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김윤성 | 신재식 | 장대익 | 사이언스북스 | 2009

 

 

 

종교와 과학에 대해 신학자, 종교학자, 과학철학자인 신재식/김윤성/장대익이 나눈 이메일과 대화를 책으로 역었다. 종교에 대한 과학의 비판에 과학이 아무리 종교의 영역을 침범해 가도 종교는 그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존재해 왔듯이 존재해 갈 것이란 결론에 이르렀는데 치열한 논쟁을 읽는 동안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인간이란 과학이 주는 편리함이나 명쾌함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없기에 종교가 주는 어떻게 보면 모호하기 그지없는 위안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할 것 같다.

책이 나오기 전 이메일 내용을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것을 모아 보았다.

 

 

 

 

프레시안 연재

책 차례

<1> 왜 대화가 필요한가? 장대익

과학의 시대, 종교가 더 이상 필요할까요?

<2> 종교와 과학, 다시 만나다 신재식

종교와 과학, 원래 이웃사촌입니다.

<3> 과학과 종교 사이의 모호성 김윤성

종교와 과학의 논쟁, 행복하게 엿듣겠습니다.

<4> '자연주의적 인간'과 '종교적 인간' 신재식

반성 없는 과학, 중세 기독교와 다를 게 뭔가요?

<5> 과학은 종교를 어떻게 보는가? 장대익

종교는 말살해야 할 정신의 ‘바이러스’일지도 모릅니다.

<6> 종교와 과학의 한계 김윤성

실재의 깊이는 종교나 과학보다 깊습니다.

<7> 종교인의 '과학'은? 장대익

종교인은 과학을 어떻게 보나요?

<8> 기독교가 바라보는 과학 신재식

종교는 과학을 시녀로 보지 않습니다.

<9> '진화 vs 창조' 논쟁을 보는 다른 시각 신재식

과학과 종교의 새로운 공존을 꿈꿔 봅니다.

<10> 종교가 만악의 근원일까? 김윤성

9·11이 종교 전쟁의 결과라고요? 아닙니다.

<11> 나의 창조과학 탈출기 김윤성

나의 창조 과학 탈출기

<12> 나의 '진화 vs 창조' 논쟁사 장대익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 그것은 틀린 것조차 아닙니다.

<13> 나의 '창조 vs 진화' 논쟁 관전평 신재식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 사이비 종교 운동이 기독교를 잡다.

<끝> 연재를 마치며 김윤성

 


"우리는 지금 '중세'로 회귀하는 걸까요?

"과학과 종교의 대화 <1> 왜 대화가 필요한가?


장대익 교수가 첫 번째 말문을 열었다. 장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를 졸업하고 서울대 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 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정경대학(LSE) 과학철학센터에서 생물철학과 진화심리학을 연구했다. 최근 한국 지식사회에서 큰 관심을 모은 <통섭>(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역자이기도 하다.

장대익 교수는 2006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 인지연구소에서 대니얼 데닛 교수와 함께 연구를 했다. 이 첫 번째 편지는 그 당시에 초고가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



신재식, 김윤성 선생님께


별고 없으신지요. 한국엔 제법 큰 눈이 왔다지요? 여기 보스턴에 온 지 벌써 넉 달이 넘었습니다. 듣기로는 여기에 눈이 많이 오면 1미터 정도 쌓여서 학교도 휴교하고 그런다는데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제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입니다. 여기서는 10월 말에 핼러윈(만성절 전날인 10월 31일에 행해지는 축제 : 필자), 11월 말에 추수감사절, 그리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홀리데이(Holiday)를 준비하는 식입니다. 11월에 추수감사절이 끝나니까 바로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리더군요.

물론 이 모든 절기들이 상술로 포장된 지 오래지만 미국은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기독교 국가(Christian nation)'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종교 정체성 조사 결과(2001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를 보니까,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미국 국민의 76.5%, 무종교라고 답한 사람은 13.2%, 유대교는 1.3%, 불가지론자는 0.5%, 무신론자는 0.4%였습니다(☞결과 보기).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를 합해도 1%가 넘지 않고, 기독교는 80% 정도나 되니 미국은 정말로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로 몇 달 전(2006년 9월)에 있었던 갤럽 조사 결과는 더 흥미로웠습니다. 질문은 이런 것이었지요. "일반적으로 말해 당신은 미국인들이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항목에는, 유태인, 아시아인, 여성, 흑인, 모르몬교도, 히스패닉, 무신론자, 동성애자가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을까요? 앞에서부터 나열해 보면, 여성(61%), 흑인(58%), 유태인(55%), 히스패닉(41%), 아시아인(33%), 모르몬교인(29%), 무신론자(14%), 동성애자(7%) 순이었습니다(☞결과 보기).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무신론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모르몬교도보다 낮고 동성애자보다는 조금 높다는 이야기인데, 다시 말하면 무신론자 대통령이 나올 가망성은 극히 적다는 뜻이겠지요. 미국의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라도 기독교인을 자처하게 생겼습니다. 생전에 가장 똑똑한 미국인으로 추앙받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대선에 출마했어도 미국 대통령은 도무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무신론자였으니까요!

세이건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저는 세이건의 원작보다 이 영화를 먼저 접했었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서 세이건이 쓴 모든 책을 다 주문했을 정도로 전율을 느꼈었지요. 물론 아직도 다 못 읽었지만요. 그는 동명 소설 <콘택트(Contact)>에서 주인공인 천문학 박사 에로웨이와 복음 전도자 자스를 통해 과학과 종교에 관한 심오한 문제들을 절묘하게 다룹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과학적 진리를 굳게 믿는 여성 천문학자가 어느 날 베가성에서 온 외계 신호를 포착하고 해독하여 우여곡절 끝에 베가성을 향하는 우주선의 첫 탑승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남자 친구인 복음 전도자가 그녀의 과학적 신념을 도전한다. 결국 베가성 여행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으나, 저자는 막판에 결론을 뒤집어 과학적 신념이 종교적 믿음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다 : 필자)

물론 그의 메시지는 에로웨이의 언행이 대변해 주고 있지요. 이 편지를 쓰다 말고 잠시 제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이 영화를 또 한 번 보았습니다.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너무 많은데요, 그중 하나만 소개할게요. 아마 이 장면, 기억나실 겁니다.

자스 위원 : 에로웨이 박사, 당신은 자신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에로웨이 박사 : 무슨 질문이신지? 전 도덕적인 사람이긴 합니다만…….

자스 위원 :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에로웨이 박사 : 저는 과학자로서 경험적인 증거만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에 관해서는 그런 종류의 자료가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위원장 : 그러면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에로웨이 박사 : 왜 이런 질문이 이번 일과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위원 : 에로웨이 박사, 세계 인구의 95%는 어떤 형태로든 절대자를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상관이 있는 질문이지 않겠습니까?

에로웨이 박사 : (…) 저는 이미 답을 했습니다.


자신의 무신론을 숨기지 않았던 에로웨이는 이 대답으로 인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 문명을 만나는 기회를 가진 탑승자 심사에서 탈락합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최후의 탑승자가 되지만 말이지요. 마치 세이건은 에로웨이의 입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진실한 무신론적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서남아시아에서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감보다는 덜 하겠지만 미국의 무신론자들도 압박감을 느낄 만합니다. 특히 이것은 미국 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가 재집권하고 나서부터 더 심화된 듯합니다. 그는 보수 기독교인의 표를 더 얻기 위한 제스처 이상으로 근본주의 기독교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미국 지식인 중에는 9・11 같은 테러가 미국의 반(反)이슬람 기독교 근본주의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학기에 참여했던 한 수업에서 저명한 언어학 교수가 학부 학생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더군요. "부시의 근본주의 기독교와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 때문에 나라의 운명이 심히 걱정된다."라고요. 미국 자유주의의 본산 보스턴(보스턴은 미국 최초로 흑인 주지사를 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하버드와 MIT 같은 미국 최고의 대학들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정신이 가득하다 : 필자)이니까 수업 시간에 이런 말이 가능한 거겠죠?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 '운동'


작금의 이라크 사태를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 vs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의 대결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구도라는 느낌을 주지 않나요? 하지만 정말로 종교 간 전쟁 때문에 세계가 큰 위험에 빠졌다고 설득력 있게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 아주 흥미로운 인사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찰스 시모니 '과학의 대중적 이해' 석좌 교수로 있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입니다(헝가리 태생의 찰스 시모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프로그램 엔지니어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후에 '인텐셔널 소프트웨어' 회장으로서 여러 대학에 자신의 이름을 딴 석좌 교수 자리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만들어졌는데, 이 자리의 첫 번째 수혜자가 바로 도킨스이다 : 필자).

그가 최근에 출간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원제는 '신이라는 망상' 또는 '신은 망상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 필자)라는 책이 몇 달째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10위 안에 올라와 있는데요, 저도 몇 주 전에 사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신은 망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요정, 도깨비, 유니콘, 포켓몬스터처럼 상상 속의 존재일 뿐인데 많은 이들이 신은 마치 실재하는 양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망상이 일종의 '정신 바이러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종교 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혹시 선생님들도 이 책을 보셨는지요?

도킨스는 이번에 아주 작심을 하고 이런 도발을 감행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책 출간에 즈음하여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바로 가기)를 만들더니만 '이성과 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The Richard Dawkins Foundation for Reason and Science, ☞바로 가기)'도 세워 본격적인 무신론 캠페인에 들어갔습니다.

미국과 영국을 순회하며 책에 대한 강연, 텔레비전 출연, 인터뷰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고, 얼마 전에는 영국 BBC를 통해 <모든 악의 근원?(Root of All Evil?)>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직접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었지요. 이 다큐멘터리도 최근에 구입해서 보았습니다. 콜로라도의 한 대형 교회(개신교)의 예배에 (관찰자로) 직접 참석하고, 현 대통령 부시와 핫라인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까지 있는 복음주의 목사와 언쟁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 목사가 성경에는 하나의 모순도 없다고 말하자, 도킨스는 현재의 과학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모순점을 지적한다고 맞받아쳤지요. 그랬더니 그 목사는 바로 "당신같이 오만한 사람이 바로 문제"라고 비난을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동물이라고 말하는 당신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대화를 그만둡니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 서문에서 비틀스 출신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imagine)'을 패러디해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자살 폭파범, 9·11 테러, 런던 폭파 테러, 십자군, 마녀 사냥, 화약 음모 사건(1605년 영국 가톨릭교도가 계획한 제임스 1세 암살 미수 사건 : 필자), 인디언 분리 구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세르비아·크로아티아·무슬림 대학살… 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세요."

그가 단지 종교가 너무나 싫어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만들어진 신>은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 즉 '신 존재 가설(God hypothesis)'이 왜 설득력이 없는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령 인생의 의미, 도덕성, 사랑, 책임감 등이 어떻게 자연적 과정을 통해 진화해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실 이런 주장은 그동안 무신론적 진화론자(진화론은 무신론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들의 단골 메뉴였지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매우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있지요. 그는 부모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종교에 따라 '무슬림 아이들', '기독교 아이들'과 같은 꼬리표를 달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에 관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더 큰 혼돈에 빠뜨리는 일종의 아동 학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아이들(Marxist children)'이나 '자유주의 아이들(Liberal children)'이 얼마나 어색합니까?

도킨스가 재단까지 설립해 가며 이런 도발적인 주장들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가 지금 일종의 '운동(movement)'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종교는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될 무엇"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입니다. 현재 저의 지도 교수이기도 한 인지 철학자 대니얼 데닛(인공지능과 의식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킨 영미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현재 터프츠 대학교의 인지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진화론을 자신의 철학적 작업에 응용해 온 점이 다른 철학자들과 확연히 다른 측면이다 : 필자)은 도킨스의 운동을 오프라 윈프리의 그것에 비유하더군요.

오프라는 한때 <오프라 쇼>에서 미국 내 가정의 매 맞는 여성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전국적으로 일깨운 적이 있었습니다. 데닛은 도킨스의 책과 활동도 종교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캠페인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종교(특히 기독교)에 억눌려 있는 사람들이여, 무신론의 세계로 탈출하여 당신의 지성을 구원하라." 이런 메시지가 영국식 악센트로 제 귀를 때리는 듯합니다.

그가 얼마나 단호하고 도발적인 사람인지 한번 보시겠습니까? 얼마 전에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대학에서 책에 대한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나 봅니다. 마침 거기에 참석한 리버티 대학교(Liberty University, 미국의 대표적 보수 기독교 리더인 제리 파웰이 1971년 설립한 기독교 대학 : 필자)의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지요. "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화석이 5000년 전의 것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러자 도킨스는 공룡 화석의 나이를 추정하는 여러 과학적 방법들을 설명하고는, 공룡 화석이 5000년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뉴욕과 워싱턴 D.C.의 거리가 500미터 정도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말을 하더군요.

 

"여기 계신 리버티 대학교 학생 여러분께 강력하게 말씀드립니다. 학교를 그만두시고 더 적당한 학교에 지원하십시오." 좀 심하다 싶은 말인데도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는데, 좀 놀랐습니다.


종교에 대한 동상이몽? 도킨스, 윌슨, 그리고 굴드


도대체 왜 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자신의 분야도 아닌 종교에 대해 이렇게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것일까요? 사실 최근에는 저명한 과학자가 종교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하버드대학의 진화 생물학 교수로서 개미 연구와 사회 생물학 창시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등을 통해 과학에 기반을 둔 지식의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다 : 필자)은 서너 달 전에 <생명의 편지(The Creation)>(원제는 '창조', '창조물', '피조물'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 필자)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도킨스의 책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제목부터 너무 다르지 않나요? 하나는 '신은 망상'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창조'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사실 제목이 참 의아했습니다. 창조는 주로 유대-기독교, 이슬람 전통에서 즐겨 쓰이는 단어이지 않습니까? 유년 시절을 신실한 침례교인으로 자랐다가 무신론자가 된 윌슨이 다시 기독교로 회귀한 것은 아닐 텐데, 왜 그런 제목을 달았는지 궁금했지요. 목차를 보니 그런 의문이 더욱 강해지더군요. 심지어 "타락(decline)과 구속(redemption)"이라는 제목의 장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내용을 보면서 의문이 좀 풀렸습니다. 서부 침례교 목사에게 지구의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같이 동참하자는 내용의 편지더군요. 과학과 종교가 형이상학적으로 서로 대립적이다 하더라도 우리 지구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이 생태계 위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는 실천적 근거들이 너무 많다고 호소합니다. 과학계의 한쪽(도킨스)에서는 종교계에 시비를 걸고, 다른 쪽(윌슨)에서는 협력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는 셈인데요, 둘 다 현대 진화론의 거장들이라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두 달 전쯤에 대니얼 데닛과 스쿼시를 친 적이 있어요. 35세인 저와 65세인 데닛이 경기를 했는데 누가 이겼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 졌습니다! 그것도 두 게임을 내리 졌지요. 대단한 체력이었습니다. 저는 힘들어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했을 정도였지요. 잠시 쉬는 시간에 윌슨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요. 제가 <통섭>의 한 장과 논의와 성격이 많이 달라 당황스러웠다고 했더니 데닛도 맞장구를 쳐주시더군요. 그러더니 "그럼 이참에 윌슨 선생하고 우리 셋이서 만나 점심이나 먹으며 이야기하면 어떻겠냐."라고 그러시더군요. 물론 저야 "감사합니다."라고 했지요. 아직은 몇 가지 사정 때문에 윌슨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2007년 1월 초에 점심 모임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 건은 그때 가서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도킨스와 윌슨의 경우처럼 진화론자들이라고 해서 종교에 대해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2년 전에 작고한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고생물학자로서 단속 평형설 등을 제시했고 진화에 대해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던 과학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2002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 필자)는 이들과도 다른 종교관을 가졌었지요.

그는 과학과 종교가 "중첩되지 않은 영역(Non-Overlapping Magisteria, 줄여서 NOMA)"에 있는 인간의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사실의 언어를, 종교는 가치의 언어를 쓰기 때문에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지요. 둘 간의 영원한 평화를 선언해 버린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도킨스, 윌슨, 굴드가 종교에 관해 자신만의 독특한 입장이 있는 듯합니다. 그 차이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과학이 종교를 제거할 것이라는 생각(도킨스), 둘의 세계관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생각(윌슨),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굴드).


종교의 유통 기한은 아직도 유효한가?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왜 저명한 과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을 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종교에 대해 딴죽을 거는 사람들의 직업을 따져 보면 과학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아마 종교학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은 이미 과학의 시대로 넘어온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종교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감성 때문에 일군의 의식 있는 과학자들이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계몽 차원에서? 하지만 두 진영 모두 자신들이야말로 선지자인 양 떠들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과학의 끝에서 신을 만나다! vs 과학의 끝에서 신을 쫓아내다!

이런 화두를 던지면 어떤 이들은 시큰둥해 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과 종교, 더 넓게는 이성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야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되던 질문들 아닌가요? 뭐 그런 거야 따지기 좋아하는 가방 끈 긴 사람들이나 관심 갖는 것이지, 우리처럼 하루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지." 라고 말이지요. 실제로 저는 그런 분들을 여럿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지금 새삼스럽게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다시 꺼내야 할까요?

이 대목에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9·11 테러를 들고 나오며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의 존재 자체를 고발한 것은 꽤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가만히 보면 중세까지 종교적 세계관 속에 숨 쉬다가 계몽 시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과학적 세계관으로 이행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도킨스의 주장처럼,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낡은 종교적 세계관이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번창하여 전 세계의 비극적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상황은 혹시 아닌가요? 마치 지독한 바이러스가 퇴치되지 않고 때로 사람을 대량으로 감염시켜 인류에게 큰 재앙을 주듯이, 종교도 끈질긴 정신 바이러스가 아닐까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기독교인이건, 무슬림이건, 아니면 다른 신흥 종교의 광신도들이건, 혹은 신내림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건 간에―이 다른 견해를 인정하려 않기 때문에 생겨났던 셀 수 없는 비극들을, 그리고 앞으로도 생겨날 비극들을 도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제발 좀 관용의 태도를 가져라." 라고 충고한다고 될 문제입니까? 아니면 아주 직설적으로 "네 세계관은 사실적으로 아주 틀렸거든!" "자살 테러를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지 내세에 축복받는 것 아니거든!"이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저는 요즘 도킨스의 외침이 진실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인 정직성을 견지하다 보면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필요 없는 '밈(meme,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11장에서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밈'이라는 새로운 복제자를 제안한다. 밈은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를 뜻하며 'gene'과 대구가 되도록 'meme'으로 표기되었다. 선율, 아이디어, 캐치프레이즈, 패션 등이 바로 밈의 사례들이다 : 필자)' 같아 보입니다. 유효 기간이 지나 버린 밈인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뭐가 더 있을 줄 알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거나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유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학과 종교학을 하시는 두 분 선생님께서 들으시면 좀 불쾌하게 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 종교가 더 이상 세상을 걱정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존립 근거를 걱정해야 할 때인 것이지요. 저는 과학이 종교의 주춧돌들을 야금야금 빼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종교인의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제게는 정말 수수께끼처럼 보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초자연적 세계를 상정한 종교들은 망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소위 '영적(靈的)인 세계'를 갈구하는 이들은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교는 점점 더 자신의 세력을 불려 세계의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중세로 회귀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요? 두 분 모두 한국의 종교 상황에 대해 전문가이시니 말씀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인가?


종교와 과학은 누가 뭐래도 인류의 역사를 추동해 온 두 축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종교는 과학을 낳았고 과학은 종교에 대들었지만, 아직도 못 쫓아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반격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요.


선생님들!


이런 편지가 언제까지 오갈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두 밈인 과학과 종교에 대해 아주 솔직한 토론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데카르트가 했던 것처럼 진실이 무엇인지를 위해 방법론적으로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 보려고 합니다. 가령, 모든 유신론자들이 믿고 있듯이 기도가 정말로 효과 있는지를 의심의 눈으로 해부해 보고 싶습니다. 종교 경전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크고 작은 기적(miracle)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대신 결론은 활짝 열어 놓으려 합니다. 편지를 통해 선생님들과 토론해 가면서 인류의 해묵은 질문에 제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건 인류의 문제만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아시듯이 저 또한 지난 십여 년 간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왔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이것이 제 첫 번째 질문입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가 몇 년 전 <뉴욕타임스>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첫 번째 장문의 편지를 띄웁니다. 연말연시,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일을 하는 좋은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The New York Times, April 20, 1999)


2006년 12월 10일

눈 내리는 보스턴에서

장대익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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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귀환'인가, '탕자의 귀가'인가?

과학과 종교의 대화 <2> 종교와 과학, 다시 만나다



장대익 교수는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이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논쟁을 시작했다. '과학의 시대'에 여전히 그 위세가 커지는 종교가 "또 다른 중세를 야기할지 모른다"는 그의 문제제기는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최근의 지식인의 지적과 궤를 같이한다. 이런 장 교수의 문제제기에 목사 신재식 교수가 답했다.

신재식 교수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 드루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존 템플턴 재단 '과학과 종교 교육 프로그램' 연구자, 풀브라이트 초빙 교수를 지냈다. <생태학과 기독교 신학의 미래>를 쓰고, <근대 신학의 이해>,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을 옮겼다.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오래 전부터 깊은 고민을 해온 목사이다.

신재식 교수는 2006년 12월 26일부터 2007년 2월 8일까지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배낭여행했다. 볼리비아의 산타쿠르즈에서 시작한 여행은 코차밤바, 라파스를 거쳐,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산티아고, 푼타 아레나스, 토레스 델 파이네,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과수 폭포로 이어졌다. 그는 사막부터 빙하까지 이어지는 여행 중에 시장과 성당에 머무르면서, 남아메리카의 사람, 자연, 종교를 둘러보았다. 이 편지의 초고는 코차밤바에서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


김윤성, 장대익 선생님께


여기는 코차밤바입니다. 배낭여행 중에 장 선생님 편지를 받았습니다. 코차밤바는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해발 약 2500m 높이에 위치한 고원 도시입니다. 장 선생님께서 계신 미국 땅에서 비행기로 불과 예닐곱 시간 거리인데, 상당히 다른 세계입니다.

1월인데도 온통 따가운 햇볕으로 가득합니다. 이곳 남반구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이기 때문이지요. 이곳 사람들은 흰 눈으로 덮인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새해를 축하하는 서설(瑞雪)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이곳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은 저에게는 한여름에 맞는 새해가 아직도 낯설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낯선 땅 코차밤바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방문자가 된 듯한 느낌(또는 타자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 처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어디선가 이런 낯선 느낌이 든 적이 있고, 그것도 상당히 익숙한 느낌입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아! 그렇군요! 제가 영화나 책을 통해서 과학의 세계로 들어갈 때 받은 느낌이 그랬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는 아니지만 낯선 곳에 들어선 방문객의 느낌, 이방인의 느낌은 아니지만 아무튼지 익숙하지 않는 세계에서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제가 낯선 남미 땅을 여행하면서 느낀 느낌이 처음 과학의 세계에서 느낀 느낌과 비슷하다니, 과학의 영토나 남미 원주민의 땅 모두가 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곳인가 봅니다. 저에게 이 둘 모두는 미지의 땅이고, 이 땅에 들어서는 저는 방문객이고 타자입니다.


이웃사촌, 종교와 과학


장 선생님의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를 이야기해야 하나?'라는 편지를 코차밤바의 한가운데에 있는 '9월 14일 광장'(Plaza 14 de Septiembre, 1834년에 건설된 코차밤바 중앙광장으로, 지명인 9월 14일은 코차밤바가 세워진 날짜이다 : 필자)의 나무 그늘 아래서 읽었습니다. '종교와 과학'에 관한 편지를 읽고 있는 저에게, 이곳 광장은 우리 삶에서 종교와 과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학자인 저에게 "과학과 종교"보다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서 이렇게 쓰겠습니다. 그리고 종교라는 말도 주로 기독교적 입장이 배어 있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양에서 도시의 중심은 광장이지요. 유럽이나 북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서구 문명이 지배한 거의 모든 땅에서 광장이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지요. 그리고 그 광장에는 서구 문명에서 주인 역할을 한 기독교가 떡 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남아메리카도 예외는 아니지요. 물론 이곳 광장에도 대성당(La Catedral)이 자리 잡고 있고, 주변에도 몇 개의 성당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보면 성당 주위에 빼곡하게 인터넷 PC방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인터넷 전화를 하고 컴퓨터 게임을 합니다. 거의 한 집 건너 하나가 인터넷 PC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 전화 등의 통신 관련 사회 기반 시설이 뒤쳐진 나라일수록 인터넷 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PC방이 많이 보입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웃사촌입니다. 밤에는 성당 종탑과 회랑 조명 불빛과 인터넷 PC방의 네온사인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종교와 과학 기술이 이렇게 만나고 있습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전통 복장을 한 이 땅의 주인들이나, 오래전에 정복자로 이 땅에 온 유럽 백인들의 후손들이 성당을 지나다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인터넷 PC방에 들러 전화를 하거나 게임을 합니다. 성당에서는 기도를 통해 신과 대화를 나누고, 인터넷 PC방에서는 인터넷 전화나 게임을 통해서 인간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들에게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그냥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장소입니다. 전통 종교의 상징인 성당과 현대 과학 기술의 상징인 인터넷이 도시 한가운데서 나란히 이웃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이 우리의 삶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라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과학은 우리 삶의 일부


제가 보기에, 종교와 과학이 여전히 이야기되는 까닭은 이 둘이 개인이나 사회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함께 체현되는 현실적인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와 과학은 개인의 삶과 무관한 분리된 실재가 아니라 한 개인 안에서 함께 엮여 있는 현실적인 실재입니다.

이것은 꼭 이곳 볼리비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장 선생님이 머무르고 계신 보스턴에는 하버드 대학교나 MIT를 비롯해 좋은 학교들이 많이 있지요. 그런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가운데 많은 수가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이지요. 그곳에 있는 과학자들이나 과학과 관련된 사람들 대부분이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시대에도 전자 현미경이나 입자 가속기를 통해 원자와 기본 입자의 세계를 보고, 전파 망원경과 거대한 우주 망원경을 통해 거대한 우주를 들여다보고, 수학을 사용해서 미시 세계에서 대우주까지를 설명하는 과학자가 종교를 갖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24시간 실험실을 지켜야 하는 과학자가 잠시 짬을 내어 예배나 예불에 참여하고 다시 실험실로 급하게 향하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흔적을 찾겠다고 열심히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기독교인도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를 가지지 않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현대 과학을 거부하거나 무관심한 종교인도 있습니다. 여전히 불교도인 생물학자도 있고, 이슬람교도인 화학자가 있고, 천체 물리학자인 신부도 있고,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목사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한 여전히 많은 사회에서 종교와 과학은 일정한 접점을 지니고 있는 당면한 현실입니다. 과학이나 과학 기술이 적용되는 문제를 다룰 때, 자연 과학자나 공학자뿐만 아니라, 종교나 윤리 관련 연구자나 이해 당사자들을 참여시키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일반적인 현실입니다. 사회적 활동인 종교와 과학은 과학 지식과 종교 신념의 충돌이라는 지적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 다차원적 현상이지요. 그래서 이 둘에 대한 논의의 양상은 항상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와 과학은 여전히 개인이나 사회에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상으로 드러납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이 구체적인 사회적 현실이며,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둘에 대한 논의를 특정한 범주로 일반화시키면서 이 둘을 파악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합니다. 다시 말해,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갈등이나 조화라는 단순한 범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 손쉬운 일반화인 동시에, 둘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과 구체성과 다양성을 간과하는 접근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 선생님도, 진화 생물학자가 쓴 최근의 종교나 종교와 과학에 대한 저작에서 이 둘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양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이것이 바로 종교와 과학이 맺고 있는 관계의 현실을 단순하게 범주화시킬 수 없음을 그대로 보여 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 그 과거, 현재, 미래

 

그럼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를 이야기해야 하나?' 하는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저는 종교와 과학의 만남의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고, 오늘의 만남의 현실을 파악하고, 미래로 나갈 방향을 살피는 순서로 나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코차밤바의 광장에서 고개를 들면, '크리스토 데 라 콘코르디아'라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그리스도 상(Cristo de la Concordia,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6.24m의 받침대 위에 세워진 34.20m의 높이의 그리스도 상이다 : 필자)이 멀리 보입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그리스도상보다 더 큰 40m 높이의 그리스도 상이 두 팔을 벌린 채 높은 언덕 위에서 도시를,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그리스도 상이 도시를 두 팔 벌여 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갑자기 '사람들은 무슨 생각으로 도시를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 그리스도 상을 세웠을까?' 하고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그리스도상이 도시의 모든 것, 광장의 모든 것, 성당뿐만 아니라 PC방마저 품을 것을 믿거나 기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성당과 PC방을 함께 품는 그리스도, 종교와 과학마저도 내려다보고 함께 품는 기독교를 꿈꾼 것은 아닌가? 글쎄, 기독교인들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상의 이름을 생각하니 더 그렇게 느껴집니다. 이름에 들어 있는 "concordia"는 원래 "조화와 평화"를 의미하지요. 그래서 그리스도 상을 우리말로 하면 "평화의 그리스도"나 "조화의 그리스도"가 되지요. 어쩌면 이들에게 그리스도 상은 '종교와 과학의 조화'나, '종교와 과학의 평화'를 향은 꿈이 투사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종교와 과학의 평화와 조화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나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현대인은 이런 꿈을 허망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망상으로 여기겠지요. 기독교가 외래 종교인 한반도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도 선뜻 수긍할 수 없습니다.

왜 수긍할 수 없을까요? 우리는 종교와 과학이 함께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종교와 과학은 각각 서로 다른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성직자와 과학자는 다른 땅을 다스리는 두 영주이고, 이 둘은 늘 긴장과 갈등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니 종교와 과학을 하나로 품으려는 시도는 상당히 무모하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모하다고 느끼는 이러한 시도, 즉 그리스도 안에서 종교와 과학을 함께 포용하려는 시도는 서구 기독교가 지닌 오랜 전통이었고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근대 이전, 종교와 과학이 두 권의 책으로 만나다

이 문제를 역사적인 측면에서 잠깐 짚어 볼까요. 제가 머무르고 있는 남아메리카를 떠나 잠시 유럽으로 가 봅시다. 4세기경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이래 헬레니즘과 더불어 서구 문명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기 전까지 기독교의 권위와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서구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없어졌다는 말은 아니지요. 장 선생님이 지적하셨듯이 여전히 서구 사회에서 무신론자는 예외적인 사람입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영역도 기독교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서구 문명의 모태였고 심장이었습니다.

이런 서구 문명을 이끈 지성인은 누구였을까요? 유럽의 대학은 원래 성직자와 교회 관련 직무를 수행할 사람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지적 활동의 중심지가 대학과 수도원이었습니다. 당시 지식의 중심에는 기독교 성직자들이 있었던 거지요. 13세기 이슬람 세계를 통해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과학이 중세 유럽으로 들어왔을 때, 이를 가장 먼저 접한 사람들도 성직자였습니다. 이들이 종교적 지식은 물론, 철학, 수학, 수사학, 공학 등 그야말로 '모든' 지식을 담당했습니다. '신에 관한 탐구'와 '자연에 대한 탐구'는 이들의 활동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자연 과학(science)에 해당하는 자연에 대한 탐구는 당시 '자연 철학(natural philosophy)'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죠. 중세 지성인들에게 자연 탐구는 기독교 신앙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때까지, 자연을 탐구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었으며, 자연에 대한 탐구는 기독교 신앙의 실천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중세 최고의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로버트 그로세테스테(1175-1253년,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에 주석을 달고, 그리스 어와 아랍 어 과학 저술들을 라틴 어로 번역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총장 역임하고, 기하학과 광학, 천문학 분야에 저작을 남겼다 : 필자)는 주교였으며, '중세의 갈릴레오'로 불린 로저 베이컨(1214-1294년, 영국 서머싯 출신으로, 실험 과학을 중시한 대표적 중세 인물이다. 수학, 천문학, 광학, 연금술 등에 관심을 가졌다 : 필자)은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였으며, 15세기의 최초 물리학자로 무한한 우주에 대한 견해를 처음으로 제시했던 쿠사의 니콜라스(1401∼1464년, 독일 출신 신학자이며 철학자로, 기하학과 논리학, 천문학 등에 관심을 가졌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지구와 같은 세계가 무한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필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이었지요.

17세기에 과학 혁명의 위대한 개척자나 설립자로 불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과학이 자신들의 신앙과 조화를 이룬다고 믿었던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와 뉴턴은 그들의 새로운 견해가 자신들의 신학에서 파생한 결과라고 믿었습니다. 특히 뉴턴은 종교적인 열광자로 불릴 정도로, 전 생애에 걸쳐 신에 대한 탐구의 작업을 수행했었죠. 뉴턴에게 과학과 신학과 연금술은 분화되지 않은 통일된 전체였습니다. 이렇게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과 근대 화학의 아버지 로버트 보일을 비롯해 18세기까지 유럽에서 과학 작업에 종사한 대부분의 과학 혁명의 선구자들은 실제로 과학자가 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학 연구를 했던 깊은 신앙인들이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정식으로 신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신학 교육이 사제가 되지 않더라도 꼭 들어야 하는 일종의 교양 과정과도 같은 것이었죠. 그중의 예외는 뉴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과학 혁명의 시기까지 기독교는 자연에 대한 탐구를 의식적으로 억압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장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권의 책"이라는 생각이 그 대답입니다. 기독교가 문화의 모태였던 당시 사람들은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은 사람들에게는 두 권의 책, 즉 '성서라는 책(Book of Bible)'과 '자연이라는 책(Book of Nature)'을 주었습니다.

신이 성서와 자연이라는 두 권을 책을 쓴 저자이기 때문에 두 권의 책의 내용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이 저자를 훨씬 더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신이 쓴, 인간을 위해 준 두 권의 책은 서로 보완하면서 그 저자를 더 잘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자연을 탐구하는 것은 장려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자연이라는 책의 탐구를 통해서 신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전통입니다.


과학의 독립 선언, 종교에 도전하다


이런 상황이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점차 바뀝니다.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오늘날 과학을 의미하는 'science'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19세기 후반에는 이 분야의 작업을 전담하는 새로운 지식 계급에 '과학자'(scientist)라는 명칭이 사용됩니다. '과학자' 집단의 등장과, 이들이 자연에 대한 탐구, 즉 과학을 전담하게 되면서, 종교인들은 더 이상 모든 지적 작업을 독점할 수 없게 됩니다. 특히 자연 법칙에 따른 자율적인 세계라는 기계론적 인식과 진화론의 등장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도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후 자연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보에 따라, 과학과 이를 응용하고 적용한 기술의 효율적 결과가 잘 확인되면서, 종교의 영역은 축소되고 영향은 약화됩니다.

결국 자연은 과학자의 영역(물리적 세계는 뉴턴 물리학의 영역, 생명 세계는 다윈 적자 생존론의 영역)에 속하고, 역사와 인간과 사회와 윤리 도덕은 여전히 종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그 영역은 조금씩 넓어집니다. 종교가 맡고 있던 설명들이 하나씩 차례차례 과학적 설명으로 대치되고, 이 과정에서 종교는 수세와 방어로 일관한 것이 지난 300년간 종교와 과학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교가 과학에게 자연이라는 영토를 순수하게 이양한 것은 아니지요. 17세기 이후 성직자와 과학자 사이에서 벌어졌던 다툼은 자연적 지식에 대한 권한과 지식 판단의 우월권이라는 특권을 어느 집단이 갖느냐 하는 주도권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19세기 전까지 서구에서 기독교와 과학이 철저하게 대립하거나 화해할 수 없는 긴장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합리주의적 분위기에서도, 칸트나 루소와 같은 철학자들은 과학과 종교는 두 개의 분리된 영역이라고 주장했을 따름입니다. 즉 18세기까지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듯이 '전쟁'으로 치달은 적이 없습니다.

종교와 과학이 전쟁 상태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 준 것은 구체적인 계기가 있습니다. 19세기 말에 출판된 존 드레이퍼(1811∼1882년, 영국 출생 미국 과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사진작가. 뉴욕 대학교 교수, 뉴욕 대학교 의과 대학 설립자, 미국 화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 필자)의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갈등사>(1874년)와 앤드루 화이트(1932∼1918년, 뉴욕 출신으로 역사학자이며 교육자. 코넬 대학교 공동 설립자로 초대 총장이 되었으며, 이후 외교관과 미국 역사학회 초대 회장 역임했다 : 필자)의 <기독교 국가에서 과학과 신학의 전쟁사>(1896년)는 책 이름만큼이나 기독교가 과학을 전투적으로 억압했다고 표현합니다. 이 책들의 출판과, 더불어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부정적인 태도와, 창조-진화 문제와 관련해 벌어진 몇 번의 재판이 오늘날 종교와 과학이 갈등 관계나 전쟁 상태에 있다는 인상을 결정적으로 심어 주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볼 때, 종교와 과학의 역사를 갈등 관계로 보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입니다. 오히려 서구 역사에서는 오랫동안 종교와 과학은 동거하던 상태였습니다. 코차밤바를 내려다보면서 종교와 과학을 한품에 안으려는 듯한 그리스도 상의 꿈은 과거의 사실(史實)과 이에 대한 향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19세기적 화두, 종교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있는가?


오늘날 과학자들의 종교에 대한 설명, 특히 진화론적 입장에서 종교를 설명하고, 종교의 존립 문제를 논하는 것에 대해 좀 생각해 보죠. 사실 과학이 야기한 문제로 인해 종교가 고민하는 것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지요. 멀리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발한 유대교가 지중해 문화권 전체로 확장되고 헬레니즘 문화 속에서 고대 그리스의 합리적 사유를 만날 때부터 이런 종류의 고민은 있었습니다. 가까이는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에 이르는 과학 혁명기 이후 과학의 독립 선언과 지속적인 영역 확장을 마주하게 된 기독교가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습니다.

19세기 초에 서구 지성인 사이에서 제일 중요한 화두는 '종교가 과연 더 이상 존재할 수 있는가?' '더 이상 신학이 가능한가?'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서구 기독교의 권위와 가르침이 도전을 받았습니다. 데이비드 흄을 비롯한 많은 서구 근대 사상가들은 기독교의 권위의 정당성과, 그때까지 당연시해온 교회의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종교적 권위의 뒷받침에 의해 신비의 영역, 신의 활동 영역으로 남아 있는 많은 부분들을 순순하게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 법칙과 자율성을 지닌 세계라는 새로운 세계관은 당연히 신의 존재와 기적을 비롯해서 이제까지 신의 활동으로 여겨졌던 영역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기존의 교리가 도전받고, 세계와 자연에 대해 종교적인 설명보다 과학적이거나 자연주의적 설명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찾아왔습니다. 자연의 영역에서 자연 과학이 그 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점차 인간과 사회의 영역마저 자연 과학은 그 주권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제 사회는 신이나 교회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대로 질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과학의 자율성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의 전반적인 영역이 교회로부터 또는 기독교로부터 자율성을 선언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뭉뚱그려서 '세속화'라고도 말하지요. 이러니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종교의 위기, 신학의 위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이게 19세 초반 서구 사회의 문제, 보다 정확하게는 기독교의 문제였습니다.

물론 기독교는 이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할 방도를 찾습니다. 자연 과학의 도전에 대한 19세기의 종교적 대응은 주로 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종교만의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슐라이어마허, 칸트, 헤겔입니다. 이들은 자연 과학과 구별되는 종교만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을 각각 제시합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의 내면적 감정을, 칸트는 도덕이나 윤리의 영역을 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종교만의 영역으로 제시합니다. 심지어 헤겔은 역사가 바로 종교의 영역이라고 선언합니다. 이후 서구 문화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태도는 이 둘이 각각의 영역을 달리한 채로 각자의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 전통에서도 신학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이나 인간의 내적 상태였습니다.

코차밤바의 광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재미있는 현상이 눈에 뜨입니다. 사람들은 성당으로 들어가지만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습니다. 아마 잠깐 기도를 드리고 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PC방으로 들어간 사람은 한참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인터넷 전화를 해도 컴퓨터 게임을 해도 금방 나오는 법이 없습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 모두 거의 거쳐 가는 곳이지만 머무르는 시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다른 흥미 있는 상황이 눈에 뜨입니다. 성당은 오랜 건축물입니다. 이곳저곳 훼손된 곳이 많고, 또 퇴락한 채 거의 방치되고 있는 성당도 눈에 자주 뜨입니다. 아마 성당을 수리하거나 새로 짓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PC방의 수는 나날이 늘어납니다. 물론 새로 짓고 단장한 곳이라 깔끔하고 합니다. 쇠락한 성당과 새로 단장한 인터넷 PC방의 대조는, 그리고 어느 곳에 오래 머무르는가는 퇴락한 종교와 욱일승천하는 과학이라는 오늘날 둘의 현실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과거 서구 문명의 상징을 하늘로 치솟는 첨탑을 지닌 고딕식 대성당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 문명의 상징은 거대한 입자 가속기나 전파 망원경, 컴퓨터나 이동 전화가 될 것 같습니다. 문명의 상징이 바뀐다는 것은 이미 다른 문명이라는 이야기지요. 설사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성당의 첨탑이 아니라 전파 망원경이나 휴대전화를 통해서 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300년 동안 놀라운 발전을 한 과학은 오늘날 우리 문명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과학자는 과거 중세에 성직자가 했던 역할을 대신하는 오늘의 사제와 같습니다. 종교는 여전히 존속하지만, 그 영향력은 예전과 같지 않고, 어쩌면 우리 삶과 사회에서 향신료와 같은 부수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리고 무대 뒤로 사라진 줄 알았던 종교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장 선생님이 언급한 것처럼, '종교 그것'이 다시 문제가 된 것이지요. 그리고 '종교와 과학'이 다시 함께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천년에 종교와 과학이 다시 만나다


서구 지성계에서 한동안 따로 놀던 '종교와 과학'은 20세기가 끝날 즈음부터 다시 서로 만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1990년대 이전까지도 종교'와' 과학 또는 종교와 과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는 사람들의 주목을 별로 끌지 못했고, 특히 학문적인 담론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를 거치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종교와 과학에 대한 학술활동과 저술이 급격히 늘어나고, 언론의 대대적 조명을 갖게 됩니다.

<자이곤: 종교와 과학 저널(Zygon: Journal of Religion and Science)> 이외에 이 분야의 학술지와 소식지가 새롭게 창간되고,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집중하는 전문 연구 기관이 15개 이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렇게 관련 연구소의 증가, 학술지의 증가, 관련 학술 행사의 빈번한 개최, 미국의 '동등 교육법'(진화론과 창조론을 과학 시간에 동등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이 반영된 법으로 미국 아칸소 주와 루이지애나 주에서 1980년대 초반에 통과되었다가 위헌으로 판결을 받았다 : 필자) 재판 등에 대한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 관련된 학자와 저술의 급격한 증가 등이 불과 10여 년 사이에 겪은 변화입니다. 이 변화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아마 지난 10여 년간 엄청나게 늘어난 '종교와 과학' 분야의 출판물일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종교와 과학이 새롭게 만난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가 무슨 말을 하느냐를 조금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해 보지요. 하나는, 이 분야의 학술 활동이나 저작에 관련된 당사자들이 누구인가? 다른 하나는 이슈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고 나서 이런 만남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말씀드리지요.

장 선생님이 언급했다시피, 최근 들어 진화론적 입장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저작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저는 대성당 옆 의자에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었습니다.) 생물학, 철학, 심리학, 인류학 등 각 분야에서 제시하는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은 마치 온갖 색깔의 폭죽이 동시에 터지면서 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의 화려한 '절정'이자 '마지막'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은 이전에 다른 폭죽들이 벌써 이런저런 모습으로 하늘을 밝혔다는 말이지요. 누가 폭죽을 터트렸는지 색깔별로 살펴볼까요?

'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분야별로 보면, 거의 모든 학문 분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선 종교 쪽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신학, 종교학, 여러 분야의 생물학, 철학, 역사학, 인류학 등등을 언급할 수 있겠네요.

물론 전공 분야에 따라 종교나 과학 또는 종교와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가 획일적인 것은 아닙니다. 신학자라고 과학에 대해 모두 부정적이라거나, 과학자라고 해서 종교에 부정적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와 과학에 관련된 사람들의 태도는 매우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 가운데서 현대 과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 과학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장 선생님도 언급하셨듯이, 진화 생물학자 가운데서도 종교의 가치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 종교와 과학이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람 등 여러 부류가 있습니다.

