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만의 「공부하면서 즐겁다」
공부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정돈하면서 살고자 노력하며, 여기에서 의미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공부는 인간 삶의 그런 의미방식을 검토하면서 삶을 정돈하려는 또 다른 의미 추구의 방식이다. 자신이 살아갈 거처를 마련하려는 의미 세계의 형성은 항상 특정 역사적, 문화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언어, 역사적 전통, 그리고 누적된 삶의 기억을 지니고, 우리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의미 세계는 유일하거나 고정되어 있는 일이 없다. 언제나 잘 들어맞지 않아 삐거덕거리며, 수시로 모양을 바꾼다. 그래서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해석과 점검의 과정이 요청된다. 복합적인 삶의 상황 가운데에서 의미를 직조해가는 우리의 전통과 기억, 그리고 우리의 언어 사용법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또한 그런 질문의 자세와 내려진 판단, 평가에 대해서도 다시 비판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그래야 이 세상의 복합성에 대한 겸손한 인식이 나오게 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의미의 거미줄을 짜내는 인간에 대해 어느 정도 공정한 판단이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이런 겸손의 인식과 판단의 책임성을 함양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제대로 된” 공부의 길은 고된 훈련을 요하기에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사람은 그 과정 자체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다양한 의미창조 능력에 경탄하고, 삶에 촘촘히 희망을 박는 무수한 한 인간의 열정에 감동받으면서 우리의 삶의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기대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 아직은 그 기대치에 많이 미치지 못하지만, 뭐 어떤가? 중요한 것은 뚜벅뚜벅 공부해나가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일이다. 한국 근대성 연구의 길을 묻다(김석근 외, 돌베개) 중에서 (187-8) 김태길의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이란 체험과 사색의 기록이야 한다. 그리고 체험과 사색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글이 읽을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면, 체험하고 사색할 시간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라. 암탉의 배를 가르고, 생기다 만 알을 꺼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따라서, 한동안 붓두껍을 덮어 두는 것이 때로는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안으로부터 넘쳐 흐를 때, 그때에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 일단 붓을 들면 심혈을 기울여 써야 할 것이다 거짓 없이 성실하게, 그리고 사실에 어긋남이 없도록 써야 한다. 잔재주를 부려서는 안 될 것이고,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아는 것처럼 속여서도 안 될 것이며, 일부의 사실을 전체의 사실처럼 과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글이 가장 저속한 구렁으로 떨어지는 예는, 인기를 노리고 붓대를 놀리는 경우에서 흔히 발견된다. 자극을 갈망하는 독자나 신기한 것을 환영하는 독자의 심리에 영합하는 것은 하나의 타락임을 지나서 이미 죄악이다. 글 쓰는 이가 저지르기 쉬운 또 하나의 잘못은, 현학의 허세로써 자신을 과시하는 일이다 현학적 표현은 사상의 유치함을 입증할 뿐 아니라, 사람됨의 허영스러움을 증명하는 것이다. 글은 반드시 여러 사람의 칭찬을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되도록 여러 사람이 읽고 알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즐거운 작업이어야 하며, 진실의 표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나의 자아를 안으로 깊고 크게 성장시키는 일이다.
