는 유연함입니다. [……] 그러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품성의 문제입니다. 생각하면 시적 관점과 시적 상상력이 그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53) 공부는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공부이고 공부가 삶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천이고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세계를 변화시키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변화는 결코 개인을 단위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니다. 모든 변화는 잠재적 가능성으로 그 사람 속에 담지 되는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은 다만 가능성으로 잠재되어 있다가 당면의 상황 속에서, 영위하는 일 속에서,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2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