신학이나 종교 쪽에서 보면, 자연 과학과 대화는 두 부류로 나뉩니다. 우선 대화에 적극적인 대표적인 사람들로, 아서 피코크, 존 폴킹혼, 이언 바버, 로버트 러셀, 셀리아 딘드럼먼드 등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과학자-신학자(scientist-theologian)'로 불리는데, 자연 과학 분야의 박사 학위 소지자로 과학계에서 활동하다 성직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또한 테드 피터스, 필립 헤프너, 존 호트 등의 신학자들이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적극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죠. 창조 과학자나 지적 설계론자의 공통점은 이 세계가 지성을 가진 존재, 즉 신적 존재에 의해 설계(design)되었으며, 진화론을 반대하죠. 윌리엄 뎀스키, 마이클 비히, 필립 존슨, 뒤앤 기시(Duan Gish) 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자연 과학이나 철학 쪽에서 보면 많은 사람을 언급할 수 있을 겁니다. 근래 종교에 관한 저작을 출판한 사람들로, 대니얼 데닛, 스콧 애트란, 파스칼 보이어, 스티븐 핑커, 마이클 루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에드워드 윌슨, 데이비드 윌슨 등등. 모두 화려한 스타들이죠. 물론 이들 중 몇을 제외하고는 종교에 대해 비교적 진화론적 시각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와 달리 프랜시스코 아얄라, 케네스 밀러, 존 러프가드 등은 자연 과학자이면서 과학 지식과 기독교 신앙과 조화를 시도하는 사람들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종교와 과학의 대화는 관심에 따라 몇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종교와 과학의 역사적 상호 작용에 대한 관심인데, 주로 과학사가들이나 역사학자들이 논의에 참여합니다. 존 부룩, 데이비드 린드버그, 로널드 넘버스, 리처드 올슨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종교와 과학의 방법론에 관심을 가지면서 둘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이나 차이 등을 논의합니다. 주로 과학 철학이나 종교 철학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웬츨 밴 호이스틴, 낸시 머피, 마이클 스텐마크 등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종교와 과학의 이슈를 주로 '창조와 진화', '인지 과학과 종교', '대폭발과 창조', '인공 지능과 종교'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다루는 학자들은 직・간접적으로 이런 논의에 참여합니다.


왜 종교와 과학이 최근에 다시 논의되는가?


그렇다면 최근 들어 종교와 과학에 관한 관심과 논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런 변화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이지만, 저는 그 요인을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합니다. 내적으로 신학과 과학은 각각 자신의 지적 능력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자기 학문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서로를 보는 시각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졌기 때문에 아주 간략하게 말씀드리죠. 먼저, 신학은 20세기 후반부터 다른 사회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신학 작업 역시 구성적(constructive)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신학 역시 시대와 상호 작용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인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동안 경원시했던 자연 과학에 익숙해질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생태 문제와 관련한 생태 신학 작업에서 자연 과학의 도움이 필요해졌고, 현대 과학 기술의 성취로부터 현대 신학이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새롭게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과학을 이해할 필요성이 증가함에 따라 신학자들과 종교인들은 최근 과학의 본질에 대한 과학 철학의 논의 등을 꼼꼼하게 살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과학의 객관성과 중립성 등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과학이 더 이상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그 결과 과학을 무조건 피하던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자기 한계를 인식하게 된 것이, 서로를 보는 눈을 바꾸었으며, 오히려 대화를 촉진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과학의 자기 한계를 직시하는 흐름과 조금 다른 과학적 흐름도 있습니다. 과학 지식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자연 현상 말고도 인간 문화의 모든 영역을 과학적 관점에서 일관성 있게 발언하려는 시도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아마 이것은 과학자들이 한 명의 학자로서 당연히 마주하게 되는 지적 도전이겠지요. 사회 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 등의 관점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시도는 이런 흐름에 속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외부적 요인, 즉 사회적・경제적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와 과학에 대한 담론이 거의 서구 기독교권, 특히 영미를 중심으로 영어권에서 전개되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문제는 기독교 영향 아래에 있는 사회에서 발생한 것이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야기되는 결과가 기존의 기독교 가르침과 충돌을 일으킬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압력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아직도 지속되는 창조 대 진화 논쟁, 유전자 조작과 생명과 인권 논쟁 등 이런 문제는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해서 관련된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와 과학의 문제를 다루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물론 언론도 여기에 일조하고 있고요. 여기에 경제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990년대 들어 존 템플턴 재단(John Templeton Foundation, 영국 투자가였던 존 템플턴 경이 1987년에 세운 재단으로 흔히 템플턴 재단으로 불린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매해 수여하며, 최근에는 과학과 종교(영성)에 관련해서 집중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 필자)은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학술 활동에 엄청난 지원을 했고 이것이 '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의 복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출판사들의 상업주의도 많은 서적들이 출판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을 논의하는가?'에 대한 제 입장을 좀 더 거시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답장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은 인류가 오랜 역사 과정에서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 낸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술이나 정치나 경제도 일종의 메커니즘입니다. 메커니즘 대신 '생존을 위한 시스템'이나 '모듈'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인류나 또는 특정 사회는 생존을 위한 메커니즘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고, 동시에 사용합니다. 각 메커니즘은 일정 부분 자기 영역과 자기 담론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메커니즘과는 서로 보완적일 때도 있고 경쟁적일 때도 있습니다. 인류는 이런 메커니즘 하나에만 독점적 지위를 주지 않고,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메커니즘의 비중을 달리하면서 각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정합니다.

그런데 특정 메커니즘이 그 메커니즘이 만들어진 기능이나 활동하는 영역을 벗어나서 지나치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인류나 특정 사회는 자동적으로 자율적으로 그 비대해진 특정 메커니즘을 제어하려고 합니다. 즉 특정 메커니즘의 독주로 인해 인류나 특정 사회가 생존의 위협을 받거나 적응의 정도가 심하게 훼손될 때, 그 메커니즘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메커니즘을 사용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사회의 생존을 위협할 지경에 이를 때, 종교는 다른 메커니즘에 의해 속박을 받았습니다. 그 제어 과정이 혁명처럼 과격하게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고, 지속적이고 완만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서구 문화에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주도권 이행을 과도한 종교의 역할에 대한 인류 또는 서구 사회의 자동적인 제어 과정이라는 흐름에서 보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날 종교와 과학의 만남을 강요하는 듯한 사회적 압력 또한 마찬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류의 생존력 강화를 위해 봉사해야 할 과학이라는 메커니즘이 이제는 핵무기나 환경 파괴 등의 부작용을 통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자, 과학을 제어하기 위한 다른 메커니즘이 부상해야 했고, 그 역할이 현재 종교에 맡겨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다른 경제나 정치와 같은 메커니즘도 있지만, 가장 큰 제어 역할을 종교라는 메커니즘에게 맡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교가 뭔지 과학이 뭔지 잘 알고 있는가? 이 둘이 서로를 보는 시선은 무엇인가? 이런 것이 더 궁금해집니다.


'왕의 귀환'인가 '탕자의 귀가'인가?


저는 서구 기독교 문화권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이나, 신학자들이 과학과 치열하게 대화하려고 하는 최근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느낌을 갖게 됩니다. '우리 안의 타자', 서구 사회에서 종교와 과학이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구 문화에서 한때 함께 지내다 언제부터인지 서로에게 타자가 되어 버린 종교와 과학이 다시 만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의 귀환!

종교와 과학이 다시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종교와 과학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무척 궁금합니다. '왕의 귀환'인지 '탕자의 귀가'인지? <반지의 제왕>처럼 왕의 귀환을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할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실패한 아들로 여길지는 앞으로의 만남이 보여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서로가 타자성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고 여겨집니다.

이를 위해서 내 안의 타자성을 서로 확인하고, 우리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토대로 종교는 과학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과학은 종교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좀 더 논의를 이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윤성 선생님께서 도대체 종교가 무엇이고, 과학이 무엇인지,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것대로,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대로, 좀 이야기를 풀어 주시길 기대합니다.

여행은 우리에게 일상적인 상식을 깨는 경험을 줍니다. 남반구에서는 햇볕 따뜻한 양지는 북쪽입니다. 당연히 북향집이 훨씬 비싸지요. 한 여름에 성탄절과 새해를 맞이합니다. 여행은 저를 낯선 것에 익숙하게 만들고, 새롭게 배우게 합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언어가 다른 낯선 사람들과 만날 때는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그때는 공통의 의사소통 수단이 필요합니다. 제가 스페인어를 하거나 이곳 사람들이 한국어를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둘 다 불가능하다면 대안을 찾아야죠. 가령 영어로 이야기를 한다거나 말입니다. 둘 모두가 자신의 언어만을 고집한다면 서로의 의사소통은 힘들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어려워집니다. 그냥 배움의 태도가 우선인 것 같습니다.

저는 종교와 과학의 만남도 여행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낯선 타자와의 만남, 이것에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이겠죠. 아니면 의사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필요하거나. 자신의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독백이며, 다른 말하면 지역주의나 영역주의를 고수하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으로 인해서, 종교가 존재 근거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귀 기울임의 태도라고 여겨집니다. 김윤성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2007년 1월 3일

코차밤바에서

신재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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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교회도 가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과학과 종교의 대화 <3> 과학과 종교 사이의 모호성



앞서 장 교수와 신 교수는 각각 과학자와 종교인의 입장에서 서로를 탐색하는 편지를 교환했다. 장 교수가 '과학기술 시대에 과연 종교의 존재 이유가 있는지'를 따지자, 신 교수는 '과학과 종교가 애초 '이웃사촌'이었음을 강조하며, 종교가 대두되는 배경에는 과학기술의 실패가 자리잡고 있음을 짚었다.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종교학자 김윤성 교수가 제3의 시각을 제기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종교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영혼', '생명 논의와 모호성의 윤리' 등의 논문과 <거룩한 테러>, <다윈 안의 신> 등의 번역서가 있다.

김윤성 교수는 2007년 1월 일본을 여행했다. 이 글의 초고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쓰인 것이다. <편집자>


장대익, 신재식 선생님께


두 분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엊그제 이곳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해 여기저기 다니느라 이제야 편지를 씁니다.

나가사키는 참으로 독특한 도시더군요. 전통과 근대가 절묘하게 공존하죠. 사찰과 신사도 많지만, 일본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들던 성당이 유독 많습니다. 16세기 서양과의 교역 중심지로서 천주교가 처음 전래된 곳이자 수만 명의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기 때문이죠. 서양 고딕 양식의 성당들도 인상적이지만 순교자 기념관과 오우라 성당 그리고 우라가미 성당(피폭 마리아 성당)에서 보았던 독특한 성모 마리아 상들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천주교 전래 초기에 관리들이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가게 했던 마리아 상은 죽음을 기꺼이 감내할 정도로 강렬한 신앙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합니다. 또 품에 안긴 아기 예수만 아니라면 불교 유물로 착각할 정도로 영락없는 관음보살의 모습을 한 마리아 상은 새로운 종교의 수용 과정에서 벌어진 절묘한 혼합의 양상을 보여 주죠. 그리고 원폭 투하 이후 남은 잔해 그대로 모셔진 마리아 상은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였던 일본인들의 역사와 경험에 새겨진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불교와 신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일본의 종교 문화 전반을 생각하면 서양 문화와 종교가 어우러진 이곳 나가사키는 정말 독특한 도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한 통계: 일본과 한국의 종교 문화


장 선생님이 말씀하신 미국의 종교 통계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일본의 통계가 생각나네요. 몇 년 전 일본 문부성이 종교별 집계 자료를 종합한 통계에 따르면 각 종교별 신자 수는 신도 1억1700만 명, 불교 9000만 명,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 150만 명, 각종 신종교 11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종교인 수가 무려 2억2000만 명으로 일본 총인구 1억2500만 명의 거의 두 배에 달하죠.

그런데 최근의 센서스 조사는 이와 좀 달라서, 이에 따르면 신도 6800만 명(54.1%), 불교 5000만 명(40.5%), 기독교(개신교와 천주교) 9000명(0.7%), 신종교 및 무종교 포함 기타 600만 명(4.7%)으로 나옵니다. 1인당 1개 종교만 택하게 한 후 백분율로 환산한 센서스 통계가 정확해 보이기는 하지만, 일본 종교 문화의 실상을 잘 보여 주는 건 오히려 문부성 통계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종교를 절대 진리에 대한 신앙의 문제로 여기고, 따라서 사람마다 종교가 있거나 없거나, 또 한 사람이 하나의 종교만 갖는다거나 하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근대 이후에 성립된 서구적 종교관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극소수의 기독교인과 무신론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 때로 신사에 가서 축원을 올리거나 부적을 사고 때로 사찰에 가서 기원을 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죠. 그들에게 종교란 절대 진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저 삶의 필요를 채워 주는 일상의 일부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본과 아주 비슷합니다. 문화관광부가 2002년도에 각 종교별 집계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통계에 따르면, 불교 3749만 명, 개신교 1872만 명, 천주교 422만 명, 유교 600만 명, 천도교 100만 명, 원불교 133만 명, 대종교 47만 명, 기타 종교 1286만 명으로 종교인 수가 무려 8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총인구의 1.5배나 되는 수치죠.

반면에 2005년 국내 센서스 조사를 보면 '종교가 있느냐?'라는 물음에 '있다.'라고 답한 사람은 53.1%인 2500만 명, '없다.'라고 답한 사람은 46.9%인 2200만 명입니다. 종교별로는 불교 1070만 명(22.8%), 개신교 860만 명(18.3%), 천주교 510만 명(10.9%), 유교 10만 명(0.2%), 원불교 13만 명(0.3%), 기타 종교 25만 명(0.5%)이고요.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 그 어느 나라에 비해도 무종교인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지요.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자신이 무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일 겁니다.

이 통계들은 우리나라 종교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첫 번째 통계에서 총인구의 1.5배나 되는 종교인 수는 한 사람이 여러 종교를 동시에 갖거나 이 종교에서 저 종교로 개종하는 일이 매우 잦음을 말해 주죠. 두 번째 통계에서 의아스러운 점은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무종교인들이 과연 정말로 종교와 무관한 삶을 살까 하는 점입니다.

갤럽 조사를 보면 실제로 제사와 차례를 지내는 사람이 90%가 넘고, 정식 신자는 아니어도 이따금 사찰이나 성당 또는 교회에 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학자는 이들을 '실천적 유교인', '실천적 불교인', '실천적 그리스도교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이뿐이 아닙니다. 굿을 하고 점을 보는 일, 택일을 하고 사주와 궁합을 보는 일, 연초에 토정비결을 보는 일, 풍수지리를 따지는 일 같은 것은 현대 들어 줄거나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성행하고, 또 새로운 세계인 사이버 공간에서 더욱 번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종교라고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도 대개는 어떤 형태든 특정한 종교적 신앙과 실천을 갖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제가 종교 통계 이야기를 꺼낸 건 우리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과학과 종교의 문제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과학과 종교는 둘 다 진리의 문제로 씨름하죠.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가 서로 상충하는지 아니면 상호 보완적인지가 두 영역의 만남을 논의하는 많은 이들의 관심거리일 겁니다. 하지만 관점을 좀 달리해서 보면 이런 관심 자체는 과학과 종교를 진리 체계로 파악하는 특정한 세계관 안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다시 말해 종교를 그저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의 일부로 여긴다면 과학과 종교의 관계 따위는 별다른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는 거죠.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서구적 종교관과 과학관의 영향 속에서 살고 있고, 따라서 많은 이들이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는 물론 불교와 신종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 신자들이, 또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과 종교의 문제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꼭 이렇게 종교와 관계된 사람들만이 과학과 종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닌 듯합니다. 실제로 특정 종교의 신자가 아닌데도 이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보입니다. 생각건대 이는 방금 종교 통계에서 보았던 것처럼 설령 무종교를 표방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종교적 성격의 신념이나 실천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설령 특정한 종교가 없더라도 일반적 차원에서 종교와 과학이 신앙과 이성의 문제에 대한 제법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겠지요.

결국 과학과 종교의 문제는 비단 과학이나 종교에 직접 관련된 사람들만이 아니라, 지식과 진리 자체나 이를 둘러싼 담론에 일말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닐는지요.


세속적 종교학의 자리: 즐거운 불가지론


종교 통계 이야기는 이쯤 하고, 두 분 편지를 읽으며 들었던 제 나름의 생각을 몇 자 적어 볼까 합니다. 과학과 종교라…. 아무래도 저는 애초에 두 분과 출발점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두 분은 각자 과학자와 종교인의 자리에 서 계시지만, 저는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중간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애매한 제3의 자리랄까요.

아시다시피 종교학이라는 학문은 (적어도 제가 하고자 하는 종교학은) 진리나 신념 자체에 헌신하기보다는 이를 둘러싼 담론과 그 효과를 분석하는 일에 더 관심을 둡니다. 어쨌거나 앞으로 저는 그저 제 나름의 자리에서 두 분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제 나름의 이야기를 덧붙여 보려고 합니다.

과학과 종교에 관한 제 관심은 그 성격이 계속 변해 왔습니다. 학창 시절에 저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보수적 신앙의 개신교인으로서 창조 과학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었죠. 하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시에 저는 창조 과학을 진정한 진리로 옳다고 여겼다기보다는 그것이 옳으니까 믿어야 한다고 여기고 또 그렇게 믿으려 부단히 애썼던 것 같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헛된 분투를 그만두게 되었죠. 지식이 쌓일수록 제 이성이 점점 신념을 과학으로 여기던 오류에서 벗어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제 신앙은 보수와 진보의 중간쯤 되는 신정통주의를 거쳐 진보적인 자유주의 개신교로 옮겨 갔는데요, 그러면서 우주와 진화에 대한 현대 과학의 견해를 제 종교적 신앙과 조화시키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문자에 얽매이지 않을 때 신앙이 얼마나 더 풍성해질 수 있는지를 깨달았던 거죠.

하지만 저는 거기서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종교학을 계속 공부하면서 종교적 진리에 관련된 주장과 담론이란 얼마나 다양한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다양성에 대한 종교학자들의 태도 역시 다양하죠. 모든 진리가 부분적이라는 신념 아래 자신의 종교만큼이나 다른 이들의 종교도 소중히 여기며 신앙을 지켜가는 종교학자도 많고, 이와는 좀 다르게 특정 종교의 신자로 남기보다는 여러 종교들을 초월하는 궁극적 진리와 성스러움 자체를 인정하며 이를 추구하는 종교학자도 많습니다. 한편 불가지론 내지 무신론적 입장에서 진리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는 진리를 둘러싼 담론과 권력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종교학자도 적지 않습니다.

저는 애초에는 첫 번째 입장이었다가, 점차 두 번째 입장으로, 그리고 다시 세 번째 입장으로 계속 옮겨왔습니다. 문자주의적 개신교인에서 자유주의적 개신교인으로, 다시 개신교를 비롯한 개별 종교들을 넘어 종교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종교학자로, 그리고 종국에는 거의 무신론에 가까운 색채를 띤 불가지론적 입장의 세속적 종교학자로 계속 변모해 온 거죠.

앞으로 제가 어떻게 또 변해 갈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비록 제가 유신론적 종교와 다소 거리를 두게는 되었지만, 그렇다고 무신론으로 전향한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아마 쉽게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고요. 저에게는 무신론도 어차피 특정한 형이상학적 신념 체계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신념의 선택은 각자의 몫이고, 저는 양자택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당분간은 불가지론적 거리두기가 선사하는 지적 모험의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싶을 뿐입니다.

아무튼 제 입장이 이렇기에 저는 과학이든 종교든 '진리'의 차원에서 접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의 대화에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한 걸음 떨어진 입장에서 제 나름의 물음을 던지고 또 답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두 분 사이에서 중재를 하거나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사실 그러고 싶은 생각도 그럴 만한 능력도 없고요. 신념의 차이를 중재하는 거간꾼 노릇을 하던 과거의 종교학은 오늘날 혹독한 비판의 칼날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신념의 중재자를 자처하는 순간, 이미 엄밀한 학문에서 신앙적 고백으로 자리를 옮긴 셈이기 때문이죠.

오늘날 종교학이 그런 거창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포부를 간직한 종교학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를 종교학의 세속화로 염려하는 종교학자들도 많지만, 종교학이 진정한 학문으로 거듭나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변화로 반기는 종교학자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도 그중의 한 명이고요. 아무튼 제 이러한 입장을 이해하시고, 두 분의 대화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음악, 과학, 종교: 모호성의 지대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저도 읽고 있는 중입니다. 잠시도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이더군요. 독창적이기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기존 논의들을 집약해서 대중적으로 잘 소화되게 정리한 내용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책 전반에 깔린 도킨스 특유의 신랄한 독설과 명쾌한 주장이 나름대로 매력을 지닌 책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중세부터 근대까지 많은 이들이 관여했던 신 존재 증명 시도들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그의 논의는 조금은 진부해 보입니다. 그의 논의는 사실 기존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죠. 철학과 신학을 조금이나마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그가 말하는 내용들이 그리 새로울 게 없다는 점을 금세 알 수 있을 겁니다.

또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나쁜 일들을 비판하는 부분도 그리 참신하게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다른 많은 이들이 제기했던 기존의 비판들을 한데 모아서 소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종교와 폭력이나 종교와 전쟁에 관한 책들을 들추어 보면 이 역시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도킨스의 무신론적 입장도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죠. 무신론을 세계적 운동으로 발전시키려 하는 그의 시도 자체는 새롭지만, 무신론이란 사실 나름의 역사를 지닌 오래 된 신념의 하나입니다. 역사상 최초의 무신론자들이라고 할 만한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학파는 무려 2500년 전에 활동했죠.

어쨌거나 그래도 도킨스의 책은 아주 흥미롭게 읽히는 게 사실입니다. 이는 이 책에 도킨스 특유의 명쾌함, 미래 세대에 대한 그의 염려, 인류에 대한 책임감이 여실히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도킨스는 책의 서두를 '종교적'이라는 말을 되짚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를 가진 당신들이 '종교적'이라고? 좋다. 그럼 어디 한 번 과연 누가 더 종교적인지 겨루어 보자! 이 대목에서 그는 아인슈타인의 종교 정의를 빌려옵니다.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의 이면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또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종교적이다." 저는 종교학을 하면서 종교에 관한 많은 정의들을 보았습니다만, 아인슈타인의 이런 종교 정의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오해하지는 말아야 할 겁니다. 아인슈타인의 종교 정의는 언뜻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와 관련된 종교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그가 특정 종교를 초월하지만 나름대로 일정한 종교적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도킨스가 잘 밝혔듯이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어떤 특정한 종교를 지닌 과학자는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는 엄연한 무신론자였고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범신론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렇기에 아인슈타인을 인용하는 도킨스는 단지 종교를 가진 사람만 종교적인 게 아니라 자연의 신비와 깊이를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넓은 의미에서 종교적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종교학의 거장인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년, 루마니아 태생의 미국 종교학자, 소설가. 성스러움에 관한 독특한 이론으로 20세기 후반은 물론 지금까지 세계 종교학계, 종교계, 문화계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 필자)가 생각나는군요. 종교에 대한 아인슈타인과 도킨스의 견해는 인간을 성스러움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존재로 보고, 따라서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 종교적 인간)'라고 본 엘리아데의 견해와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엘리아데는 성스러움을 초월적 실재의 현현으로 본 반면, 아인슈타인과 도킨스는 그런 실재 따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실상 종교에 대한 양측의 견해는 완전 딴판입니다. 저는 종교학도로서 오랫동안 엘리아데의 견해를 받아들여 왔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초월적 실재로서 성스러움을 승인하고 말고는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이를 학문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종교학은 엄밀한 학문이 아닌 일종의 종교적 교의로 탈바꿈하기 때문이죠.

물론 엘리아데의 논의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하며, 많은 국내외 학자들이 이 점에 주목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제 은사이신 정진홍 선생님은 엘리아데의 성스러움이 객관적 실재가 아닌 인간 의식 속의 경험적 실재일 뿐이며, 따라서 그가 성스러움의 초월적 실재성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보시기도 합니다. 글쎄요. 멋진 해석이기는 합니다. 분명 타당한 면도 있고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엘리아데에 대한 이런 해석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엘리아데가 학계나 대중에게 널리 수용되는 까닭은 전혀 다른 데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엘리아데의 인기의 비결은 그가 초월적 실재로서 성스러움 개념을 토대로 개별 종교를 초월하는 모종의 보편적 종교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엘리아데가 학자라기보다는 작가이고, 종교학자라기보다는 새로운 종교적 비전에 헌신하는 사제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아온 핵심 이유입니다. 또 그의 이러한 종교적 비전이 그의 정치적 성향, 즉 청년기의 우파 민족주의와 평생 동안의 반공주의, 반셈족주의, 오리엔탈리즘과 관련된다는 비판도 줄곧 제기되어 왔습니다. 어쨌거나 이러한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엘리아데 자신의 사상이나 그에 대한 해석들을 떠나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엘리아데의 인기는 그 자체로 일군의 추종자를 거느린 독특한 현상이, 사실상 거의 종교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엘리아데와 아인슈타인 중에서 굳이 고르라고 한다면, 비록 제가 종교학도이기는 하지만, 엘리아데보다는 아인슈타인의 종교 정의를 택할 것 같습니다. 종교성의 의미에 대한 그의 언급은 명료하면서도 매력적이죠. 물론 어디까지나 그를 종교인으로 오해하지 않는 한에서 말입니다.

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해답을 추구하는 사람은 누구든 종교적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를 전면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엘리아데가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인간은 호모 렐리기오소수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왜 굳이 여기에 '종교적'이라는 표현을 붙여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서 때로는 종교에서 얻는 감동보다도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음악에서 얻을 때가 많습니다. 솔직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던 때에 흘렸던 회개의 눈물보다는 음악을 들으며 흘렸던 감동의 눈물이 조금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한때 저는 이렇듯 서로 비슷하면서도 통하는 종교적 감동과 음악적 감동의 근원적 상관성을 밝히기 위해 이들의 관계를 성스러움과 관련된 언어로 풀어내 보고픈 바람도 있었습니다.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 음악적 인간)란 결국 호모 렐리기오수스와 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죠.

하지만 그런 시도를 제대로 해 보기도 전에 그만 제 생각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음악의 힘과 감동을 설명하는 데 굳이 성스러움이니, 종교적이니 하는 언어가 필요할까? 그저 우리 몸과 숨결의 리듬, 소리의 힘, 침묵의 깊이 같은 것들로 설명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인간이란 실로 호모 무지쿠스죠. 또 호모 파베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호모 무지쿠스나 호모 파베르가 호모 렐리기오수스와 등가인 것은 아닙니다. 전자는 의미와 가치를 배제한 중립적 술어인 반면, 후자는 릴리지온에 대한 특정한 의미와 가치평가를 담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이죠.

갑자기 웬 종교와 음악 이야기인가 좀 의아스럽겠지만, 실은 제가 과학과 종교에 대해 하고픈 이야기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누구든 그레고리안 성가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 감동할 수 있는 것은, 그 음악들이 종교적 성격을 지니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의 내면에 일정한 종교적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음악 자체가 본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힘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과 종교는 제각기 나름의 영역이 있고, 또 서로 중첩되는 영역도 있습니다.

주제를 옮겨 과학과 종교로 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분명 진리를 둘러싼 각기 나름의 영역이 있지만, 서로 중첩되는 많은 부분이 있기도 하죠. 그렇기에 저는 스티븐 제이 굴드 식으로 깔끔하게 두 영역을 분리해 버리는 입장에도, 그렇다고 과학과 종교의 대화나 융합을 꿈꾸는 대부분의 이 분야 학자들의 입장에도 전적으로 동조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굴드의 입장은 지나치게 편리하지만, 과학과 종교의 중첩지대를 설명하지 못하죠. 또 대화나 융합을 말하는 이들은 과학과 종교가 끝내 다른 부분이 더 많다는 점을 애써 무시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과학적 진보가 곧 종교의 위축 내지 소멸을 가져오리라는 도킨스 식의 다소 과장된 기대도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오늘날 종교의 영향력이 오히려 더욱 증대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도킨스의 기대는 그저 무신론자의 몽상의 불과할지도 모르죠.

이러한 입장들과 구분되는 어떤 또 다른 입장이 가능할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찾는 길이 분명 이들과는 다른 길이라는 점밖에는 아직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음악과 종교를, 또 과학과 종교를, 서로 별개이면서도 중첩되는 미묘한 뉘앙스로 가득한 이들의 관계 영역을 명확한 인식의 언어로 서술해 낼 수 있겠지요.


부모가 자녀에게 종교를 전해 주는 건 폭력이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샜습니다. 다시 <만들어진 신>으로 돌아와서 또 다른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이들에게 부모의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는 도킨스의 권고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깊이 새겨들을 만한 점은 있지만,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엄마 아빠는 교회 다녀올 테니까. 너는 집에서 게임하거나 텔레비전 보고 있으렴.' 하고 말할 부모가 과연 있을까요? 또 그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제가 보기에 도킨스의 생각은 분명 의미심장하기는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로 너무 나아갔다고 보입니다. 자신이 무언가를 옳다고 믿는데, 그 옳은 것을 자녀에게 전해 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있을까요? 그것이 특정한 이념이든 또는 특정한 종교든 마찬가지입니다. 올바른 부모라면 자녀에게 자신의 신념을 전해 주고픈 바람을 갖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죠.

정작 도킨스 자신도 그의 딸에게 전통이나 권위, 그리고 그 핵심 기제인 종교에 의존하지 않는 삶의 가치를 전달하려 애쓰지 않던가요? 그의 <악마의 사도(A Devil's Chaplain)>(2003년)에 실린,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어 보면 이 점이 잘 드러납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딸이 부활절에 교회에서 달걀을 받아오거나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구워놓고 감사 기도를 올리거나 친구들과 마녀 분장을 하고 핼러윈 파티를 즐기거나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가르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점에서 도킨스 역시 자신의 신념을 자녀에게 전해 주고 싶어 하는 다른 부모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다른 부모들이 전해 주려는 것이 '종교'라는 게 불만인 거죠. 그가 보기에 '종교'는 명백히 잘못된 나쁜 신념 체계이니까요.

도킨스의 의도는 자명합니다. 그가 꿈꾸는 세상, 모든 이들이 종교의 망상으로부터 해방된 세상을 이루려면 아이들이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에 의해 특정 종교의 틀 안에서 양육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도킨스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작 아이들이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아이들은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이며, 언젠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잠재력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오히려 도킨스야말로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부모의 종교를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자라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나름대로 선택할 기회를 가질 권리겠지요. 설령 어려서 부모에게 특정한 종교를 물려받았더라도, 성장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자유를 실현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실제로 어려서 똑같은 종교적 환경에서 자랐어도 어떤 이는 독실한 신자가 되는 반면 어떤 이는 종교에 적대적이 되거나 철저한 무신론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비록 어린 시절의 종교적 환경이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기는 해도, 그 영향이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걸 말해줍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자녀에게 자신의 신념을 전해 주려는 부모들의 바람 자체에 대해 도킨스처럼 이를 자녀에 대한 권력 남용이나 폭력으로 매도하는 건 지나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자녀를 향한 부모의 순수한 사랑마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이 점에서 저는 자기가 딸에게 물려주려는 합리적 신념만 옳고 다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물려주려는 종교적 신념은 다 틀렸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도킨스가 너무 오만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더욱이 실제로 수많은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종교적이든 세속적이든, 그 어떤 종류든) 신념을 물려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라는 점은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자명한 현실지요. 따라서 이를 간과한 도킨스의 주장은 다분히 현실성이 없습니다. 물론 이렇듯 과격한 주장을 하는 도킨스의 심정적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아이들이 단일한 사고에 갇히지 않고 충분한 다양성을 접하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열린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겠지요.

 

종교와 과학 논의 엿듣기: 지적 유희와 타산지석


신 선생님의 편지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많이 배웠고요.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기나긴 논의의 역사를 정말 잘 정리해 주셨더군요. 특히 과학과 종교를 갈등 관계로 보는 견해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과장된 이미지일 뿐이라는 점에 대해 설명하시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또 과학과 종교의 지식이 구성적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생태 문제 같은 새로운 이슈가 불거지면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설명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 선생님 편지를 읽다 보니, 과학과 종교 논의란 결국 특정 종교의 문제이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신 선생님이 소개한 기관, 인물, 저술은 사실상 이 분야를 대표하고 또 사실상 거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 이안 바버가 <과학 시대의 종교(Religion in An Age of Science)>(1989년)에서 과학과 종교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에 종교의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듯이, 지금의 과학과 종교 논의는 주로 기독교와 관련해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야 종교학을 하는 입장에서 다른 종교들에서 이루어져 온 과학과 종교 논의에도 관심이 많지만, 그런 논의는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우주 물리학과 진화 생물학 같은 현대 과학을 화엄경 같은 불교 경전과 결부시키려는 불자 과학자나 불교학자, 또는 자신들의 교리가 얼마나 과학적인지를 증명하려 하는 신종교 신자를 간혹 본 적은 있습니다만, 사실 이런 시도들은 어딘지 어색하게만 느껴집니다. 종교와 과학을 어느 한쪽의 틀에 또는 서로의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다는 점에서 창조 과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방향이 정반대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이런 시도들에서 감지되는 것은 일종의 이데올로기화된 과학이 아닐까 합니다. 과학이야말로 현대의 절대 기준이자 가치이고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거기에 맞추어야 종교가 살아남으리라는 강박적 사고 말입니다. 이런 시도에는 사실상 과학을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수정되며 발전해 가는 과정으로 보기보다는 이미 확립된 불변의 교의처럼 여기는 경직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관해 논의하면서 이런 식의 견해들까지 다 다룰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주로 서양에서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져 온 논의만 남게 되겠지요. 종교학자로서 이는 좀 아쉬운 점이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감안해야 하는 한계 같습니다. 다만 비록 기독교 위주의 논의라 하더라도, 좀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용어로 풀어서 다시 생각하려는 노력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드렸던 책 기억하시죠. 제가 번역한 미국 가톨릭 신학자 존 호트의 <다윈 안의 신(Deeper than Darwin)>(2003년)이라는 책이요. 당시에 저는 우주와 생명의 진화에 대한 현대 과학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신학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호트의 논의에 매력을 느꼈고, 그래서 번역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번역한 것은 신앙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호트의 논의가 매우 설득력 있고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책에 흥미를 느꼈던 건 호트의 논의에 전적으로 동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펼치는 논의의 치밀함에 탄복하고, 그가 과학과 종교의 텍스트 외에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인용하며 펼쳐내는 이야기, 우주와 생명, 신과 인간, 과거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가 지닌 우아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유일신을 전제하고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풀어내려 애쓰는 기독교인들의 다양한 논의를 곁에서 엿듣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운 지적 작업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다른 어떤 종교와 관련해 이루어지는 종교와 과학 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마도 우리는 이러한 논의들을 타산지석 삼아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이해하는 각자의 시각을 조금씩 다듬어갈 수도 있겠지요.

나름대로 몇 자 써 보았습니다만, 제 글이 두 분의 편지에 대한 답변이 되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이나 대화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까닭은 결국 우리 삶에는 서로 구분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 복잡하고 모호한 중첩 지대가 무수히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과 종교는 그러한 중첩 지대의 어디쯤엔가 놓여 있겠지요. 과학과 종교에는 진리의 문제를 둘러싼 나름의 독립된 영역이 있고, 또 서로 중첩되는 많은 영역이 있습니다.

종교로부터의 해방과 종교의 궁극적인 소멸을 꿈꾸는 무신론자든, 과학과 종교의 대화나 융합을 꿈꾸는 종교인 과학자와 신학자와 평신도든, 또 과학과 종교를 아우르며 넘어서는 언어를 통해, 우주와 그 너머를 상상하는 인간에 대해 새롭게 서술해 내기를 꿈꾸는 종교학자든, 결국 모두가 과학과 종교가 서로 나뉘면서도 겹치는 그 모호성의 지대를 탐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새벽이네요. 오늘 규슈 남부로 이동하는데 신칸센 안에서 정신없이 졸게 생겼습니다. 조금이라도 자 두어야 할 것 같네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7년 1월 15일

나가사키에서

김윤성 드림.

"반성 없는 과학, 중세 기독교와 다를 게 뭔가요?

"과학과 종교의 대화 <4> '자연주의적 인간'과 '종교적 인간'



세 번의 편지 서신 교환에 이어 신재식 교수가 다시 종교 방어에 나섰다. 신 교수는 "과학이 자신의 한계를 성찰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과학의 이름으로 재단하려는 시도는 마치 중세 유럽의 기독교의 모습과 겹친다"고 지적했다. 특히 신 교수는 종교 비판의 상징이 된 리처드 도킨스의 접근 방법 자체가 19세기 사회진화론자의 방법('종교의 기원을 알면 그 본질을 알 수 있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지적했다. 신 교수는 과연 그런 접근 방법이 종교를 둘러싼 오늘날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 의심한다.

신재식 교수는 2006년 12월 26일부터 2007년 2월 8일까지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배낭여행했다. 볼리비아의 산타쿠르즈에서 시작한 여행은 코차밤바, 라파스를 거쳐, 칠레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산티아고, 푼타 아레나스, 토레스 델 파이네, 아르헨티나의 칼라파테, 부에노스아이레스, 이과수 폭포로 이어졌다. 그는 사막부터 빙하까지 이어지는 여행 중에 시장과 성당에 머무르면서, 남아메리카의 사람, 자연, 종교를 둘러보았다. 이 편지의 초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


김윤성 선생님과 장대익 선생님께


문명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도시가 '신선한 공기(Buenos Aires)'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저에게 이 도시는 문명 그 자체입니다. 파타고니아의 빙하와 이과수 폭포를 둘러본 뒤라서 이 느낌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선생님들께 편지를 띄운 후 강행군을 했습니다. 볼리비아에서는 라파스와 우유니 소금 사막을, 칠레에서는 산티아고와 파타고니아 지역의 토레스 델 파이네를, 아르헨티나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모레노 빙하와 이과수 폭포를 둘러보았습니다. 도시에서는 시장과 성당을, 자연에서는 산과 빙하를 거닐었습니다. 이렇게 도시와 자연을 교대로 거쳤지만, 이번 여행의 백미는 소금 사막이나 빙하 같은 자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을 찾는데도 문명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오지의 자연을 방문할 때마다 문명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버스, 지프, 배와 같은 문명의 산물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은 거의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들 덕분에 적도에서 남미의 남단까지 몇 천 ㎞의 거리를, 4000m의 고지대에서 해수면까지를, 사막에서 빙하까지를, 단 며칠 만에 또는 단 몇 시간 만에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10시간, 20시간이 보통인 중간 중간의 버스 여행은 한국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남으로 향하는 버스 여행을 통해, 위도에 따라 변해 가는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습니다.

자연은 저에게 특별한 경험을 주었습니다. 라파스나 산티아고, 부에노스아이레스도 인상적이었지만, 사막과 빙하와 폭포에서 받은 감동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유니 소금 사막, 굉장히 독특한 지형입니다. 해발 3653m에 높이에 있는 전라남도만 한 넓이의 땅덩이가 온통 소금으로 가득합니다. 동서남북 사방이 온통 하얗습니다. 고개를 들면 툭 트인 하늘, 정말 금방이라도 물방울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하늘이 보입니다. 쨍하면서 갈라질 것 같은 하늘은 혼을 빨아들이는 듯합니다. 우기가 되어 비가 오면 소금 사막이 소금 호수가 되어, 하늘과 물과 소금이 어우러진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푸른 하늘과, 하얗게 뒤덮인 소금 사막을 보면 마음은 '경이'로 가득 합니다. '장엄'한 자연 앞에 '외경심'마저 갖게 됩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소금 사막이 있을까? 오래전에 바다였던 이 지역이 융기로 인해 안데스 산맥이 되고, 빙하기를 거치면서 거대한 호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건조한 기후 덕에 물이 모두 증발하고 소금만 남은 까닭에 소금 사막이 된 거지요. 소금의 양이 최소 100억 톤(t)이나 되고, 소금 층의 두께는 1m에서 최대 120m까지 다양하답니다. 과학자들 덕분에 소금 사막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저를 경탄케 하고 외경심마저 갖게 했던 자연의 비밀을 들려주었습니다. 소금 사막뿐만 아니라, 파타고니아의 빙하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둘러본 곳은, 남부 파타고니아 빙원(氷原) 지역의 일부입니다. 이 빙원은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큰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356개의 빙하들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빙원의 넓이는 1만4000㎢ 규모로, 숫자로만 따지면 남극 대륙과 그린란드보다 더 큽니다. 제가 본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20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너비가 5㎞이고 높이가 60m나 되는 정말 거대한 얼음덩어리입니다.

과학은 그저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모레노 빙하의 과거와 현재를 드러내 줍니다. 더 나아가 과학의 도움으로 이 빙하의 미래까지 볼 수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서 파타고니아의 빙하가 녹는 속도와 양까지도 과학자들이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없다면 제가 만난 자연의 중요한 사실들을 놓쳤을 겁니다. 과학이 제 시야를 무척 넓혀 주었습니다.


자연의 경험과 종교적 경험 사이에서


그런데 과학이 알려준 사실로 인해, 그때까지 장엄했던 자연이 갑자기 시시해진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자연의 역사가 과학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났지만, 제가 가진 감동이나 경이감이 결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자연은 가슴 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자극하면서 저에게서 경탄과 감탄을 이끌어 냅니다. 소금 사막을 거닐 때, 빙하가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 쏟아지는 폭포물이 내는 굉음을 들을 때, 제 온몸을 지배하는 것은 '경이감'이고 '경외감' 입니다.

이런 감정과 더불어 자연에서 얻는 또 다른 느낌이 바로 '평안함'과 '친밀감'이었습니다. 꼭 무어라 단언할 수 없지만, '참 좋다.', '참 편하다.'라는 느낌은 분명합니다. 물론 모든 자연이 친밀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4000m 높이의 소금 사막이나 영하의 빙하에서는 육체적으로는 조금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숲이나 산과 호수를 접할 때마다, 아늑하다는 느낌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문명이 우리의 일차적인 환경이 된 지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가 여전히 자연에서 평안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자연에서 느끼는 평안함은 우리가 자연에서 나온 자연의 일부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소금 사막과 빙하를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장엄한 자연을 접하면서 받은 느낌과 종교적 경험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 경험이 종교적 감동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러자 질문과 생각들이 꼬리를 이었습니다.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감'이나 '편안함'은 종교적 경험에서 얻게 되는 '경외감'이나 '평안함'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자연의 경험과 종교적 경험은 수월하게 이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경이'에서 '경외'로, '편안함'에서 '평안함'으로……. 어쩌면 '우리 인간이 가졌던 최초의 종교적 경험도 이런 데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렇게 자연에서 느끼는 감흥을 종교적으로 표현하거나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장엄한 자연에 대한 경험을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또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찬송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 자연에서 느끼는 외경심은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다소 신학적 담론으로 이어지기도 하구요. 더 나아가서 '창조 세계의 보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는 다소 실천적인 논의로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자연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의 연관관계는, 두 경험의 경계선이 참 궁금합니다. 말미에서 다시 말씀드리면서 두 분 선생님의 의견을 구하도록 하지요.


'대자연'과 '피조 세계' 사이에서


이번 여행 내내 머릿속을 맴돈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호모 나투라우스(Homo Naturaus)'가 바로 그것입니다. '자연주의자로서 인간' 또는 '본래적으로 자연적인 인간'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지요. 자연에 대해 가지게 되는 경외감과 평안함, 친밀감은 우리가 본래적으로 '호모 나투라우스'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흔적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나,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나 '호모 무지쿠스(Homo musicus)'이지만, 어쩌면 그 이전에 이미 '호모 나투라우스'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우리 인류는 본성적으로 '생물 호성(biophilia)' 즉, '자연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에드워드 윌슨의 말이 생각납니다.

이동 중에 윌슨의 <생명의 편지(The Creation)>을 손에 잡았습니다. 원래 이 책은 남미로 오는 길에 미국을 거치면서 '아마존'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등과 함께 구입한 책입니다. 도킨스 책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귀국할 때 가져가려고 뉴저지 친지 집에 두고 왔는데, 두 분 모두 이 책을 언급한 터라 친지로부터 급히 받았습니다. 이 또한 문명의 이기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생명의 편지>는 윌슨의 책치고는 비교적 작고 얇은 책입니다. 그런데 책의 논의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 책은 "지구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호소(An Appeal to Save Life on Earth)"라는 부제를 달고 있네요. 이번 여행에 딱 어울리는 책입니다. 자연이 주는 감동으로 가득한 저에게, 이 책이 생태계 보존을 위해 종교와 과학이 협력하자고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윌슨은 현재 지구에서 생명의 다양성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고, 그 주범이 인류라는 사실을 지적하지요. 그는 생태계 보존을 위해서 우리에게 본래 가지고 있는 생명 사랑의 정신을 회복하고, 'the creation'에 대한 '청지기 정신(stewardship)'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생태계의 위기 현황과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 저는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빙하나 아마존의 열대 우림이 우리 때문에 얼마나 빨리 훼손되고 있는가를, 방문지의 관리 사무소나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관련해서 제가 느낀 것을 말씀드리죠.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편지>가 남침례교 목사를 수신인으로 하는 편지 형식인 것도 한 가지 이유입니다. 교파는 다르지만 장로교 목사인 저도 윌슨이 염두에 둔 수신인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고요. 책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에서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생태계의 상황을 비교적 간결하게 설명하고, 후반부에서는 생물학을 중심으로 한 당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실 윌슨의 이전 책들을 생각해 볼 때, 이 책은 주제는 다소 의외였습니다. 이 책이 생태계 문제 해결을 위해 과학과 종교가 '협력'하자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자들이 쓴 종교에 관련된 최근 저작들은 거의 대부분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종교의 기원과 기능을 해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윌슨이 쓴 이전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나 <통섭>과 같은 이전의 책들도 종교에 대해서는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고요. 게다가 도킨스를 비롯한 일부 진화론자들은 종종 종교에 호전적인 또는 적대적인 태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선생님들도 언급하신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진화과학자 사회의 반종교적(반유신론적)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책이었지요.