정수복의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에서 “나이가 들수록 읽는 일에서 쓰는 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해야 정상이다. 인생의 체험과 독서의 내용이 서로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로 합쳐져 자신의 생각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력하게 치밀어오를 때 글을 쓰게 된다. 그러니까 나이 쉰이 된 어떤 남자가 지금 글을 있다면 그건 단지 현재의 생각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50년 동안의 삶의 체험과 책읽기가 합쳐져 나온 생각을 쓰고 있는 것이다.”(256)
장영희의 「아프게 짝사랑하라」
그런데도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바로 짝사랑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책들 중 하나를 선택하고서 그를 이해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바쳐도 그야말로 “대답 없는 벽”처럼 외면하는 데도 포기하지 못하고 더욱더 정성을 바치게 되는 것이 진짜 짝사랑이리라. 책이든 사람이든 그렇게 열심히 짝사랑하다 보면 참된 사랑을 얻을 수 있겠지!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넘긴 나, 이제는 어느 정도 여유롭게 삶에 대한 포용력을 가지고 조금은 호기를 부릴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不惑(불혹)'-보고 듣는 것에 유혹받지 아니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함-이란 말은, 따지고 보면 슬픈 말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격하지 않고, 슬픈 것을 보고 눈물 흘리지 않고, 불의를 보고도 노하지 않으며, 귀중한 것을 보고도 탐내지 않는 삶은 허망한 것이리라. 그것은 즉 이제는 치열한 삶의 무대에서 내려와 그저 삶을 관조하는 구경꾼으로 자리바꿈했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아니, 어쩌면 '불혹'이란 일종의 두려움, 삶의 한가운데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없는 데에 대한 슬픈 자기 방어를 말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짝사랑이란 삶에 대한 강렬한 참여의 한 형태이다. 충만한 삶에는 뚜렷한 참여의식이 필요하고, 거기에는 환희뿐만 아니라 고통역시수반하게 마련이다. 우리 삶에 있어서의 다른 모든 일들처럼 사랑도 연습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짝사랑이야말로 성숙의 첩경이고 사랑 연습의 으뜸이다. 학문의 길도 어쩌면 외롭고 고달픈 짝사랑의 길이다. 안타깝게 두드리며 파헤쳐도 대답 없는 벽 앞에서 끝없는 좌절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자만이 마침내 그 벽을 허물고 좀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승리자가 된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여,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짝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 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사랑에 익숙지 않은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들을 마음껏 비웃고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라. 눈앞에 보이는 보상에 연연하여,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사랑의 거지가 되지 말라. 창밖의 젊은이들을 보며 나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불혹'의 편안함보다는 여전히 짝사랑의 고뇌를 택하리라고. 내가 매일 대하는 저 아름다운 청춘들을 한껏 질투하며 나의 삶을, 나의 학문을, 나의 학생들을 더욱더 열심히 혼신을 다해 짝사랑하리라. 언젠가 먼 훗날 나의 삶이 사그라질 때 짝사랑에 대해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면 미국 소설가 잭 런던과 같이 말하리라.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겠다"고. 그 말에는 무덤덤하고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보다는 고통을 수반하더라도 찬란한 섬광 속에서 사랑의 불꽃을 한껏 태우는 삶이 더 나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길은 저무는 산맥의 어둠 속으로 풀려서 사라지고, 기진한 몸을 길 위에 누일 때, 몸은 억압 없고 적의 없는 순결한 몸이다. 그 몸이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길 위에서 곤히 잠든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14)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의 동백 숲은 바닷바람에 수련거린다.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 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돌산도 율림리 1월 중순에 눈 속에서 봉우리가 맺혔고, 이제 활짝 피었다. 매화는 잎이 없는 마른 가지로 꽃을 피운다. 나무가 몸속의 꽃을 밖으로 밀어내서, 꽃은 뿜어져 나오듯이 피어난다. 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꽃 핀 매화 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이 꽃구름은 그 경계선이 흔들리는 봄의 대기 속에서 풀어져 있다. 그래서 매화의 구름은 혼곤하고 몽롱하다. 이것은 신기루다.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散華)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선암사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17)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툭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섭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 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썩,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19)