아무튼 <생명의 편지>에서 윌슨은 자신의 호소에 종교인들이 귀를 기울이도록 상당히 기술적인 수사법을 구사합니다. 그가 내세운 'The Creation'은 다양한 함의를 갖고 있는 말입니다. 이 용어는 생물학자에게 '대자연'이나 '생명계 전체'를, 그리스도인에게는 신이 창조한 '피조 세계'를 의미하겠지요. 생물학자와 그리스도인이 동일한 어휘를 각각 자기 맥락에서 쓰고 읽으면서 의미를 재구성하지만, 여전히 하나의 대상 'the Creation'에 묶여 있습니다. 진화의 산물인 대자연이건 신의 창조물이건 결국 동일한 대상이니, 이를 돌보고 구원하는 데 서로 이견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에서, 이 단어를 책의 제목으로 채용한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층적인 의미를 가진 'the Creation'은 윌슨의 논의에서 종교와 과학이 각자 세계관의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활동하는 공동의 장(場)이자 함께 보호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장 선생님이 첫 편지에서 언급했다시피, 윌슨이 종교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했다는 자체가 놀랍습니다. 윌슨은 종교인들이 머물러 있는 마당으로 살며시 건너와 미소를 지으면서 자연스레 인사를 건넵니다. 이어서 주변의 종교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지만 완곡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합니다. 신이 창조한 세계를 돌보자는 데, 윌슨의 호소에 반대할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될까요? 굉장한 설득력입니다. 이 책만 보자면 윌슨은 더 이상 '완고한 훈장 선생님'이 아니라 '실용주의적 외교관'입니다.


사실과 당위 사이에서


그런데 책의 말미까지 읽다 보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뭔가 중간에서 제대로 걸린 느낌입니다. 그가 제시한 생태계의 위기 현황과 진단한 원인에 대해서는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뭐가 걸렸을까요? 윌슨의 후반부 논지에 의문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가 제시한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 제가 선뜻 동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윌슨은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 '과학'이라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과학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청지기 정신'의 의미를 바로 깨닫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 청지기 정신의 핵심에 과학적 실천'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좀 까칠하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협력을 호소하겠다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윌슨은 '과학적 일방주의'를 주입 또는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본 윌슨의 '과학적 일방주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지구 생태계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인간이 야기한 종의 멸종은 환경 재앙을 가져오고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게 된다. 이 문제를 급히 해결해야 한다. 문제 해결은 첫 단계는 '청지기 정신'의 의미를 진정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본래의 자아상을 제대로 이해할 때에만 가능하다. 인간의 본래 자아상은 생물학을 통해서만 올바로 형성할 수 있다.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부터 생명을 사랑하는 자연주의자이므로, 생물학 교육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자연주의자 정신을 키울 수 있다. 원래 자연주의자로서 인간의 자아상을 회복한다면, 생태계를 돌보는 청지기 정신의 의미 역시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고, 행동에 나서게 된다. 전문가들과 시민들은 이런 생물학적 접근에 협력해야 한다. 자, 종교인 여러분도 여기에 함께 동참하길 바란다.

이렇게 해 놓으면 책의 논지를 너무 틀어서 이해한다고 할지 모르겠네요. 물론, <생명의 편지>는 두 가지 의도, 즉 생태계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 연대하자는 '호소'와, 이를 위해서 과학, 특히 생물학을 배우고 생물학적 해결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설득'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생명의 편지>의 주목적이, 윌슨이 책을 시작할 때 말한 것처럼, 문제 해결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문'과 '도움'을 '호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을 '설득'하는 데 있다고 보입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우리가 논의하는 종교와 과학의 문제에 관련해서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를 남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종교와 과학의 대화와 협력을 호소하는 윌슨의 글에서조차, 여전히 일종의 '생물학(과학) 중심주의'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과학자의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는 '자원'이나 '방안'이 오직 생물학적인 것이거나 과학적인 것이라는 주장 역시 '생물학(과학)적 일방주의'를 선언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윌슨에 대한 제 의구심을 좀 더 풀어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윌슨은 현재 생태계의 상황에 대해 과학적 또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해결 방식도 마찬가지로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입니다. 문제의 현상과 원인 진단, 해결 방안 모두 생물학적・과학적 접근입니다. 비록 윌슨이 자상하고 쉽게 설명하지만, 그 행간에는 생물학과 과학에 대한 윌슨의 강한 확신과 완강한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윌슨은 역시 천상 생물학자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윌슨은 검증 가능한 지식인 과학은 인류의 '유일한' 진보이며, 과학은 모든 인간 행위 중 가장 '민주적'이며, 과학'만'이 인류를 돌본다고 말합니다. 또한 생물학은 인류의 자아상을 재구성하는 역사적 흐름을 이끌고 있는 최고의 과학이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잇는 논리적 다리라고 단언합니다. 여기까지 오면 어느 순간 '생물학 중심주의'가 제 앞에 버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 <생명의 편지>에서 생물학은 기술(記述) 과학이면서 동시에 규범(規範) 과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생명이 처한 위기 상황을 적절하게 서술하는 사실 기술과, 생태계 문제는 생물학적으로 풀어야 하며 종교는 마땅히 이에 협력해야 한다는 당위 주장이, 윌슨의 논지 속에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윌슨의 또 다른 '통섭'을 봅니다. '생물학'을 핵심 고리로 한 '지식의 통섭'에서, 이제는 '실천의 통섭'으로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생물학은 단순한 설명이나 기술을 넘어서서, 종교인을 비롯한 모든 인간이 실천을 할 때 따라야 할 규범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볼 때 윌슨은 '사실'에서 '당위'로 슬그머니 넘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그에게 사실과 당위는 구별되지 않는 하나일거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생태계의 보존이라는 목표를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생물학 중심주의적 '실천의 통섭'에 종교인들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앞장서서 나가는 과학자의 발자국을 종교인이 그대로 밟아 따라오라는 말로 들립니다. 여기에서 과학자와 종교인이 함께 손잡고 나가는 동행은 없습니다. 그저 일방주의만 있을 따름이지요.


일방주의와 다원주의 사이에서


저는 생태계 문제를 위해 과학과 종교의 협력을 호소하는 윌슨의 뜻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더욱 확장시켜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이를 위해서 과학과 종교가 더 자주 만나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폭과 깊이를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서로의 관심사와 영역의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인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과학과 종교의 만남은 대화와 협력보다 독백이나 일방적인 설득에 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여기에서 장 선생님이 지난 편지에서 질문했던 것을 잠깐 언급하려고 합니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길항적 관계인가? 간단히 말하면, 본래부터 항상 길항적 관계는 아닙니다. 종교적 중심주의자나 과학적 중심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이 서로를 견제하고 시소와 같은 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와 과학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일방주의로 나갈 때 서로에 대해 길항적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길항적 관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에 관해서는 앞서 서신에서 말씀드렸기 때문에 이 정도로 그치지요.

다시 생태계 문제로 돌아가서 윌슨을 중심으로 한 종교와 과학의 관계 이야기를 마무리하죠.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대안이 유일하다는 실천의 통섭을 주장한다면, 이것은 과학 중심주의를 넘어서서, 과학 일방주의라고 판단합니다. 생물학적 실천이 종교적 실천을 규범적으로 통제하는 상황이 온다면, 과학과 종교가 길항적 관계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고요.

저는 생태 문제 해결에 그리스도교 전통에 근거한 신학적 실천과 과학적 실천이 함께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생태계 문제 해결을 위해서 종교적 실천이나 과학적 실천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실천 등을 포함한 여타의 실천을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생태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강력한 실천은 종교적 실천보다는 현대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는 사회, 경제적 실천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생태학적 실천이라는 풀(pool)이 다양할수록 좋다고 주장하는 기능적 다원주의가, 종교 일방주의나 과학 일방주의보다 생태 문제 해결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봅니다. 이건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보아서도 크게 벗어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일방주의보다는 상호주의가 생명계에 훨씬 더 긍정적인 가치라는 것을 윌슨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저는 오히려 윌슨의 <생명의 편지>를 읽으면서, 과학의 한계와 역할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과학자들은 도대체 과학을 무엇이라고 말하는지요? 과학에서 기술적인 측면과 규범적인 측면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 과학 작업의 특징은 어떻게 규정하는지? 주로 과학의 본질 자체에 관한 물음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소 복잡하고 전문적인 논의들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다음 세 번째 서신 교환의 주제로 삼았으면 합니다.


종속과 독립 사이에서


김윤성 선생님이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참여하는 절대 다수가 서구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이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예, 맞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교 쏠림 현상이 무지 심하지요. 실제로 불교나 이슬람교는 이 문제를 그리스도교처럼 심각하게 관심 갖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의 미미한 참여를 고려하면, 종교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와 과학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그리스도교만 이렇게 종교와 과학의 문제에 적극적일까요? 제 첫 번째 편지에서는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말씀 드렸는데, 여기서는 그리스도교 담론의 인식론적 차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종교와 과학의 문제에서 그리스도교의 쏠림 현상은 역사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랫동안 서구에서 그리스도교와 과학은 비대칭적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그리스도교 종교 담론과 과학 담론의 관계도 비대칭적이고 때로는 일방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서 그리스도교 담론은 독립 변수로, 과학 담론은 종속 변수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근대 이후 과학이 자율성을 획득하고 독립 변수가 되면서 이 관계가 요동을 치며 새롭게 정립됩니다. 그리스도교와 과학의 관계가 근대 이전의 독립-종속 관계에서, 근대의 독립-독립 관계로, 이제는 역으로 종속-독립의 관계로 이행하게 되지요. 이런 상황 변화에서 그리스도교는 과학과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하는 과제를 안게 되고, 이 결과는 현재의 종교와 과학의 관계 지형도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와 달리, 불교나 이슬람교가 영향을 미치던 지역은 담론의 역학 관계에 있어 서구와 같은 역사적 경험이 없습니다. 이들 사회에서 종교 담론은 과학 담론과의 역학 관계가 변화하거나 위상의 역전이라는 상황을 아직까지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불교권에서 과학이 기존의 종교 담론과 경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불교도들은 일반적으로 불교가 과학의 내용을 본래부터 포용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교와 같은 유일신 종교인 이슬람교에서도 과학은 (정치까지 포함한) 총체적 이슬람 종교 담론과 경쟁하거나 위협하는 위상에 이르지 못합니다. 비록 중세 이슬람에서 과학이 서유럽보다 훨씬 발전하고 많은 역할을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슬람교 담론과 과학 담론의 역학 관계는 독립-종속 단계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슬람과 과학이 독립-독립 관계가 될 때는, 또 다른 상황이 발생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서 그리스도교가 중심이 된 것은, 심하게 말해 유난을 떠는 것은, 두 담론 사이의 위상 변화를 직접 경험한 당사자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스도교와 과학 사이에 발생한 갈등이나 긴장은 이런 담론의 역학 관계가 변화하면서 생긴 결과들입니다. 예를 들어, 종교인과 과학자 사이에서 발생했던 갈등은 서구 사회에서 지식의 주도권 싸움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지식을 판단하는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가? 어떤 지식이 더 참된 지식인가? 이런 문제들은 과학이 주도권을 쥔 지금도, 과학의 본질과 한계에 관련해서 여전히 논쟁 중에 있습니다.


미토스와 로고스 사이에서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서 그리스도교로 쏠림 현상은 역사적 경험과 더불어 그리스도교 담론의 성격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로고스 중심주의는 서구 정신의 오랜 특징입니다. 이것은 사유 체계를 합리적으로 통일된 정합체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으로 표출되었지요. 서구의 종교였던 그리스도교도 로고스 중심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가장 궁극적인 진리라고 주장하고 절대화하는 종교 담론의 본질적 특성으로 인해 이 특징은 더 강화됩니다. 로고스 중심주의와 종교적 절대주의가 함께 발효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담론 체계의 인식론적 특성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담론 체계는 본래부터 합리적이고 통일적이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늘 잠재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스스로의 담론을 신(theos)에 관한 합리적 학문(logos)인 신학(theologia)으로 규정합니다. 그리스도교는 당시 경쟁하던 다른 종교와의 차별성을 드러내고자, 그 출발부터 신화(mythos)를 부정하고 이성(logos)을 택하고 스스로를 합리적 정신에다 자리매김합니다. 신화에 근거한 이방 종교와 이성에 근거한 그리스도교, 이런 도식이죠.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고 교회가 로마 제국의 사제가 되면서, 그리스도교의 체계화와 통일화는 급속도로 진행됩니다. 이런 궤적의 정점에 스콜라주의가 자리하고 있고요.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완성되는 중세 스콜라주의는 신학적 담론을 '자연의 영역'과 '은총(계시)의 영역' 모두를 포괄하는 장대한 체계로 구상합니다. 요새 유행하는 '통섭'이라는 말을 쓴다면, 아마 '중세적 통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윌슨식의 생물학적 통섭이 아니라, 신학적 통섭이지만.

이렇게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 지식 체계는 종교적 진리(종교적 사유)에 기반을 둔 통일 체계에 포괄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종교와 과학은 신의 진리와 영광을 드러내는 데 상보적 관계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여기에서 과학은 종교에 대등한 위상이 아닌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부차적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고요. 이 비대칭적 위상 체계에 균열이 생긴 것은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를 거치면서였습니다.

과학 혁명 이후 현대까지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서 그리스도교는 항상, 상보적 관계에서 길항적 관계로 위상이 변해 버린 과학을 다시 통일적 또는 적어도 상보적 위상으로 편입하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종교와 과학을 다시 한 묶음으로 통합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가 제기하는 주류 과학의 과학 정의나 정당성의 문제 역시 이런 흐름에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독립 변수가 되고자 하는 근본주의 그리스도교의 줄기찬 시도로 말입니다.

서구 그리스도교는 오랫동안 로고스 중심주의 영향에서 통일된 완전한 진리 체계를 추구했습니다. 이렇게 인식론적 차원에서 종교 담론과 과학 담론의 균열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궤적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통일과 체계에 익숙해져서, 그래서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그리스도교의 관성이 여전히 현대에까지 지배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종교와 과학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과학이 자기 전통 안에서 발생했다는 역사적 맥락 외에도, 이렇게 관련된 모든 영역을 인식론적으로 통일하고 체계화하려는 정신이 그리스도교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담론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에서 도킨스와 같은 과학적 무신론, 과학적 중심주의 역시 그런 로고스 중심주의의 영향 아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도 과학으로의 천하통일을 꿈꾸고 때문입니다. 과학적 토대주의, 인식론적 획일성, 체계적 통일성을 지향하는 윌슨의 '통섭'이나 도킨스의 과학주의 역시, 그리스도교 신학만큼이나 로고스 중심주의의 우산 아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응과 부산물 사이에서


도킨스를 통해 진화론의 종교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도킨스는 우리 시대의 문화적 코드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김 선생님도 지적했듯이, <만들어진 신>은 잘 정리된 책입니다. 이전의 여러 책에서 단편적으로 언급했던 종교에 대해 작심하고 싸움판을 벌린 책입니다. 논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현상적이며 감성적인 측면에서도 (유신론적) 종교를 비판함으로써 독자의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유신론자들에게는 상당히 아픈 책이고, 종교의 현재 모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통쾌한 책일 겁니다.

제가 보기에, 도킨스는 19세기 데이비드 흄 이래, 아니 흄보다도 더 강력한 유일신 종교 비판자입니다. 그 영향력 면에서 흄을 능가할 겁니다. 그는 흄을 비롯한 과거의 종교 비판자나 무신론자와는 궤가 다릅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는 그가 흄이나 그 이전 종교 비판가들이 가지지 못했던 강력한 무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론을 대신해서 과학적으로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진화론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로 인해 그는 이전의 단순한 형이상학적 무신론자보다 훨씬 강력한 종교 비판의 논거를 확보하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전달할 수 있는 현대화된 의사소통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방송, 출판, 강연, 인터넷 등 발달된 의사소통 수단을 무기로 장착하고, 과거의 어느 종교 비판가보다도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유포합니다. 흄의 종교 비판이 서구 엘리트라는 독자층에 한정된 반면, 도킨스는 현대 대중문화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자신의 견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오늘날 도킨스 마니아라 할 수 있는 광범위한 독자층을 형성했습니다.

이제 도킨스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무신론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세계 무신론 연맹(Atheist Alliance International)'은 종교에 대해 비판적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리처드 도킨스 상(Richard Dawkins Award)'까지 제정했습니다. 가히 도킨스 신드롬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직 우리나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미 사회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역사상 강력한 종교 비판자의 반열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도킨스를 비롯해서, 최근 들어 진화론의 관점에서 종교를 설명하는 것이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에 관한 진화론적 설명이 처음은 아니지요. 19세기에도 진화론의 관점에서 종교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물론 그 성격이 최근의 논의와는 달랐지만요. 당시 진화론적 관점을 수용해 종교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진화 생물학 훈련을 받은 생물학자나 심리학자 혹은 인류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럼 과거에 진화론이 종교를 보는 눈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지요. 19세기 서구 사회는 서구 이외의 문화권(주로 식민지)에서 종교(를 비롯한 다른 문화)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수집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많은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수합된 자료를 일관성 있게 통일해서 파악하는 새로운 학문 방법으로 '진화론적 패러다임'이 등장합니다.

이 진화론적 패러다임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과 18세기의 역사 철학의 진보 개념의 결합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즉 역사 철학계의 '진보(progress)' 개념과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evolution)' 개념이 만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진 것이죠. 이 과정에서 사회 진화론을 주장한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회 진화론은 인류 문화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했습니다. 이것은 인류 문화의 여러 현상들이 "어디에서 기원하고, 어떻게 발전하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이런 사회 진화론의 시각이 종교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지요. 당시 시대 분위기상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는 모든 것에 적용해서 설명할 수 있는 '만능열쇠'였습니다. 그런데 종교에 대한 객관적인 학문 연구를 주장하던 '종교학'이 바로 이 시대, 진화론이 지배하던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종교에 대한 관심도 자연히 종교의 '기원'과 종교의 '진화'에 쏠렸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진화론적 관점이 종교를 연구의 주도권을 장악했습니다. 사실 이 시기 종교 연구자 가운데 진화론이라는 거대한 우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종교의 기원과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비슷한 종류의 종교 진화론이 유행하게 됩니다. 이런 종교 진화론은 종교 기원론과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이들의 구호가 바로 "기원을 알면 본질을 알 수 있다."입니다.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Tylor)나 제임스 프레이저(James Frazer) 등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타일러의 종교 진화론(종교는 애니미즘->다신교->유일신교의 단계를 거쳐 진화했다.)과 프레이저의 3단계 발전론(인간의 지식 체계는 주술->종교->과학의 단계를 거쳐 진화했다.)은 바로 이런 흐름의 산물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들이 후대 종교학자들에게서 쏟아졌죠. 이 문제는 김윤성 선생님이 더 잘 알고 계시고요. 당시 이들에게 가해진 비판 가운데 하나가 '과연 기원을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가?'였습니다. 저 역시 '특정 사물의 기원을 알면 그 사물의 본질과 지금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당시 이들의 지닌 '종교의 기원을 알면 종교의 본질을 알 수 있다.'는 전제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최근의 진화생물학의 종교에 관한 담론을 보면서, 이들의 논의가 여전히 이런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지 않은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진화론은 20세기에 들어와 유전학과 분자 생물학, 생태학 등의 연구 성과를 통합하고 발전시켜 '신다윈주의'나 '새로운 종합'이라는 이름을 얻었지요. 19세기와 달리 이제는 진화 생물학 분야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종교를 비롯해 인간 성격, 심리, 더 나아가 마음까지 새롭게 해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진화 생물학자들을 포함한 현대 과학자들은 종교를 '적응'을 위한 방편, 또는 적응을 하다 보니 얻게 된 '부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도킨스 역시, 자신의 밈 이론을 통해서 종교를 해명하지만, 종교가 기본적으로 '부산물'이라는 입장에 동의하고 있지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장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새로운 지식의 통섭을 꿈꾸는 현대 진화론자들이 종교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또 가능하다면 마음의 비밀을 새롭게 밝히고 있는 인지 과학자들이 종교의 기원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도. 이들의 입장과 학문적 배경도 함께 들을 수 있다면 '진화론적 종교 담론 지형도'를 그리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장 선생님께서 보스턴에서 데닛이나 윌슨을 만나셨을 텐데, 혹시 이런 주제에 대한 뒷얘기가 있다면 함께 풀어 주시고요.

일단 장 선생님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종교가 '적응'이나 '부산물'인가?"에 대해서, 또한 "기원에 대한 설명이 과연 종교에 대한 충분한 설명일까?"에 대한 우리의 논의를 더 진행하도록 하지요. 이러다 보면 과학이 무엇이고,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종교 경험과 다른 경험 사이에서


이제 편지의 처음에 언급한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면서 종교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본디 '자연주의자로서 인간'이 경험하는 자연의 경험과 종교적 경험의 관련성을 생각하다가 보니까, 그렇다면 '종교적 경험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앞 서신에서 김 선생님이 종교나 음악에서 얻는 감동을 이야기했지요.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음악이 주는 감동이 종교적 감동보다 덜하지 않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얻는 감동의 질이나 농도와 관계없이, 두 경험을 구별할 수 있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을 보고 느끼는 감동,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동, 종교적 경험을 통해 느끼는 감동을 구별할 수 있을 겁니다.

빙하와 호수가 어우러진 토레스 델 파이네를 트레킹을 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짧게는 1박 2일의 길을, 길게는 5박 6일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입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인데, 다들 진지한 표정들입니다. 마치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거룩한 산, 토레스 델 파이네를 걷는 사람들….

문득 김 선생님과 작년 여름에 함께 갔던 티베트가 생각나더군요. 티베트 사람들은 카일라스 산(수미산)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지요. 그냥 걸어도 사흘길인 이 산을 오체투지로 순례하는 것이, 라싸의 조캉 사원 순례와 더불어, 이들이 살아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합니다. 티베트 사람들은 카일라스를 한 번 순례하면 이번 생의 업(業, 카르마)이 없어지고, 10번을 돌면 500년 전생의 업이 사라지고, 100번을 돌면 해탈한다고 믿는다지요. 예루살렘이나 라싸, 메카나 바나라시를 향해서 걷는 순례의 발걸음과, 산이나 빙하를 걷는 발걸음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와 종교 아닌 것은 어떻게 구별할까? 자연에 대한 경험이나 종교적 경험 모두 '호모 나투라우스'로서 우리가 겪는 총제적 경험의 일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화론의 종교 담론과 별개로, 종교 연구자들이 말하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다른 경험과 구별되는 종교의 영역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과학과 구별할 수 있는 종교의 독특성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즉 '종교적인 것과 종교적이 아닌 것의 기준'에 대한 질문들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런 질문입니다. "종교적 경험은 인간의 다른 경험과 구별되는가?" "종교적 경험을 규정하는 어떤 기준은 있는가?" "자연적 경험과 구별되는 종교적 경험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가?" 종교학자로서 김 선생님의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여서 생물철학 전공자로서 장 선생님은 종교적 영역의 독자성이나 독특성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돌아갈 시간입니다. 한 여름의 남반구에서 다시 한 겨울의 북반구로 돌아갑니다. 남미의 뜨거운 햇살도 좋지만, 한국의 흰 눈이 그립습니다. 한쪽에 머물다 보면 또 다른 한쪽이 그리워지는 것이 사람 사는 본래 모습인가 봅니다. 저에게 종교와 과학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2007년 1월 31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신재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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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말살해야 할 정신의 '바이러스'?

"과학과 종교의 대화 <5> 과학은 종교를 어떻게 보는가?



지난 편지에서도 종교의 존재 이유를 심각하게 회의했던 장대익 교수가 이번에도 종교를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특히 장 교수는 종교를 일종의 정신 '바이러스'로 보는 리처드 도킨스 등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그동안 종교가 독점해온 '가치'와 '의미'를 지금 과학이 빼았아 오는 중"이라고 최근 종교와 과학 간 갈등의 의미를 짚는다. <편집자>


신재식 선생님과 김윤성 선생님께,


신 선생님 편지 잘 받았습니다. 우선 좋은 소식부터 전합니다. 지난 가을에 대니얼 데닛이 갑작스럽게 큰 수술을 받았다는 말씀 드렸지요. 그것 때문에 반 학기를 쉬어야 했던 그가 드디어 이번 새 학기에 건강한 모습으로 학교에 복귀했습니다. 언제 쓰러졌나 싶어요. 오히려 더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입니다. 심장에 무리가 가는 스쿼시는 더 이상 못 칠 테지만요.

며칠 전에 과 사무실에 들렀더니 비서가 저더러 그러더군요. "너 참 운이 좋다."라고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데닛이 수술 후에 성격이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까칠하지 않은 대가도 있나 싶었을 정도로 제겐 아주 친절한 할아버지였었는데, 비서 말로는 수술 후에는 더 살갑게 대한다나요. 하기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으니 주변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하여간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이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데닛은 이번 학기에 '문화 진화(cultural evolution)'에 관한 대학원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회복을 핑계로 한 학기를 쉬어도 뭐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굳이 맡아서 하네요.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저를 데리고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수업에 청강하러 갑니다. 덕분에 저도 바빠졌습니다.


"Thanks God"이 아니라 "Thank Goodness"


데닛이 9시간의 대 수술을 받고 깨어난 이후에 쓴 에세이가 있어요. 병상에 누워 있는 사진과 함께 엣지 사이트에 올려놓았는데, 혹시 읽어 보셨는지요. 데닛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의 친구, 동료, 팬들이 쾌유를 비는 연락들을 보내왔었나 봐요. 물론 저도 그중 하나였지만요. 그런데 그중에 그를 위해 신께 기도하겠다는 사람들이 좀 있었나 봅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으면 좀 너그러워질 만도 한데, 역시 데닛답게 그런 '눈치 없는' 친구들을 무안하게 만드는 에세이를 썼던 것이죠.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 글의 제목은 "Thanks God"을 패러디한 "Thank Goodness"였어요. 그 글에서 그는 자신이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은 누군가의 기도 덕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의학의 발전과 의료진의 선한 도움 덕분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신(神)'이 아닌 '선(善)한 것'들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무신론자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겠죠. 그거 아십니까? 무신론자를 위한 기도는 기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기도의 대상이 되는 무신론자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점 말입니다. 왜냐하면 무신론자들은 기도가 어떤 일을 일으킨다고 믿지 않거든요. 물론 무신론자도 기도를 하는 사람의 선의를 모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 행동 자체가 기도하는 사람의 심정과 신체에 변화를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나 '플라시보 효과' 같은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신이 정말로 기도의 내용을 듣고 그에 맞는 사건을 일으켜 그 기도에 응답하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 기도에 정말로 인과율을 바꿀 힘이 있는 것일까요? 두 분 선생님은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재식 선생님은 목사님이시니 적어도 정기적으로 기도를 하시겠지요? 기도에 정말 인과율을 바꿀 힘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면 종교에서 기도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종교 현상을 연구하시는 김윤성 선생님의 대답도 듣고 싶습니다.

기도에 정말로 힘이 있을까요?

선생님들의 대답을 듣기 전에 기도의 효력에 관해 제가 알고 있는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도킨스의 책에도 언급이 되어 있더군요). 심장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위한 중보 기도(기독교에서 중보 기도란, 다른 사람을 위해 신의 도움을 간구하는 기도를 뜻한다.)가 과연 효과가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해 보는 실험이었는데요, 피험자 집단을 셋으로 나눴습니다. 그중 두 집단에 대해서는 중보 기도를 하고, 한 집단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중보 기도의 대상이 된 집단에서도 한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자신들을 위한 중보 기도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다른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중보 기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때 중보 기도는 한 곳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미국 곳곳에 흩어져 사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중보 기도를 받은 집단들과 아닌 집단 사이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했을까요?

연구 결과는 싱거웠습니다. 아무런 차이가 없었지요. 오히려 좀 당황스러운 결과도 있었습니다. 중보 기도를 받는다는 사실을 안 집단이 몰랐던 집단에 비해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었거든요.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고 있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느낀 사람들 때문에 이런 '엉뚱한' 결과가 나온 것이었겠죠. 어쨌든 종교인들 입장에서는 허탈하게 끝난 연구가 되긴 했지만, 요즈음 이런 식의 연구들이 심심치 않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의 효용성과 순기능에 대한 '과학적' 연구 말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그 배후에는 미국의 템플턴 재단과 같은 후원 기관이 있습니다. 기도의 효능 문제 같은 것은 우리에게 대개 <추적 60분>이나 <PD수첩> 등의 소재로 끝나 버리기 쉬운데, 외국에서는 과학자들이 정식으로 연구를 하네요.

이왕 기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마디 더 하고 싶어집니다. 인지 심리학에서 밝혀낸 인간의 추론 실수들 중에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사례들보다 그것을 확증하는 사례들을 더 재빠르게 취합한다는 이론입니다. 한마디로 증거를 모으는 데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반대 사례가 나오면 무시하고 확증 사례가 나오면 얼른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제 관찰에 따르면 기도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이 확증 편향이 더 심합니다.

소위 '기도의 응답'이란 것을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발 물러나 천천히 듣고 있으면, 정말 그게 응답인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신의 응답과 연결하려는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찾아봐도 기도의 효력을 입증할 만한 사례가 나오지 않으면, 히든카드가 등장합니다. '신의 뜻이 이게 아닌가 보다!' 그래서 저는 기도의 인과력(因果力)을 믿지 않습니다. 믿건 안 믿건 객관적인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거든요. 기도를 통해 기도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가짐이나 심지어 신체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기도가 신에 도달하여 그의 특별한 개입을 초래하고 그 결과 현실 상황이 달라진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편, 종교인들이 더 행복하고 병에도 더 잘 견딘다는 통념도 과학적으로는 받아들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행복에 대해 연구하시는 서은국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지요.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다문화적 통계 자료를 갖고 계시더군요. 제가 종교의 유무가 행복의 변수인지에 대해 여쭤 보았더니 거의 영향이 없다고 하셨지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결혼 여부랍니다. 나머지 변수들, 종교는 물론, 가령 직업, 돈, 지위 같은 것들도 행복 지수와 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건강에 좋다'는 믿음도 곰곰이 따져보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구석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종교와 건강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해 연구한 사례들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상당수가 이 둘 사이에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옵니다. 설명을 들어보면, 신앙인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매사를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각종 사건, 사고, 질병에 더 잘 대처한다는 식입니다. 이른바 신실한 신앙인들은 불행을 당해도 '신의 깊은 뜻'을 묻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지요.

이런 설명이 억지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것이 신앙과 건강이 늘 함께 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도 암에 걸릴 수 있고, 암에 걸린 신앙인이 암에 걸린 비신자들보다 항상 더 오래 사는 것도 아니지요. 종교와 건강의 관계를 탐구한 위의 연구들은 기껏해야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더 건강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일 뿐, 종교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합니다. 다시 말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긍정적 사고'이지 종교 자체는 아니라는 뜻이지요. 물론 종교는 긍정적 사고를 만들어 내고 확산시키는 하나의 원천이긴 합니다.

종교와 건강의 상관관계 연구에 관해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그런 연구의 상당수가 과학 재단 같은 중립적인 기관이 아니라 탬플턴 재단처럼 종교의 순기능을 어떻게든 입증하려는 단체들의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기도의 문제로 돌아오겠습니다. 만일 신이 우리의 기도를 다 듣고 그에 맞게 조치를 취하는 존재라면, 한국인들의 신은 틀림없이 차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을 겁니다. 입시철에 선거철까지 겹치게 되는 시기라면 기도의 폭주로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요? 불안의 계절에는 온갖 기도들이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이죠. 고3 학부모는 자녀의 입시를 위해 절이나 교회에서 기도를 드리고, 취업의 문턱에서 고전하는 청년들은 길거리 점쟁이에게 운명을 묻습니다. 또한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용한 점쟁이를 찾아 당선 가능성을 타진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 인과적 효력이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걸까요. 저는 인간이 뭔가 '이유'를 찾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언가가 우연히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 사건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스토리를 알고 싶어 하는 거지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인과율로 엮어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의 본능적・본성적 능력은 틀림없이 인류가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사이비 과학이나 비과학적 믿음과 타협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잡지, <회의주의자들(Skeptics)>의 편집장인 마이클 셔머는 이 능력을 "믿음 엔진"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믿음 엔진은 자연과 초자연을 넘나들며 폭발합니다. 기도는 그나마 이 엔진의 정상적 출력에 해당되겠지요. 하지만 그 엔진이 과열되거나 오작동을 할 때도 많습니다. 가령, 극히 일부의 암환자만이 민간요법의 효과를 보는데도 그 효력을 신봉한다든지, 출퇴근 방향이 비슷해 마주칠 개연성이 높았을 뿐인데 그 만남을 운명으로 착각한다든지, 본인의 부주의로 생긴 교통사고를 신의 깊은 뜻에 의한 사건으로 돌린다든지, 장로 또는 불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나라가 잘 된다고 믿는 것 등이 그런 예일 것입니다.

평소에 멀쩡한 사람들도 입시, 취직, 결혼, 건강, 자녀 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엄습해 오는 불안감으로 인해 믿음 엔진을 폭발 직전까지 과열시킬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폭발을 막으려면 순정품 냉각수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저는 믿음의 근거를 돌아보게 하고 합리적 생각을 북돋아 주는 회의주의 정신이야말로 그런 냉각수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불효자의 변명


'어머니의 기도'에 관해서만 조금 더 말하고 기도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습니다. 두 분 선생님들도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합니다만, 저희 어머니도 새벽 기도를 거르지 않고 다니시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시지요. 그런 어머니께 제가 얼마 전에 큰 불효를 했습니다. 제가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선언했거든요. 리처드 도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롱 속에 숨어 있다 커밍아웃한" 무신론자, 혹은 회의주의자였던 셈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의심 많은' 아들 때문에 늘 걱정이셨는데, 이 선언에 '드디어 올 게 왔구나.'라고 실망하시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무척 섭섭해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러시더군요. "내가 새벽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테니 잠시 방황하다 곧 돌아올 거라 믿는다."라고요.

그런 어머니께 저는 또 한 번 실망하실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 일은 이제 없을 것"이라고요. 하지만 어머니의 기도 자체를 못 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건 어쩌면 그분의 생활 방식이고 삶의 뿌리일 테니까요. 방황하는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새벽 기도는 기독교계에서는 아주 전형적인 스토리입니다. 왜 '돌아온 탕자' 이야기도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저는 어머니의 기도가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신에게 전달되어 제 마음을 변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매일 새벽마다 기도를 드리시는데 내가 잘못된 길로 가면 되겠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함으로써 저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이 기도의 힘은 신의 힘이 아닙니다. 바로 살아 계신 어머니의 사랑이 가진 힘입니다. 저는 이제 돌아온 탕자가 되지 않고도 어머니께 효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상상해 보세요. 예수가 부활했다는 기적이 사실이 아니라고


기도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요, 내친 김에 종교의 단골 소재인 '기적'에 대해서도 한두 마디 덧붙일까 합니다. 기도나 기적에 대한 믿음은 원래, 초자연적 세계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그 세계가 자연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겠습니까? 기독교의 경우에는 천지창조,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잉태, 예수의 부활과 재림 등이 기적의 대표적인 사건들일 것입니다. 기독교의 창조론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테고요, 마리아와 예수에게 일어났다고 하는 초자연적 사건들은 제가 보기에 문자 그대로 믿기에 힘든 일들입니다.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어떻게 처녀가 애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경우에는 처녀 생식의 사례가 단 한 건도 보고된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까?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애초에 완전히 사망한 경우는 아니겠지요. 제가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은, 성서와 같은 경전에서는 이른바 초자연적 사건들이 일상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과학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런 사건들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고 그것들이 일종의 신앙의 신화적 표현이라고 재해석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경전의 어떤 부분은 이렇게 신화적 상징으로 해석하고 어떤 부분은 역사적 사실로 해석하고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이현령비현령(耳懸玲鼻懸玲)일 뿐입니다. 이런 식의 해석 기준은 너무 자의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인 것은 아닐까요? 저는 솔직히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기독교가 존립할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온건한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서에 기록된 초자연적 사건들, 즉 기적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실존적 의미와 신앙적 가치의 차원으로만 받아들이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 두 분 선생님도 그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이런 식의 분리가 정직한 태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림 : 수태고지 성화)

종교는 가장 큰 세계관입니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경험에서 시작하여 우주와 세계의 본질이라는 가장 추상적인 의미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해명하려는 지식 체계입니다. 종교가 세계관으로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지식 체계 안에 '사실'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되살아났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인들이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갖는 것이고, 석가모니가 부처가 된 것이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뭇 중생 역시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발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최초의 사도들이, 최초의 나한들이 기적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면 이 종교들이 세계 종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종교는 삶의 의미와 가치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해명하려는 '사실 체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실 체계가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황당한' 것들이란 점입니다.

저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기도와 기적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은 어떠신지요? 신 선생님께서 앞의 편지에서 질문을 던지셨죠? "그럼 과학이 이해하는 종교는 도대체 무엇"이냐고요. 선생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종교의 기원에 대해 진화론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하셨지요. 저는 이 편지의 나머지 부분에서 '과학의 시각에서 본 종교'에 관해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물론 제가 과학자의 대변인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과학자라고 해서 종교에 관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결코 아니지요. 진화 생물학자이면서도 신실한 가톨릭 신자도 있고, 도킨스나 데닛처럼 진화론이 유신론을 몰아낸다고 믿는 이들도 있고, 진화를 부정하는 기독교인 물리학자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진화론적 관점에서 종교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크게 세 진영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종교를 인간 마음의 적응(adaptation)으로 보는 견해이고, 두 번째는 종교가 다른 인지 적응들의 부산물(byproduct)이라는 견해이죠. 적응과 부산물의 차이는 이런 것입니다. 가령, 온몸을 돌아다니며 산소를 운반해 주는 피는 적응의 사례이지요. 그런데 피의 '붉은 색깔'은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헤모글로빈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부산물입니다. 즉 피는 적응이지만 피의 색은 부산물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종교 현상을 밈(meme)의 역학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여기서 '밈'이란 도킨스가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용어인데요,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를 뜻합니다. 유전자의 gene과 운율이 맞도록 meme이라고 지었지요. 종교를 밈으로 설명하는 견해는 마지막에 소개하겠습니다.


종교는 생존 전략이었다? 종교 적응론자의 견해


우선 종교가 적응이라는 견해부터 보죠. 다음 달에 만나기로 되어 있는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의 가능성을 현대적 의미에서 거의 처음으로 제기한 학자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신과 같은 초월자를 믿게끔 진화했지요. 예컨대 그는 동물 집단에서 나타나는 서열 행동(열위자가 우위자에게 복종하는 행동)이 종교와 권위에 순종하는 인간의 행동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동물들이 서열 행동을 통해 각자의 적응적 이득을 높이듯이, 인간도 종교적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번식 성공도(reproductive success)를 높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종교 행동 자체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진화했다는 주장입니다.

윌슨처럼 종교의 적응적 이득을 주장하는 이들은 종교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사후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 주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을 도와주기 때문에 진화했다고 말합니다. 즉 초월자를 믿는 것이 그렇지 않는 것보다 개인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어떤 진화 생물학자들은 종교가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집단의 생존과 유지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진화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데이비드 슬론 윌슨(David Sloan Wilson, 빙햄턴 대학교 교수로 집단 선택 이론을 주장하는 진화 생물학계의 또 한 사람의 윌슨이죠.)은 종교를 가진 집단이 종교를 가지지 않은 집단에 비해 더 응집적이고 자원을 공유하거나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서 더 협조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종교가 집단 간 경쟁을 이겨 내는 무기로 기능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몇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먼저 개체 수준이든 집단 수준이든 종교가 일종의 적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가짐으로써 생기는 이득뿐만이 아니라 그로 인해 생기는 비용(cost)도 계산해 넣어야 합니다. 예컨대, 비현실적인 초자연성을 계속 믿고 따르다가 손해만 보는 상황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즉 종교가 일종의 적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어떤 측면에서 어느 정도로 개인 혹은 집단에 이득과 손해를 안겨 줄 수 있는지를 정확히 모형화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종교 지도자를 믿고 따르다가 경제적 파산과 가족 관계의 파탄을 경험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종교 집단의 이념을 전파할 목적으로 타 집단을 살육하거나 자살 테러를 감행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한편 집단 적응주의는 집단 내 배신자들의 창궐이 저지되는 메커니즘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가령, 집단 내 다른 구성원들은 종교적 성향을 발휘하여 이타적인데 오직 한 사람만 이기적이라고 해봅시다. 이 경우에 그 집단 내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그 이기적인 사람이겠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장기적으로 그 집단은 내부로부터 붕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성은 진화할 수 없겠지요. 예수를 배신했던 유다 같은 인물의 출현을 막을 수 없는 한, 집단의 이득을 위해 종교가 진화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자연 선택의 수준 논쟁에서 늘 언급되는 이른바 '배신의 문제'로서 집단 선택론자(group selectionist)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죠.

하지만 종교가 일종의 적응이라는 이론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그것이 종교의 진화와 이념(또는 가치)의 진화를 구분해 주지 못한다는 점일 겁니다. 예컨대 이 이론은 종교의 진화와 이타성의 진화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종교 진화론이 진정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초자연적인 존재자를 상정하는 반직관적이고 반사실적인 믿음들의 집합'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가입니다. 따라서 초자연적이지 않은 이념이나 가치들(가령, 이타성, 민주주의 등)이 개체나 집단에 적응적 이득을 안겨줄 수 있는 진화 경로가 밝혀졌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종교의 진화론에 적용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종교는 스팬드럴이다? 종교 부산물론자의 견해


종교 진화론의 두 번째 진영은 종교를 다른 적응들의 '부산물' 혹은 '스팬드럴(spandrel)'로 간주합니다. 적응과 부산물의 차이를 쉬운 예로 말해볼까요? 가령 피는 몸속에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을 하게끔 진화된 하나의 적응입니다. 하지만 그 피의 붉은색은 적응이 아니라 피 속에 헤모글로빈 때문에 생긴 부산물이지요. 다시 말해 피는 붉기 때문에 자연 선택된 것이 아니라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 때문에 선택된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진화 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은 197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당시의 사회생물학자들이 부산물과 적응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생물의 거의 모든 형질들을 적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비판했지요. 그러면서 부산물을 '스팬드럴'이라는 건축 형태에 빗대지 않았습니까?

스팬드럴(좀 더 정확히는 펜덴티브)은 돔을 지탱하는 둥근 아치들 사이에 생긴 구부러진 역삼각형 표면입니다. 중세 때 지어진 유럽 성당들에 가 보면 이 스펜드럴이 성화 등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성자들이나 천사들을 그려 넣기 위해 특별히 설계해 만든 공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돔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긴 부산물인 거죠. 그래서 굴드와 르원틴은 적응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스팬드럴과 같은 부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여담입니다만 이 학자들이 사용한 비유들을 한번 보십시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요즘 '통섭'이라는 용어가 한국 지식계의 화두가 되어 가는 듯한데요, 진화의 어려운 개념을 건축으로 풀어낸 그들의 솜씨가 통섭의 한 사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종교는 그 자체로 진화적 기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으며, 다른 목적 때문에 진화된 인지 체계의 일부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종교는 무엇(들)의 부산물이요 스팬드럴이란 말입니까?

진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인류는 99.9%의 시기를 수렵 채집을 하며 매우 어렵게 보냈습니다. 이 시기에 인류를 계속 옥죄던 적응 문제(adaptive problem)들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포식자의 존재를 탐지하고 추론하는 능력, 자연적 사건들에 대한 인과적 추론과 설명 능력,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능력 등을 진화시켜야 했습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것들을 차례로 행위자 탐지(agent detection) 능력, 인과 추론(causal reasoning) 능력, 그리고 마음 이론(theory of mind) 능력이라 부르지요. 종교가 부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교가 이런 인지 능력들 사이에 만들어진 스팬드럴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종교는 더 중요한 이런 적응 장치들 때문에 생긴 부산물인 것이지요.

예컨대, 행위자 탐지 능력은 그 행위자가 심지어 초자연적 대상인 경우에도 작동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우연적' 사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인과적 스토리를 원하는 인간의 인과 추론 본능은 초자연적 존재자를 최종 원인으로 두려는 것을 부추깁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상인은 '나의 정신 상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초월자의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창조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 부산물론은 종교적 믿음 체계가 다른 적응적 인지 체계의 등에 업혀 있는 정도를 넘어서 마치 자율적으로 '자신의 이득'을 좇아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종교 현상들 중에는 마치 고삐가 풀려 제 멋대로 행동하는 듯이 보이는 광신적 형태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히 발생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종교 행위는 다른 세포의 운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의 복제만을 수행하고 있는 암세포에 비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는 정신의 바이러스? 종교 밈 이론의 견해


종교 진화론의 세 번째 진영은 종교를 하나의 밈(meme)으로 이해함으로써 그러한 종교의 자율성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밈'이란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인간의 문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로서 "기억(memory)이나 모방(imitation)의 m"과 "gene(유전자)"에서 따온 "eme"의 합성어입니다. "대물림 가능한 정보의 기본 단위", 혹은 "문화와 관련된 복제의 기본 단위"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도킨스와 데닛은 밈이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복제자의 한 사례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밈에 대한 이런 견해가 종교 진화론에 중요할까요? 그것은 밈이 유전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종교 진화론의 대다수 논자들은 이 '동일한 방식'이라는 문구를, 밈의 행동을 유전자의 행동에 '유비하는 방식'으로만 이해해 왔습니다. 그리고 유비가 만족스럽게 이뤄지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곤란을 겪었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그 '동일한 방식'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데닛의 '지향적 자세(intentional stance)'가 바로 그 대안입니다. 지향적 자세란 무엇입니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공을 던진다고 해보지요. 그가 던진 공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그 공이 마치 믿음과 욕구를 가진 양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물리법칙만 잘 알고 있으면 그만입니다. 데닛은 이것을 '물리적 자세'라 부릅니다. 또한, 매일 아침에 울려대는 알람시계의 작동을 이해하기 위해 시계의 마음을 읽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알면 그만이지요. 이는 '설계적 자세'입니다. 하지만 우리 집 강아지가 갑자기 껑충껑충 뛰는 행동, 옆집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물리법칙 혹은 설계원리만을 들이댄다고 해서 이해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데닛은 바로 이 대목에서 '지향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마치 행위자가 어떤 믿음과 욕구를 가지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보는 그런 자세 말입니다. 데닛의 용법으로는, 유전자와 밈은 지향체계(intentional system)이고 우리는 지향적 자세로 그것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유전자와 밈의 비유비적 요소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지향성 이론을 종교 현상을 이해하는데 사용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이런 접근에는 크게 두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를 "정신 바이러스(virus of mind)"로 이해하는 도킨스의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를 "길들여진 밈(domesticated meme)"으로 해석하는 데닛의 견해입니다.

종교가 정신 바이러스 같은 고약한 복제자의 일종이라는 도킨스의 도발적인 주장부터 살펴볼까요? 바이러스는 어떤 놈입니까? 생물계에서 바이러스는 자신을 복제하는 데 필요한 핵산(DNA 또는 RNA)과 같은 유전 물질을 제외하고는 세포로서 어떤 특징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세포에 기생하지 않고는 대사 활동도, 증식도 할 수 없죠.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의 핵에 침투해 세포의 DNA 사이에 자신의 DNA를 끼어 넣습니다. 세포의 사령부를 점령한 바이러스는 세포 안에 있는 분자 기계들이 세포가 가진 영양분을 이용해 바이러스를 복제하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세포가 파괴될 때까지 말이죠. 겨울철에 유행하는 독감은 바로 이런 바이러스가 사람 몸의 세포에 기생하면서 자신을 마구 복제하기 때문에 생기는 병입니다.

바이러스는 생물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제자가 있는 세계라면 어디에나 있습니다. '트로이목마', '웜', … 이것들은 세포에 기생하는 대신에 컴퓨터 운영 체계나 프로그램, 혹은 메모리 내부에 기생하여 감염된 파일에 접촉하는 다른 파일에까지 자신을 복제합니다.

정신 바이러스도 작동 원리는 동일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을 숙주로 삼아 자신의 정보를 복제하는 기생자이지요. 인간의 정신은 세포와 컴퓨터만큼이나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와 컴퓨터가 본래의 작동을 멈추고 그 바이러스의 명령에 따라 엉뚱한 행동을 하듯, 정신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간은 그 바이러스를 더 많이 퍼뜨리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바이러스의 DNA에 침투, 장악, 복제의 명령어가 내장되어 있는 것처럼 종교의 가르침 안에도 침투, 장악, 복제의 명령이 담겨 있습니다. 가령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같은 예수의 명령이나,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여러 사람들에게 일러 주면, 한량없는 공덕을 이룰 것"이라는 <금강경>의 가르침은 바이러스의 DNA 명령과 다를 바 없습니다.

도킨스는 종교적 믿음 체계가 주로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달된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말이면 대개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언어와 사회적 관습 등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아이들에게 어른의 말에 순종적인 아이들의 태도는 진화론적으로는 다 이유가 있는 행동입니다. 예컨대 이른바 '엄마의 잔소리'들, 즉 "뜨거운 데에 손을 얹지 마라"라든가, "뱀을 집어들지 마라"라든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음식은 먹지 마라" 같은 명령들은 아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지켜야 할 필수 지침들입니다. 도킨스는 이런 상황에서 자연 선택이 아이들의 뇌 속에 다음과 같은 지침을 장착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은 무엇이든 믿어라."

이것은 물론 효율적인 규칙이며 대체로 잘 작동할 것입니다. 하지만 도킨스는 그런 지침이 정신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이는 모든 입력을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만큼 바이러스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뇌에는 "뜨거운 불이 이글거리는 지옥에 가지 않으려면 아무개를 믿어야 한다"라든지, "무릎을 꿇고 동쪽을 바라보며 하루에 다섯 번 절을 해야 한다" 등과 같은 코드들이 쉽게 기생할 수 있습니다. 도킨스는 이 코드들이 대개 부모의 가르침에 의해 자식에게로 전달된다고 말합니다. 즉 이슬람교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결국은 대개 이슬람교도가 되듯, 부모와 자식의 종교가 일치할 개연성은 실제로 상당히 높다는 것이지요. 진화론을 발판으로 삼아 무신론으로 도약하길 원하는 도킨스에게 종교는 현대 과학으로 치료받아야 할, 전염성이 강한 고등 미신일 뿐입니다.

반면 데닛은 도킨스의 밈 이론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임에도 불구하고 도킨스의 정신 바이러스 이론이 밈의 무법자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는 종교 밈(religious meme)을 '야생 밈(wild-type meme)'과 '길들여진 밈(domesticated meme)'으로 구분하고 현대의 고등 종교는 후자에 해당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현대의 고등 종교는 경전, 신학교, 교리문답, 신학자 등과 같은 기구들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에게 길들여져 있는 밈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 밈의 작동, 확산, 대물림, 진화 메커니즘을 밝혀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의 지향성 이론이 들어옵니다. 그 역시 종교 밈은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복제자이기 때문에 복제자의 전달 및 진화 메커니즘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는 종교 밈의 활동이나 작동 메커니즘이 꼭 병리적이라고 전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유전자가 행동적 측면에서 '이기적'임에도 불구하고 상위 수준에서는 협동적이거나 이타적일 수 있는 이치와 동일합니다. 특정 종교 밈의 행동 자체는 '이기적'이지만 수많은 종교 밈들로 구성된 상위 수준의 종교 현상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논의는 도킨스가 처음으로 제안한 밈 이론보다 더 발전된 형태의 논의이며, 오히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과 더 일관적인 형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데닛은 도킨스와는 달리 종교의 병리성 문제는 경험적 질문이라고 열어 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 밈 이론에도 문제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어떤 밈이 다른 밈들에 비해 더 선호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종교 밈 이론에 만족스러운 설명이 없다는 점이지요. 즉 밈의 자율성 측면을 더 잘 설명하려다 보니 밈의 제약성―다시 말해, 특정 유형의 밈을 선호하게 되는 인지적 편향(cognitive bias)―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은 꼴이라고나 할까요. 앞서 살펴보았듯이 종교의 인지적 제약성은 부산물 이론에서 가장 잘 설명되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종교 진화론을 제대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부산물 이론과 밈 이론을 동시에 포괄하는 새로운 통합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요즘 밈 이론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동안 진화 심리학만으로는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설명하는 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 와서 데닛하고 공부하다 보니 밈 이론의 가능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지요. 이런 기회를 이용해 종교를 포함한 문화 현상 전반에 대한 밈 이론을 발전시켜 볼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위의 논의들이 종교의 진화에 대한 신 선생님의 질문에 어느 정도 대답이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종교 진화론을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보다 좀 길어졌습니다.


종교는 가치와 의미에 대한 독점을 풀라!


그래도 선생님의 편지에서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만은 언급하고 펜을 놓으려 합니다. 선생님은 경이와 경외, 편안과 평안, 자연 경험과 종교 체험, 대자연과 피조 세계, 로고스와 미토스, 사실과 가치를 대비시키셨지요. 저는 이 구분들을 보면서 오히려 종교와 과학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종교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의미와 가치 영역을 과학도 노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뜻입니다. 중세까지만 해도 종교는 가치와 의미뿐만 아니라 사실까지도 모두 통제하는 독점적 지식 체계이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계몽 시대와 과학 혁명기를 거치면서 서양의 과학은 그동안 종교가 품고 있었던 사실 영역을 야금야금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는 과학 기술이 사실의 영역을 점령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의미・가치 영역에서는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저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여전히 가치와 의미의 독점 기관입니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쓰자면, 종교가, 사실의 영역은 과학의 손에 넘겨주었지만 가치와 의미만큼은 꽉 쥐고 놔주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굴드 같은 과학자들도 과학은 사실에 관한 지식이고 종교는 가치에 관한 언어이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겠지요. 반면 도킨스, 데닛, 윌슨 같은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향해 가치와 의미에 관한 독점을 풀 것을 주문합니다. 그래서 최근의 과학적 무신론 운동이 마치 헤게모니 싸움처럼 보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 간에도 온도 차이는 좀 있습니다. 가령, 도킨스는 종교에게서 가치와 의미를 모두 다 뺏어오려고 합니다. 즉 종교를 말살하자는 이야기죠. 반면 데닛은 종교가 그동안 발전시켜 온 가치와 의미 체계는 나름대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독점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즉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일종의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장 흥미로운 것은 윌슨의 입장입니다. 신 선생님께서 날카롭게 지적하셨듯이, 윌슨의 머릿속에 늘 생물학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처럼 화해의 몸짓이 아무리 매혹적이라 하더라도 윌슨의 과학자로서의 표정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의 속내는 이럴 것입니다. '종교가 그동안 신주단지처럼 모신 가치와 의미 체계는 과학에서 귀결되는 가치와 의미 체계와 수렴한다. 과학에서 주는 가치와 의미를 실현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니 그런 가치 체계를 공유한 무엇이든 이용하자. 이것이 내가 종교와 손잡는 이유이다.'

어떻습니까, 제 해석이? 모두가 종교의 (가치와 의미에 관한) 독점을 지적하지만 그 방법과 대안이 다르지 않습니까? 무신론자 입장에서 어떤 전략이 가장 좋다고 판단하기는 힘들 것 같군요. 하지만 최근의 과학적 무신론 운동은 무신론자의 싸움이 종교로부터 가치와 의미를 되찾아 오기 위한 것임을 상기시켜 주는 듯합니다. 경이감은 경외감과 겨우 한두 획 차이 아니겠습니까?

과학이 종교가 만들어 온 가치와 의미의 철옹성을 부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니 종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발끈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 보니, 종교의 미래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가치마저 내준다면 결국 빈손 아니겠습니까? 두 분 선생님의 대답이 궁금해지네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 부분(종교의 미래)에 대해서도 서신 교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세미나에서 토론할 논문을 아직 못 읽었는데 벌써 새벽 1시입니다. 아무래도 내일은 귀동냥이나 해야겠습니다. 점심 맛있게 드십시오.


2007년 2월 15일

보스턴에서

장대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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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을 바꾸면 종교가 사라질까요?

"과학과 종교의 대화 <6> 종교와 과학의 한계



앞서 장대익 교수와 신재식 교수가 주고받은 편지를 본 김윤성 교수가 종교학자로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실재의 깊이는 종교와 과학보다 훨씬 더 깊다"며 종교와 과학의 한계를 두루 짚은 뒤, 특히 장 교수를 향해 "종교는 세계관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화의 성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재식 선생님과 장대익 선생님께


두 분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규슈에서 돌아와 논문과 강의 준비로 방학을 마무리하다보니 어느새 개강이 코앞이네요.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편지를 씁니다. 워낙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셔서 숨이 벅찰 지경이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자연의 신비와 존재의 깊이 : 무신론과 종교적 자연주의


언어와 상상력의 힘이란 얼마나 놀라운지요. 남미에 가 본 적이 없는데도, 신 선생님 편지를 읽다 보니 마치 제가 실제로 남미의 광활한 자연 속에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 행복한 착각은 단지 언어와 상상력 덕분만은 아닐 겁니다. 만일 저에게 예전에 국내외를 여행하면서나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웅장한 자연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면, 신 선생님의 그 생생한 묘사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했겠지요. 결국 우리가 간접적인 경험으로도 충분히 무엇인가에 공감할 수 있는 건 우리 각자의 경험이 공통의 토대 위에 놓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정말이지 자연에는 우리를 압도하는 놀라운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 선생님 말씀대로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경험은 어딘지 종교적 경험과 비슷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지난번 편지에서 적었듯이, 예술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 사이에도 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고요. 웅장한 자연의 경이로움, 위대한 예술 작품이 주는 감동, 그리고 내면에서 우러나는 종교적 경외나 평온의 감정. 이 세 경험 사이에는 확실히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생물학자 어슐러 구디너프(Ursula Goodenough)의 <자연의 신성한 깊이(The Sacred Depths of Nature)>(1998)라는 책 결론 부분입니다.

우리의 진화 이야기는 우리에게 생명의 신성함을 일깨워 준다. 세포와 생명체의 놀라운 복잡성의 신성함, 경이로운 다양함을 만드는 데 걸렸던 광대한 시간의 신성함,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일어난다는 게 있을 법하지 않은 엄청난 불가사의의 신성함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경의는 우리가 신성한 것을 인지할 때 일어나는 종교적인 감정이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의 계획에 경의를 표할 의무가 있다. 존재 전체와 작은 부분들 모두에게, 촉매 작용을 하고, 분비하고, 복제하고, 진화하는 무수한 작은 부분들에게 경의를 표할 의무가 있다.

아시다시피 구디너프는 특정 종교의 신자는 아닙니다. 그녀는 확고한 무신론자죠. 하지만 그녀는 종교적인 언어와 메타포를 사용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종교적 자연주의(religious naturalism)'라 부르기도 하죠. 여기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없지 않을 겁니다. 어슐러의 아버지 어윈 구디너프(Erwin Goodenough)는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저명한 종교학자로서, 본래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가 종교학을 하면서 불가지론자로 전향한 사람이죠. 과학자가 된 어슐러는 불가지론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신론을 선택했지만, 그녀의 생각과 언어에는 종교학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종교적 감수성이 다분히 스며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구디너프는 비록 '신성함', '불가사의', '경의', '종교적 감정' 같은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를 특정한 신앙 대상과 관련짓지는 않습니다. 다만 자연의 헤아릴 수 없는 신비, 그리고 이를 하나하나 파헤쳐 장대한 한 편의 드라마로 펼쳐 보여 준 과학의 위대함을 표현하기 위해 다분히 종교적 색채를 지닌 언어를 사용할 뿐이죠.

더욱이 구디너프는 바로 이어지는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존재와 존속 자체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 자체가 중요할 뿐, 그 어떤 정당성 증명도, 창조자 같은 절대 존재도, 의미를 통합하는 상위 개념도 필요치 않다." 무신론자로서 진면모를 드러내는 대목이지요. 결국 구디너프는 다분히 '종교적' 색채를 띤 언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사람들이 흔히 '종교적'이라는 말에서 떠올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 이 말을 쓰는 셈입니다.

꼭 구디너프처럼 '종교적 자연주의'를 표방하지 않더라도,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을 마치 종교적 경험처럼 표현한 과학자들은 많습니다. 무신론, 불가지론, 범신론 등 그 입장이 천차만별이기는 하지만요.

예를 들어 일전의 편지에서 인용했듯이, 아인슈타인은 자연의 경이와 신비 앞의 숙연한 감정에 '종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전통적인 유신론적 종교와는 전혀 무관했습니다. 그가 자신이 말하는 신이란 굳이 말하자면 '스피노자의 신'이라고 했듯이, 그는 일종의 범신론적 무신론자였죠.

또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진화의 장대한 드라마를 마무리하면서 "이 모든 이야기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라고 말한 것에도 어딘지 종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다윈 역시 유신론적 종교와는 거리가 멀었고 대신 무신론적 경향이 강한 불가지론을 견지했지요.

그런데 유신론은 물론 범신론이나 불가지론 따위와도 거리가 먼 좀 더 철저한 무신론자들 중에서조차 자연의 신비 앞에서 느끼는 감동을 거의 종교적인 분위기의 언어로 표현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 것도 없이 당장 칼 세이건(Carl Sagan)의 <코스모스(Cosmos)>(1980) 첫머리만 읽어 봐도 충분하지요.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모든 것이다. 코스모스를 아주 희미하게라도 응시하노라면 그것은 우리를 뒤흔들어 놓는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떨리며, 높은 데서 떨어지는 아찔한 느낌이, 아득한 기억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위대한 신비들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가장 대표적인 무신론 과학자 중 한 사람이 한 말입니다. 물론 종교적 의미로 읽힐 수도 있는 '신비'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이 인용문에서 종교적이라 할 만한 요소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지 미묘한 종교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세이건이 어떤 종교적 의도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은 분명 아닌데도 말이죠. 그의 말에서는 오래전부터 종교인들이 우주와 존재의 궁극적인 경계와 깊이 너머에 대한 감각을 표현해 온 말들과 비슷한 분위기가 풍깁니다.

구디너프, 아인슈타인, 다윈, 세이건 같은 과학자들이 자연의 신비 앞에서 내뱉는 탄성 같은 고백들을 읽다 보면 그냥 그대로 공감이 갑니다. 아, 제 경우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아마 두 분도 그러시겠죠? 그들의 글을 읽다 보면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 바닥을 알 수 없는 심해, 상상하기 힘든 우주의 광대한 거리와 아득한 어둠, 초신성으로 폭발한 지 이미 수억 년인데 이제야 비로소 내 망막에 도달했을 저 별빛들…, 이런 것들에서 느꼈던 가슴 벅찬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어려서부터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저는 이러한 자연의 신비 앞에서 신의 창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는 했었습니다. 당시에 찬양은 제 감동을 표현하는, 유일하지는 않아도 가장 적절한 언어였습니다. 특정 종교 공동체에 속하지 않게 된 지금 이제 개인적으로 그 찬송을 부르는 일은 거의 없지만, 분명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자연 앞에서 느끼는 감동의 깊이 자체는 여전히 똑같다는 점입니다. 그 감동을 종교적 언어로 표현하든, 과학적 언어로 표현하든, 아니면 자연의 깊은 신비에 압도되어 그저 침묵하든, 그 표현들에 담긴 감동의 깊이 자체는 결국 같은 것이 아닐는지요.


누미노제와 신비: 종교적 경험의 두 가지 양태


이 점에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종교학자인 루돌프 오토(Rudolf Otto, 1868∼1937년)가 말한 '누미노제(numinose)' 경험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토는 <성스러움의 의미(Das Heilige)>(1917)라는 책에서 보이는 세계 너머의 어떤 성스러운 실재에 대한 감각을 누미노제(numinose)라고 명명했죠. 적절한 번역이 불가능한 단어인데요, 굳이 옮기자면 '경외(敬畏)'가 그나마 근접할 겁니다.

누미노제 경험은 성스러운 실재의 궁극적 신비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이라는 양면성을 지닙니다. 오토는 이 경험이야말로 모든 종교의 뿌리라고 보았고, 이는 자연의 신비에 직면했을 때 느끼게 되는 전율의 경험과도 상통한다고 보았죠. 오토는 개신교 신학자였던 만큼 그가 말한 성스러움이란 경험적 차원을 넘어서는 초월적 실재로서 절대 타자를 분명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미노제란 사실 절대 타자로서 신에 대한 경외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넓게 보면 이러한 누미노제 경험은 다양한 종교 경험의 한 가지 유형에 불과합니다. 여러 종교학자들은 누미노제 경험이 어디까지나 초자연적 절대 타자로서 신적 존재를 신앙 대상으로 하는 유신론적 종교에 국한된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종교에는 꼭 유신론적 종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적 존재를 중시하지 않거나 신적 존재와 아예 무관한 신앙과 실천을 지닌 종교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지요.

종교학자들이 누미노제 경험과 구분되는 '신비(神秘, mystic)' 경험을 종교적 경험의 또 다른 유형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신비 경험이란 절대자와 직면하는 데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 자체, 존재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감각에서 생기는 경험이죠. 신비 경험이란 존재의 궁극적 토대와 하나가 되는 합일의 경험입니다.

그런데 사실 누미노제 경험과 신비 경험은 서로 완전히 단절된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인간의 언어와 상상을 넘어선다고 여겨지는 실재와 관련하여 갖게 되는 심오한 경험과 관련되지요. 다만 그 경험을 구체화하면서 인격적인 초월자와 관련짓느냐 아니면 비인격적인 초월적 법칙과 관련짓느냐 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종교의 유무나 종류를 떠나 사람들이 실재의 일부인 자연에서 얻는 감동의 경험은 이 두 극단 사이에 두루 걸쳐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연의 감동을 인격적 신에 대한 찬미로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자연 속에 녹아드는 합일의 평온함으로 표현하죠. 하지만 전자가 꼭 유신론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서만 보이는 태도는 아닙니다. 사실 누미노제의 신앙 대상인 절대 타자가 반드시 인격적이기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우리는 흔히 "천벌을 받았다."라거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라거나,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라고 말하곤 합니다. 애국가에도 "하느님이 보우하사."라는 구절이 있죠. ('하느님'이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신앙해 온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고, 이는 야훼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기독교의 '하느님/하나님'과 다르다는 건 아마 잘 아시겠죠.) 여기서 '하늘'이나 '하느님'은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는 신적 주재자를 뜻할 수도 있고, 그저 하늘의 막연한 어떤 이치를 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할 때, 우리처럼 의지와 감정을 가진 인격적 신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정의가 판치는 현실에서 정의를 회복시켜 줄 희망의 궁극적 토대로서 우주와 역사의 법칙을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인격체로서 하느님과 비인격적 법칙으로서 하늘 사이에는 깔끔하게 자른 단면 따위는 없습니다. 양자는 스펙트럼처럼 이어져 있지요. 또 사람들이 하느님이나 하늘을 생각하는 방식도 이 스펙트럼 위 어딘가에 모호하게 걸쳐 있을 테고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만, 신비 경험도 다르지 않습니다. 순수한 신비 경험은 사실 극히 드뭅니다. 종교 엘리트들에게는 가능한지 모르지만, 신비 경험을 주축으로 한다는 불교나 힌두교 같은 종교들에서조차 신비 경험은 순수한 내면적 체험 수준에만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도 언제나 절대자처럼 받아들여지는 붓다와 보살, 수많은 남녀 신격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엄연한 숭배 대상이 되어 왔고, 이는 곧 누미노제 경험과 관련되지요. 결국 순수한 신비 경험이란 이상적 차원에서나 말할 수 있을 뿐이고, 실제 현실에서는 신비 경험과 누미노제 경험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는 셈입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시대나 지역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들에서는 누미노제 경험과 신비 경험의 양극단이 공존하며 그 사이에 넓은 스펙트럼이 펼쳐져 있어서, 사람들의 종교적 신앙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이는 종교인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특정한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누미노제 경험을 다른 한편으로는 신비 경험을 일정 정도 공유하며 살아갑니다. 유신론을 거부하는 무종교인, 무신론자, 범신론자의 경우는 아마 누미노제 경험보다는 신비 경험에 더 가깝겠지요.

따라서 앞서 살핀 구디너프의 입장은 엄밀히 말하면 '종교적 자연주의'라기보다는 '신비적 자연주의'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겁니다. 그녀가 말하는 신성함이나 신비에는 누미노제의 신앙 대상인 인격적 신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비 경험이 누미노제 경험과 나란히 종교적 경험의 주요한 양상임을 염두에 둔다면, 구디너프는 물론 아인슈타인, 다윈, 세이건 같은 무신론적 과학자들이 자연의 신비에 대한 감동을 표현한 주옥같은 말들이 풍기는 분위기에 '종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무리한 일은 아닐 겁니다.


종교도 과학도 이 세계의 신비를 모두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사실 저는 '종교적'이라는 용어 자체에도 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이라는 표현은 대개 신성함, 근원적 깊이, 존재 자체…, 이런 것들을 망라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쓰이죠. 하지만 '종교'라는 용어가 실제로는 특정 전통으로 구체화된 제도 종교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표현은 오해를 사기 십상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마치 종교적 신앙을 고백한 것처럼 오해를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하지만 일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아인슈타인은 다만 스스로 '종교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인들을 향해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 자신도 여느 종교인들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종교적일 수 있다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 아마 아인슈타인은 '종교적'이라는 표현에 그리 만족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인간과 과학을 한없이 겸손하게 만드는 자연의 위대한 신비는 '종교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다 담아내기 힘들 정도로 깊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저는 '종교적'이라는 표현은 그저 그 깊이를 조금이나마 담아내기 위한 개념적 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이 단어 하나에 모든 것이 다 담기리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는 이야기죠. 많은 사람들이 때로 '종교'나 '종교적'이라는 용어보다 '신성함', '성스러움', '궁극성', '신비', '깊이', '영성'……, 이런 용어들을 두루 사용하는 것도 필경 이 때문이겠지요.

'종교적'이라는 말의 의미론적 한계는 자연에서 느끼는 경이의 경험과 성스러운 실재에 관련된 누미노제나 신비 경험이 그 근본에서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자연을 대하는 경험과 종교적 경험은 서로 다르면서도 결코 완전히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자연이나 종교를 넘어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지난번 편지에서 제가 음악적 경험과 종교적 경험이 근원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 같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죠. 음악과 종교가 인간 경험의 깊은 차원에서 만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일상이나 과학에서 자연의 경이에 대해 느끼는 경험과 존재의 궁극적 깊이에 대해 느끼는 종교적 경험도 역시 똑같은 깊이의 차원에서 만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경험들이 다 똑같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다만 이 각각의 경험들이 서로 별개이면서도 중첩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시와 문학도 넣어야겠지요.


저는 영화 <콘택트>에서 엘리(조디 포스터)가 웜홀을 통과해 도착한 저 머나먼 어딘가의 우주인지 아니면 그녀의 상상 속 우주인지 아무튼 어떤 미지의 우주에 도착한 장면에서 그 표정과 대사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영화도 여러 차례 보았지만, 이 장면은 되감기를 해 가며 정말 수도 없이 보았는데요, 볼 때마다 늘 가슴이 메고 눈물이 글썽이게 하는 명장면이죠. 눈앞에 펼쳐진 우주의 그 놀라운 광경에 엘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이렇게 탄식합니다.

어떤 천체의 모습이에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형언할 수가 없어요…. 이건 한 편의 시야! 시인이 와야 했어요…. 너무나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너무나 아름다워. 아름다워. 너무나…. 상상도 못 했어. 상상도 못 했어. 상상도 못 했어….

엘리는 그토록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언어로 담아 낼 수 있는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라 바로 시인이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과학, 종교, 예술, 시를 나누는 경계들이란 얼마나 인위적인 것인지를 절감하고는 합니다.

 자연의 신비 앞에서 과학적 분석, 예술적 재현, 종교적 고백, 그리고 시적 상상은 각기 다른 언어를 구사하지만 그 근본적 깊이 어디에선가 서로 만나는지도 모릅니다. 이들에게는 우주라는 실재와 인간 존재의 근본에서 서로 상통하면서도 끝내 서로 치환되거나 융합되지 않는 차원이, 각각 고유성을 지닌 별개의 영역들이면서도 겹겹이 교차하는 중첩 영역에서 만나는 차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저는 신 선생님이 말하신 삶의 다원성에 대한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다만 저는 그 다양한 차원들에 우열이나 위계가 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과학자든 종교인이든, 또 예술가든 시인이든 자신의 언어만이 자연의 신비를, 존재의 깊이를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오만이자 독선일 겁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실재에 대해, 존재의 똑같이 깊은 차원에서, 각기 나름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죠. 그렇기에 우리는 과학의 언어든, 종교의 언어든, 예술의 언어든, 시의 언어든, 이 언어들 각각은 물론 이들을 다 합쳐도 끝내 담아낼 수 없는 자연의 신비와 존재의 깊이 앞에 그저 겸손할 수밖에 없는 거겠지요.


윌슨의 제안은 효과적일까? 종교의 과대평가된 영향력


에드워드 윌슨이 <생명의 편지(The Creation)>에서 제안하는 과학과 종교 간의 협력이 다분히 '생물학 중심주의적'이라는 신 선생님의 진단은 매우 적절해 보입니다. 저 역시 그의 과도한 생물학 중심주의와 과학 지상주의에는 쉽게 수긍이 안 가더군요. 예전에 윌슨의 <통섭(Conscilience)>(1998)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요, 그가 말하는 학문들 간의 '통섭'이란 결국 자연 과학의 토대 위에서, 자연 과학을 중심으로 한 일방적인 포섭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윌슨에게는 그런 비판이 많이 가해지더군요.

그의 이번 책 <생명의 편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비록 대화와 협력을 이야기하지만, 과학만이, 생물학만이 협력의 유일한 토대이며 대화의 적합한 주역이라는 신념을 조금도 굽히지 않습니다. 솔직히 그가 말하는 대화와 협력이란 단지 생색내기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무엇보다도 윌슨이 도대체 왜 생태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파트너로 굳이 종교를 선택했는지 공감이 잘 안 갑니다. 그는 이에 대해 스스로 묻고 답하는데요, 그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종교와 과학은 오늘날 미국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종교가 오랫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은 사실입니다. 또 근대 이후 과학의 영향력은 나날이 증가해 왔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윌슨은 과학을 과대평가하는 것만큼이나 종교도 역시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종교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종교가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그렇게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종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지 종교가 우리 삶의 다른 요소들과 하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그것을 빼놓고는 우리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중요해서가 아니라, 고려에서 배제할 수 없기에 관심을 갖는 거지요.

종교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중세라면 몰라도, 근대 이후 종교는 삶의 특정 영역에 관련되는 하나의 요소 내지 영역으로 계속 축소되어 왔습니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종교의 영향력이 크기는 합니다만, 그 크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지는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슬람이 지배적인 중동이나 힌두교가 삶의 근간인 인도의 상황이 근대화와 세속화를 겪어온 유럽, 미국, 우리나라의 상황과 똑같지는 않을 겁니다. 전자의 경우는 일단 접어 두겠습니다. 이 지역의 대부분에서는 과학의 영향력이 여전히 미미하고, 따라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 자체를 논할 게재가 별로 없으니까요.

이와 달리 유럽, 미국, 우리나라 같은 데서 종교의 막강한 영향력이란 대개 종교인들, 그 중에서도 보수적 성격의 종교인들의 일부에게만 국한됩니다. 무종교인들, 무신론자들, 반(反)종교적 정서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물론, 심지어 온건한 형태의 신앙을 지닌 많은 종교인들에게도 종교란 그저 삶의 여러 요소들 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 영향력은 거의 없거나 아주 미미하죠. (이에 대해서는 장 선생님이 종교나 돈 따위보다 결혼이 행복의 가장 두드러진 요건으로 여겨진다는 심리학계의 연구를 들어 잘 설명해 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연구들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저는 통계를 일반화하는 데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다지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겠지요.)

다만 보수적 성격의 종교인들, 특히 근본주의자들이 유난히 '설친다면' 종교의 영향력이 다소 막강해 보일 수도 있는데, 미국과 우리나라가 바로 이런 경우일 겁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의 포장지를 뜯고 보면 내용물은 그리 신통치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무종교인, 무신론자, 반종교주의자, 그리고 온건한 종교인이 훨씬 더 많은 게 현실일 겁니다. 결국 윌슨이 미국에서 근본주의적 종교가 설치는 모습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한 나머지 미국 사회에서 종교가 미치는 일반적 영향마저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커집니다.

또 윌슨이 여러 종교인들 중에서 왜 굳이 미국 남침례교 목사를 가상의 수신자로 설정했는지도 좀 의아스럽더군요. 일단은 기독교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이었겠지요. 그 성격상 정확한 통계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제법 믿을 만한 통계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종교인의 수는 기독교 21억 명, 이슬람 15억 명, 무종교인 11억 명, 힌두교인 9억 명 등의 순이라고 합니다. 단연 기독교가 가장 크지요. 하지만 기독교가 가톨릭, 정교회, 그리고 무수한 개신교 교파들로 나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지구상에서 규모가 가장 큰 종교는 이슬람입니다.

미국으로 이야기를 좁혀 볼까요? 미국에서 기독교는 분명 인구의 76%를 차지하는 최대의 종교입니다. 이중에서 개신교가 53%, 가톨릭이 23%를 차지하지요. 하지만 개신교는 수많은 교파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 단일 교단으로 가장 큰 것은 단연 가톨릭이죠. 윌슨의 편지 수신자인 남침례교는 가톨릭, 침례교, 감리교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교단으로 전체 기독교 신자수의 7%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중에서 남침례교는 전형적인 근본주의적 교파라는 점입니다. 근본주의 교파들은 세속 사회나 다른 종교들은 물론 개신교 내의 다른 교파들에 대해서도 단단한 장벽을 쌓는 성향을 지닙니다. 그렇기에 남침례교는 미국 기독교는 물론 심지어 개신교조차도 대표하지 못합니다.

물론 그 규모에 비해 남침례교의 영향력은 제법 큽니다. 부시 행정부하에서 백악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또 개신교계 언론을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지요. 하지만 그래도 남침례교는 결코 기독교 전체나 유일신교 전체를 대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의아해하는 부분은 바로 이 점입니다. 윌슨이 정말로 종교의 막강한 영향력을 염두에 두었다면, 차라리 좀 더 포괄적으로 그 종류가 무엇이든 아무튼 신/신들을 믿는 사람들 일반을 향해 말하거나, 또는 남침례교 목사를 지목하기보다는 그냥 기독교인들 전체를 향해 말하는 것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윌슨의 한계: 대화와 정치의 부재


또 한 가지 의아스러운 점은 윌슨이 비록 가상의 목사를 수신자로 설정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그와 별다른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읽어 보아도 그는 편지 수신자가 가상의 목사라는 사실을 그저 이따금 환기시키기만 할 뿐, 그와 아무런 실질적인 대화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생태 위기를 극복할 최선의 도구로서 과학과 생물학의 가치에 대해 혼자 설명하고 일방적으로 설득할 뿐이죠. 과학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념의 내용에 대해 그리고 양자가 만날 수 있는 근본적 토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 과학 지상주의자가 근본주의 개신교 목사에게 보낸 편지를 엿보면서 이에 공감하여 생태 위기를 구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죠. 제가 '더 큰 관심'이라고 한 것은, 사실 이미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래전부터 생태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다는 점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생태 신학은 여성 신학과 더불어 현대 기독교 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영역이 된 지 오래입니다. 또 기독교의 많은 진영이 실천적 차원에서 다양한 환경 운동에 앞장서 왔고요.

이와 달리 윌슨이 편지 수신자로 설정한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은 그동안 생태 문제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아마도 이 무신론자가 내미는 협력 제안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도 않을 겁니다. 그들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만큼 넉넉한 신앙을 가졌다면 애초에 그토록 폐쇄적이고 고집스러운 집단으로 전락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들은 윌슨의 제안에 이렇게 답할 것 같네요. '윌슨 씨! 지구를 구할 주역은 과학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믿습니까? 아멘!'

반면에 다른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윌슨이 이런 제안을 하기 이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생태 문제 해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고, 그들 나름대로 앞으로도 그 노력을 계속해 가겠지요.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네요. '윌슨 씨! 당신의 제안은 참 고맙고, 그 숱한 과학 지식을 알려준 것도 고맙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런 상세한 지식이 좀 부족해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뭐 같이 손잡을 수는 있겠지만, 너무 많은 과학 지식은 오히려 부담스럽네요. 아무튼 우리는 오래전부터 생태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애써 왔답니다. 이 점만은 알아주세요!'

그러고 보면 결국 윌슨은 미국 내에서 영향력은 제법 있지만 그래도 별로 신통치 않은 근본주의 개신교 교파를 향해 혼자서 과학 지상주의를 소리 높여 외치는 공허한 독백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또 윌슨은 자연의 '관리인'으로서 인간의 역할에 대해 말합니다. 물론 아시다시피, '관리인'은 성서에도 등장하는 개념이고, 이미 오랫동안 유대교나 기독교 생태 신학자들이 재발견하여 중요하게 사용해 온 전략적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저는 혹시 윌슨이 기독교의 이 '관리인' 개념을 슬쩍 도용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더군요. 성서에 엄연히 '관리인' 개념이 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를 토대로 생태계 회복 운동을 실천해 왔는데, 윌슨은 이 개념을 마치 자신이 처음 제시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것처럼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 윌슨이 기독교에 '관리인' 개념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요. 알면서도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마치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말하는 건 엄연한 표절이겠지요.

설령 몰랐더라도 역시 문제이기는 마찬가집니다. 이는 결국 그가 상대방에 대해서는 알려 하지도 않고 혼자 자신만의 독백을 늘어놓았다는 증거인 셈이니까요. 윌슨이 정말로 그리스도교와 대화하며 협력하고자 했다면 기독교의 '관리인'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결합하여 그 나름의 새로운 '관리인' 모델을 제시했어야 할 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생각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더군요. 윌슨은 정말로 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교가 제시해 온 '관리인' 개념은 무시한 채 과학을 '관리인' 개념의 담지자로 대중에게 제시함으로써 사실상 과학이 생태 문제 해결을 위한 유일한 최적의 대안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끝으로 제가 윌슨의 책을 읽으며 든 마지막 의문은 과연 그의 제안이 효과적일까 하는 점입니다. 관리인 개념도 나름대로 의미 있기는 합니다만, 종교적 기원을 갖는 이런 개념은 사실 생태 사상이나 환경 운동 전반에서 특히 '심층 생태론(deep ecology)'이라고 불리는 진영과 관련됩니다. 심층 생태론은 1973년에 노르웨이 철학자 아르네 내스(Arne Næss)가 창안한 용어로, 생태 과학만으로는 생태학적 윤리나 지혜에 관련된 해답을 얻을 수 없다고 보면서 깊은 경험, 깊은 물음, 깊은 봉헌을 통해 해답을 추구하는 시도들을 통칭합니다.

심층 생태론은 인간을 환경에 온전히 통합된 일부로 보며, 나아가 인간과 생물권의 동등성을 주장합니다. 그 입장은 매우 다양해서 아르네 같은 철학자들 외에도, 지구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을 주창한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 같은 과학자들, 그리고 생태계 파괴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반성하며 인간의 관리인 역할 회복을 주장한 가톨릭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 같은 종교인들이 이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종교인들이나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주축이 된 심층 생태론은 사람들의 세계관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고 삶의 태도를 바꾼다는 점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 왔지만, 생태 문제를 둘러싼 좀 더 복잡한 맥락을 간과한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심심치 않게 받아왔습니다.

사실 생태 문제는 단지 세계관이나 삶의 태도에만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지요. 그 핵심에는 국가 권력, 국제 관계, 세계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가부장제 같은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변수가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회주의자들, 마르크스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도 생태 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 왔고, 여러 차원에서 생태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지요. 생태 문제는 세계적인 경제와 분배의 불평등과 뗄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입니다.

 반면에 심층 생태론은 생명계와 인간의 동등권 그리고 생명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말하지만, 생태 문제의 핵심인 세계 경제의 분배 정의 문제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한 보수 이데올로기적 한계를 갖습니다. 제 생각에는 윌슨이 종교적인 관리인 개념을 빌려옴으로써 이러한 한계를 지닌 심층 생태론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그가 평생 추구해 온 학문의 성격 자체와도 상통하지 않나 싶습니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Marshal Sahlins) 같은 이들은 윌슨을 필두로 한 사회 생물학자들이 인종 차별, 성차별, 우생학에 대해 비판하기는커녕 사실상 그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고 비판합니다. 글쎄요. 좀 과도한 비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윌슨은 이런 사회 정의의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경제 윤리나 분배의 정의라는 차원을 간과한 심층 생태론을 끌어들이는 윌슨의 제안이 과연 정치적으로 얼마나 올바른 것일지, 또 얼마나 현실적으로 효과적일지 의문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만,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특히 장대익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제가 윌슨을 너무 협소하게 이해한 건지요? 그의 제안을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는지요?


기독교가 과학과 종교 논의에 유독 적극적인 또 다른 이유


왜 과학과 종교 논의에서 유독 기독교인들이 적극적인지에 대한 신 선생님의 흥미로운 설명 잘 들었습니다. 지난 편지에서 서구에서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해온 역사적 과정에 대한 설명에 이어, 이번 편지에서 기독교 자체가 지닌 인식론적 구조에 대한 설명과 불교나 이슬람 문화권의 경우에 대한 설명을 통해 궁금증도 많이 풀렸고요. 그런데 어쩐지 아직 의문이 다 풀리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함이 남습니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인식론적 차원은 일단 접고 역사적 차원에 대해서만 제 생각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신 선생님께서는 불교나 이슬람의 영향 아래 있는 지역에서는 담론의 역학 관계에서 서구의 기독교가 겪었던 것과 같은 역사적 경험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런 지역에서 불교와 과학, 이슬람과 과학에 대한 논의가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불교나 이슬람이 과학과 갈등을 일으키기보다는 과학을 포용한다는 식의 견해가 지배적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하셨고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신 선생님의 설명은 우리나라처럼 불교와 기독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들이 나란히 경쟁하며 공존하는 상황에서조차 종교와 과학 논의에서 유독 기독교가 두드러진 이유를 말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교들이 지금처럼 경쟁적으로 공존하게 된 우리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그 역사적 맥락이란 곧 우리가 말하는 '과학'은 어디까지나 '서구 근대 과학'으로서, 우리나라 같은 비서구 사회에서 근대 과학은 처음부터 서구의 팽창과 궤적을 같이 해왔다는 점입니다. 근대 과학은 비서구 세계가 서구적 근대성 모델에 따라 대대적인 근대화, 서구화를 겪기 시작하면서 도입된 것이지요.

물론 시대와 지역을 넘어서는 과학의 보편성을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과학을 둘러싼 담론들이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다는 점도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의 경우 종교와 과학 논의에서 유독 기독교가 두드러진 것은 기독교와 근대 과학이 서구의 근대성과 더불어 세계로 확장되어온 역사적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게 형성되던 근대라는 무대에서 가장 유리한 입지를 선점한 것은 바로 서구 종교인 기독교였기 때문이지요.

(참, 앞으로 '기독교'는 주로 '개신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나 '그리스도교'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비롯한 다양한 하위 전통을 포괄하는 용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와 관련한 논의는 주로 개신교를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는 개신교보다 한 세기나 일찍 전래되었지만, 오랜 박해에서 이제 막 벗어난 상황이기에 근대 무대에는 개신교보다 뒤늦게 뛰어들었습니다. 게다가 천주교는 배경에 프랑스가 있었던 데 비해, 개신교의 배경에는 미국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근대 상황에서 개신교가 차지할 수 있었던 유리한 입지는 곧 미국의 힘을 등에 업은 혜택 덕분이기도 합니다.)

비서구 세계에서 기독교는 과학과 나란히 서구 문명의 중요한 토대로 인식되었으며, 심지어 때로는 서구 문명 자체와 동일시되기도 했습니다. 개항기를 중심으로 한 근대 초기 우리나라 기독교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별다른 논의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서구 종교라는 오직 이 한 가지 사실 덕분에 과학의 대등한 동반자로 여겨지거나 심지어 과학의 근원이라는 위상까지 거저 부여받을 수 있었기에 별다른 논의가 필요치 않았던 거지요. 일종의 무임승차라고나 할까요.