새로 돋아난 봄 냉이를 엷은 된장에 끓인 국이 아침 밥상에 올랐다. 모시조개 몇 마리도 국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공원을 몇 바퀴 돌고 오니까 현관문을 열 때 집 안에 국 냄새가 자욱했다. 냄새만으로 냉잇국이란 걸 알아맞혔다. 아내는 기뻐했다. 국 한 모금이 몸과 마음속에 새로운 천지를 열어 주었다. 기쁨과 눈물이 없이는 넘길 수 없는 국물이었다. 국물 속에 눈물이 섞여 있는 맛이었다. 겨울 때의 추위와 노동과 폭음으로 꼬였던 창자가 기지개를 켰다. 몸속으로 봄의 흙냄새가 자욱이 퍼지고 혈관을 따라가면서 마음의 응달에도 봄풀이 돋는 것 같았다. 된장의 친화력은 크고도 깊다. 된장의 친화력은 이중적이다. 된장은 국 속의 다른 재료들과 잘 사귀고, 그 사귐의 결과로 인간의 안쪽으로 스민다. 이 친화의 기능은 비논리적이어서, 분석되지 않는다. 된장과 인간은 치정 관계에 있다. 냉이된장국을 먹을 때, 된장 국물과 냉이 건더기와 인간은 삼각 치정 관계이다. 이 삼각은 어느 한쪽이 다른 두 쪽을 끌어안는 구도의 치정이다. 그러므로 이 치정은 평화롭다. 냄비 속에서 끓여지는 동안, 냉이는 된장의 흡인력의 자장 안으로 끌려들어 가면서 또 거기에 저항했던 모양이다. 냉이의 저항 흔적은, 냉이 속에 깊이 숨어 있던 봄의 흙냄새, 황토 속으로 스미는 햇빛의 냄새, 싹터 오르는 풋것의 비린내를 된장 국물 속으로 모두 풀어내 놓는 평화를 이루고 있다. 이 평화 속에는 산 것을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힘이 들어 있다.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 국물이란 흔치 않다. 된장은 냉이의 비밀을 국물 속으로 끌어내면서 냉이를 냉이로서 온전하게 남겨 둔다. 냉이 건더기를 건져서 씹어보면, 그 뿌리에는 봄 땅의 부풀어 오르는 힘과 흙냄새를 빨아들이던 가는 실뿌리의 강인함이 여전히 살아 있고 그 이파리에는 봄의 햇살과 더불어 놀던 어린 엽록소의 기쁨이 살아 있다. (29-30)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 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온 목조 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에 틀림없다. 기둥 높이의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 갖춘 필요미이며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도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닌 참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그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밖에 없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당간지주가 서있는 절 밖, 그 넓은 터전을 여러 층단으로 닦으면서 그 마무리로 쌓아 놓은 긴 석축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뤄진 것은 아마도 먼 안산이 지니는 겹겹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기 위해 풍수사상에서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축들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순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섞어서 높고 긴 석축을 쌓아 올리는 일은 자칫 잔재주에 기울기 마련이지만, 이 부석사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직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홍순민의 『한양읽기: 궁궐 하』에서
우리는 어떤 건물을 볼 때 그것만을 열심히 보고 말기 쉽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이 어떤 건물을 지을 때 남 보여주려고 지은 것은 아닐 터이다. 건물의 주인 자신이 그 건물을 사용할 때 얼마나 좋은가가 우선 고려의 대상이 되었음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떤 건물을 밖에서 들여다보는 데 그친다면 그 건물의 진가를 반도 못 보는 꼴이다. 그 건물의 주인이 된 심정으로 안에서 밖을 내다볼 줄도 알아야 한다. 절에 가서는 부처님이 보시는 곳을 바라보고, 어느 집 사랑채나 정자, 누각에서는 그 안에 앉은 주인이 내다보는 풍광을 바라보며 누릴 줄을 알아야 한다. 이 점은 궁궐의 전각도 마찬가지이다. 근정전 내부가 지금 저렇듯 썰렁하고 답답함만을 보고 '뭐가 이래?' 하고 그냥 돌아서는 것은 근정전을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돌아서 근정전 월대 한가운데 서서 앞을 내다보시라. 무엇이 보이는가. 근정문이 보인다. 조금 더 눈길을 멀리하면 고층 건물들이 막아선다. 답답하다. 하지만 마음을 눈을 들어 더 멀리 내다보면 지금은 세종대로라고 이름이 붙은 길, 옛 광화문 앞길이 뻗어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서울 장안의 저잣거리와 그 속에서 복대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보인다. 더 멀리 한강을 건너 바라보면 조선 팔도의 풍광과 거기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백성들의 삶이 보인다. 보여야 한다. 그것들을 볼 수 있어야 그 근정전 안 용상에 앉거나, 근정전에 나아가 국정을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61) 답사는 시간여행 지금 경희궁은 참 막막하다. 경희궁에 가면 온전한 옛 건물은 하나도, 말 그대로 하나도 없다. 한 번 둘러보겠다고 마음먹고 찾아가려 한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하기 짝이 없다. 시작이야 광화문 네거리에서 출발하여 새문안로를 따라간다 해도 막상 경희궁, 또는 경희궁 터에 도달하면 어디서 무엇에다 눈길을 주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잘 남아 있는 궁궐을 그윽한 눈길로 즐겁게 돌아보는 답사를 할 수 있으면 물론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만 답사는 아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빈터를 둘러보는 것, 거기서 옛 모습을 그려보고, 그 향기를 맡아보고, 안타까움과 분노에 더하여 즐거움과 기쁨을 맛보는 것이 더 수준 높은 답사다. 경희궁 답사는기구한 그 역사를 돌아보면서 옛 모습을 재구성하고, 그 재구성한 바를 따라서 돌아보는 답사. 그런 답사여야 한다. (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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