반면에 유교나 불교 그리고 무교(巫敎) 같은 전통 종교들이나 여러 신종교들에게는 상황이 그리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이 종교들에게는 새로운 근대적 기준에 맞추어 적응하는 과제가 더 급선무였기 때문이죠. 우선 정치와 종교의 복합체인 유교는 조선 시대 내내 누렸던 지배적 위치를 상실한 채 하나의 독립된 종교로서보다는 순수한 사상, 일상적 관습과 의례, 무의식적 가치관과 윤리 따위로 그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근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유교가 종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수시로 제기되어 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유교에 비하면 종교로서 위상이 비교적 명확했던 불교는 이보다는 조금 나았습니다만, 그래도 사정이 열악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 정부의 억불 정책에서 벗어난 불교에게는 전통을 회복하고 근대 사회에 적합한 종교로서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죠.

신종교들은 상황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혼합체로서 갑오농민혁명의 원동력이었던 동학은 개항기 들어 천도교로 변신하면서 순수한 종교임을 표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역시 한동안은 과학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할 겨를이 없었죠. 증산교를 비롯한 다른 신종교들은 이제 막 형성되던 단계라 딱히 거론할 사항이 별로 없었고요.

마지막으로 무교 같은 민간종교는 가장 열악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민간종교는 '종교'(religion)의 축에 들지도 못하는 '민간신앙'(folk belief)으로 불리거나 아예 '미신'(superstition)으로 폄하되기가 일쑤였기 때문에, 언제나 근대 무대의 외곽에 머물 수밖에 없었지요.

여러 종교들의 사정이 이러했기에 근대 초기인 개항기에는 기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종교들에서도 과학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일제강점 이후 1920~30년대에 근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기독교를 서구 문명과 동일시하던 환상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 개신교에서는 경전을 문자주의적으로 이해하고, 성령체험을 강조하며, 내세 지향성이 강한 근본주의적 경향이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또 천주교는 도시보다는 농촌의 기반이 더 컸고, 전래 당시부터 내내 지배적이었던 현실 도피적이고 내세 지향적인 성격의 신앙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지요.

사정이 이러했기에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독교가 합리성이나 근대성에 부합하기는커녕 오히려 비합리성과 전근대성의 온상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증가하게 되지요. 이 시기에 벌어진 사회주의자들과 개신교인들의 담론 투쟁이나 세력 대결―양측의 집회 현장에서 서로를 비난하다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사태가 여러 번 있었지요―은 이러한 상황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한 사례입니다.

기독교를 둘러싸고 그 안팎에서 종교와 과학에 관한 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즈음인데요, 여기서부터는 근대 서구에서 기독교와 과학의 관계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비슷하게 재연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우선 기독교 바깥에서는 기독교가 필연적으로 과학과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보는 식의 견해가 부상하면서 기독교가 서구 문명의 일부이며 과학과 조화를 이룬다고 보던 기존의 견해와 경합을 벌이게 됩니다. 한편 기독교 내부에서도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설정하는 전략상의 분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주로 개신교만 해당하는 이야깁니다. 천주교와 관련해서는 당시에 종교와 과학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 흔적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개신교의 경우, 어떤 이들은 자유주의나 유연한 복음주의를 추구하면서 과학과 종교를 적당히 분리하거나 또는 진화론을 비롯한 근대 과학을 어느 정도 수용하여 신학과 신앙의 내용을 가다듬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근본주의나 경직된 복음주의 계열의 개신교인들은 성경을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정확하고 오류가 없는 텍스트로 보는 문자주의를 고수하면서 진화론을 비롯한 근대 과학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그 내용은 제각각이었지만 개신교에서 이제 바야흐로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폭발하기 시작한 거지요. 제가 보기에 오늘날 종교와 과학 논의에서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둘러싼 안팎의 논의가 압도적으로 많은 현실은 이 당시 형성된 상황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한편 같은 1920~30년대에는 기독교 이외의 다른 일부 종교들에서도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 관계 유형은 쉽게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데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와 과학은 조화될 수 없는 갈등 관계라고 보는 태도,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태도, 종교와 과학을 적당히 분리하는 태도, 종교가 과학을 포용하거나 능가한다고 보는 태도, 과학이 종교의 진리를 증명한다고 보는 태도 등입니다.

제 나름대로 구분해본 것인데요, 사실 기존에 누가 전체적으로 연구하거나 정리한 바가 없어서, 제가 이 편지를 쓰면서 나름대로 기존의 일부 연구들과 여러 자료들을 토대로 잠정적으로 구분해본 겁니다. 아직 가설 수준이라 좀 더 자료를 뒤져보고 생각을 정리한 후에야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기독교와 과학 이외의 경우에는 이런 주제에 관한 논의가 별로 없다보니 당장 저 혼자 여러 생각을 정리하기가 좀 벅차네요.

다만 한 가지만 우선 짚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가만히 보시면 제가 제시한 기독교 이외 종교들에서의 종교와 과학 관계 유형들에서 오늘날의 종교와 과학 논객들이 제시하는 관계 유형과 비교하여 더 있거나 없는 것 등 차이가 보이실 겁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중심으로 종교와 과학의 관계 유형을 정리한 대표적 학자인 이언 바버(Ian Barbour)는 갈등, 독립, 대화, 통합의 네 가지 관계 유형을 제시하는데요, 제가 제시한 기독교 이외 종교들의 과학과의 관계 유형에서는 종교와 과학의 적극적인 만남을 시도하는 대화나 통합 유형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비교적 간단합니다. 대화와 통합이란 충분히 긴 시간 동안 많은 논의가 축적된 후에야 비로소 시도될 수 있는 것인데, 서구에서 오래 진행되어온 논의가 있었기에 한국의 기독교는 비교적 충분한 토대 위에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었지만, 다른 종교들은 대개 처음부터 모든 논의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논의가 이제야 막 싹트던 단계에 불과했기에 대화와 통합의 논의는 아직 시기상조였던 셈이지요. 물론 오늘날은 특히 불교 같은 종교는 과학과의 만남에 아주 적극적이어서 국내외에서 과학과의 대화와 통합을 추구하는 다양한 논의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불교계 등 일부 종교의 일이고, 또 비교적 최근의 일일 뿐, 적어도 근대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은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종교들에서는 대화와 통합을 위한 시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는 일단 여기까지 쓰려 합니다. 다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신 선생님의 설명은 기독교에 국한하거나 기독교가 오랫동안 핵심적인 위상을 차지해온 서구의 경우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있지만, 서구와는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과 현재의 상황을 지닌 우리의 경우에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재가 있게 된 역사적 맥락을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 제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개항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온갖 종교들이 서로 경쟁하며 공존하고, 또 여러 종교들 간에서는 물론 사회와 문화 속의 종교적인 것들과 세속적인 것들 사이에 복잡한 관계와 상호작용이 벌어지게 된 역사적 연원을 밝혀내보려 했던 것이고요.

저는 기독교와 그 밖의 종교들에서 과학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에 왜 이렇듯 큰 차이가 생기게 되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근대 초기에 서구 근대성과 더불어 서구 과학과 서구 종교인 기독교가 유입된 후 종교 지형이 대대적으로 재편되던 과정에서 문제의 해답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 설명이 신 선생님의 설명을 폐기하거나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신 선생님의 설명에서 부족한 우리의 맥락에 대한 보완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애는 썼는데 제대로 전달이나 되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해주십시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기독교 이외 종교들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 유형들에 대해서는 꼭 제대로 준비해서 다시 편지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God과 Goodness, 가깝고도 먼


그나저나 장 선생님이 전해 준 소식, 대니얼 데닛이 큰 병마를 이겨 냈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알려주신 사이트에 들어가서 데닛의 글도 재미있게 읽었고요. 비록 데닛과는 안면이 없지만 멀리서나마 쾌유를 축하한다고 전해 주세요. 참, 그러고 보니 제가 방금 쓴 말들이 데닛에게는 좀 귀에 거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병마(病魔)'라든지 '축하(祝賀)'라든지 하는 표현 말입니다. 'Thank God' 대신 'Thank Goodness'를 말하는 데닛에게 '병마'는 마치 질병의 초자연적 원인을 말하는 것처럼 들릴 테니까요.

하지만 비록 '병마'라는 말이 질병을 신이 내린 시련이나 악마의 심술 탓으로 돌리던 시절에 생겨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 이 말은 별다른 종교적 함의 없이 그저 질병의 중대함을 뜻하는 상투적 수사로 쓰일 뿐이죠. 우리가 '화마(火魔)'나 '수마(水魔)'를 말한다고 해서 정말 어떤 악마 따위를 연상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축하'라는 말도 마찬가집니다. 2000년 전 중국의 한자 해설서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祝'이라는 말은 본래 제사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이후로도 '祝'은 주로 신적 존재를 향한 기원을 의미하는 하는 말로 쓰였고요. 하지만 지금은 '祝'이 지닌 이런 종교적 함의는 거의 사라진 지 오래죠.

어쨌거나 지금 우리는 종교적 함의와 별 상관없이 '병마'라는 말을 쓰고, 또 기꺼운 마음으로 '축하'라는 말을 씁니다. 어쨌든 비록 데닛이 한국말은 전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싫어할지 모르니 말을 바꾸겠습니다. '힘든 병고를 무사히 극복하셨다니 참 다행입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아, '다행'이라는 말에서도 '운수'를 의미하는 종교적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이건 애교로 봐 주시겠죠.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앞에서 우리 고유의 신앙 대상인 '하늘/하느님'에 대해 했던 이야기 기억하시죠. '하늘/하느님'이 인격적 신을 의미할 수도, 그저 막연한 우주적 법칙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요. 그런데 이는 서양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서양에서 대문자 'God'은 야훼나 알라처럼 유일신교의 특정한 인격적 신을 지칭하는 게 보통이고, 소문자 'god'은 유일신교 이외의 다양한 신들이나 또는 신에 관한 일반 명사로 쓰이는 게 보통이죠. 어떤 경우든 유신론적 함의를 지니는 건 사실이고, 따라서 무신론자인 데닛이 이 단어를 쓰기 싫어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God'이 꼭 이렇게 유신론의 함의를 지니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Heaven helps those who helps themselves)'는 격언이나 '신만이 아신다(Only God knows)' 같은 표현에서 'Heaven'이나 'God'은 한편으로 인격적 신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경우처럼 그저 인간사를 초월하는 저 너머의 막연한 무엇, 우주와 역사를 움직이는 비인격적인 어떤 법칙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데닛은 'God'이 이런 비(非)유신론적 맥락에서 쓰일 수 있다고 해도 그 유신론적 함의가 너무 강하기에 이를 거부하고 싶었던 것 같네요. 그런데 혹시 데닛은 식구들이랑 T.G.I Friday's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가지 않으시려나요? 참, 안 갈 것까지는 없겠군요. 이 상호의 'G'는 애초부터 'God'과 'Goodness'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 'Thank God It's Friday!'가 아닌 'Thank Goodness It's Friday!'로 받아들이면 그만일 테니까요. 참 요즘은 더 나아가 'Terribly Gleeful It's Friday!'(너무 좋아 금요일이야!) 이런 식으로 바꾸어 쓰기도 하니까요.

사실 'God'이라는 말을 'Goodness'처럼 다른 말로 바꾸어 쓰려는 시도는 데닛 이전에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온 것이기도 합니다. 꼭 데닛 같은 무신론자가 아니더라도 'God'이라는 표현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늘 있기 마련이니까요. 아무튼 약간의 장난기가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진정한 무신론자라면 언어 자체를 바꾸려고 시도해 봄직도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언어라는 게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기나긴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법인지라 이런 시도가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다른 경우이기는 하지만 수천 년 동안 사용되어온 고질적인 가부장적 어휘들의 상당수가 페미니즘 덕분에 불과 몇 십 년 만에 양성 평등적 어휘로 대체되었다고 점을 생각하면 (예를 들어 불특정한 인간 주체를 가리키거나 3인칭 대명사를 쓸 때 예전에는 man이나 he만 썼지만, 이제는 man과 woman을, 또 he와 she를 동시에 쓰거나 human 같은 비교적 젠더 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합니다. 또 policeman 같은 단어는 police officer로 바뀌었죠), 종교적 함의가 담긴 기존의 용어를 바꾸려는 시도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다양한 종교들이 있을 뿐더러 종교에 관련된 태도도 무척이나 다양합니다. 인격적 신을 믿는 종교에는 유일신교와 다신교를 비롯한 다양한 흐름이 있고, 이와 별도로 인격적 신과 그다지 상관이 없는 종교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무종교적이거나 비종교적인 사람들 중에는 불가지론자나 무신론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에 속하지는 않지만 명백한 종교적 성격의 신념을 지니고 그런 실천을 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실의 이런 복잡성을 인정한다면 특정 종교에 뿌리를 둔 기존의 언어를 종교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종교적 함의가 없는 새로운 언어를 바꾸려는 시도는 분명 중요한 의의를 지니지 않을까 합니다.


기도나 기적은 효과가 아니라 의미의 문제다


쓰다 보니 좀 길어졌습니다. 장 선생님 편지에는 당장 제대로 답장을 쓰기는 힘들 것 같네요. 되는대로 적어 봅니다. 우선 기도나 기적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종교학자가 그렇듯이 저도 그 실제성이나 인과적 효과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저와 생각이 다른 종교학자들도 있겠습니다만, 제 경우는 일단 장 선생님이 제시하신 통계적 결과들, 즉 기도와 그 효과에 대한 연구에서 양자 간에 아무런 인과적 연관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결과를 신뢰하는 편입니다.

이는 기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의학이 못 고친 병을 기도원에서 고쳤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연히 그런 '기적적' 치유가 꼭 기도원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닙니다. 사찰이나 굿당이나 신종교 교당에서 병이 나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지요. 물론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의학적 치료를 포기한 후에 그저 일상에서 자연적 과정에 의해 저절로 치유되는 경우도 있겠고요. 이에 대해 연구된 바는 보지 못했지만, 충분한 수의 표본이 확보된다면 여러 종교들의 특별 치유 사례의 빈도나 의료적 조치를 포기한 후의 일반적인 자연 치유 사례의 빈도에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는 나타나지 않을 것 않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생각이 나네요. 기도의 효과에 대해 주일 학교 선생님에게서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답을 들었던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노회(개신교 교파인 장로교의 지역 조직) 대표로 뽑혀 전국 성경 시험 대회에 출전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요, 매년 장려상 아니면 낙방이었죠.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꼭 일등상을 타게 해 달라고 기도도 열심히 했는데, 매번 실패하니 어린 마음에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주일학교 선생님께 물었죠.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거죠?' 그러자 선생님이 이렇게 답해 주셨습니다. '얘. 기도를 너만 하는 건 아니겠지? 하나님이 너만 사랑하실까? 다른 친구들도 똑같이 사랑하시겠지? 그렇다면 하나님이 누구 기도를 들어주실까? 조금이라도 더 많이 노력한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게 당연하겠지? 그치?' 뒤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죠. 결국 중요한 건 순전히 내 노력이구나!

사실 제가 선생님께 질문을 했던 데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같은 교회 후배도 같이 출전해서 그 학년의 일등상을 탔는데, 그 다음 주에 전교인 앞에서 그 친구가 간증을 했죠.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답안지에 마치 누가 미리 써 놓은 것처럼 답이 선명하게 보여서 그대로 적었다고 하더군요. 모든 교인들이 '아멘!' 하는데,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죠. 시험 끝나고 같이 답안지를 맞춰 보면서 그 친구가 나보다 고작 몇 개만 덜 틀린 걸 보았는데, 정말 하나님이 그 친구에게 직접 정답을 알려주셨다면 왜 기왕이면 전부 다 가르쳐 주지 않고 굳이 몇 개는 틀리게 가르쳐 주셨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고요. 어쩌면 그 후로 사춘기를 지나 오래도록 한편으로는 신앙심의 부족을 자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성경의 내용이나 기도의 응답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을 계속 키웠던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어쨌든 기도나 기적이 인과적 효과가 별로 없다는 과학적 연구 자체에 대해 저는 별로 토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드네요. 그래서 그게 무어 그리 중요하지? 정작 중요한 건 기도가 효과가 정말 있느냐, 기도에 응답하는 신이 정말 존재하느냐,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 대상이 누구든 또 무엇이든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에서 기도라는 행위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닐까?

일전의 편지에서 제가 결코 무신론자는 되지 못할 것 같다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죠. 사실 제대로 기도를 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몇 년 전 기도 비슷한 걸 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크게 위독하셔서 의식을 잃으셨을 때였는데요, 그때 저는 병동 계단에서 서서 창밖 먼 하늘을 바라보며 정말로 오랜만에 '그분'에게 말을 걸었죠. '그분'이 내가 전에 알았던 기독교의 하나님인지 아니면 그저 막연한 알 수 없는 신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기도는 진심이었습니다.

신파조 같기는 하지만, 그동안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괴로웠던 데다가, 런던에서 이제 막 한국행 비행기를 탔을 막내아들과 며느리의 얼굴도 못 본 채 그렇게 가실까 봐 마음이 너무 아팠죠. 그런데 동생 내외가 도착한 후 아버지께서 갑자기 의식을 되찾아 미음도 한술 들고, 온 가족과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심지어 장차 태어날 손자손녀의 이름까지 미리 지어 주셨죠.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났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깜빡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차창 밖으로 먼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다시 막연히 '그분'에게 아버지의 의식이 잠시나마 돌아오게 해 주셔서 고맙다고 말했지요.

기도에 대한 장 선생님의 질문에 제가 할 수 있는 답은 당장은 이것뿐이네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순전히 통계적 연구만 놓고 본다면, 기도의 실질적 효과에 대한 증거는 전혀 없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그런 통계 수치에 갇히지 않는 숱한 차원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당시에 제가 했던 그 어설픈 기도가, 기도하는 법조차 잊어버린 냉담한 회의주의자이자 모호한 불가지론자가 된 제 마음속 독백이 도대체 기도라고나 할 수 있을지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그 순간 인간이나 의학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저 하늘 너머의 막연한 누군가를 향해 제 간절한 바람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그동안의 꾸준한 의학적 치료가 있었던 덕분에 신체 기능이 잠시 회복된 것일 뿐일 수도 있겠지요. 또 모든 것이 그저 순전한 우연일 뿐일 수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적어도 바로 그 시간에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것, 아버지가 눈을 뜨고 잠시나마 식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우리 모두에게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 어떤 신적 존재 덕분이든 아니든, 제가 한 것이 기도라고 할 수 있든 없든, 저는 기적을 바라며 저 하늘의 막연한 '그분'에게 부탁을 했고, 장례 일로 경황이 없어 잠시 잊기는 했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을 다시 떠올리면서 잊지 않고 '그분'에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옆으로 새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제 개인적 이야기만 하고 말았네요. 기도나 기적이 효과가 아니라 의미의 문제라는 많은 종교학자들의 논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논의를 일일이 소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였습니다. 저는 기도에 응답할 어떤 신적 존재가 있든 없든, 또 기적이 기도의 효과든 아니든, 이런 문제를 떠나 기도란 우리 인간이 삶에서 부딪히는 풀리지 않는 물음들과 문제들을 조금이나마 풀어내는 실마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사물을 인격화하는 습성은 결코 미개한 사고가 아니라 인간이 주변 세계와 관계를 맺는 주된 방식 중의 하나이며, 이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는 사고라고 말합니다. 더글러스의 통찰은 기도에 대한 궁금증에 일말의 빛을 던져 줍니다.

제 연구실에는 화분이 여러 개 있는데 깜빡하고 며칠 물을 안 주어서 시들한 모습을 볼라치면 화들짝 놀라 화초들에게 미안해하면서 어서 기운차리라고 말하며 물을 주고는 합니다. 글쎄요. 이렇게 화초들에게조차 말을 걸 수 있다면, 비록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할 수도 없고, 또 설령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해도, 우리는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에게도 여전히 말을 걸 수는 있는 거겠지요. 그 누군가가 신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또 그런 존재가 있든 없든,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의 기도하고 싶어 하는 마음, 기도를 하는 그 행위, 그리고 바라던 바의 성취나 실패를 나름의 해석 체계 속에서 받아들이려 하는 시도, 이런 것들이 아닐는지요. 아무튼 기도라는 것을 해 본 지 다시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언젠가 힘들거나 다급할 때면 저는 아마 다시 또 염치없이 '그분'에게 말을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제 인생 이력에 종교적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도란 신앙의 유무나 종류를 떠나, 또 유신론자나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를 떠나, 누구든 마음속의 생각이나 바람을 저기 어딘가 실재한다고 여겨지는 대상을 향해 말하는 소박하고 진솔한 고백의 한 가지 형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적 설명의 진보와 고갈되지 않는 의미의 영역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들에 대해 장 선생님이 써 주신 친절한 설명도 잘 읽었습니다. 그 다양한 설명의 시도들이 다 일정한 한계를 가지지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나선형을 그리듯 발전해 온 모습도 잘 보았고요. 아마도 그들은 더 많은 탐구가 이루어지면 결국 '믿음 엔진'을 순수한 과학의 언어로, 순전한 진화의 과정으로 다 설명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겠지요.

그게 우리 세대나 다음 세대에 당장 가능하지 않더라도 끝없는 물음과 탐구 자체는 정말이지 인간이 지닌 가장 소중한 측면들 중 하나임이 분명할 겁니다. 다만 저는 과학적 탐구가 아무리 멀리까지 깊이까지 나아가 많은 것을 밝혀낸다고 해도, 한편으로 과학과 다른 한편으로 종교나 시나 예술 사이에는 아킬레우스와 거북의 역설(제논의 역설 중 하나. 걸음이 몹시 빠르며 불사신이었던 그리스 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거북보다 늦게 출발하면 결코 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역설)이 여전히 남기 마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과학이 무엇을 밝혀내든 과학적 설명에 소진되지 않는 의미의 영역은 언제나 계속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과학이 아무리 자연을 또 인간 마음의 구조와 기제를 아무리 낱낱이 밝혀낸다고 해도 시인들은 여전히 그들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언어를 끊임없이 주조해 내겠지요. 물론 예술가들도 그럴 테고요.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경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문자주의의 닫힌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신앙으로 이성을 뭉개 버리지 않는 건전한 마음을 지닌 종교인이라면,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경계로부터 다시금 끝없이 새로운 물음들을 빚어낼 겁니다. 새로운 물음은 곧 새로운 의미를 자아내기 마련일 테고요. 결국 과학과 더불어 종교와 시와 예술, 이 모두는 곧 우리가 흔히 '문화'라고 부르는 커다랗고 복잡한 덩어리의 일부들이 아닐는지요.

장 선생님께서는 또 종교를 형이상학적 신념이나 진리에 관련된 세계관의 일종으로 보셨지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는 종교를 너무 좁게 이해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물론 특정한 세계관에 근거한 신념은 분명 종교의 일부이고 가장 핵심적인 측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계관이라는 요소만으로는 종교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세계관에는 종교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종교적이고 세속적인 세계관도 수두룩하고, 또 무엇보다도 종교가 단지 세계관이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계관은 어디까지나 종교의 복잡하고 다양한 여러 측면들 중 하나일 뿐이지요.

종교에는 신념이나 세계관과 밀접히 연관되지만 결코 그런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몸짓 고유의 차원이 있습니다. 바로 의례적 실천이지요. 또 종교에는 공동체와 뗄 수 없이 결합되어있는 사회적 차원도 있습니다. 바로 제도의 영역이지요. 저는 이런 차원들 중 어느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종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저는 종교란 인간 몸의 구체성과 인간 삶의 물질적 토대 위에 구축되는, 아니 그 물질적 토대와 뒤섞이며 직조되는 복잡한 덩어리인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종교학도로서 문화 속의 종교적 요소나 층위가 과학이나 예술 같은 문화의 또 다른 층위나 요소와 관련되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물질성의 토대 위에서 솟아나는 의미의 영역, 그 영역은 과학적 탐구나 예술적 표현이나 종교적 언술로도 결코 고갈되지 않습니다. 의미란 처음부터 정해진 방식으로 있었던 어떤 실체 따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의미라는 것이 단지 우리가 발견하면 되는 고정된 실체였다면 그런 의미는 이미 오래 전에 소진되었거나 언젠가는 소진되고 말겠지요. 하지만 의미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의미란 우리가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던지는 물음들에 의해 예기치 못했던 방식으로 계속 생성되는 효과일 뿐입니다. 종교와 과학에 관한 논의들에서는 이렇게 새로운 의미들이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생생하고 흥미진진한 과정이 드러납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삶의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생성해내기 위해 분투하는 우리 인간의 한 단면이기도 하겠고요. 이 점이 바로 제가 종교인이나 과학자가 아닌 종교학자의 입장, 그리고 유신론자나 무신론자가 아닌 불가지론자의 입장이라는 다소 모호한 제3의 자리에서 종교와 과학의 흥미진진한 만남에 관심을 갖는 주된 이유입니다.

쓰고픈 말은 많습니다만 정리도 잘 안 되고 어느새 날도 새고 있으니, 이만 적어야겠습니다. 동지가 지난 지 어느새 두 달이군요. 며칠 전만 해도 이 시간이면 새벽녘이 여전히 어두웠는데, 어느새 여명의 기운이 빨라졌습니다. 오랜만에 옥상에라도 올라 도심의 아파트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나마 한껏 누리고 싶어집니다.

남미의 지평선을 뚫고 오르는 장대한 일출이든, 동해 바다의 위용에 찬 일출이든, 도심의 소소한 일출이든, 모든 일출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설렘을 주죠. 어쨌거나 태양은 세상을 고루 비추는 빛이고 또 모든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근원적 에너지니까요. 고대 이집트인들이나 일본인들처럼 태양을 신으로 섬기지는 않더라도, 태양은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아름답고 위대한 신비이기만 할 겁니다.

여명이 아침으로 바뀌기 직전이네요. 어서 옥상에 올라가야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또 연락드리지요.


2007년 2월 20일 새벽,

오산에서

김윤성 드림,

 

 

"종교에 손 내민 과학자…그의 '속내'는?"

과학과 종교의 대화 <7> 종교인의 '과학'은?



독자들의 관심 속에 진행 중인 '과학과 종교의 대화'가 세 번째 서신 교환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가 신재식, 김윤성 교수에게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장 교수는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와의 만남을 화제로 '과학자가 종교를 어떻게 보는지'를 설명하고, '종교인이 과학을 어떻게 보는지' 묻는다.


신재식, 김윤성 선생님께


보스턴에서 인사드립니다. 벌써 3월 말이네요. 보스턴이 겨울이 길고 가끔씩 4월에도 눈이 온다고 하는데, 최근에 눈 소식은 없습니다. 저는 별 상관없지만 아이들이 무척이나 아쉬워하더군요. 지난달까지만 해도 눈이 오면 무조건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브래킷 초등학교 언덕에 올라가 눈썰매를 타곤 했지요. 한 번이라도 더 탈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어요. 올 겨울에는 한국에 있을 텐데 그때쯤에는 보스턴의 눈썰매가 아쉽겠지요.

지난번 편지에서 저는 과학자의 메스로 종교를 해부해 보았습니다. 저는 종교가 종교인, 신학자, 종교학자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초월적 뭔가가 아니라, 과학자의 시선을 필요로 하는 '자연 현상'임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김 선생님은 '자연 현상으로서의 종교'보다는 '문화 현상으로서의 종교'로 말씀하고 싶으시겠지만, 저는 그 '문화'라는 것도 결국 '자연 현상'이기에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연 과학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억나시죠?

드디어, 지난주에 종교로 과학을 해부해 온 대표적 과학자 두 분과 함께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사회생물학>, <통섭>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을 만날 거라 예고해 드렸었지요. 그 '꿈'이 지난주에 이뤄졌던 겁니다.


드디어, 에드워드 윌슨을 만나다


그를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데닛과 스쿼시를 치던 시절, 그러니까 그가 작년 10월 중순에 갑작스레 심장 대동맥 수술을 받기 두 주 전, 격렬하게 몇 게임을 하고 나서 잠시 쉬던 차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리처드 그리핀 박사(Richard Griffin,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배런 코언(S. Baron-Cohen) 밑에서 학위를 하고 터프츠 대학교에 데닛의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 와 있는 친구로 아동의 '마음 이론(theory of mind)'에 대해 연구 중입니다.), 그의 친구, 그리고 데닛, 저, 그리고 인지 연구소의 대학원 조교 한 명이 같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윌슨이 낸 최근 저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왜 윌슨이 책 제목을 'Creation'이라고 지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을 꺼내자 즉석에서 데닛이 윌슨하고 점심 한번 하면서 같이 이야기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지요. "자네는 그의 <통섭(Consilience)>도 번역하지 않았나" 하고 덧붙이면서 말이죠. 저야 "당연히 좋습니다!"라고 할 수 밖에요. 제 어찌 평생 윌슨같이 훌륭한 학자를 개인적으로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지난번에 전해 드렸듯이, 데닛은 연구실에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응급실로 실려가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넘겨 정말 다행히도 작년 12월 중순부터 정상적인 생활을 하시게 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데닛이 쓴 에세이("Thank Goodness")에 대해서는 지난 편지에 제가 이야기해 드렸지요. 어쨌든 데닛은 저와 크리스마스 이메일을 주고받는 중에 올해 1월 정도에 윌슨과 함께 만나자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것이 결국 지난 주, 그러니까 2007년 3월 13일에야 성사되었지요. 1~2월은 윌슨이 여행을 많이 다녀서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약속은 정오에 윌슨 연구실에서였습니다. 11시에 터프츠 대학교의 데닛 연구실에서 데닛을 만나 하버드에 같이 가기로 했기 때문에 저는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갔습니다. 데닛을 처음 만날 때도 그토록 긴장되지는 않았는데 왠지 모를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어렵게 성사된 약속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는 데닛이 윌슨과 약속을 아직 못 잡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좀 죄송해서 데닛에게 윌슨이 원래 대답을 빨리빨리 안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지요. 그랬더니 그건 아니고 여행 중인 것 같다고 하면서, 윌슨은 자신의 친한 친구니 그런 걱정은 말라고 하시더군요.) 어쨌든 저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 재개를 하고 생전 안 닦던 구두도 슬쩍 문지르고 집 문을 나섰습니다.

11시 정각에 데닛의 연구실에 가서 기다리며 그의 비서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데닛이 조금 늦게 핸드폰을 귀에 대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서 나에게 같이 가자는 신호를 보냈더군요. 그는 차에 타서도 전화를 놓지 않고 뭔가를 듣고 있었는데 조금 있다 알고 보니 NPR(National Public Radio)의 한 프로에 전화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날은 국가의 종교 교육에 관해 어떤 저자와 대담을 하고 있었는데, 종교 교육에 대한 데닛의 견해를 듣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하버드 대학교가 있는 케임브리지로 가는 내내 데닛은 한손에 전화를 한손에는 핸들을 잡고 갔습니다. 그리고 한두 차례 의견을 주고받더군요. 그는 "아니요. 저는 종교를 이 땅에서 몰아내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의 종교들이 더 좋은 종교가 되도록 돕자는 것이지요. 저는 모든 학생들에게 종교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합니다. 다만 특정한 종교가 아니라 주요한 모든 종교들의 경전, 의식, 주장 등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저 같으면 어딘가에 주차해 놓고 여유 있게 인터뷰를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더군요. 아마도 윌슨과의 만남 시간에 늦지 않는 게 더 중요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 인터뷰는 오늘 윌슨과의 만남에서 나올 주제를 예고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5분 정도 일찍 도착해 윌슨의 실험실이 있는 하버드 대학교 자연사 박물관 4층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니 웬 할머니 한분이 따뜻하게 맞아 주더군요. 알고 보니 윌슨의 비서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윌슨이 얼굴을 내밉니다. 데닛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반갑다고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데닛이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저를 소개해 줬습니다. "서울에서 온 내 포닥인데 당신의 <통섭>을 번역한 친구"라고요. 저는 너무도 평범한 인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라고요. 하긴 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데닛과 저를 자신의 서재로 먼저 데려가더니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고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책을 소개해 주고는(아마 서평을 쓰던 중이었나 봅니다.) 문을 나와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는 열댓 개의 철제 파일 박스를 보여 줬습니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논문들입니다." 제가 물었지요. "혹시 모두 선생님이 쓰신 논문들인가요?" "아 그건 아니죠. 내가 논문을 많이 쓰긴 했지만 어찌 이렇게 많겠어요?" 그러고는 바로 비서실과 선생님 연구실 중간에 있는 회의실 같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거기에는 오늘 점심을 위해 준비된 초밥 도시락과 음료수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통섭> 한국어판 두 권과 미국판 <생명의 편지> 한 권을 가방에 챙겨 가져갔습니다. <통섭> 한 권은 기념으로 윌슨에게 주고, 한 권은 <생명의 편지>와 함께 저자 사인을 받아갈 욕심이었죠. <통섭>을 꺼내 놓고는, 제가 'Jae Choe'(외국 학자들은 최재천 교수님을 이렇게 부릅니다.)와 함께 이 책을 번역했고, Jae Choe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자, 윌슨은 그럼 "내 학문적 손자가 왔다"라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 줬습니다.

<통섭>이 한국에서 1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하자, 바로 한국의 인구가 얼마 정도 되냐고 되물으시더니 4500만 명 정도 된다고 하자, 그러면 미국으로 치면 10만 부 정도 판매되었으니 큰 성공이라고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그만큼 팔린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이 '통섭'이라는 개념이 한국의 지식계에 아주 중요한 화두로 널리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잠시 거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지요.

윌슨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에서 대화를 비무장 지대(DMZ) 문제로 끌고 가셨습니다. 데닛은 DMZ에 대해 처음 듣는 모양이었습니다만, 윌슨은 오래전부터 한국의 DMZ에 관심을 가져 왔었지요. 한번은 <뉴욕타임스>에 "전쟁이 만들어 준 생태 낙원"인 DMZ를 생태 공원으로서, 남북한은 물론, 세계가 국립공원이자 세계 자연 유산으로서 가꿔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을 정도이지요.

윌슨은 한반도 통일 후 DMZ 운용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까지 이야기하더군요. 사람들이 많이 다녔던 곳은 조그맣게 관광지로 개발하고 나머지 처녀지는 지금 상태 그래도 유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생태 문제에 여생을 헌신하기로 작정하신 분답게 매우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언제부터 DMZ에 관심을 가지셨냐고 여쭤 보니 7~8년 되셨답니다. 그러면서 빨리 통일이 되도록 부시가 제발 잘 좀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며 웃으셨지요.


전사 도킨스, 전략가 데닛 그리고 외교가 윌슨


DMZ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생태계의 위기 이야기로 번졌고 윌슨, 데닛, 그리고 저는 자연스럽게 윌슨이 작년에 출간한 <생명의 편지>로 화제를 옮겼습니다. 아시듯이 이 책은 윌슨이 (가상의) 목사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의 편지들에서 여러 번 논의를 주고받았던 것처럼 어린 시절 어쩌면 앨라배마에서 함께 기도하며 신앙을 함께 키웠을지도 모르는 남침례교 목사를 향해 쓴 편지로서, 진화 생물학자로서의 면모보다는 지구의 생태 위기를 가장 시급한 문제로 보는 생태학자의 면모가 조금 더 드러나는 책입니다. 표지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오지요. "가장 시급한 문제인 생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과학과 종교 간의 형이상학적 긴장은 제쳐 두자. 생태 위기는 두 영역이 함께 손을 잡고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데닛이 먼저 운을 떼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저와 리처드 도킨스의 종교관이 어떻게 다른지를 묻더군요. 저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하죠. 내 이야기는 종교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공공 학교에서도 종교(모든 종교)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다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종교의 실상을 알 수 있고 종교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종교를 더 좋은 종교로 만들 수 있다. 제 주장은 이런 거지요. 그런 면에서 제 견해는 당신(윌슨)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요."

두 분 선생님은 작년에 출간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데닛의 <주문 깨기(Breaking the spell)>, 그리고 윌슨의 <생명의 편지>까지 보셨으니 이들의 대화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최근 1∼2년은 진화론의 대가들이 저마다 종교에 대한 책들을 출간했던 아주 흥미로운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종교의 기원, 유지, 기능에 대해 모두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일 겁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이 차이 중 어떤 것은 아주 미묘해서 전문가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윌슨이 데닛의 말을 이렇게 받습니다. "저는 리처드(도킨스), 당신(데닛), 그리고 나의 차이를 이렇게 규정하고 싶소. 리처드는 종교와 전쟁을 벌이는 전사이고, 당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를 재고하게 만드는 영리한 전략가이며, 나는 생태 문제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풀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실용주의자이죠." 이런 성격 규정이 맘에 들었는지 데닛이 맞장구를 치더군요. "이 얼마나 절묘한 분업입니까!"

사실 저는 좀 싱거웠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역할을 딱 정리하고 끝날 줄은 몰랐습니다. 내심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고 싶었거든요. 우선 "형이상학적 문제를 제쳐 두자."라는 윌슨의 태도가 맘에 좀 걸리더군요. 앞의 편지에서 이야기했듯이 윌슨은 종교를 하나의 '적응(adaptation)'으로 간주합니다(한국에도 출간된 <통섭> 10장을 보면 그 입장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신과 같은 초월자를 믿게끔 진화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가령, 동물 집단에서 나타나는 서열 행동(열위자가 우위자에게 복종하는 행동)과 종교와 권위에 순종하는 인간의 행동을 비교하면서 동물들이 이런 행동을 통해 각자의 적응적 이득을 높이듯이 인간도 종교적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였다고 말했지요. 종교 행위를 자연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참신한 시도였습니다. 이런 식의 도전적인(기존의 종교 현상학 이론들에 비할 때) 이론은 온데간데없고, 생태 문제를 위해 손을 잡자니……. 나쁘게 말하면 솔직히 윌슨이 기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초대해 준 석학한테 그건 절대 예의가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데닛마저도 너무 쉽게 윌슨의 태도를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 같아 사실은 좀 놀랐습니다.


종교를 이용하려는 윌슨의 논리는 매우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묻더군요. "미국의 복음주의 연합에 가입된 신도수가 얼만지 아세요. 수천만 명이에요. 그러면 미국 무신론자 연합은 얼마나 될까요? 많아야 수만 명일 겁니다. 나도 철저한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이슈를 위해서 이 엄청난 수의 사람(저의 것과 양립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전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놀랍고 고무적인 것은 이들이 내 이야기를 정말로 경청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책을 계기로 많은 강연회를 다녔는데 기독교 단체들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요. 마치 고향에 간 느낌이었어요." (웃음)


잘 알려져 있듯이 윌슨은 어린 시절을 전형적인 남침례교인처럼 지낸, 이른바 '거듭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진화를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 믿음을 버리게 되었지만 종교적 에토스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통섭을 지향하는 그의 학문적 태도와 방법론이 매우 기독교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히브리 전통이든 헬라 전통이든 "모든 지식은 결국 하나님의 지식"이라는 발상은 지식의 현대적 파편화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이번에 저는 그의 글이 아닌 그의 언행에서 직접적으로 기독교적 냄새를 좀 맡았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참 어렵지만 기독교인들을 많이 대해 보면 알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느낌이랄까요.


이에 질세라 데닛도 몇 주 전의 그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남침례 대학교에 초청을 받아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지요. 아주 진지했고 훌륭한 질문들을 던지더군요. 아주 고무적이었어요."


이렇게 보니 우리의 도킨스만 이 대목에서 약간 소외되는 분위기입니다. 도킨스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겠다고 초청하는 교회나 신학교는 거의 없지 않나요? 물론 신학자들이나 비판자들과 제3의 장소에서 논쟁을 즐기고 있다는 소식은 저도 듣고 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면에서 도킨스를 지지하고 의견을 같이하는 데닛이지만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약간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신>에 대한 한 서평에서 데닛은 그 점을 명확히 했지요. "종교의 지위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그와 좀 다른 것 같다."라는 식으로 자신이 '이단'임을 '고백'했고, "오늘날 그 누가 신 존재 증명 같은 것에 큰 관심을 보이겠나? 신 존재 증명의 실패를 그렇게까지 길게 쓸 필요는 없다."라고 도킨스의 책에 대해 한마디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오히려 "신에 대한 믿음(belief in god)"보다 "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믿음(belief in belief in god)"이 퍼져 있는 것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특히 템플턴 재단(Templeton Foundation)에 대한 입장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 재단은 주식 투자로 떼돈을 번 존 탬플턴이라는 사람이 세운 비영리 단체로서 특히 과학과 종교의 관계 문제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여러 형태의 자금을 대줍니다. 매년 탬플턴 상을 주는데 상금이 장난 아닙니다. 아시듯이, 한국에서는 영락 교회의 원로 목사인 한경직 목사가 그걸 받아서 화제가 된 적이 있지요.


어쨌든 두 사람은 모두 한 번도 그 돈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요, 왜 받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윌슨은 그 자금으로 진행 중인 하버드 프로젝트(하버드 신학 대학이 주관 기관이 되어 하는 프로젝트로 이타성에 대한 연구입니다)에 참여했지만, 받아야 되는 돈을 거부했다고 하더군요. 이유인즉, 그 자금이 종교에 대해 좋은 결과만을 내도록 은근히 치우쳐져 있답니다.


데닛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유의 진화(Freedom Evolves)>라는 책을 막 쓰기 시작할 즈음, 그 재단의 저술 지원 프로그램에서 문의가 왔었답니다. 한번 지원해 보라는 식으로 권유를 하더랍니다. 지원 요강에 아주 딱 맞는 책이어서 한번 지원해 볼까도 생각했었답니다. 하지만 템플턴 재단의 방향과 그간의 성과 모음들을 보고는 결국 마음을 접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이론이 완전히 왜곡되어 그 재단의 홈페이지에 올라져 있는 걸 보고 항의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윌슨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묻더군요. "왜 저명한 과학자들이 그 재단을 통해 뭔가를 하는지 아오? 그건 돈의 유혹 때문일 거요. 책 한 권을 쓰면 엄청난 돈을 주거든. 그건 유혹이지." 데닛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 그 재단 돈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보면 그 모든 것이 이해가 갑니다. 은근히 종교를 띄워 주고 있거든요. 집단 선택론으로 말이죠." 윌슨이 몇 해 전에 출간한 <종교는 진화한다(Darwin's Cathedral)>를 두고 한 말일 겁니다.


이렇게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2시간 넘게 계속되었지요. (대화의 후반부에는 윌슨이 현재 쓰고 있는 <초유기체(Superorganism)>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책은 윌슨이 줄곧 주장해 온 친족 선택(kin selection) 이론을 스스로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데닛과 저는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긴 하지만, 윌슨은 확신에 차 있는 듯합니다. 자신이 예전에 틀렸다고요!?)


시계를 보니 데닛과 함께 참여하는 하버드 대학교 철학 세미나에 10분이나 늦었더군요. 자리에서 막 일어나면서 저는 가방 속에 넣어 둔 <통섭>과 <생명의 편지>를 얼른 윌슨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는데요, 데닛도 가방에서 <생명의 편지>를 꺼내더군요. 저처럼 사인을 받으려고요.


더 웃겼던(?) 것은 제가 데닛에게 선물한 제 책 <다윈 & 페일리: 진화론도 진화한다>도 꺼내면서 맨 뒤에 나오는 지식인의 지도를 펼쳐 보이고 윌슨에게 "당신과 나, 그리고 도킨스가 모두 같은 편이라고 여기 그려져 있어요. 보세요. 귀여운 그림들이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까? 순간 당황했죠. 그리고 저를 격려해 주려고 이렇게 일부러 제 책을 들고 온 데닛의 배려에 감동 먹었습니다.


종교인은 과학을 어떻게 보는가?


이야기가 좀 길어졌네요. 이해해 주세요. 제가 누구를 만나고 왔습니까? 사회 생물학의 창시자, 행동 생태학의 살아 있는 전설을 만나고 온 것 아닙니까? 그것도 인지 철학의 대가인 데닛과 함께 말이죠. 사실 이번 만남의 주제는 사회 생물학이나 인지 과학은 아니었습니다. 종교였지요. 전 세계를 대표하는 무신론자 두 분을 만나 과학과 종교에 대해 토론하고 온 셈입니다. 저는 마치 무신론의 사령부에 가서 최고위층을 만나고 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들만큼 종교를 진지하게 대하는 과학자들이 또 있을까?' 이들의 최근 작업은 어쩌면 종교에 대한 강한 '애증(愛憎)' 표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저와 데닛은 자리에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 역사적 순간(적어도 저에게는)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두 분을 찍고 있으니 할머니 비서가 다가와 저도 가서 서 보라고 그러시네요. 또 하나의 '가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데닛이 저에게 묻더군요. "정말 좋은 시간이지 않았냐"라고요. 저는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 잠시 머뭇거렸지만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지요.


잘 아시듯이, 과학자들 중에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들이 이들만은 아닙니다. 입장도 다 다릅니다. 예컨대 인간 유전체 사업을 이끌고 있는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처럼, 오히려 과학을 통해 신을 만나는 사람도 있고, 몇 해 전에 작고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J 굴드(S. Jay Gould)처럼 종교를 딴 동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기는 이도 있지요. 엘리트가 많이 모이는 교회에 가 보면 의외로 대학의 이공계 교수들도 눈에 많이 띕니다. 솔직히 그들 중에는 '신앙 따로, 학문 따로', 살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지요. 여하튼 과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그럼 종교인들은 과학을 어떻게 볼까? 좀 더 구체적으로 종교인들은 종교적 함의를 갖고 있는 천체 물리학, 진화론, 신경 과학, 유전학 등을 어떻게 대할까?' 뭐 이런 질문들 말입니다. 종교인들도 이런 분야의 최신 성과들에 대해 모두 한목소리를 내는 걸까요? 아니면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는 걸까요? 물론 '종교인'이라는 단어의 외연은 매우 넓을 것 같아요. 초자연적인 신을 믿는 신앙인들로부터 그런 신앙에 대해 탐구하는 신학자나 종교학자들도 포함될 수 있겠고, 초자연적인 신의 개념은 없지만 나름의 종교적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도 해당되겠지요. 이런 것은 신학자, 종교학자인 두 분이 더 잘 규정해 주시겠죠. 종교인들이 현대 과학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해 두 분께서 말씀해 주면 어떨까요?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2007년 3월 20일

보스턴에서 눈을 기다리며,

장대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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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과학을 '시녀'로 보는가?"

과학과 종교의 대화 <8> 기독교가 바라보는 과학



신재식 교수가 "종교인은 과학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던 장대익 교수의 질문에 답했다. 신 교수는 "한때 과학을 '시녀'로 보았던 종교는 '지동설', '진화론', '정신분석학'의 도전에 이어 최근에는 '인지 과학'과 '뇌과학'의 성과에 답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네 번째 도전이야말로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 개념인 '신'과 '영혼' 등을 건드리기 때문에 가장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기


김윤성 선생님과 장대익 선생님께


두 분 선생님의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두어 달의 짧은 기간 동안 북미의 겨울과 남미의 여름을 겪고, 이제는 한반도에서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귀국 후에도 제 주변에는 남미의 여운이 잔잔하게 남아 있습니다. 눈을 감으면, 빙하와 사막이 눈앞에 어리고, 탱고와 스페인어가 귓가에 맴돕니다.

지금은 <오트로스 아이레스(Otros Aires)>라는 음반을 듣고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 때, 숙소에서 일하던 성악 전공 학생이 추천한 음반이지요. '또 다른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의미인데, 저는 '오늘의 탱고'로 받아들입니다. 고전 탱고에 현대 멜로디와 가사를 입혀 전자 악기로 연주한 음반입니다. 전통과 현대가 묘하게 어울리면서 독특한 맛을 냅니다. 지금 우리 땅에서 그곳 음악을 듣다 보니, 남미에 머물던 그때 미처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다시 보이네요. 남미를 벗어나니, 그곳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 안에서 머물러 있을 때보다는 다소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전체를 볼 수 있어서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광주에는 무등산이 있습니다. 전라남도의 평지에 우뚝 솟아 광주를 품고 있는 커다란 산입니다. 우리 학교(호남신학대학교)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면 능선과 구릉이 전부 보입니다. 도서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자태는 탄성을 자아냅니다! 천왕봉과 서석대를 비롯해서 중봉과 토끼등까지 무등산이 전부 다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무등산에 올라 그 품에 안기면, 전체 모습을 눈에 다 담을 수 없습니다. 산과 함께 호흡하고, 그 절경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산세의 세세한 부분을 즐길 수 있지만, 산을 전부 보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종교와 과학도 그렇지 않을까요?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종교에서 벗어나서 종교를 바라보고, 과학에서 멀어져서 과학을 보는 것이, 평소 그 안에 머물렀을 때보다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자의 종교 보기'나 '종교인의 과학 보기'는 이런 점에서 무척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니얼 데닛,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종교인들이 놓치거나 미처 보지 못하는 종교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종교 담론에 대해서는 제 나름대로 비판적인 평가를 내리지만, 적어도 이들의 작업이 좁게는 종교에, 넓게는 문화 전반에 상당히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삽니다.

이런 점에서 장대익 선생님의 편지는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세 분이 나누는 대화를 객석에서 앉아서 편히 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윌슨이 <생명의 편지>를 쓴 맥락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종교나 과학의 문제에 대해 저와는 다소 다른 입장이지만, 이런 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 분 두 분 은퇴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안타깝기도 하고요.

장 선생님께서는 윌슨이나 데닛이 종교에 대해 상당히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에 대해 다소 의아해했지요. 그들의 평소 지론을 볼 때, 당연히 종교를 반박하거나 비판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었으니. 논리적 일관성이나 사고의 정합성뿐만 아니라 사유와 실천의 통일성을 중시하는 장 선생님의 입장에서 이런 태도가 좀 마땅찮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들의 태도가 다소 이해가 됩니다.

장 선생님은 종교에 대한 이들의 태도를 "애증(愛憎)"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윌슨이 도킨스와 데닛, 자신을 역할에 따라 각각 전사와 전략가, 실용주의자로 구별했는데, 참 절묘한 표현입니다. 제가 보기에 종교 문제에 대해 도킨스가 강성(hard) 무신론자라면, 윌슨이나 데닛은 회의주의에 가까운 연성(soft) 무신론자로 보입니다. 도킨스는 종교에 대한 애증(愛憎)에서 비판적 '증(憎)'이 더 강할지 모르겠지만, 데닛이나 윌슨은 종교의 현재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애(愛)'가 훨씬 강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그리스도교의 자식들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서구 문화의 일부이며, 심하게 말하면 그 자체입니다. 그리스도교를 싫어하거나 부인하거나 관계없이, 그리스도교는 데닛과 윌슨을 포함해 서구인의 자아를 구성하는 에토스(ethos)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성장 후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지만, 동시에 이들을 양육한 선천적 환경이기도 합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이들에게 그리스도교는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생태적 지위, 니치(niche)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그리스도교가 선천적 환경인 상황에서 데닛이나 윌슨 같은 미국 지성인들이 종교를 쉽게 부정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설사 그들이 대놓고 '무신론자'라고 선언할지라도. 저는 무신론자도 '종교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신론적'이라는 말과 '종교적'이라는 말이 서로 양립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제가 보기에 이들은 상당히 '영성적' 또는 '종교적'인 사람들입니다. 이에 대해 혹시 발끈할 그리스도교인들이나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는 과학자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무신론이 이념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유신론 종교지요. 무신론과 유신론은 일란성 쌍생아입니다. 게다가 '영성'이나 '종교' 개념이 포함하는 외연은 유신론 종교보다 훨씬 더 넓고요. '자연주의적 영성'이나 '종교적 자연주의자'라는 말이나 입장이 분명히 가능하고요. '더 좋은 종교를 만들자.'는 데닛이나, '종교와 실용주의적으로 협력하자.'는 윌슨은 무신론자로 자처하되, 이런 부류에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서구인들은 설사 그리스도교의 신념 체계를 동의하지 않거나 부정한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교에 담겨져 있는 종교성이나 영성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저를 포함한 한국의 그리스도교인들이 유교인이 아니고, 때로는 유교나 유교적인 것을 싫어한다고 하더라도 유교가 우리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1998년에 실시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조사>에서 91%의 한국인들이 유교적 신념과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삶 속에서 유교 의례를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지요. 비록 스스로를 유교인으로 규정한 사람은 0.5%에 불과했지만. 세계 종교 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인을 유교인으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지요.(저나 다른 목사님들도 여기서는 그리 자유롭지 못할 것 같습니다.)

건강을 위해 더 이상 육식을 하지 않게 된 사람도 종종 고기의 질감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한국인이 세계 어디에 있거나 김치나 된장국에 찾는 것처럼, 데닛과 윌슨, 심지어는 도킨스 같은 서구인마저도 그리스도교는 그들 자신의 삶에 '각인'되어 있는 유산입니다. 이들에게 그리스도교는 여전히 '애증'의 대상이고요.


그리스도교의 과학관을 살피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장 선생님께서 종교인들은 과학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교 목사로서 신학자로서 그리스도교인이 과학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과학 보기에 앞서,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교인이 과학을 보는 입장은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종교를 보는 관점이 제 각각이듯이, 그리스도교인들이 과학을 보는 시각도 아주 다양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인으로 규정되는 외연이 아주 넓다는 것도 한 몫 하지요. 그리스도교인이라고 할 때, 목사나 신부 같은 사제일 수도 있고, 일반 신도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과학자나 특정 분야 전문가일 수도 있습니다. 즉 과학을 대하는 단일 집단의 그리스도교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리스도교의 과학관, 이것이다!' 할 수 있는 통일된 입장을 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염두에 두어야 할 다른 하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교인이 과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인 가운데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할 만큼 특정 '과학' 분야나 '과학 철학'에 정통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극소수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인의 과학관은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적' 또는 '신학적 경향'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심지어는 같은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서도 과학에 대한 입장이 상당히 다릅니다.

마지막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교와 과학의 관계를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과학과 현재의 과학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의 '현대화'된 과학 개념이나 이미지를 가지고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규정하려는 것입니다. '과거의' 과학을 현대 과학에 동일시하는 거지요. 이것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오늘의 관점과 관심에서 과거를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일입니다. (전형적인 '휘그적 역사학'(Whiggish history)의 관점이죠.) 특별히 그리스도교의 과학관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를 살필 때에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접근 방식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들을 염두에 두어야만 그리스도교가 과학을 어떻게 봐 왔고, 지금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학, 신의 영광을 위한 동반자-과학 혁명 이전 그리스도교의 과학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스도교인의 과학관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말씀드리고, 그 후에 그리스도교인이 현대 과학에 보이는 다양한 태도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제가 역사적 측면을 먼저 고려하는 것은, 과학 혁명이라는 사건이 그리스도교와 과학 둘 사이의 관계를 질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과학 혁명과 이어진 계몽주의는 그리스도교가 과학을 보는 눈을 '고대나 중세의 시선'에서 '근대나 현대의 시선'으로 바꾸었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제 첫 편지에서 언급했던 그리스도교와 과학의 역사적 관련성을 좀 더 확장하는 내용이 될 듯합니다.

서구 문화에서 근대 이전까지 과학은 그리스도교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녔지만, 종속되어 있었지요. 당시에는 오늘처럼 '과학(science)'이란 이름에 대응하는 지적 분야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문적 방법도 오늘날의 '과학적 방법'과도 달랐습니다. 또한 비록 의학이나 수학과 같은 근대 과학의 하위 분야에 해당하는 분야가 몇 개 있었지만, 물리학, 화학, 지질학, 생물학에 해당하는 분야로 분화되지도 않았지요. 이런 세세한 분야는 모두 '자연 철학(philosophy of nature)' 분야에, 더 넓게는 철학에 속해 있었습니다. 현대 물리학자들이 위대한 과학자라고 칭하는 아이작 뉴턴 역시 자신을 '자연 철학자'로 인식하고 있었고, 그의 대표작인 <프린키피아>의 원제 역시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였죠.

그리스도교가 지배 종교였던 서구에서 자연 철학은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보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교 사제들과 신학자들 그리고 교인들에게 자연에 대한 탐구는, 즉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하고 있는 작업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탐구가 신이 만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기 전에, 초기 그리스도교인 가운데 그리스도교와 다른 영역을 함께 섞으려는 시도를 반대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테르툴리아누스라는 신학자는 "아테네가 예루살렘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교회 사이에 어떤 일치가 있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과 문화를 뚜렷이 구별하면서, 둘의 무분별한 통합을 강하게 경계했지요. 그렇지만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그리스도교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때 그리스 철학이 아주 적절한 도구라고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가지고 서방 신학의 토대를 세웠고,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통해서 스콜라 신학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또한 당시 지식 계급이었던 교회의 교부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 지식이 성서 주석과 신앙 변증에 유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제들과 신학자들은 언어 분야 3학(문법, 수사학, 변증학(논리학))에 수리 과학 4학(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을 반드시 배워야 했지요. 이 수리 과학 4학이 발전한 것이 근대 이전의 자연 철학입니다. 13세기 이래 자연 철학은 고등 학부인 신학부로 올라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과정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당시대의 과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중세적 상황에서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고 불렸지요.

사족 같지만, 이것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요. 페트루스 다미아누스(Petrus Damianus, 1007~1072년, 가톨릭 추기경)가 쓴 <가톨릭 신앙론>의 한 대목에 "이성은 신학의 시녀"라는 비슷한 구절이 나오며, 토마스 아퀴나스도 철학적인 여러 학문(disciplinae philosophicae)을 "거룩한 교리의 시녀"라고 표현한 적은 있습니다. 마치 중추적인 학문이 다른 학문들을 조수처럼 부리듯이, 신학은 하위 학문, 즉 철학과 기타 학문들을 활용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미아누스나 아퀴나스 두 사람 모두 이성을 사용해서 신학적이고 신앙적인 내용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을 긍정하지요. 그렇지만 한계를 분명히 하죠. 철학이 신학의 상위 학문이 되고 신학이 철학으로부터 어떤 원리를 받는 일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속 학문이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과학의 역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아퀴나스의 동시대 신학자인 상투스 보나벤투라(Sanctus Bonaventura, 1218?∼1274년)는 신학에 대한 교양 과목들의 보조적 역할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모든 학문의 목적이나 열매는 결국 신앙을 굳건하게 하는 것, 그래서 신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다." 즉 당시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거지요.

'성서라는 책'을 탐구하는 신학에게 '자연이라는 책'을 탐구하는 과학은 신뢰할 만한 동지이고 우군이었죠. 신학이 학문의 여왕으로 간주되던 이 시기에 과학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시선은, 과학 혁명 이후에 비해, 상당히 따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모든 것을 지닌 지배자의 여유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과학, 동지인가, 적인가? - 과학 혁명 이후 그리스도교의 과학관


과학 혁명과 산업 혁명,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과학을 보는 그리스도교의 태도에 변화가 옵니다. 이 과정에서 과학은 그리스도교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비록 뉴턴이나 보일과 같은 과학 혁명의 선구자들이, 앞 편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주 신앙심 깊은 사람들이었지만, 과학 자체가 독자적인 학문 담론으로 나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 등장한 '전문 과학자'들과 기존의 지식 담론의 지배자였던 '아마추어 과학자'인 사제들 사이에 지적 권위의 최종 담지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주도권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이렇게 과학 혁명 이래 점증하는 '새로운' 과학 지식과 이와 갈등을 일으키는 '기존의' 신학 지식 사이에 긴장이 증가하게 됩니다. 자연 과학이 보여 주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설명들은 점진적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되고, 신학은 오랫동안 군림해 왔던 '학문의 여왕'이라는 자리에서 내려와 자연 과학과의 관계를 다시 규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교는 새로운 과학 지식과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가르침을 어떻게 관계 규정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게 됩니다.


이때 그리스도교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크게 네 가지였습니다.


첫째, 새로운 과학 지식에 맞추어 전통적인 가르침 가운데 과학과 모순되거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면 모두 폐기하는 겁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 같은 신학적 교의를 문제시했던 19세기 말의 '가톨릭 근대주의'가 이 흐름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 근대주의는 계몽주의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성서 비평학을 수용합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교리 특히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에 관련된 교리에 대해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이런 교리들을 포기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둘째, 새로운 과학 지식에 맞추어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새롭게 갱신하려는 시도입니다. 기존의 가르침이 과학적 사실과 뚜렷하게 모순되는 경우, 새로 구성하는 태도입니다. 이 입장은 교리를 당시대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방식으로 다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현대 지식 사이에 교량을 놓으려고 시도합니다. 주로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 전통이 이런 입장을 취하지요.

셋째, 전통적인 종교 지식을 그대로 고수, 강화하고 새로운 과학 지식을 전적으로 배척하려는 흐름입니다. 이들은 성서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이에 근거한 신앙 지식을 가지고 과학을 대합니다. 기존의 교리와 다른 지식을 제공하는 과학은 배척의 대상이 되지요. 20세기 초 미국에서 발생한 근본주의와, 그 영향 아래에 있는 현대 개신교 보수주의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넷째, 과학과 종교를 완전히 분리하면서 자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입장은 근본주의나 보수주의와 달리, 현대 과학의 성취를 인정하고 성서 해석에서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과학은 종교와 분리된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종교의 대상은 철저하게 인간적인 것에 묶어 둡니다. 신학은 인간의 영혼과 윤리, 도덕, 역사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종교와 과학을 분리하는 이런 시도는 20세기 중후반 세계 신학계의 주류였던 개신교 정통주의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과학 혁명 이후 그리스도교의 과학관은 이렇게 다양하게 분화되기 시작합니다. 비록 그리스도교가 과학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과학에 선명한 견해를 밝히거나 전투적인 적대감을 공식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드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입니다. 진화론은 그리스도교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면서, 그리스도교인들의 과학관을 고착화시킵니다. 다윈 이후 그리스도교는 진화론을 포함한 자연 과학에 대해 여전히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입장과,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입장으로 크게 구별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첫째와 둘째, 넷째 흐름이 자연 과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세 번째 입장이 부정적인 입장으로 기울어집니다. 이제 오늘날로 이야기를 넘기지요.


다윈의 충격, 그리스도교의 과학관과 세계관을 뒤흔들다


다윈 이후, 그리스도교의 현대 과학에 대한 입장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한편으로는, 현대 과학 지식의 사실성과 정당성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입장들 사이에서도 과학을 신학 작업에서 고려하는가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와 과학을 분리하면서 과학을 고려하지 않는 신학적 입장과, 종교와 과학의 상호 작용에 주목하면서 과학을 신학 작업에 반영하는 입장이 그것입니다. 사실 근본주의나 보수주의 입장을 제외한 대다수 그리스도교인들은 오늘날 진화를 포함한 자연 과학 지식들이 사실이며 진실이라고 받아들입니다. 물론 가톨릭교도들도 마찬가지고요.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교의 주류 교파는 현대 과학에 대해 긍정적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 과학을 부정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입장은 다시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뉩니다. 지구의 나이가 1만 년 내외라고 믿는 '젊은 지구 창조론(Young Earth Creationism)'은 진화 생물학을 비롯한 모든 현대 과학을 부정합니다. 반대로 우주의 나이가 현대 천체 물리학과 우주론이 말하듯 137억 년 정도 되었다고 여기는 '오랜 지구 창조론(Old Earth Creationism)'이나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Theory)' 입장은 지질학과 천문학, 물리학 등 현대 과학 분야를 전부 수용하지만 오직 진화론만을 부정합니다. 이들은 종 안에서 변이가 발생하는 것을 '소진화(小進化)'로,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것을 '대진화(大進化)'로 규정하면서, 진화를 둘로 세분합니다. 이들은 '소진화'를 받아들이더라도, '대진화'는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이렇게 현대 과학에 대한 부정과 긍정의 범위나 방식은 다르지만, 보수주의 그리스도교의 과학관은 공통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과학적 사실로서 진화론에 대한 비판이며, 다른 하나는 과학의 정의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예를 들어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의 지지자들은 모두 진화 생물학은 '가설'이며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체는 우연한 진화를 통해 형성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창조자나 설계자를 요청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그 정의상,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세계의 우연성을 해명해 줄 창조자나 설계자를 기술(記述)할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하고 만다고 비판합니다.

이들은 이러한 비판은 한 발 더 나아가 새로운 과학, 즉 '유신론적 과학'을 주장합니다. 과학에 대한 부정에서 더 나아가 대안적 과학을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들을 다루기 전에 그리스도교의 주류 교파들이 과학의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다루도록 하지요.


과학, 갱신을 위한 동반자 - 그리스도교 주류의 과학관


사실 자연 과학이 새로 보여 주는 지식은 전통적 그리스도교 지식에 비추어 볼 때 충격과 도전이었습니다. 이런 도전은 과학 혁명 이래 지속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상당수의 그리스도교 가르침은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천동설, 천국이나 기적에 대한 담론, 부활이나 동정녀 탄생의 가르침들 역시 도전을 받았지요. 이런 과정에서도 그리스도교는 끊임없이 자기 주장을 갱신하거나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앞서의 편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리스도교는 다른 어떤 세계 종교보다도 자연계, 즉 신이 만든 세계의 모든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신학이 그 일을 담당한 것이고요. 신학이 '로고스'의 학문으로 남고자 하는 한, 신학은 기존의 상식적 지식과 모순되지 않고 논리적 합리성을 유지하려는 욕구를 버릴 수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리스도교 신학은 당대의 세계관이나 당대의 지식과 부합하면서 전개되었습니다. 과거의 모든 신학이 오늘의 관점에서 비과학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가장 첨단 과학 이론을 받아들여 형성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천동설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과거의 신학적 주장을 생각해 보시지요. 사실은 이 신학적 주장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의도 아니고, 천동설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주장은 단지 고대와 중세에 가장 합리적이었던 천체 이론인 천동설에 보조를 맞추어 형성된 것이죠. 즉 당시 세계관에 비추어 신학적 주장들이 전개된 것입니다.

당대의 지식이나 상식을 거슬렀던 신학은 결국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못하거나 반발에 부딪혀서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지동설의 시대에는 지동설을 포함한 신학이 표준이지 더 이상 천동설의 신학이 표준이 될 수 없습니다. 진화론자들이 보면, 이 과정을 특정 지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신학적 주장이 '도태'된 것이라고 보겠지요. 표준 신학으로 자리매김한 신학은 당대의 환경에 잘 '적응'한 결과일 테고요.

신학이나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당대의 지식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사실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존의 주류 과학을 부정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은 현대 과학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신앙 안에서 새롭게 재구성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결국 당대의 지식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 체계를 갱신하고 재해석하는 겁니다. 그리스도교는 본래부터 이렇게 자신의 신앙에다 그 시대의 지식을 결합해 왔습니다.

앞서 장 선생님이 템플턴 재단을 언급하셨지요. 템플턴이 종교와 과학의 상호 존중과 동행을 추구하는 데 많은 재원을 투자하는 시도들은 이런 흐름의 연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과학과 종교 각자가 가진 한계를 존중하면서 종교와 과학의 상보적 협력 관계를 지향하자는 서구 전통이 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신학적인 색채로 말하자면, 과학 지식을 소화해 그리스도교 교의를 갱신하고자 하는 신앙 의지의 표현이지요.

이들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종교와 과학' 분야는 그동안의 미약했던 흐름을 반전시켜 하나의 학문 분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템플턴의 지원 덕분에 종교와 과학 관련 연구소가 설립되고, 대학에는 종교와 과학 전공 분야와 관련된 교수 자리가 만들어지고, 종교와 과학의 관련 학회와 학술 대회가 많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저명 학자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저술 지원금도 주어지고요.

이런 템플턴의 지원에 대해 종교계는 상당히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과학자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지요. 상당수의 과학자들이 이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면, 장 선생님의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도킨스나 윌슨, 데닛 등은 그 엄청난 상금 뒤에 숨어 있는 의도를 살짝 불순하게 보지요.

개인적으로는 템플턴 재단의 시도가 근대 이후 돈의 힘으로 학문 분야를 새롭게 확립한 최초의 사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들의 지원이 종교를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데 집중하는 것에 대한 평가는 일단 접어 두더라도, 자본이 지식 시장을 의도적으로 새로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라는 점에서는 우려를 표합니다. 자본에 의한 지식의 생산은 참여자의 의지와 별개로 늘 자본 공급자의 의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죠. 결국 지식 담론의 왜곡 가능성이나, 지성의 자율성과 비판성이 침해받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요. 아무튼 이야기가 살짝 곁길로 간 것 같습니다. 중심 주제로 다시 돌아가기로 하지요.


천체 물리학에서 인지 과학까지 현대 그리스도교의 과학 마주보기


그렇다면 이제, 주류 그리스도교에서 현대 과학을 어떻게 보는지를 살펴보죠. 과학 혁명 이래 자연 과학 분야는 지속적으로 자기 분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이런 자연 과학의 다양한 지식들과 마주하고, 그 만남에 대해 신학적으로 응답해 왔습니다. 물론 이러한 만남과 응답이 다양한 자연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동일한 강도나 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지동설 이후의 천체 물리학이 주장한 대폭발과 우주의 오랜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이해와, 인지 과학이나 뇌과학 분야에 대한 이해에는 그 정도나 강도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인지 과학이나 뇌과학은 최근에 가장 활발하게 분출하는 지식의 영역인 까닭에, 그리스도교가 소화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이와 달리, 대폭발과 대충돌(Big Crunch, 우주 전체가 수축하여 한 점으로 모이는 우주론적 현상)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의 창조나 종말을 견주는 논의가 상당수 있었지요. 또한 진화 생물학의 진화 개념과 그리스도교의 창조 개념이나, 신이 최초의 창조 이후에도 종말까지 지속적으로 자연 세계에 개입하면서 창조 행위를 하고 있다는 '계속 창조' 사이의 관련성은 지금도 서구, 특히 미국에서는 뜨거운 논쟁 이슈이지요.

먼저, 현대 과학 분야에서 천체 물리학 분야는 그리스도교 신학이 상대적으로 덜 긴장하는 분야입니다. 토마스 토랜스(Tomas Torrance), 이언 바버(Ian Barbour),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d Pannenberg), 로버트 러셀(Robert Russell), 어낸 맥멀린(Ernan McMullin) 같은 신학자들은 천체 물리학 혹은 우주론을 아주 적극적으로 다룹니다. 천체 물리학적 개념인 대폭발이나 대충돌, 인류 원리 등이 그리스도교 교의와 공유할 수 있는 논의의 접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대폭발 우주론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과학적으로 뒷받침 하는 사례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니면 좀 더 완곡하게는 현대의 대폭발 우주론이 그리스도교의 주장과 적어도 모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부 신학자들이나 그리스도교인 과학자들은 대폭발과 대충돌이 그리스도교 교의에 있는 창조와 종말에 공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공명'은 동일한 사건이 과학적으로 신학적으로 각각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주의 탄생을 똑같은 사건을 과학자들은 '대폭발'과 '우주 팽창'이라고 부르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창조'라고 부른다는 거지요. 대충돌과 종말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사건을 과학과 그리스도교가 부르는 다른 이름이라는 거지요.

현대 과학 지식을 그리스도교 신학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 좀 더 분명한 사례가 인류 원리일 겁니다. 원래 인류 원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이자 이론 물리학자인 존 배로(John D. Barrow)와 미국의 수리 물리학자 프랭크 티플러(Frank J. Tipler)가 처음 사용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과학적 개념이죠.

인류 원리는, 오늘날과 같은 탄소를 기반으로 한 생명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대폭발 직후의 초기 우주 상태가 지극히 예외적이며 도저히 일반적인 확률로서는 나올 수 없는 그런 상태로 정밀하게 미세하게 조율된 상태처럼 보인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입니다. 즉 인류 원리를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 개념을 의도나 목적 또는 신적 존재라는 것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시도하는 일부 그리스도교 신학자나 과학자는 이 개념을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전용합니다. 이론 물리학 안에서 인류 원리는 '약한 인류 원리', '강한 인류 원리' 등 몇 가지 변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인류 원리 전용 방법은 적극적 또는 소극적 이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초기 우주 상태가 현생 인류를 탄생시키게끔 고도로 정교하게 조율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주를 탄생시키고 그 과정에 개입한 초월적 존재를 개연적으로 암시한다고 말할 때, 다소 소극적으로 인류 원리로 사용한 겁니다. 이와 달리 초기 우주의 상태가 바로 그리스도교적 창조주 신이 활동한 결과이고, 이것은 곧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고 주장할 때, 적극적으로 인류 원리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렇게 현대 우주론의 대폭발 이론과 인류 원리가 그리스도교 신학에 상당히 친화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는 반면, 다윈주의 진화론에 대해서 그리스도교인들은 극단적인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해 일부 그리스도교인들은 다윈의 논증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반면, 다른 사람들은 다윈 논증을 거의 아무런 어려움 없이 수용했으며, 또한 다른 일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진화론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반응은 '무신론 괴수'로부터 '진화는 신이 창조할 때 사용한 방식'까지 극단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진화론을 거부하는 창조 과학부터, 진화론을 적극 수용하는 진화론적 유신론까지 그리스도교 안에서 진화 생물학에 대한 반응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창조-진화의 문제가 그리스도교에서 아주 논쟁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진화 생물학과 관련해서는 다음 편지에서 좀 더 자세히 언급해야 할 것 같네요.

진화 생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해서 고찰하는 이들로는 아서 피콕(Arthur Peacocke), 유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존 호트(John Haught), 고든 카우프만(Gordon Kaufman),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 샐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 필립 헤프너(Philip Hefner), 테드 피터스(Ted Peters) 등 대부분 현대 신학자와, 홈즈 롤스톤(Holmes Rolston III), 하워드 반 틸(Howard Van Till), 케네스 밀러(Kenneth Miller), 프란시스코 아얄라(Francisco Ayala),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마르티네즈 휴렛(Martinez Hewlett) 등의 과학자를 우선 언급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분야가 바로 인지 과학과 뇌과학입니다. 인지 과학이나 뇌 과학에 대해 그리스도교는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두 분야가 자연 과학 분야에서도 최근에 집중적으로 논의되는 분야여서, 아직까지 그리스도교의 본격적인 대응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분야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는 인간의 종교 경험, 영혼의 존재, 마음의 작동 등과 관련한 것들이기 때문에 이전의 어떤 과학 지식보다도 더 큰, 더 많은 충격을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지 과학과 관련해서, 이 분야에 관심 갖는 기존의 학자들로는 낸시 머피(Nancey Murphy), 조지 엘리스(George Ellis), 와렌 브라운(Warren Brown) 등을 언급할 수 있네요. 비록 최근에 '신경 신학(Neurotheology)'이라는 이름으로 책도 나오지만, 아직은 한참 더 가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동설이 그리스도교가 마주친 제1의 파도였다면, 진화론은 제2의 파도이며, 정신 분석학이 제3의 파도라면, 인지 과학과 뇌과학은 이제 그리스도교가 마주치는 제4의 파도가 될 것입니다. 지동설이 인간이 사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끌어내리고, 진화론이 생명 세계의 정점으로서 인간의 위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신 분석학이 무의식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의식을 다소 위축시켰지요.

아마도 이 네 번째 파도가 가장 큰 파장을 가져올 겁니다. 제4의 파도는 인간의 신 존재나 종교 경험과 구조를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신'과 '영혼' 등을 건드리기 때문이지요. 상당수의 신학자가 이 분야의 작업을 주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과학에 대한 그리스도교 관련 논의에서 중심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이제 막 시작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숨차게 달려왔네요. 원래 말씀드리려던 이야기가 아직도 한참 남아 있는데…. 잠시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봄날 햇살이 어서 나오라고 아우성입니다. 종교와 과학은 잠시 뒤로 미뤄야 할까 봅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가 주장하는 '유신론적 과학' 이야기나, 우발성을 무시하는 법칙 중심적 과학관에 도전하는 신학적 논의나, 과학적 환원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이야기는 조만간에 다시 드릴 편지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봄 햇살에 목욕하는 무등산의 능선이 그만입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무등산, 눈코입이 다 즐겁습니다. 산과 커피가 함께 어우러져 더 행복한 것처럼, 어깨동무하는 과학과 종교로 인해 더 그렇습니다.


2007년 3월 15일

한반도 남녘 땅 광주에서

신재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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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과학', 기독교는 거부합니다

"과학과 종교의 대화 <9> '진화 vs 창조' 논쟁을 보는 다른 시각



신재식 교수가 "종교인은 과학을 어떻게 보는지" 물었던 장대익 교수의 질문에 답했다. 신 교수는 '진화 vs 창조 논쟁'에 접근하는 기독교의 입장을 일별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창조 과학'과는 다른 현대 과학을 수용하는 입장을 소개한다. 신 교수는 "이런 접근이 바로 주류 현대 신학자의 입장"이라고 밝힌다.



김윤성, 장대익 선생님께


봄날 햇살이 점점 더 따갑게 느껴집니다. 학기 시작과 더불어 몸과 마음이 다소 바빠졌습니다. 강의와 글쓰기, 설교와 예배, 온통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일상입니다. 종교에 푹 담긴 느낌을 가지고, 지난 편지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그리스도교의 과학 보기'를 이어 가지요.


이번 편지에서는 논의를 한 단계 진전시켜 무신론에 오염된 현대 과학에 맞서 '유신론적 과학'을 주장하는 입장과, 현대 과학을 수용하면서 과학과 신학의 관계를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재규정하려는 현대 신학의 시도를 살펴볼까 합니다. 지난 편지가 '그리스도교의 과학 보기'를 멀리서 조망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과학의 정의와 방법론, 과학적 환원주의, 과학 법칙의 본질 등의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교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가까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종종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고는 하는 '창조 과학'이나 '진화 vs 창조 논쟁'에서 창조론 진영을 새롭게 대변하는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가 전자에 해당됩니다. 후자는 주류 현대 신학자들의 입장입니다. 미국의 가톨릭 신학자인 존 호트(John Haught)와,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인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를 통해서 이 문제를 보려고 합니다. 둘은 각기 다른 국적에 다른 그리스도교 배경을 지녔는데, 이 분야의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들이지요.


'무신론적 과학'은 '참' 과학이 아니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의 과학 보기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을 하나로 묶어서 말한다면, 각 이론의 지지자들은 불편해 할지도 모릅니다. 이 둘은 '창조가 언제 이루어졌느냐?', '진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입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주류 과학을 '무신론적 유물론'의 포로라고 비판하고, 초월적 존재의 '설계'를 용인하는 '열린 과학 철학'을 주장하며, 현대 과학의 대안으로서 '유신론적 과학'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창조 과학은 진화론 전체를 부정하고, 지적 설계는 부분적으로 수용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진화론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이들은 고전 다윈 이론에 유전학이 결합된 '신다윈주의(neo-Darwinism)'와 이후 계통학, 고생물학, 집단 유전학 등이 결합한 '근대 종합설(modern synthesis)'이나, 최초의 생명 형태가 순수하게 물질적이고 화학적인 작용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화학 진화'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지요.


이들이 진화론에 문제 제기를 할 때는 기존의 과학적 방법을 부분적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더 중요한 논의의 전거는 명시적으로나(창조 과학) 때로는 묵시적으로(지적 설계) 성서입니다. 중세의 신학자들처럼 성서가 지식의 주된 원천인 거지요. 어쩌면 성서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식의 원천이고 지식 판별의 기준일 겁니다.


또한 이들 대부분은 성서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기 때문에, 과학 지식이 성서의 주장과 모순되는 경우 과학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리스도교와 과학 사이에 진화-창조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즉 무신론적 자연주의의 포로가 된 진화론에 잘못이 있다는 것입니다.


설계된 창조,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하다


지적 설계는 현대 과학의 여러 성과들을 수용하지만 다윈주의 진화론만은 거부합니다. 이들은 기존의 다윈주의 진화론이 생명의 기원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하며, 과학적으로도 이미 파산한 이론이라고 단언합니다. 지능을 가진 설계자, 초월적 존재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생명의 기원, 더 나아가서는 우주와 시간과 공간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지적 설계는 자신들의 논증을 위해, 현대 우주론과 물리학, 수학과 정보 이론 등에서 나온 과학적 자료를 사용합니다. 지난 편지에서 언급한 '인류 원리'도 많이 애용되는 사례지요.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라는 이의 주장을 예로 들어 보지요.


그는 우주의 역사는 120억 년(1025초) 정도 되고, 이 우주 안에 들어 있는 소립자의 수가 1080개이고, 어떤 한 가지 물리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변화는 초당 1045회를 넘어설 수 없다고 할 때, 어떤 사건이 우주에서 일어날 확률은 1080 X 1045 X 1025 = 10150분의 1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보다 적은 확률로 일어날 사건은, 예를 들어 10200분의 1, 101000분의 1의 확률을 가지는 사건들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10150분의 1이라는 확률은 '우연'과 '설계'를 판정하는 기준(확률 경계)이 되지요. 이 확률보다 작은 경우 정보 이론으로 환산하면 정보량이 495비트 정도가 됩니다. 이 정도 복잡한 정보는 절대로 그 정보의 의도적 설계자 없이는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500비트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는 DNA 같은 복잡한 분자는 절대로 어떤 설계자의 도움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지요. 뎀스키는 이것을 "복잡하고 특정화된 정보(CSI)"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복잡하고 특정화된 정보'의 생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현대 진화론은 틀린 것이다." 현대 과학의 모순과 난점을 간단하게 '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해 버립니다. 이것이 뎀스키의 지적 설계가 확률과 정보 이론을 통해 설계의 과학성을 증명하려는 일반적인 논증 방식입니다. (물론 뎀스키의 논증에 대한 수학적, 과학적 비판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지요.)


지적 설계자를 용인하는 '유신론적 과학'


그런데 지적 설계가 당혹해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진화론의 오류를 '과학적으로' 증명했고, 생명체가 설계된 것을 '과학적으로' 논증했어도, 주류 과학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적 설계는 그 이유를 주류 과학자들이 은밀하게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 태도에서 찾습니다. 이들은 기존의 주류 과학이 무신론적 자연주의에 형이상학적으로 경도되어 있기 때문에, 진화론의 오류나 설계의 과학성에 무관하게 설계나 설계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초월적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주류 과학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주류 과학을 떠나 지적 설계자를 용인하는 새로운 과학을 시도하며, 그것이 바로 '지적 설계'라고 주장합니다. 지적 설계는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으로, 현재 다윈주의 과학과 서로 경쟁하는 강력한 과학 이론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들은 이렇게 설계자를 허용되는 과학을 '유신론적 과학'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보면, (창조 과학을 포함해서) 지적 설계가 과학을 바라보는 태도의 핵심에는 종교적 신념이 놓여 있습니다. 과학 작업 안에 초월적 존재자를 도입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신론적 과학'을 구축하려는 사람들은 '과학 철학'을 논쟁의 마당으로 삼습니다. 지적 설계론이 문제 삼는 것은 '현대 과학의 정의' 자체입니다. '과학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는 핵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지적 설계가 제기하는 논쟁의 핵심 문제는 '과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이며, '비(非)과학이나 사이비 과학으로부터 과학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입니다.


지적 설계는 유신론적 과학을 확립하기 위해, 주류 과학이 확신하는 과학 지식의 보편성, 객관성, 가치중립성은 실증주의가 지배하던 시대의 과학관일 뿐이며 잘못된 신화라고 주장합니다. 대신 이들은 토머스 쿤, 칼 포퍼, 폴 파이어벤트 등의 과학 철학에 관련된 논의를 차용하면서, 설계를 허용하는 '열린 과학 철학'을 주장합니다. 물론 말씀드린 과학 철학자들이 유신론적 과학을 구축하기 위해 과학의 보편성, 객관성, 가치중립성을 공격한 것은 아니지요.


이런 논의에서 지적 설계는 현대 과학의 핵심으로 간주되는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공격합니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과학에서 과학적 기술과 설명이나 이론에서 초자연적인 요인에 의존하거나 그것을 고려하지 않는 입장이지요. 이들은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전제로 채용하는 현대 과학은 유물론적 자연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왜냐하면 신(神) 또는 초월적 존재를 받아들일 가능성을 애초부터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이러한 과학 철학에서 빌려온 개념들과,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유신론적 과학'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이 유신론적 과학을 가지고 지적 설계는 지적 설계자의 존재와 그가 남긴 흔적을 논리적으로 실증적으로 검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지요. 신, 창조주, 조물주, 지적 설계자 같은 초자연적, 초월적 존재가 과학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과학 철학 쪽으로 나 있는 뒷문을 슬쩍 여는 것이지요.


이렇게 볼 때, '유신론적 과학'은 주류 과학의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해당하는 두 가지 대응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엄청난 능력과 지성을 가진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존재인 신(神)이 1차적인 직접 원인과 2차적인 간접 원인을 통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설계하고 창조했으며, 인간 등장 이전에도 이 세계의 형성 과정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의 설계와 창조의 개념을 과학 작업의 수행과 과학 방법론에서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신론적 과학의 이런 전제는 다음과 같은 신앙 태도와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설을 세우고 시험하고, 어떤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거나, 혹은 다양한 가설들의 개연성을 평가할 때,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야 하고 또한 자신의 판단에 대한 근거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인이 동원해야 할 모든 지식에는 신학적 진술도 포함된다는 것이지요. 창조론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성서는 과학 텍스트이며, 성서의 진술이 '참 과학(true science)'이지요.


신앙에 근거한 유신론적 과학을 무신론적 유물론에 근거한 다윈주의 과학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진정한 '참' 과학이라고 주장합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의 이런 주장은 미국 보수주의 교회에서(종종 한국 보수주의 교회에서도) 상당히 설득력 있게 먹혀 들어갑니다. 이들에게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지지자들은 무신론적 세계관과 싸우면서 '창조론'을 지키는 신앙의 투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유신론적 과학, 그들만의 리그


그러나 저는, 현대 과학을 '유물론적 자연주의'나 '무신론적 자연주의'의 '포로'라고 보는 이들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과학 작업의 핵심은 '방법론적 자연주의'이며, 이것과 '유물론적 자연주의'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배제한 과학은 이미 과학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는 '유물론적 자연주의'를 배척하고 '유신론적 과학'을 구축하려는 과정에서 '방법론적 자연주의'마저 내던져 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열린 과학 철학'을 통해 유신론적 과학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과학적 동기에서 출발한 게 아닙니다. 종교적 동기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시도를 어떻게든지 과학이라고 포장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념에 근거한 '신앙'의 발현이지 과학 작업은 아니라고 봅니다. 비종교인이나 무신론자, 또는 유신론 전통에 속하지 않는 불교와 같은 세계 종교 전통에 속한 사람이 유신론적 과학을 주장하는 것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일부 보수주의 그리스도인들만이 뛰는 '유신론적 과학'은 그냥 '그들만'의 '참 과학'이지 '모두'의 '과학'은 아니죠!


야구 선수들이 축구 경기장에 와서 축구 선수들에게 축구공만으로 충분치 못하니 야구 배트를 도입하고 야구 규정대로 경쟁하자고 한다면 어떻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유신론적 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야구 선수들입니다. 자신들의 규정을 관철시키고자 억지를 쓰는 사람들이죠. 아직까지도 현대 과학은 무신론자부터 불가지론자, 다양한 전통의 종교인들이 함께 같은 규정 아래서 함께 논의하는 마당이죠. 이와 달리 '유신론적 과학'은 '그들만의 리그'일 뿐입니다!


종교와 과학, 심층적 우주 읽기를 위한 독법들 : 존 호트의 과학 보기


한국 사회에서는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현대 그리스도교 과학관의 주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말이지요. 하지만 그리스도교 신학 안에서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는 주류가 아닙니다. 이제 진화론을 비롯해서 현대 자연 과학을 수용하는 주류 신학계가 현대 과학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좀 더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설명의 다윈주의'를 통해 과학적 환원주의를 넘어서서 생명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시도하는 존 호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존 호트는 현대 과학 특히 진화론과 대화하면서 다윈 이후의 '진화론적 신학'을 적극 모색하는 가톨릭 신학자입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 사상과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는 30여년 가까이 신학과 과학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워싱턴 D. C.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종교와 과학', '생태 신학', '진화론적 신학'에 관련된 10여 권의 저서는 그가 진화론에 가장 정통한 대표적인 현대 신학자라는 사실을 확인해 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윈 안의 신>,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 같은 책들이 번역 출간되어 있지요.)


호트가 과학을 어떻게 보는지 살펴보죠. 그는 종교와 과학의 두 담론을 일종의 '독법(text reading)'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합니다. 그는 종교와 과학을 우주를 읽는 중층적 독법(讀法)으로, 즉 서로 다른 수준의 책 읽기로 이해하면서 둘 관계를 해명하려고 하지요. 종교는 서사적인 양식을 통해 우주에서 질(質)적인 의미를 읽어 내고, 과학은 자연을 양(量)적으로 읽어 내는, 각각 독자적인 독법인 것이죠. 종교와 과학은 동일한 우주를 서로 다른 수준(level)에서 다른 방식으로 읽어 내는 독립된 담론인 겁니다.


그런데 호트는 하나의 독법만으로, 즉 오직 한 가지 차원에서 우주를 읽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을 '문자주의적 독법'으로 규정합니다. 문자주의적 독법의 특징은 다른 독법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무시합니다.


문자주의적 자연 읽기를 넘어서


호트에 따르면, 종교와 과학 사이의 갈등은 양쪽 모두 우주와 그 안에 있는 생명을 오직 한 차원에서만 이해하려는 '문자주의적 독법'을 강요할 때 발생합니다. 그는 창조 vs 진화 논쟁도 바로 이 '독법의 문제'를 둘러싼 두 문자주의 대립 때문으로 봅니다. 이 논쟁 양극단에 있는 두 문자주의가 바로,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의 '성서적 문자주의'와, 진화 생물학의 '우주적 문자주의'이지요. 두 문자주의 모두 우주와 생명에 관한 모든 것을 단순하게 평면적으로 이해하는 1차원적 독법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각기 '교리주의적 환원'과 '물리주의적 환원'을 그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리주의적 환원을 특징으로 하는 독법을 '종교적 문자주의'로, 물리주의적 환원을 속성으로 하는 독법을 '과학적 문자주의'라고 부릅니다.


먼저 호트가 '성서적 문자주의'로 부르는 '종교적 문자주의'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만 하지요. '종교적 문자주의'는 자연을 문자주의적 성서 이해에 근거한 특정한 신학적 이해로 환원시킵니다. 이들은 자연의 겉모습에서 나타나는 '설계'에만 관심을 갖고, 그 이면을 뚫고 들어가 생명의 기나긴 투쟁이라는 복잡다단한 진화 이야기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그런 종교적 사고일 뿐입니다. 이런 신학적 독법은 다윈이 그린 생명에 대한 그림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수많은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인들이 취하는 반(反)다윈주의적 행보는 자연의 깊이로부터 도망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한마디로 다윈주의적 자연 읽기를 배제한 종교적 자연 읽기는 자연을 결코 제대로 '깊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한편 '성서적 문자주의'의 반대편에는 '우주적 문자주의'가 있습니다. 호트는 우주적 문자주의 역시 성서적 문자주의처럼 자연이 가지고 있는 깊이를 부정하면서, 단지 그 표면만을 살짝 건드리는 데 그친다고 주장합니다. 지적으로는 흥미로울지 모르지만 영성이나 윤리적 열망이 설 자리를 거의 남겨 두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우주적 문자주의 역시 우주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유물론적 관점에서 읽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주적 문자주의로 비판하는 대상은 '진화론적 환원주의'를 주장하는 무신론적 진화론입니다.


호트에 따르면, 진화론적 환원주의의 형태로 드러나는 우주적 문자주의는 심지어는 영성이나 윤리적 열망의 보루인 종교조차 자연화시켜 버리고 맙니다. 초월자에 대한 신앙, 이타성 같은 정신적 요소들이 진화 과정의 부산물이라든지, 종족 번식과 생존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한 진화적 수단이라든지 하는 것으로 환원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결국 '윤리', '영성', '종교', 그리고 '신'은 유전자의 산물일 뿐입니다. 아니 부산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산물이 되었든, 부산물이 되었든 이것은 형이상학적 유물론입니다. 철저하게 유물론적 측면에서 생명과 종교마저도 동일하게 읽어 내는 것이지요. 결국 모든 현상을 동일한 특정 요인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해하는 환원주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것은 '우주적 문자주의'라는 독법에서 생기는 문제이고요.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생명 현상이 한 가지 수준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는, 그것도 화학적 또는 물리적 수준에서 설명될 수 있다는 생각을 '과학적 문자주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문자주의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호트는 이 환원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다른 어떤 과학자의 주장이나 증명보다, 한 사람의 신학자로서 호트의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저는 사물이나 생명에 관한 설명에는 다양한 수준의 설명이 있으며, 이것들은 상보적이며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확고히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제 입장은 '설명의 다원주의(explanatory pluralism)'에 토대를 두고 있지요. 저는 이 개념과 우주에 대한 비환원론적 인식이 바로 종교와 과학이 공통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는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설명의 다원주의와 설명의 계층 구조


'설명의 다원주의'의 핵심 개념은 '설명의 계층 구조(the hierarchy of explanations)'입니다. 이것은 사물에는 다양한 수준의 설명이 가능하며 각 설명은 다룬 수준에서 적절한 설명의 위상을 갖는다는 개념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서 설명의 계층 구조를 말씀드리죠.


두 분 선생님들께서 승용차가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하지요. "왜 저 차가 움직이고 있지?" 하고 물어본다고 하지요. "자동차 바퀴가 구르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설명은 하나의 수준(a level)에서 좋은 대답입니다. "엔진에서 연료가 연소해서 피스톤과 구동축을 움직이기 때문이다."라는 대답 역시 다른 수준에서 동일하게 받아들일 만한 좋은 설명입니다. "철호가 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도 여전히 다른 수준에서 있을 수 있는 대답입니다. 또 다른 수준에서는 "철호가 학교에 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언급한 모든 설명은 그 각각의 수준에서 뜻이 잘 통하며, 어떤 설명 하나로 다른 설명을 대치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설명 하나하나는 서로 모순되거나 경쟁하지 않으면서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이중에 어떤 것이 더 나은 설명인지는 맥락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질 뿐, 미리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설명들을 함께 고려할 때, 각각 대답이 제공하는 것보다도 더 풍부한 설명을 구성합니다.


설명의 다원주의는 유물론적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과학적 환원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유기적 세계상을 통전적(統傳的)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와 일관성을 갖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왜 과학'만'으로는 충분치 않는가를 보기 위해 다시 호트의 '독법'으로 돌아가지요. 조정래 선생님의 소설 <태백산맥>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지요.


'설명의 계층 구조'를 이 소설책에 적용한다면, 적어도 세 가지 수준의 설명이 있습니다. 가장 낮은 수준은 화학 법칙으로 그 법칙은 잉크가 종이에 붙어 있게 합니다. 두 번째 중간 수준의 설명은 한글 철자와 단어, 문법 등으로 구성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수준은, 소설에서 구체적인 정보나 의미를 형성하기 위해서, 단어와 철자, 문법과 선호를 배열함으로써 소설을 통해 전달하려는 의미의 내용입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을 때, 흰 종이 위에 붙어 있는 검정 잉크의 반점들을 보고 있겠지요. 만약 한글을 읽지 못하다면, 제가 보는 것은 단지 이해할 수 없는 검정색 흔적뿐입니다. 이 때 저는 이 소설에 담긴 정보의 내용을 놓치게 됩니다. 화학은 어떻게 잉크가 종이 위에 붙어 있는가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화학 수준의 설명이 이 소설이 담고 있는 '보다 깊은 수준의' 의미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를 깊은 수준의 이해를 위한 설명으로 이끌어 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글을 알기에 (또 전라도 사투리와 한국 근대사를 알기에) 이 소설이 주는 의미를 깊은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경우 소설에 담긴 정보, 즉 조 선생님이 전달하는 의미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소설의 내용은 잉크가 종이에 붙어있게 하는 화학 법칙을 방해하지도 왜곡하지 않으면서 말없이 그냥 나타납니다.


진화 과학을 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합니다. 진화 과학은, 종교가 생명에 대해서 말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생물학적 현상에 포함된 물리적이며 화학적 사건을 기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의식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가 등장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가능성들은, 그 정보적 내용이 화학적 또는 물리적 분석의 수준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진화에서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진화 과학은 의미의 궁극적인 근원으로부터 우주를 존재하게 했을지도 모르는 더 깊은 '정보적' 차원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된다고 해서, 과학법칙을 위반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책에 기록된 정보(소설 내용)가 잉크와 종이의 화학 법칙을 위반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므로 진화 과학이 생명을 물리적 차원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비논리적입니다. 이게 유물론적 진화론을 바라보는 호트의 기본적인 시각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과학 역시 생명에 대한 설명의 계층 구조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신학적 설명과 과학적 설명은 이 계층 구조에서 각기 다른 수준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신학적 설명이 과학적 설명을 대신하거나 '더 나은' 설명이며, 다른 과학적 설명과 '경쟁하는' 설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명에 대한 화학적, 생물학적, 유전학적, 진화적 설명은 신은 우주가 엄청나게 창조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기를 원한다는 신학적 설명을 폐기하지 않는 것이죠. 오히려 신학적 설명은 과학적 설명이 놓치는 정보를 더 높은 수준에서 더 깊은 의미의 차원까지 읽어낸다고 주장합니다.


지금까지는 종교와 과학을 설명의 계층 구조를 통한 의미의 수준과 깊이라는 측면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는 영역과 범위라는 측면에서 신학과 과학에 접근하는 판넨베르크로 넘어가지요.


신학과 과학, 우발적인 세계를 보는 두 시각 : 불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과학 보기


앞서 저는 사물이나 생명 현상에 대한 유일한 정확한 설명이라는 도킨스와 같은 강성 과학주의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지요. 과학은 인간이 사물과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 시도하는 여러 가지 설명 중에 강력하고 유효한 설명의 한 가지라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고 완전하다는 과학적 환원주의 설명에는 입장을 분명히 달리합니다.


이제 여기에서는 과학 법칙 역시 우발성에 기초해서 우발성에서 규칙성을 도출한 것이라는 측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생각을 독일의 대표적인 개신교 신학자인 판넨베르크의 이야기를 빌어 말씀드리죠. 1928년생인 그는 2차 대전 이후 과학자들이 제시한 과학의 지식사회학적 차원을 검토하고 비판하면서, 1960년대부터 신학과 자연 과학의 대화를 시도해 왔으며, 보다 본격적인 이 분야의 글들이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 나왔습니다.


2001년에는 한국 학술 협의회가 주관하는 석학 연속 강좌 강연자로 내한해서 신학과 과학의 주제에 관해서 강연과 세미나를 했지요. 저도 공개 강연 하나에서 논찬과 통역을 맡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고집 세고 지기 싫어하는 시골 노인의 풍모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토론의 마무리는 늘 자신이 하려고 했던 것도 말이죠.


보편 학문으로서 신학: 신학과 과학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판넨베르크는 종교와 과학을 '왜'와 '어떻게'를 다루는 다른 담론으로 분리시켜 보는 현대 신학적 입장에 아주 비판적입니다. 신학과 타학문의 분리 불가능을 주장하기 때문이죠. 그는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이 관심을 인간의 경험과 역사에 한정함으로써 다른 학문이나 실제 세계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특히 자연 과학으로부터 신학을 완전히 분리함으로써, 신학의 과학으로부터 소외를 초래하고 과학이 제기한 지적 문화적 도전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비생산적인 담론이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반성 속에서 그는 신학이 자연 과학과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주장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에게 신학은 하나의 '보편 과학'입니다. 신학이 개인의 신앙 고백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성에 기초한 일반 학문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이지요. 이런 신학은 객관적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역사의 지평에서 의미 있게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렇게 '역사'를 신학의 영역으로 가져오면서 '역사로서 나타난 계시'를 강조한 신학자입니다.


판넨베르크의 과학에 대한 견해는 그리스도교가 자연 과학을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서, 신학이 과학 자체를 보는 관점과,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죠.


판넨베르크의 신학적 출발점은 역시 창조주로서 신입니다. 신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실재로서 장(場, field)을 구성하며,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이 장에서 나오며, 자연과 역사의 모든 우발성 역시 그 장 안에서 나옵니다.


만일 성서의 신이 우주의 창조자라면, 그 신을 언급하지 않고 자연 과정들을 완벽하게, 혹은 적절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치 않다. 역으로 만일 자연 과정들이 성서의 신을 언급하지 않고도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신은 우주의 창조주가 될 수 없을뿐더러, 결국 그 신은 진정한 신이 될 수도 또한 윤리적으로 가르침의 근원으로서 신뢰받을 수 없을 것이다.(<자연신학> 37쪽.)


이렇게 신을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실재"로 이해하면, 인간의 모든 경험 영역이나 탐구 분야에서 신을 배제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지요. 신학이 이런 신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신학은 필연적으로 신을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이 대상으로 삼는 자연까지 결정하는 힘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판넨베르크가 보기에, 신학은 자연 과학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 분야와도 분리될 수 없으며, 오히려 긴밀한 연관성을 갖게 됩니다.


그는 이런 신 개념을 토대로 신학의 세계관과 자연 과학의 세계관은 서로 배타적이거나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공명(consonance)'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공명'은 둘 사이의 관계가 모순되지 않으면서, 모순을 넘어서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긍정적 관계를 말합니다. 신학과 자연 과학은 실재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서로 필요한 것이며, 그 방법에 있어서 서로 공유하는 것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학과 자연 과학의 관계를 공명으로 파악하는 판넨베르크는 이 두 분야가 동일한 실재를 다루고 있으며, 둘 모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에 대해 인식론적인 주장을 제시한다고 봅니다. 즉 자연을 신의 창조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신학적 해석이, 물리학이나 다른 자연 과학과의 경쟁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신학과 자연 과학을 '공명'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실재의 우발성과 규칙성에만 머무는 과학 vs 실재의 총체성과 통일성을 포괄하는 신학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은 모든 것의 실재이기 때문에, 이 신을 다루는 신학이나 자연을 다루는 과학이나 다루는 대상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과학이 객관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대상이 바로 이 실재의 '부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과학은 실재의 '부분들'을 오직 그것들 서로의 관계성이라는 관점에서, 오직 일반적인 법칙으로 기술 가능한 것만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지식 체계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학은 실재의 부분들 가운데 구체적이고 우발적인 특징에 관심을 갖고 그 우발성과 법칙과 같은 특징들을 가장 포괄적인 맥락에서 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학적 관점은 세계의 실재성을 신적 행동의 결과이며 표현으로 보고, 그것을 유일하고 비가역적인 역사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이와 달리, 자연 과학은 세계의 실재를 자연 현상으로 이해하고 그것의 규칙성에 관심을 갖고 수학적 형태로 기술하는 것입니다. 자연 세계를 역사적 유일회성과 역사적 비가역성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신학적 접근과, 시간과 공간을 일정하게 연속된 시공간으로 생각하고 기하학적으로 계산하고 측정할 수 있다고 접근하는 과학적 접근은 분명히 다릅니다.


이러한 접근의 차이로 인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실재로서 신에 대해 진술하는 신학은 과학이 다룰 수 없는 실재의 측면까지 다룬다고 주장합니다. 신학이 '실재의 전체성'에 관련된 반면, 과학은 실재가 지닌 일반적이며 법칙적 특징만을 기술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판넨베르크는 신학과 자연 과학의 관계를 동일한 한 실재의 두 측면에 접근하는 서로 대등한 방법론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학이 실재의 전체성에 관심 갖고, 자연 과학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실재의 부분들이 지닌 규칙성에 관심을 갖는다고 이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신학이 자연 과학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신학은 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실재의 영역을 더 포괄적으로 다루게 됨으로써, 실재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확장하고 심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재에 대한 신학적 설명과 과학적 설명은 그 범위(scope)에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판넨베르크가 신학이 과학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범위를 다룬다고 하면, 어떤 방식으로 신학이 과학적으로 기술된 현상을 포함하고 있을까요? 그는 이것을 "우발성과 자연 법칙"으로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발성과 자연 법칙의 관계를 이해할 때, 자연 법칙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과는 반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판넨베르크는 자연 법칙은 논리적으로 법칙을 적용하는 데 필요한 우발적인 조건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우리가 자연 현상을 법칙으로 기술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이미 우발적인 조건들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 분명히 지적합니다. 이것은 사건의 결과가 유사성이나 구조적 규칙성을 보여 준다 할지라도, 모든 사건들이 일차적으로 우발적이라는 가정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판넨베르크는 자연 법칙을 우발성을 기초로 발생하는 자연 과정 속에서 특별히 통일성을 서술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연 법칙은 우발적인 사건들을 시간의 과정을 생략하고 그 사건들 사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규칙성과 통일성, 구조적 단일성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 과학의 공식들은 자연 현상이 지니는 우발성에도 불구하고, 그 현상들 속에서 발생하는 균일성을 공식화시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자연과정을 기술하는 작업의 독특한 특성이 이 법칙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신학, 과학의 한계를 품다?


신학자인 판넨베르크가 보기에, 자연 과학은 자연의 실제 과정을 완벽하고 철저하게 기술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연 과학은 우발적인 사건들을 공식화시킨 결과인 법칙성만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연 과학의 법칙성들이 상당한 정확도로 현실을 기술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근삿값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 법칙의 이런 성격을 자연 과학이 지닌 한계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신학적 서술만이 과학의 자연 법칙이 추상화 과정에서 놓친, 사건의 우발적 연속성을 파악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신학적 관점은 모든 사건을 유일회적이며 비가역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파악하고, 그 우발성과 독특성에 관심을 갖습니다. 물론 그가 자연 사건에 대해 규칙성의 관점과 우발성의 관점에서 각각 서술할 때, 두 가지 다른 과정의 사건을 서술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동일한 과정이 일반 법칙을 통해 기술될 수도 있고, 또한 역사적 연속체 속의 개별 사건으로서 기술될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두 가지 기술 방식, 즉 신학적 기술과 과학적 기술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지요. 역사적 기술방식을 취하는 신학적 접근은 개별 사건의 연속성과 그와 관련된 국면들에 대해 보다 많은 총체적 정보를 전제하는 반면, 법칙을 통해서 동일한 연속을 기술하는 과학적 접근은 개별 사건과 비교 가능한 다른 연속적인 개별 사건들에 대한 지식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연 과학과 신학의 차이를 규칙성과 우발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구별하는 판넨베르크의 논의는 좀 더 포괄적이고 자세히 전개됩니다. 이 편지에 주제인 그리스도인이 과학을 어떻게 보는가에 관련해서 이 정도만 말씀드리고, 핵심만 요약해 드립니다.


신학은 일차적으로 자연 현상이 우발적 국면을 지니고 있다는 데 관심을 갖습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자연 현상들은 신의 자유 행위에 따르는 일회적이고 비가역적 사건으로, 그래서 우발적 사건입니다. 이와 달리, 자연 과학은 비록 우발적으로 주어진 사건들을 대상으로 그것들에 의존해서 법칙 개념 자체를 적용하는 것이지만, 그런 전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일차적으로 자연 과정이 지닌 규칙성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둡니다.


이렇게 자연 과학과 신학은 모두 동일한 우발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규칙성과 우발성이라는 다른 관점에서 서술한 것입니다. 따라서 판넨베르크는 우발적인 사건을 규칙적으로 공식화한 자연 법칙을 다루는 자연 과학과, 신의 활동에 의한 우발적 결과라고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신학은 서로 모순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판넨베르크는 오히려 자연 현상을 결정하는 힘을 지닌 신을 대상으로 하고 그 실재의 총제성에 관심을 갖는 신학이, 총체성의 일부분인 법칙성을 다루는 자연 과학보다 더 넓은 외연을 지니고 있으며, 우발적인 사건이 지닌 의미에 대해 보다 완전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실재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필연적으로 완전하지 않으며, 실재의 어떤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이해가 아무리 정확하거나 진실하거나 관계없이 신학적 관점이 항상 요구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신학과 과학의 관계 규정에 대해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자연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신앙과 이성이라는 중세의 구성물을 현대적 방식으로 다시 구성하면서, 신학 안에 역사와 자연을 포괄하고자 합니다. 제가 보기에, 신학을 인식 가능한 가장 심오하고 포괄적인 토대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학을 '학문의 여왕'으로 주장하던 과거 스콜라적 신학 작업의 현대판입니다.


물론 신학자로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습니다만. 역시 판넨베르크는 서구 신학자로서 그 전통에 몸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판넨베르크가 신학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과거와 다릅니다. 이전에는 신학이 '구원'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자연 과학을 비롯한 타학문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지요. 즉 신학의 우월성의 근거가 '주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와 달리 판넨베르크는 신학의 우월성을 영역의 포괄성, 즉 '범위'와 관련시켜 주장합니다.


이렇게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철저하게 신학을 중심으로 전개한다는 점에서 그는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범위의 관점에서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종교와 과학을 '의미의 영역'과 '사실의 영역'으로 구별하던 기존의 관점을 넘어선 그의 기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판넨베르크에 대해 처음 언급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입장을 유형론적 범주에 적용시킨다면, 갈등, 분리, 접촉, 통합이라는 바버의 분류에 따르면 아마 '통합'에 해당할 겁니다. 자연 과학의 상대적 자율성을 인정한 그리스도교 중심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스도교의 과학 다시보기: 일치주의, 적응주의, 포괄주의 사이에서


외부자의 시선으로 과학을 바라보고 말한다는 것은 딜레마입니다. 과학을 모르면서 과학을 말한다는 것이 적절치 않지만, 안에서는 보지 못한 것을 밖에서는 볼 수도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자연 과학자들이 자신의 시선에서 종교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깨닫듯이, 다른 이들이 과학을 어떻게 보는가가 과학자들 자신의 작업을 성찰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스도교가 과학을 어떻게 보는가를 말씀드리다 보니 너무 많은 길을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앞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과학을 보는 그리스도교의 시각은 과학자가 종교를 보는 관점만큼이나 아주 다양합니다. 역사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 그리스도인이 어떤 신앙 전통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다 다릅니다.


앞에서 과학 혁명과 진화론의 등장 이후 과학을 비판적으로 보며, 심지어는 유신론적 과학을 재구축하려고 하거나, 신학의 관점에서 과학을 새로 정의하는 입장들을 살펴봤습니다. 이와 달리 주류 그리스도교 일부는 과학 자체를 종교와 완전히 다른 영역에 속한 것으로 규정하고 과학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기도 합니다. 개신교의 신정통주의가 대표적인데, 이들을 과학은 자연의 영역을,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감정, 역사, 도덕과 윤리를 담당하는 별개의 분야로 생각했습니다. 현대 과학 자체를 문제시 삼지 않았고, 과학에 수동적 태도를 취하면서 신학적 논의에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현대 과학의 지식들을 수용하면서, 신학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첫 편지에서 언급한 과학자-신학자(scientist-theologian)들이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현대 과학의 성취를 수용하면서 전통적인 신학적 주제들을 다시 해석하고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과학에 대해 두 가지 다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고 더 깊은 의미의 영역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면에서 보면 과학에 대해 적극적입니다. 이와 동시에 과학의 한계를 지적하지만 현대 과학 지식 자체에는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수동적 또는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학을 중심으로 과학과 관계 규정하는 판넨베르크는 과학에 대해 가장 적극적이지만 비판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신학자나 과학자-신학자들이 자연 과학적 견해를 중시하는 하는 것과 달리, 그는 과학 작업 자체가 신학의 범주 안에 있음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의 고유한 관점에서 과학을 바라보고 규정하려고 그의 시도는 그리스도교와 자연 과학의 대화를 신학지식과 과학 지식의 차원을 넘어서서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저는 앞에서 말한 그리스도교의 과학에 대한 태도들을 몇 가지 범주로 이름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치주의, 적응주의 또는 구성주의, 포괄주의가 그것입니다. 지나친 일반화나 범주화가 가져올 위험을 알지만, 과학을 바라보는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일치주의는 신앙에 과학 지식을 일치시키려는 시도로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가 과학을 보는 태도에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적응주의 또는 구성주의는 현대 과학의 지식을 수용하면서 과학 지식에 맞추어 신앙의 내용을 새롭게 다시 구성하려는 흐름에 해당합니다. 과학자-신학자를 포함한 주류 그리스도교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물론 현대 과학을 받아들이지만, 종교와 과학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랭던 길키와 같은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자들이나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진화 생물학자들에게 이런 명칭은 해당되지 않겠지요.


마지막으로 포괄주의는 판넨베르크와 같은 시각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입장입니다. 현대 과학을 수용하지만 신학적 관점에서 과학 자체를 포괄 또는 포용하려는 시도들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본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까,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조 vs 진화 논쟁이 그것입니다. 이 주제는 신학자인 저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교가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과정, 한국 그리스도교가 초기에 진화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질문도 다음에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의 '유신론적 과학'에 대한 주류 과학계의 반응이나 '열린 과학 철학' 논쟁(?)에 관련해서는 과학 철학을 전공하신 장 선생님의 자세한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마침 창조 과학 전시관이 서울 어디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장 선생님께서 귀국하시면 함께 들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봄볕 가득한 날입니다. 종교와 과학의 만남에도 오늘처럼 햇살이 가득 비추었으면 좋겠습니다.


2007년 3월 20일


빛고을(光州)에서

신재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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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은 '종교 전쟁'의 결과가 아니다"

과학과 종교의 대화 <10> 종교가 만악의 근원일까?



김윤성 교수는 종교가 '만악의 근원'인양 간주하는 태도가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 것인지, 또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묻는다. 김 교수는 "종교가 전쟁, 테러 같은 악에 연루된 때에도 많은 경우 종교가 유일하거나 직접적이거나 핵심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이어서 "무신론적 신념에 근거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운동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무신론 운동이 종교와 종교인 비판에 지나치게 골몰하는 모습은 염려스럽다"며 "이런 태도는 과학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무신론을 악의 근원으로 매도하는 독선적인 종교인의 태도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신재식 선생님과 장대익 선생님께


두 분 편지 잘 받아 보았습니다. 윌슨과 데닛, 두 석학과의 만남에 관한 장 선생님의 생중계도 잘 들었고요. 학기가 본격화하여 강의며 연구며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지내는 저로서는 마냥 부럽기만 하네요. 아무튼 덕분에 도킨스, 데닛, 윌슨이 같은 무신론자이면서도 종교를 대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전사 도킨스와 전략가 데닛, 그리고 협상가 윌슨이라…. 꽤 그럴듯한 구분이네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 저로서는 이런 차이가 과연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세 사람이 똑같이 무신론적 신념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그대로일 테니까요.


형이상학적 신념으로서 무신론


방금 저는 '무신론적 신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신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형이상학적 신념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적 신념이죠. 전자는 실재의 궁극적 본질에 대한 견해와 관련되며, 후자는 세계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운동과 관련됩니다. 저는 도킨스, 데닛, 윌슨을 비롯한 많은 무신론 과학자들에게 무신론은 이 두 가지 모두의 의미에서 일종의 신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그들의 무신론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형이상학적 신념입니다. 물론 무신론에는 형이상학적 차원만 있지는 않습니다. 방법적 차원도 있죠. 과학은 자연이라는 물리적 실재를 설명할 때 실험과 관찰이나 수학적 증명처럼 경험적 검증이 가능한 방식만 사용해야 합니다. 신이나 초자연처럼 경험적 검증이 불가능한 요소를 끌어들인다면 그건 더 이상 과학이 아니겠죠. 자연을 설명할 때 자연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상정하지 않는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과학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올바른 과학이라면 그 설명에서 신이나 초자연을 일단 배제해야 합니다. 이론 체계는 간결할수록 좋다는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 흔히 '경제성의 원리'라 불리는 이 원리는 중세의 여러 학자들이 거듭 제시한 것으로 14세기 영국 프란치스코회 수도사이자 철학자인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 1249-1835)이 특히 자주 강력히 제시했기에 그의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 필자) 원리는 과학의 과학다움을 판별하는 주요 기준인데, 이에 따르면 자연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 신이나 초자연을 끌어들이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죠.

물론 과학자들 중에는 무신론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의 신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연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 종사하는 한 그들도 (신과학이나 또는 신 선생님이 정확히 비판하신 유신론적 과학을 추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개는 자신이 마치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인 것 같은 태도로 작업을 합니다. 이들에게 신앙은 과학과 별개의 문제이거나 과학적 작업 이후에 시작되는 개인적 문제일 뿐이죠. 사실 그래야 하고요. 이 점에서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일환으로서 무신론 내지 불가지론은 과학의 불가피한 토대인 셈입니다.

그런데 무신론이 자연적 실재의 특성이나 원리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재의 궁극적 본질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여기서부터는 경험적 검증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죠. 무신론은 방법적 차원에서는 과학의 핵심 토대지만, 실재의 궁극적 본질에 대한 견해에서는 그저 여러 선택지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이제 방법이 아닌 신념의 문제가 되는 거죠. 신이나 초자연이 있다고 보든 없다고 보든, 적어도 우리가 사는 이 물리적 세계에서는 어느 쪽에도 확실한 경험적 증거란 없습니다. 신이나 초자연에 대해 누가 어떤 생각을 하건 그건 모두 경험적 검증과 무관하게 각자의 지식과 선호에 따라 전제되는 특정한 형이상학적 신념일 뿐입니다.

물론 증명의 부담 면에서 무신론자보다는 유신론자가 어깨가 좀 더 무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보이지 않는 대상에 관계된 한, 증명의 부담은 그것이 없다고 보는 쪽보다는 있다고 보는 쪽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에는 어떤 형태로든 신이나 초자연을 믿고, 비록 남에게 증명해 보일 수는 없어도 때때로 신이나 초자연을 경험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그 수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죠. 신이나 초자연에 대한 우리들 각자의 생각이 무엇이든, 그런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현존 자체는 일단 인정해야 할 겁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무신론자도 증명의 부담으로부터 결코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실제로 오랫동안 많은 무신론자들이 신이나 초자연이 없음을 증명하려 부단히 애써 온 것도 이 때문이죠.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학파 철학자들에서 근대의 데이비드 흄,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카를 마르크스, 오귀스트 콩트 같은 사상가들, 20세기 전반기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 정신 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그리고 현대의 칼 세이건 같은 과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무신론자들이 그랬습니다.

도킨스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습니다. 그는 <만들어진 신>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던 과거 유신론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시도들을 하나하나 격파한 후에, 신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우연, 자연 선택, 창발성만으로 얼마든지 생명의 출현과 진화나 자연의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따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따라서 신이 없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단언합니다.

패했다는 건 맞습니다. 이는 무신론자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신론자들도 이미 오래전에 인정한 바죠. 인간의 사유와 논리로 간단히 증명될 정도의 존재라면 애초에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신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테고, 설령 궁극적인 무언가가 정말 있다고 쳐도 그것이 꼭 인격적 신이라는 보장도 없으며, 무엇보다 그 인격적 신이 꼭 그리스도교의 신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죠. 눈치 채셨겠지만, 방금 이 말은 흄이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Dialogue Concerning Natural Religion)>(1779년)에서 자연의 정교함 뒤에는 설계자가 있으며 그가 바로 신이라는 식의 '설계 논증(design argument)'을 비판하면서 한 말을 빌려온 겁니다.

그런데 일전의 편지에서도 썼듯이 신 존재 증명의 시도들이 실패했음을 보여 주었다고 해서 이로부터 바로 그러니까 신은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무신론자인 데닛조차 도킨스가 신 존재 증명을 격파하는 데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불평한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은 신 존재 증명의 실패를 입증하는 일보다는 신을 전제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 주거나,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신이라는 상상의 존재에게 투사되는지를 보여 주거나, 신이 있다면 도대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 반문을 던지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신이 없음을 증명하려 해 왔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신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이러한 시도들은 신이 있음을 증명하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똑같이 동어반복이기 때문이죠. 둘 다 애초의 전제를 반복하는 순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쪽은 신이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신이 있다는 결론으로 끝나고, 다른 쪽은 신이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신이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죠.

이런 형이상학적 문제를 이 자리에서 더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는 무신론과 유신론 중에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도 없고, 결코 끝나지 않을 싸움에 말려들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무신론의 형이상학적 차원을 다소 장황히 다룬 것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무신론의 또 다른 차원, 즉 신념적 차원과 밀접히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실천적 신념으로서 무신론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무신론은 실재의 궁극적 토대에 대한 견해로서 형이상학적 신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운동과 관련된 실천적 신념이기도 합니다. 이 실천적 신념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형이상학적 신념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신이 존재한다면 도대체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지 하는 윤리적 물음은 두 신념을 이어 주는 고리들 중의 하나죠.

많은 무신론자들은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신 따위는 없다는 증거이며, 진보를 저해하고 신의 이름으로 악행을 조장하며 정당화하는 종교야말로 악의 근원이자 악 자체라고 비난합니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외에도 무신론의 고전인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Why I Am Not A Christian)>(1927년)나 최근의 문제작인 샘 해리스(Sam Harris)의 <종교의 종말(The End of Faith)>(2004년)도 이러한 견해를 피력한 대표적인 무신론 책들이죠.

별도의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인 스티븐 와인버그도 이런 견해를 표명해 온 대표적인 무신론자의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처음 편지를 주고받던 때에 장 선생님께서 그의 말을 인용하셨죠?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일을 하는 착한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뉴욕타임스> 1999년 4월 20일)

와인버그의 이 유명한 말은 짧지만 강렬하고 인상적이죠. 도발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 생각에 그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우선 선과 악이 종교의 유무와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은 분명 맞습니다. 종교가 있는 사람들 중에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 중에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착한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는 말은 논리적 비약이고 아무 근거 없는 독단일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와인버그는 우주의 출현과 진화는 순전한 우연의 산물일 뿐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고 따라서 우주에 인격적 신이 끼어들 여지란 없다고 보는 전형적인 무신론자입니다. 그런 그에게 종교가 때때로 악에 연루되기도 한다는 사실은 종교를 공격하고 신이 없음을 주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빌미가 되지요.

물론 역사와 현재 속에서 종교가 악과 밀접히 연루된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역사 속의 수많은 전쟁과 학살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수많은 테러와 지역 분쟁에서 종교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하지만 그러니까 종교가 이런 전쟁, 학살, 테러, 분쟁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가 이런 일들의 배경이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종교가 연루되지 않거나, 연루되더라도 별 영향력이 없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전쟁이나 테러 같은 악에 종교가 연루된 때에도 많은 경우 종교가 유일하거나 직접적이거나 핵심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종교는 그저 전쟁과 테러를 야기하는 복잡하게 얽힌 많은 원인들 중의 하나일 뿐이죠. 예를 들어 사람들은 흔히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의 핵심에는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대립이 있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말한 '문명의 충돌' 이론의 대중적 판본이기도 하죠.

하지만 종교학자 브루스 링컨(Bruce Lincoln)은 <거룩한 테러(Holy Terrors: Thinking about Religion after September 11)>(2003년)라는 책에서 이런 식의 단편적이고 이분법적인 통념을 비판합니다. 그렇다고 링컨이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가 <화씨 9/11>(2004년)에서 신랄하게 풍자한 것처럼 부시의 석유 욕심 따위를 들먹이는 건 아니고요. 링컨은 빈 라덴과 부시의 연설문, 테러범들의 지령문과 편지,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의 발언, 언론 기사 등에 대한 치밀한 담론 분석을 통해 빈 라덴과 부시의 대립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단지 이슬람과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대립만은 아님을 밝혀냅니다. 거기에는 종교, 정치, 문화, 경제의 온갖 요소들이 근대적 욕망과 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종교적 요소는 실질적으로 중요해서라기보다는 대중 동원의 정치적 수사 차원에서 도드라지게 만들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링컨이 9·11에 대한 종교학자들의 견해를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종교학자들 중에는 9·11을 주로 종교적인 대립으로 보는 이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하지만 링컨 식의 견해가 중요한 이유는 종교를 마치 무슨 독립적 실체처럼 다루면,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으로 종교학자들 사이에서는 실체로서 종교 따위는 없다는 견해가 점점 더 지배적이 되어가고 있는데, 정작 다른 학문 분야 학자들이나 대중들은 오히려 종교를 실체화하고 그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좀 길었습니다. 다시 와인버그로 돌아오자면, 저는 와인버그가 종교가 악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고 비난할 때 그가 종교에 대한 너무 안이한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쟁과 테러 같은 악을 양파 껍질 벗기듯 벗겨 가면 그 핵심에는 종교라는 알맹이가 떡하니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물론 이는 러셀, 도킨스, 해리스를 비롯한 다른 무신론자들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링컨이 제대로 지적했듯이, 그런 알맹이로서 '종교' 따위는 없습니다. 다만 껍질부터 속까지 다른 온갖 요소들과 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종교적인 것'만이 있을 뿐이죠.

저는 세상의 악에 종교가 연루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종교들 간의 대화 운운하며 종교의 좋은 측면만 말하는 책들보다는 링컨 같은 비판적 종교학자의 책이나 러셀, 도킨스, 해리스 같은 무신론자들이 종교를 향해 쏟아 붓는 독설을 읽는 게 더 흥미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그렇다고 와인버그나 러셀이나 도킨스처럼 종교가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종교가 악과 관련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종교가 인류의 선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한 바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전쟁이나 테러 외에도 성 차별, 인종 차별, 계급 차별, 성향 차별 등 온갖 차별과 억압에도 오랜 세월 종교가 연루되어 온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근대 이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종교적인 것이 사회의 근간이 아닌 곳은 없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근대 이후에도 종교적인 것들은 여전히 다른 요소들과 복잡하게 뒤엉켜 있죠.

성 차별을 예로 들어보죠. 가부장제는 인류 문명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해 온 뿌리 깊은 차별적 제도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성이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역사의 특정 시점부터 사회적으로 형성된 습성입니다. (본성과 습성은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고, 페미니스트들도 생물학적 성별(sex)과 사회적 성차(gender)를 이분법으로 나누는 짓을 더 이상 하지 않지만, 이는 일단 접어 두기로 하죠.) 물론 종교 역시 역사적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고요.

그렇다면 종교와 가부장제의 관계는 어떨까요? 무종교적이거나 무신론적이거나 반종교적인 페미니스트들은 종교는 가부장제의 핵심 원인이며 종교가 사라지면 가부장제도 약화되거나 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다 러너(Gerda Lerner) 같은 페미니스트 역사학자는 가부장제가 종교 때문에 생겨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가부장제는 무엇보다 권력과 소유의 분배를 둘러싼 성차 정치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물론 역사 속에서 가부장제에 종교가 깊이 연루되기도 했습니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인이 아닌 결과였을 뿐이죠. 게다가 역사 속에서 종교는 가부장제의 보루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타파에 현저히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중세 마녀 사냥이 가부장제와 종교적 광기의 끔찍한 결탁을 보여준다면, 가부장적 유대 관습을 어기고 여성들도 제자로 받아들였던 예수는 종교가 어떻게 양성 평등의 전망을 열어 주었는지를 보여 주죠. 가부장제는 거대한 사회적 제도이고, 종교는 그 속에서 제도를 강화하거나 파열시키는 요소일 뿐입니다.

계급 차별, 인종 차별, 성향 차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요소들이 뒤엉키며 차별들이 형성되는 과정이 있고, 종교적 요소는 그 속에서 차별을 심화하거나 약화하는 이중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종교는 권력자와 부자의 편이기도 했지만, 약자와 가난한 자의 편이기도 했습니다. 계급 차별과 종교의 관계가 무엇이든, 계급은 그 전부터 있었고, 종교의 존속 여부와 무관하게 앞으로도 한동안 사라지지는 않겠죠.

또 성서에 인종 차별적 구절이 수두룩하고, 노아의 세 아들 이야기가 인종적 우열의 기원 신화로 둔갑해 노예 제도를 정당화한 것은 사실입니다(창세기에서 대홍수 이후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로 자는 것을 보고 차남인 함은 이를 비웃었지만 장남인 셈과 막내인 야벳은 노아의 몸을 이불로 가려주었다. 잠에서 깬 노아가 이를 알고 셈에게는 큰 축복을, 야벳에게는 중간의 축복을, 함에게는 대대로 종노릇 하리라는 저주를 내렸다. 셈족을 중심으로 한 종족 기원 신화에 불과했던 이 이야기는 8세기 아랍 노예 상인들에 의해 인종 기원 신화로 각색되었고, 중세 이후 그대로 가톨릭과 개신교에 스며들었다. 심지어 미국과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이런 생각을 가진 그리스도교인들이 적지 않다 : 필자). 그래서 도킨스나 해리스 같은 이들은 종교가 인종 차별 철폐에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차별을 조장해 왔다고 비판하기도 하죠. 하지만 당장 개신교의 마르틴 루서 킹이나 이슬람의 말콤 엑스 같은 흑인 지도자들만 떠올려도 종교가 인종 차별 철폐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고는 하지 못할 겁니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이 타자 인식에 뿌리박혀 있는 한 인종 차별은 종교의 지원이나 저항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지속될 겁니다.

또 그리스도교가 동성애를 죄악으로 규정해 탄압과 심지어 살해를 조장하기도 했고, 지금도 가톨릭과 보수 개신교 교단들은 여전히 동성애 혐오를 고수하고 있는 데서 보듯이, 창조의 섭리를 운운하는 종교가 극심한 성향 차별적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또 세상을 음양의 조화로 이해하는 종교적 사고도 양성 이분법에 갇혀 동성애에 대한 경멸을 조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다종교 사회이자 세속 사회이기에 종교의 영향력이 분산되어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 혐오와 성향 차별이 여전히 극심한 것에 비하면, 퀴어 신학이 발전하고, 성적소수자 교단과 교회가 생기고, 게이나 레즈비언 사제와 목사가 증가하고 있는 서양의 혁신적인 개신교 교단들이 훨씬 더 평등적이며 진보적입니다. 결국 종교가 어떤 식으로 관련되든 이와 무관하게 양성 관계가 성과 사랑의 정상성(正常性) 범주를 계속 규정하는 한 성향 차별의 편견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이런 사례들은 종교가 때로 이런저런 사회적 악에 연루되기도 하는 사례들을 들어 종교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 너무 단편적인 생각임을 말해 줍니다. 사례들을 모아서 구축한 일반화는 반대 사례들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죠. 종교 비판자들이 종교와 악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하면, 종교인들이나 종교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종교가 선을 증진시킨 반대 사례를 얼마든지 제시할 겁니다. 어느 쪽이든 사례는 무궁무진하죠.

저는 무신론적 신념에 근거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운동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누구든 신념에 따라 행동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특히 무신론 운동이 합리성과 인간성의 증진에 기여하는 바는 분명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하지만 무신론 운동이 종교와 종교인에 대한 비판에 지나치게 골몰하는 모습은 좀 염려스럽습니다. 그 비판은 건전하고 유용한 충고를 넘어 흔히 맹목적인 비난이 되어 버리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는 서로 다른 신념의 소유자들 사이의 대화 자체를 가로막습니다. 대화는커녕 갈등만 조장할 뿐이죠.

전략가 데닛과 협상가 윌슨은 유신론자들과의 대화마저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이와 달리 전사 도킨스에게는 유신론자들과의 그 어떤 대화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왜 굳이 유신론자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도킨스는 아마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과학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무신론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매도하며, 무신론자는 물론 자기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의 그 어떤 대화도 거부하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종교인의 태도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다시 요약하자면, 무신론은 과학적 방법으로서는 필요불가결하고, 형이상학적 신념으로서는 유신론과 나란히 다양한 선택지들 중의 하나이며, 실천적 신념에 따른 운동으로서는 합리성과 인간성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신념이 맹목적이 되어 다른 신념들에 대한 비난과 매도로 치닫는다면, 그것은 차이와 다양성의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당면 과제에 기여할 바가 별로 없습니다.

무신론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고립된 개인들에 불과했던 무신론자들이 결집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이론 투쟁이자 사회적 실천으로서 무신론 운동의 역사는 아직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이런 계몽적 시기에 싸울 대상을 설정하고 비판적 대립각을 세우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무신론 운동이 좀 더 진전된다면 비판과 비난을 넘어 대화와 소통의 창구를 마련할 수 있는지 여부가 그 운동의 미래를 좌우하게 되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종교 연구자들이 과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유: 역사적 맥락


신론 이야기는 이쯤하고, 이제 종교인들이나 종교학자들은 과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장 선생님의 물음을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그리스도교와 관련해서는 신 선생님께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셨으니, 저는 종교학에 관련해,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살짝 포함해 여러 종교들에 관련해 몇 자 적어 보겠습니다.

 비교적 간단한 종교학자들, 아니 종교 연구자들의 경우부터 이야기를 해 보렵니다. 잠시 옆으로 새자면, 제가 '종교 연구자'라고 한 것은 '종교학자'라는 용어가 너무 협소하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history of religions'라고 불리던 좁은 의미의 종교학은 현상학이나 역사학의 방법을 활용해 문헌 분석에 치중하던 진영을 주로 지칭해 왔습니다. (영어권에는 우리처럼 한자를 조합해 만든 '종교학'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죠.)

하지만 종교는 종교학 외에도 역사학,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등 여러 분야에서도 꾸준히 연구되어 왔고, 특히 지난 수십 년간 이 분야들 간의 경계는 아주 희미해졌죠. 따라서 지금은 종교에 관한 다양한 학문적 연구들을 포괄하는 '종교 연구', 영어로 'religious studies', 'study of religion', 'academic study of religion' 같은 용어가 더 자주 쓰입니다. 제가 이제부터 할 이야기도 좁은 의미의 '종교학'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종교 연구'에 관련됩니다. (포괄적인 종교 연구의 모든 분야를 다 다루기는 힘든 일이니 일단은 인류학과 종교학 위주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아까 제가 간단하다고 말한 건 종교 연구 진영에서는 최근까지도 종교와 과학이라는 주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종교 연구가 거쳐 온 역사적 과정에 있습니다.

좁은 의미의 종교학 또는 현대적 의미의 학문적 종교 연구는 19세기 후반에 고대 문헌을 다루는 문헌학에서 출발했습니다. 종교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영국의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년.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연작 시집 <겨울 나그네>와 <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를 쓴 독일 시인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의 아들로 영국으로 이주해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학문적 저작 외에도 자전적 소설 <독일인의 사랑>이 잘 알려져 있다 : 필자)는 산스크리트 어를 전공한 고대 인도 문헌 전문가였죠. 그에게는 그리스도교 중심주의나 오리엔탈리즘의 혐의가 짙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의 전체 학문적 노작들과 특히 1873년 저서 <종교학 입문(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Religion)>은 특정 종교에 매몰되지 않고 여러 종교들을 비교하며 유적 범주로서 '종교'의 보편적 특성을 파악하려는 종교학의 기본 원칙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가 남긴 "하나만 알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는 말은 지금도 종교학의 금과옥조로 여겨질 정도죠.

하지만 뮐러 식의 종교학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정도로 발전하지는 못했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종교 연구는 주로 인류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년)는 그 핵심 인물이죠. 인류학은 주로 '미개 사회'로 여겨지던 소규모 부족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었고, 따라서 타일러의 관심도 '원시 종교'에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종교의 기원을 알아내겠다는 거였죠. 그는 현지 조사는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작성한 다양한 현지 조사 자료를 가지고 일반 이론을 세우려던 이른바 '안락의자 인류학자'였는데요, 어쨌든 그는 긴 연구 끝에 종교의 기원은 '정령 숭배'(animism)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런데 타일러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년) 식의 사회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있었죠. 사회 진화론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 영역에 적용하면서 서구 중심주의로 치우쳐 약육강식과 적자생존 개념을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로 둔갑시킨 사상 체계입니다. 그렇기에 타일러는 부족 사회를 인류의 진화와 진보의 초기 단계를 보여 주는 화석으로 여겼고, 정령 숭배를 미개한 원시인들이 사물의 인과 관계를 잘못 파악한 사고의 오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단정해 버렸죠.

이후 사회 진화론에 근거한 타일러 식의 종교 이론은 지나치게 주지주의적이며 서구 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대신에 20세기 전반기 인류학에서는 사회 진화론을 거부하는 상대주의적 분위기 속에 부족 사회를 그 자체의 고유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관계의 총체 속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20세기 전반기 종교학계는 크게 두 진영으로 양분되었습니다. 하나는 철저한 역사학 방법에 따라 사료를 분석하며 종교들의 역사를 서술하는 역사학적 종교학이고, 다른 하나는 판단 중지와 감정 이입을 중시하며 종교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현상학적 종교학이죠. 물론 둘 다 사회 진화론을 거부하고 종교를 진화나 진보의 기준에 따라 파악하지 않으려 한 점은 비슷합니다.

문제는 바로 이 대목입니다. 인류학과 종교학에서 사회 진화론이나 진보의 서사가 거부된 것은 이 학문들이 서구 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더불어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까지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게 된 것이죠. 인류학은 기원이나 진보보다는 사회와 문화에서 종교가 지닌 기능이나 의미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종교학에서는 통계 연구에 근거한 사회학적 종교 연구, 프로이트 식의 정신 분석학적 종교 연구, 행동 심리학이나 실험 심리학에 열중하던 심리학적 종교 연구를 '환원주의'로 비판하면서 종교 경험의 고유성에 집착하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졌죠.

루마니아 출신으로 1945년 이후는 프랑스에서, 1956년 이후 평생 미국에서 활동한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1907∼1986년)는 그 정점에 서 있던 인물입니다. 20세기 후반 들어 엘리아데의 막강한 영향력 속에 종교학에서는 '성스러움'은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고유성을 지닌다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고, 공감적 태도 및 해석학적 방법에 따라 종교를 '종교 그 자체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인류학과 종교학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종교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고, 종교와 과학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도 별다른 학문적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었죠.


종교 연구자의 과학 보기: 메타적 관심과 분리주의


한편, 종교 연구 진영에서 과학이나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미약했던 데는 역사적 맥락 외에도 다른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종교 연구 자체의 학문적 속성입니다. 인류학과 종교학은 그것이 과학적 진리든 종교적 진리든 '진리'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신'이나 '초자연' 같은 비경험적 실재에도 별로 관심이 없죠. 인류학과 종교학은 메타적인 학문입니다. '진리' 자체보다는 '진리에 관한 주장들이나 담론들', 또 '신'이나 '초자연' 자체가 아니라 '신에 관한 생각', '초자연에 관한 담론', '신이나 초자연을 상정하고 행해지는 실천'이 주요 관심사죠. 진리니, 신이니, 초자연이니 하는 형이상학적 문제는 인류학과 종교학의 학문적 관심 바깥에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인류학자와 종교학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특정 종교의 신자나 인류의 보편적 종교성을 중시하는 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실존적이고 종교적인 관심을 그 학문적 작업 속에 끼워 넣으려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니,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사실 아주 많죠. 특히 인류의 보편적 종교성을 중시하는 경향은 주류 종교학계를 오랫동안 지배해 왔습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인류학과 종교학에서는 좀 더 철저한 학문성을 추구하면서 이런 경향을 탈피하려는 흐름이 크게 대두했죠. 인류학은 문제가 비교적 덜했지만, 종교학은 종교학 자체가 종교화되는 데 대한 위기의식이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종교학의 탈종교화 내지 세속화가 종교학의 학문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관건으로 부각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국내외 종교학계는 종교적인 성향의 종교학자들과 비종교적이고 세속적인 성향의 종교학자들이 종교학의 정체성과 학문성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며 대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과학이나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적인 종교학자들은 진리, 신, 초자연, 성스러움 등에는 직접적인 관심을 갖지만, 환원주의를 거부하는 분위기 때문에 과학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또 세속적인 종교학자들은 진리, 신, 초자연, 성스러움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수반할 수밖에 없는 종교와 과학 논의에 역시 별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그들은 사회, 문화, 역사의 맥락에서 진리 주장들이나 신과 초자연에 관련된 담론과 실천을 둘러싼 관계와 권력의 역학 구조에 더 많은 관심을 둡니다.

종교 연구자들이 과학이나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관심이 적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를 나름의 고유성을 지닌 별개의 영역으로 분리하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죠. 물론 이런 태도는 다른 과학자나 종교인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신론자인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0년)는 과학과 종교는 "중첩되지 않는 교도권(non-overlapping magisteria, NOMA)"을 지니며, "각기 인간의 삶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고유한 영역의 주인"이라고 봅니다. 과학이 사실적 지식의 영역이라면, 종교는 가치와 의미의 영역이라는 거죠.

개신교 신학자 랭던 길키(Langdon Gilkey, 1919∼2004년)도 비슷한 방식으로 과학과 종교를 분리합니다. "과학은 객관적 자료를 설명하며, 종교는 우리의 내적 경험과 존재에 대한 물음을 다룬다. 과학은 '어떻게'를 물으며, 종교는 '왜'를 묻는다." 이와 비슷하게 많은 종교 연구자들도 과학과 종교를 두 개의 언어 또는 두 개의 게임으로 보아 양자를 분리하는 입장을 취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과학과 종교는 애초에 역할이 다르기에 서로 만나거나 부딪힐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면 그만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런 식의 분리주의들은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제각기 특정한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굴드의 분리주의에는 사실과 의미를 분리하고 종교를 의미의 영역에 국한함으로써 종교가 감히 사실의 영역을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사실의 문제는 과학이 전담할 터이니, 종교는 가치와 의미를 찾는 데나 신경 쓰라는 거죠. 비록 도킨스보다 부드럽기는 해도 굴드 역시 철저한 무신론자입니다. 그리고 도킨스가 전투적 방식으로 종교와의 대화를 거부한다면, 굴드는 분리를 통한 타협이라는 온건한 방식으로 종교와의 대화를 회피하죠. 거부든 회피든 대화가 없기는 마찬가집니다. 이와 상반되게, 길키의 분리주의는 과학을 사실의 영역에 가두려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과학은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본분에나 충실해야지 인간 삶에 관련된 가치와 의미에는 함부로 관여하지 말라는 거죠. 여기서도 과학과 종교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필요 없고, 사실상 대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종교 연구자들의 분리주의에도 역시 특정한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는 우리가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크게 상식적 관점, 과학적 관점, 미학적 관점, 종교적 관점으로 나누고, 이들 네 관점은 서로 구별되며 각기 고유성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과학과 종교를 이런 식으로 구분하죠. "종교적 관점은 일상적 삶의 실재들에 대한 물음을 제기할 때 세계의 소여성(world's givenness)을 그럴듯한 가정들의 소용돌이 속으로 해체시켜 버리는 제도화된 회의주의에 의존하지 않는다. 반대로 종교적 관점은 더 넓은 비가정적 진리들로 여겨지는 것에 의존한다." 기어츠는 과학이란 단지 그럴듯한 가정이자 제도화된 회의주의에 불과하기 때문에 세계와 인간 삶에 관련된 실존적 물음에 답할 능력이 없는 반면, 종교는 가정의 수준을 넘어서는 진리의 문제에 관심을 갖기에 이런 물음들에 답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거죠. 기어츠는 종교를 상징 체계로서 문화의 일부로 파악하는 해석학적 인류학자인데요, 그는 과학을 그 한계 안에 묶어두는 한편 가치와 의미를 문화로서 종교의 독점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기어츠의 이런 분리주의는 상징이나 문화에 관한 협소한 이해에 근거합니다. 흔히 상징은 어떤 고유한 의미를 담고 있는 상자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미란 상자 속에 이미 들어 있던 고정된 내용물이 아니라, 상자를 여는 순간 그 행위가 만들어 내는 효과일 뿐입니다. 그런데 기어츠는 상징과 의미를 실체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죠. 문화와 종교를 상징체계로 보는 그의 견해도 역시 이런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문화를 다양한 의미들의 총체로 봅니다. 하지만 문화는 단지 의미의 영역이 아닙니다. 문화는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의 영역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복잡한 관계의 그물 속에서 상이한 집단들 사이에서 담론과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역동적인 장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과학을 의미, 가치, 상징, 문화, 종교 등으로부터 떼어놓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과학을 의미와 분리하려 해도 과학은 언제나 의미의 영역에 개입하곤 합니다. 또 온갖 가치와 이데올로기가 과학에 스며들기도 하죠. 과학은 설명의 모형으로 상징을 활용하기도 하고, 과학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과학은 종교를 비롯한 다른 많은 문화적 요소들과 더불어 문화의 엄연한 일부로서, 다른 문화적 요소들과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주고받습니다. 하지만 기어츠는 과학을 애써 문화나 종교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호 작용들을 애써 무시합니다. 굴드나 길키가 그랬던 것처럼 기어츠 식의 분리에서도 과학과 종교의 대화란 애초에 불가능하죠.

지금까지 종교 연구 진영에서 과학이나 종교와 과학의 관계에 별로 관심이 없는 이유들을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엄밀히 말하면 관심이 전혀 없던 것만은 아닙니다. 역사학적 종교학자들은 특정 시대나 지역의 종교사를 다루면서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다루기도 합니다. 또 이론적 문제를 다루는 종교 연구자들은 종교와 과학에서 은유나 상징이 사용되는 방식을 분석하기도 하죠.

최근에는 생명 공학의 발전이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면서 과학자들과 종교인들 사이에 치열한 논의가 벌어지자 여기에 직접 참여하거나 논의의 과정과 구조를 분석하는 종교 연구자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제들은 양자 역학, 상대성 이론, 대폭발 이론, 진화론, 카오스 이론, 인지 과학, 뇌과학 등의 주제가 중심이 되어 온 과학과 종교 논의 지형 전반에서 보면 단지 주변적 위상을 차지할 뿐입니다.

이와 같이 종교 연구 진영에서는 역사적 맥락이나 그 학문적 속성과 방법의 독특성으로 인해 과학과 종교 논의가 별다른 관심거리가 되지 못해왔고, 관심을 보이는 일부의 경우에도 과학과 종교의 주요 주제들이 아닌 주변적 주제들만 건드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좀 상황이 달라지고 있는데요, 특히 인지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지적 종교 연구' 분야가 생겨나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지 과학은 종교와 과학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 사이에서 현재 가장 활발하고 왕성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인지적 종교 연구의 출현과 발전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게다가 이 논의에는 무신론적, 종교적, 중립적 성향의 다양한 종교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죠. 이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새로 시작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음에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겠죠.


과학과 종교'들'의 관계 유형


이제 여러 종교들은 과학이나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종교들은 그 종류가 워낙 많고, 종교들마다 과학에 대한 견해도 천차만별이기에 이를 일일이 설명하거나 간단히 유형화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변명하자면 제 답장이 늦어진 것도 사실 이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참에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들 중에 이슬람이나 불교에 관련된 종교와 과학 논의를 정리해 보려 했었죠. 두 분도 아마 저에게 그런 기대를 하셨겠죠? 그런데 사실 제가 불교 전문가가 아닌지라 이제야 오랜만에 이쪽을 뒤지기 시작했는데, 좀 놀랐습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불교학자들이나 불자 과학자들의 논문, 저서, 번역서가 생각보다 많이 쌓였더군요. 몇 년 전만 해도 저역서 두세 권과 논문 몇 편이 고작이었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일본어나 영어로 된 논문과 저서까지 치면 읽을거리는 훨씬 더 많아지죠.

또 국내에는 아직 별로 없지만 외국에서는 이슬람과 과학에 관한 연구도 꽤 많습니다. 물론 그리스도교에 비하면 불교나 이슬람 쪽 논의는 아직 그 양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적지만, 일반적 주제에서 세부적 주제까지 상당히 넓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불교나 이슬람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는 이런 방대한 양의 논문과 책을 섭렵하기도, 복잡한 과학적 지식과 교리적 논의를 수반한 까다로운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 제 공부가 모자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설령 제가 나름대로 이해한 바를 요약하고 정리한들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불교와 과학, 이슬람과 과학, 이런 이야기는 어쨌거나 불교 전문가와 이슬람 전문가에게 직접 듣는 게 더 낫겠지요.

그렇다고 종교 연구 진영에서 다양한 종교를 아우르며 종합적으로 정리한 저서나 번역서나 원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좀 난감했습니다. 그러니 두 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지 모르겠지만, 종교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하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여러 종교들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짚어 보도록 하죠. 저는 그 관계 유형을 무관심, 갈등, 분리, 대화/통합의 네 가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눈치 채셨겠지만, 이 유형화는 존 호트(갈등, 분리, 접촉, 지지)와 이언 바버(갈등, 독립, 대화, 통합)가 제시한 유형화를 빌려와 살짝 합치고, 거기에 무관심이라는 유형을 추가한 겁니다.

우선 무관심은 언뜻 분리와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좀 다릅니다. 분리는 나름의 이론적 틀에 따라 과학과 종교를 각자의 고유한 영역에 배치하려 하죠. 거기에는 나름대로 과학과 종교에 대한 일정한 성찰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무관심은 말 그대로 무관심이죠. 과학자들과 종교인들 중에는 과학과 종교 문제에 아예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외 학자들은 대개 그리스도교 위주로 논의를 해 온 데다 갈등을 극복하고 대화와 통합을 추구하는 데 주력하다 보니 무관심이라는 문제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죠. 하지만 무관심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는 특정한 태도입니다.

우선 무관심은 과학자나 종교인, 또 종교의 종류를 막론하고 두루 나타나지만, 특히 무관심이 지배적인 것은 유교(儒敎), 무교(巫敎), 그리고 대개의 신종교들입니다. 유교는 과연 유교가 종교냐 아니냐는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종교적 여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요소가 복잡하게 뒤엉킨 복합적 총체입니다. (유교가 종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한 세기 전부터 지금까지 동아시아에서 줄곧 제기되어 온 오랜 문제입니다. 19세기 말 중국의 근대 개혁가 캉유웨이(康有爲, 1858∼1927년)가 최초로 유교 종교화를 선언했던 것이나, 우리나라에서 1995년에 성균관에서 유교 종교화를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죠.) 게다가 오늘날 유교는 하나의 독립된 종교로서가 아니라 충효와 예절, 가족 제도와 제사 등으로 우리 일상 속에 녹아 있는 가치관이나 관습 정도로만 존재합니다.

종교의 문제는 어쨌든 과학과 나름의 윤곽을 지닌 특정 종교 사이의 문제죠. 하지만 유교는 그런 윤곽이 희미하니 딱히 이런 문제가 제기되지를 않는 거죠. 무교나 대개의 신종교들의 경우는 좀 다른데요, 과학과 종교 논의는 나름의 교리적 체계를 갖춘 종교들에서 주로 이루어지는데, 민간 종교인 무교나 아직 형성 단계 초기에 있는 신종교들은 그런 체계가 미약하기 때문에 이런 논의 자체가 벌어질 기회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갈등은 여러 종교들의 안팎에서 좀 다르게 나타납니다. 일전의 편지에서도 소개했듯이, 센서스 결과를 보면 '종교가 없다'라고 답한 사람이 우리나라 총인구의 거의 절반에 이릅니다. 물론 그들이 모두 무신론자이거나 반종교주의자인 것도 아니고, 그들 중 상당수는 귀신이나 운명을 믿거나 제사를 지내거나 토정비결을 보는 등 일정한 종교적 사고를 하고 종교적 실천을 행하기도 하죠. 하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에서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나 반감의 정도가 매우 높은 것은 분명합니다. 그중에서 무신론자들이나 과학 지상주의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 그리고 반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종교란 '미신'과 마찬가지로 비합리적인 것으로 과학과 공존할 수 없으며, 과학이 진보하면 결국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과학이나 종교에 별 관심이 없고요. 어떤 경우든 과학과 종교 논의는 완전히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죠.

종교들의 경우, 그리스도교와 관련해서는 종교와 과학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그 안팎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반면, 다른 종교들과 관련해서는 이런 견해가 주로 그 바깥에서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그리스도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과학적으로 온통 모순투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죠. 또 그리스도교인들 중에 근본주의적 성향의 신자들은 과학이 오류로 가득하며 오만하다고 여기고는 합니다. 그리스도교와 과학의 관계가 얼마나 다양한지에 대해서는 신 선생님께서 자세히 말씀해 주셨으니 여기서 더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다른 종교들의 경우는 종교마다 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외부자들이 특정 종교가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하며 종교와 과학의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경우는 여전히 많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와 달리 다른 종교들에서는 종교가 나서서 과학을 거부하거나 공격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신 선생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그리스도교에서 유독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 심한 것은 창조주 절대자 신에 대한 생각, 로고스 중심주의, 그리고 문자주의적인 경전 이해 때문이죠. 하지만 다른 종교들에서는 대개 이런 측면들이 그리 심각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갈등의 소지가 그리 크지 않은 거죠.

불교처럼 궁극적 실재를 비인격적인 우주적 법칙으로 본다면 우주의 생성이나 생명의 진화에 관련된 창조주 신의 문제가 제기될 이유가 없습니다. 또 불교에는 방편설이 있어서 경전과 교리에 상식이나 과학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도 이게 그리 심각하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상징적 수단 정도로 보면 그만이죠. 예를 들어 티베트 불교에는 현실 세계와 초월 세계를 아우르는 우주를 묘사한 만다라가 있는데, 온갖 붓다들, 보살들, 신들이 그려진 것이든 순수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그려진 것이든 그 이미지들은 액면 그대로가 아닌 고도의 상징적 장치로 이해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것은 방금 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주로 엘리트적 불교에 해당된다는 점입니다. 불자들 중에도 경직된 문자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그들은 불교가 과학보다 우월하다거나 과학과 불교가 상충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또 대개의 불자들은 무관심 유형에 속하는 경우가 많죠. 애초에 단일한 실체로서 '불교'가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신앙과 실천의 복합체로서 '불교들'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태도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점까지 고려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너무 복잡해지니 일단 여기서 접겠습니다.

세 번째로 과학과 종교 각각의 고유한 영역을 인정하는 분리 입장도 종교의 유무나 종류에 상관없이 두루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원불교에는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창시 이념이 있습니다. 이것은 물질과 정신을 실체적으로 구분하는 서구의 경직된 근대적 이분법과는 좀 다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이에 따르면 과학과 종교는 각각 물질과 정신의 영역에 관련되는 것으로 적당히 분리되죠. 원불교에서 과학과의 관계에 대한 논의가 얼마나 이루지고 있는지는 아직 살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물질 개벽과 정신 개벽을 구분하는 것을 보면 논의가 그리 활발할 것 같지는 않네요.

마지막으로 대화 내지 통합 유형입니다. 종교들 바깥에서는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아마 없겠죠. 반면에 종교들은 과학과 종교의 적극적인 만남을 추구하고, 그 만남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받아들여 변화를 도모하며, 나아가 과학에 새로운 동기와 전망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물론 종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신학이나 교학 체계가 정교하고, 과학이라는 거대한 상대와 마주할 수 있는 규모와 세력을 가진 일부 종교들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경우 그런 종교는 주로 그리스도교와 불교죠.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신 선생님께서 자세히 다루어 주셨으니, 저는 두 종교를 비교하며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종교들의 과학 보기: 그리스도교와 불교, 비슷하면서도 다른


"과학은 종교를 오류와 미신으로부터 정화할 수 있으며, 종교는 과학을 우상 숭배와 절대화로부터 정화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서로를 좀 더 넓은 세계, 즉 과학과 종교가 함께 번성할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진정한 우리가 되기 위해, 우리가 되어야 할 바가 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요한 바오로 2세, '메시지', 1990년)

"과학적 발견들이 우주론 같은 지식 분야들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면, 불교의 설명들은 때로 과학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분야를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 우리의 대화는 과학뿐만 아니라 종교에도 유익을 제공해 왔습니다. (…) 과학은 물질적 세계를 이해하는 탁월한 도구였으며, 우리 삶이 크게 진보하게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내적 경험들에 관해서는 별로 진전을 이루지 못해 보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불교는 마음의 작용에 대한 깊은 탐구를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학문적 차원에서 과학자들과 불교학자들 간의 더 많은 논의와 협동 연구는 인간 지식의 확장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과학과 종교의 협력', 2003년)

두 인용문에서 교황과 달라이 라마의 생각은 아주 비슷합니다. 과학과 종교는 비록 그 역할이 다르지만 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얽혀 있기 때문에 함께 대화할 수 있고 협력해야 한다는 거지요. 두 사람은 가톨릭과 불교의 세계적 지도자들인 만큼 이들의 생각은 가톨릭과 불교에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와 통합이 추구되고 있는 지배적인 분위기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물론 신 선생님께서 보여 주셨듯이 이런 입장은 주류 개신교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죠.

그렇다고 그리스도교와 불교가 세부적인 논의에서마저 비슷한 것은 아닙니다. 신앙이 다르고 교리가 다른 만큼 이들이 과학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내용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죠. 우주론은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표적인 영역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우주의 생성과 전개에 관한 주요 이론인 대폭발(Big Bang) 이론에서 견해 차이를 드러냅니다.

대폭발 이론 이전에 과학계에서는 우주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죠. 당시에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던 듯합니다. 우주가 영원하다면 창조와 종말을 말하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도무지 조화될 수 없기 때문이었겠죠. 그런데 1960년대에 대폭발 이론이 사실상의 정설로 굳어지면서 이는 종교와 과학 논의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되었습니다. 137억 년 전에 우주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작은 물질로부터 어마어마한 폭발과 더불어 생겨났다는 대폭발 이론은 우주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신의 창조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잘 부합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폭발 이론은 지금도 계속 발전 중인 이론이며 거기에는 그리스도교 교리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시작이 있었다면 끝도 있을까 하는 문제, 폭발의 시발점인 작은 물질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던 것인가 아니면 신이 무로부터 창조한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시작과 끝이 있다면 이는 유일한 일인가 아니면 반복되는 일인가, 우주는 하나인가 아니면 여럿인가 하는 문제들이죠.

우주의 종말에 대해서는 우주가 언젠가는 팽창을 멈추고 다시 수축하기 시작해 결국 블랙홀 특이점이 될 것이라는 대붕괴(Big Crunch) 이론이 나오면서 일단 해소되는 듯했습니다. 우주는 대폭발이라는 시작과 대붕괴라는 종말 사이에 놓은 유한한 피조물이라고 볼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대붕괴는 우주의 미래에 대한 여러 이론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주는 점점 팽창이 느려지다 에너지가 다 소진되면 팽창을 멈춘 채 차갑게 죽어버린 상태로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도 우주의 미래에 관한 가능성 있는 이론이죠. 두 이론 중에 좀 더 지지를 많이 받는 것은 전자이고, 그리스도교도 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종말 교리와 잘 부합하기 때문이죠.

대폭발과 대붕괴가 일회적 사건이냐 아니면 반복적 사건이냐에 대해서도 다양한 입장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대폭발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고 대붕괴와 더불어 다시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대폭발과 대붕괴는 일회적 사건이라고 보는 이도 있는가 하면, 비록 지금 같은 우주의 모습이 그대로 재연되지는 않겠지만 대폭발과 대붕괴는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식의 진동 우주론도 있습니다. 또 우주는 지금의 우리 우주밖에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 무한히 많은 우주들이 서로 연결된 채로 제각기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과정이 영원히 지속된다고 보는 다우주(multiverse) 이론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물론 대폭발과 대붕괴가 일회적 사건이라는 입장, 그리고 지금 우리의 우주가 존재하는 유일한 우주라는 입장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불교도 대폭발 이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다만 불교는 우주의 시작과 종말이나 우주의 수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와 다른 입장을 취하죠. 불교는 그리스도교와 달리 대폭발과 대붕괴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무한히 반복되는 사건이라고 보는 진동 우주론 쪽을 택합니다. 불교는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히 순환하는 우주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또 불교는 우주가 여럿이라는 다우주 이론도 진지하게 수용합니다. 우주가 무한히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 불교 교리와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죠.

불교와 그리스도교가 대폭발 이론을 비롯한 우주 이론들을 채택하고 해석하는 방식은 이렇게 서로 사뭇 다릅니다. 이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실재관과 시간관, 그리고 궁극적 실재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시간이든 공간이든 물질이든 실재하는 것은 없으며 다만 공(空), 즉 무한히 서로 얽힌 상호연기(相互緣起)의 관계만이 있다고 봅니다. 반대로 기독교는 비록 고전적 실재론에서 비판적 실재론으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간, 공간, 물질의 실재성을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또 불교는 우주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는 순환적 우주관을 갖고 있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우주는 단 한 번만 생성하고 소멸한다는 직선적 시간관을 갖고 있죠. 그리고 이 모든 차이는 결국 모든 존재의 근본인 궁극적 실재를 비인격적인 우주적 원리로 보느냐 아니면 인격적인 신으로 보느냐 하는 차이에서 비롯하는 것이기도 하죠. 불교는 궁극적 실재를 비인격적으로 보기에 창조자 따위를 인정하지 않으며 따라서 창조자의 의도나 목적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궁극적 실재를 인격적 신으로 보기 때문에 창조자의 창조 의도와 목적이 무엇인지, 창조자가 우연으로 가득한 이토록 무심한 우주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하는 문제들과 씨름 합니다.

이런 차이들은 우주와 생명계 안에서 인간의 지위, 양자 역학, 진화론 같은 다른 과학적 주제들에 관련해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불교는 인간의 고유성 문제에 별 관심을 두지 않지만,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의 고유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죠. 인간에 대한 이해는 곧 그 창조주인 신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고전적 물질관을 대체한 양자 역학에 대해서도 상이한 해석을 제시합니다. 불교는 양자 역학이 말하는 확률적 실재를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불교적 이해와 결부시키려 하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확률과 신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지요. 진화론에서도 불교는 생물계 중심적 입장에서 종들 간의 연기 관계 자체에 관심을 두는 반면, 그리스도교는 인간 중심주의까지는 아니어도 인간이 주요하게 고려되는 방식으로 진화의 과정을 이해하며, 생명과 인간의 진화에 관련된 신의 의도와 목적을 끊임없이 묻습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그리스도교보다는 불교가 과학과의 대화에서 좀 더 문제들을 쉽게 해결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부 불자들이 이런 점을 들어 불교가 그리스도교보다 과학에 더 잘 부합한다고 말하는 것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대폭발 이론에서 우리의 관찰과 추론이 접근할 수 있는 한계인 플랑크 시간(폭발 후 10-43초)과 최초의 특이점(t=0) 사이의 시간에 벌어진 일들을 알아내는 일이나, 대폭발과 대붕괴가 한 번인지 여러 번인지 하는 문제 등을 경험적으로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상이한 이론들이 여러 이유에서 지지를 더 받거나 덜 받는 차이는 있어도 어느 이론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기는 힘들죠. 물론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우주관 사이에서도 어느 쪽이 옳다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불교와 과학, 그리스도교와 과학 사이의 만남과 대화는 다양한 이론들과 다양한 종교 교리들 사이에서 선택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진화론의 경우도 저로서는 오히려 다윈주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진화의 낭비, 적자생존, 생물들과 인간의 분투와 고통 같은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리스도교의 노력이 좀 더 흥미롭습니다. 불교는 이런 문제들을 상호연기 교리로 간단히 정리할 뿐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이더군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불교와 과학의 만남이든, 그리스도교와 과학의 만남이든, 어느 쪽이나 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상이한 종교들 각자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일일 뿐이라는 겁니다. 어느 쪽이 옳은지 그른지 하는 판단은 각 종교에 속한 신자들의 신앙일 뿐 제3자에 의한 과학적 확증도 객관적 검증도 불가능하죠. 비록 과학과의 대화가 시도되기는 하지만 그 대화는 어디까지나 각 종교의 신앙과 교리에 부합하는 한도 안에서의 대화일 뿐입니다. 한편 영원한 과학 이론은 없고 이론이란 계속 수정되다가 언젠가는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과학 이론이 바뀐다면 종교인들은 이제껏 축적한 만남과 대화의 성과들을 버리고 다시금 새로이 만남과 대화를 모색해야만 할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이런 만남의 흔적들을 더듬는 일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 흔적 속에서 저는 과학과 종교가 교차하는 복잡한 지대에 뛰어들어 진리를 추구하고 의미를 구축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분투들을 봅니다.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좀 더 나은 앎을 위해 끝없이 분투하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며칠 걸려 쓴 답장인데도 영 부족하기만 합니다. 과학 공부를 여간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네요. 불교와 그리스도교 같은 개별 종교들에 대해서도 더 많이 공부해야 할 것 같고요.

참, 신 선생님이 잠깐 다루신 창조와 진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우리가 좀 더 진지하게 생각을 나누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이 한국 개신교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 이 특이한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지…. 두 분께 묻고 싶은 게 많습니다. 이번 주 강의 끝나는 대로 며칠 내로 다시 편지를 드리죠. 봄기운이 완연한 캠퍼스지만 뒷산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은 아직 제법 서늘하네요.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요,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7년 4월 1일

오산에서

김윤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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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에 버젓이 '창조과학관'이 있다니…"

과학과 종교의 대화 <11> 나의 창조과학 탈출기



김윤성 교수는 "외국의 경우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교단만이 신봉하는 창조 과학을 한국 개신교 전체가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독특한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KAIST 구내에 창조 과학 전시관이 존재하고 △한국창조과학회가 중등 교원의 직무 연수 기관으로 지정된 것을 언급하면서 "창조 과학이 얼마나 정확하든, 그것이 과학이든 아니든, 거기에 일말의 종교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결코 공교육 속으로 들어올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장대익 선생님과 신재식 선생님께


보스턴은 아직 봄소식이 요원하겠고, 남도는 지금쯤 한창 봄이겠죠. 여기도 모처럼 내린 비에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캠퍼스 뒷산에 올라 봄내음에 취하고도 싶고, 연못가에 앉아 봄볕에 취하고도 싶지만, 잠시 미루어야겠죠. 해야 할 숙제가 있으니까요. 지난번 편지에서 진화와 창조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고 했었죠? 그동안의 편지에서도 이 문제가 간간이 언급되기는 했죠. 하지만 진화와 창조 문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과학과 종교에 관련해 가장 많이 또 가장 치열하게 논란되어 온 주제인 만큼 한 번쯤 제대로 짚어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과학이나 신학에서 진화 vs 창조 논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는 두 분이 잘 말씀해 주시리라 기대하겠고요, 저는 종교학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사실 종교학도로서 이 문제를 다루기가 좀 껄끄럽기는 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종교학은 '진리' 자체보다는 '진리 주장'이나 '진리에 관한 담론'에 관심을 갖는데, 진화 vs 창조 논쟁에서는 아무래도 과학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죠.

신 선생님이야 신학적 차원에서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 같은 과학적 창조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나름의 견해가 있으시겠죠. 장 선생님도 과학적 차원에서 이들을 평가하는 분명한 입장이 있으실 테고요. 저는 종교학을 하는 사람인만큼 두 분과 달리 되도록이면 이 문제를 종교적 진리나 과학적 진리 차원보다는 현상적 차원에서 다루고 싶습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신학적으로 옳든 그르든, 과학적으로 옳든 그르든, 이들이 유행하는 모습이나 이들을 둘러싸고 온갖 논쟁이 벌어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흥미로운 종교적 현상이죠. 종교학자라면 이런 현상이 어떤 맥락에서 출현했고, 어떤 과정으로 펼쳐져 왔으며, 그 사회 문화적 효과는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질 만합니다.

그런데 국내외 종교학계에서는 이런 논의가 이루어진 바가 별로 없고, 제가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리 오래지 않은지라, 아직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또 비록 종교학이 판단 중지와 가치 중립을 중시하기는 하지만, 저는 아무리 종교학자라도 모든 판단과 평가를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종교들은 역사 속에서 성차별을 조장하기도 했고 양성 평등을 진작시키기도 했는데, 종교학자가 이를 다루면서 판단과 평가를 보류한 채 판단 중지와 가치 중립만 운운한다면 이는 학자이기 이전에 사회 구성원인 자신의 도의적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겠죠.

진화와 창조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여기에는 과학적 진리나 종교적 진리의 차원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윤리적 차원을 비롯한 온갖 차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게다가 과학계와 종교계 안팎에서는 전문가나 비전문가나 할 것 없이 무신론적 진화론, 유신론적 진화론, 과학적 창조론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각기 나름의 기준에 따라 판단과 평가를 수행하며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죠. 결국 진화와 창조 문제를 다루면서 판단과 평가를 완전히 배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니,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오히려 저는 그런 배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이런 착각은 학자로서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최대한 가치 중립을 지키려 애는 쓰겠습니다만, 과학과 종교에 대한 제 나름의 판단과 평가가 제 이야기에 종종 끼어들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창조 과학 탈출기


그동안 우리는 무신론, 유신론, 불가지론의 입장에서, 또 과학, 신학, 종교학의 시각에서 종교와 과학의 주제들에 관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 왔고, 이는 진화와 창조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오랫동안 공적인 자리나 사적인 자리에서 함께 확인했듯이,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 셋 사이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가 우리 모두의 삶에 일정 정도 관련되어 있었거나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진화 vs. 창조 논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과학적 엄밀성의 문제라고 보는 점에서도 그렇죠.

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제가 진화 vs 창조 논쟁을 처음 접한 건 대학 2학년 말인 1986년 겨울이었습니다. 물론 고등학교 때도 생물 시간에 배운 것과 교회에서 배운 것 사이에 괴리감을 느끼긴 했지만, 공부는 공부고 신앙은 신앙이라 생각하며 적당히 접고 지냈죠. 대학생이 된 후에도 이런 식의 분리는 그럭저럭 편안했고요. 하지만 점차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지식과 신앙이 따로 노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한 거죠.

그때 마침 제가 가입한 복음주의 계열의 개신교 서클에서 창조 과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읽을 자료라고는 한국 창조 과학회가 1981년에 창립과 동시에 펴낸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책 한 권과 인쇄 상태가 조악한 약간의 복사물이 고작이었지만, 모두가 정말 열심이었죠.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생명이 무기물에서 저절로 생겨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진화는 무질서도의 증가라는 열역학 제2법칙에 어긋난다. 탄소 연대 측정법은 잘못되었으며 지구의 나이는 6000년에서 1만 년 정도다. 노아의 방주 파편이 발견되었고, 대홍수의 사실성이 입증되었다. 노아의 세 아들에서 인종들이 유래되었다…."

과학과 성경의 모순이 해결된 것만 같았습니다. 혼자만 아는 게 아까워 교회 친구들과 세미나도 하고, 주일학교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고요. 순전히 자발적으로 창조 과학 전도사가 되었던 셈이죠.

하지만 공부는 채 반 년을 못 갔습니다. 한 줌의 자료로는 지적 호기심이 채워지지도, 신앙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죠. 해결은커녕 풀리지 않는 의문만 늘어갈 뿐이었습니다. 자료에 언급된 주장과 증거에 대해 더 알고 싶어도, 각주나 참고 문헌이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너무 소략해서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요. (물론 창조 과학도 계속 발전해서 요즘 책들은 꽤 충실한 전문 자료들을 제시합니다. 그 자료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타당한지는 꼼꼼히 짚어 볼 문제겠지만요. 이에 대해서는 장 선생님의 도움을 기대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조 과학이 옳다면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다 틀렸다는 말인가? 그들이 모두 착각과 환상에 빠져있는 걸까?" 소수만 아는 진리를 나도 알게 되었다는 자부심보다는 착각과 환상에 빠진 건 오히려 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고 우리만 옳다는 생각이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중에 혼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생물학 개론과 종교학 개론 수업이었죠. 생물학 교수님은 첫 시간에 자신은 비록 교회 장로지만 그 전에 무엇보다도 과학자이며, 자신에게는 신앙과 과학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기대에 부풀었죠. 하지만 교수님은 과학적 내용만 가르칠 뿐 창조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으셨습니다. 심지어 종의 다양성과 분화를 가르치실 때도 그랬죠.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학기말에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밀러-유리 실험(1953년에 미국의 생화학자 스탠리 밀러(Stanley L. Miller, 1930∼2007년)와 헤럴드 유리(Harold C. Urey)가 원시 지구의 가상적 상태로 조성된 플라스크 속의 무기물들로부터 유기물을 합성해 낸 실험. 생명의 기원 문제 자체를 해결한 건 아니었지만, 생명이 무기물로부터 저절로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창조 과학자들은 이 실험은 단지 특정 조건에서 유기물을 합성한 것일 뿐, 생명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는 바가 없다고 비판한다. : 필자)을 다루면서 교수님의 개인적 경험을 말씀하셨죠. 유학 시절 뉴욕 지하철역에서 수십 년 만에 오래전 친구를 우연히 만난 이야기였는데, 교수님은 이렇게 말을 마치셨습니다.

"나와 그 친구가 그 시각 그 자리에서 만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 하지만 우리는 만났다. 무기물에서 생명이 저절로 생겨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확률이 희박하다고 해서 곧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확률은 통계적 지표일 뿐 현실 자체가 아니다.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 물론 나는 크리스천이고 신을 믿는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신앙일 뿐이다. 과학적으로 볼 때 생명이 무기물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설령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 때문에 이 자연적 사건의 이면에서 신의 섭리가 작용했으리라는 믿는 내 신앙이 망가지지는 않는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그런데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수천 쌍의 동물을 태운 채 수백 일 동안 물 위에 떠 있었다면, 그 많은 동물을 어떻게 일일이 먹였으며, 그 양이 엄청났을 배설물은 또 어떻게 처리했을까? 노아의 방주 파편이 정말로 있다면 굉장한 일일 텐데, 왜 실물이 아닌 사진밖에 없으며, 그리스도교 인조차 이를 모르거나 안 믿는 사람이 더 많을까? 탄소 연대 측정법이 엉터리라면, 과학자들이 멍청하거나 악의적이지 않은 한 왜 모두 이 방법을 계속 쓸까? 노아의 세 아들이 각기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는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성경엔 없는데, 이는 결국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판타지가 아닐까?' 온갖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었고, 제 얄팍한 창조 과학 지식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죠.

제 생각이 바뀐 또 다른 계기는 종교학 개론 수업이었습니다. 제가 종교학을 계속 공부하게 만든 수업이자, 훗날의 스승인 정진홍 교수님을 만난 수업이기도 했죠. 지금도 제 서가에는 당시 교재였던 정진홍 교수님의 <종교학서설>과 수업 노트가 꽂혀 있는데, 가끔 들추어보면 비록 제가 지금은 이론이나 방법 면에서 스승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기는 해도 제 문제의식의 많은 씨앗이 그 책과 노트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 보고는 합니다.

"종교의 다양성은 타자를 인정하고 차이를 수용하는 윤리를 요청하는데, 배타적 신앙은 이 윤리적 의무를 저버린다. 경전을 역사나 과학이 아닌 신화로 여긴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대착오가 오히려 경전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으며, 반대로 경전을 신화적 은유와 상징으로 이해할 때 그 의미가 더 풍성해질 수 있다."

학기가 진행되면서 제 머릿속에서 혼란의 구름이 걷혀 갔습니다. 장애인이나 외국인의 성소 출입을 금하라는 내용,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라는 내용, 다른 신을 믿는 종족은 여자와 아이 심지어 가축까지 다 죽이라는 내용, 간음한 자나 동성애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는 내용…. 제가 속한 복음주의 교회와 서클에서도 이런 내용들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교훈적 의미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저는 생각했죠.

'결국 완벽한 문자주의란 없는 것 아닌가? 문자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정도와 선택의 차이만 있을 뿐 경전을 현대적 맥락에 맞게 탄력적으로 해석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땅이 평평하고 그 위를 뚜껑처럼 생긴 하늘이 덮고 있다고 생각하던 고대인이 쓴 창조 이야기를 굳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저로 하여금 경전에 대한 문자주의적 태도를 버리게 만들었고, 이와 동시에 문자주의에 근거한 창조 과학도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진화와 창조 문제에 대한 관심 자체도 이내 시들었고요. 당시에는 진화론의 토대 위에 신학을 재구성하려는 흐름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고, 아는 거라곤 창조 과학뿐이었는데, 그걸 버리고 나니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1987년 6월 항쟁을 목격하면서 현실 사회에 무관심했던 제 삶과 신앙에 대한 회의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던 중이었죠. 결국 저는 서클을 그만두고 교회에서 맡은 일들도 정리한 후에 도망치듯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비교적 자유 시간이 많은 보직이었기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지만, 진화와 창조 관련 책은 읽지 않았습니다. 문학, 종교학, 민중 신학, 사회 과학 서적을 주로 읽었죠.

엘리아데가 펼쳐 보이는 성스러움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했고, 진보적 신학자인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 1944년∼, 독일의 자유주의 신약학자)과 안병무(1922∼1996년, 전 한신대 교수, 민중 신학자)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초월적 메시아가 아닌 사회 혁명가로서 인간 예수의 모습에 반하기도 했죠. <태백산맥>을 읽으며 우리 현대사의 격동과 파란만장한 민중의 삶에 전율하기도 했고, 사회 과학 서적들을 통해 마르크스를 재발견하기도 했고요.

제대 후에는 한신대 신학 대학원에 진학해 민중 목회를 하고픈 생각도 잠시 했지만, 목회자의 자질이나 소명감이 있는 것 같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한신대에서 종교 문화학과 선생으로서 신학하고는 그 성격 자체가 다른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으니 좀 아이러니하죠?) 결국 이런저런 관심들이 하나로 수렴되면서 부전공이던 종교학을 더 공부하기로 했고, 대학원에 진학했죠. 그 후에 제가 어떻게 종교학의 낭만주의적 흐름으로부터 계몽주의적, 비판적, 진보적 흐름으로 옮겨갔는지에 대해서는 일전의 편지에서 쓴 대로고요.

이야기가 좀 길어졌네요. 아무튼 제가 창조 과학을 공부하고 진화와 창조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건 학부 시절 몇 개월 동안이 전부였습니다. 몇 년 전 강남대 신학과의 김흡영 교수님을 도와 과학과 종교 국제 학술 회의 간사 일을 맡고, 장 선생님과 신 선생님도 만나고, 두 분이 이 분야의 원로이신 김용준 선생님을 모시고 시작한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하면서 과학과 종교 논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창조 vs 진화 논쟁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공부가 많이 부족합니다. 장 선생님과 신 선생님은 진화와 창조 문제에 오래 관심을 기울여 오셨고,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를 주장하는 과학적 창조론 진영의 연구자들과도 지속적으로 논쟁을 해 오셨으니 제가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요.


진화 vs 창조 논쟁의 긴 역사에 관한 짧은 이야기: 영국과 미국의 경우


이제 좀 다른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종교학도로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진화 vs 창조 논쟁의 역사적 맥락을 검토하고 그 사회 문화적 함의를 규명하는 일일 테니, 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국내에서 이 논쟁이 어떻게 펼쳐져 왔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한복판에 계셨던 장 선생님이 더 잘 설명해 주시리라 믿고, 저는 국외의 경우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외라고는 했지만, 주로 미국 이야기이고, 사실 그것이 거의 전부죠. 유럽의 경우 영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서는 별다른 논쟁이 벌어진 적이 없고, 영국에서도 약간의 논쟁은 있었지만 그다지 치열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후반 영국 성공회는 고등 비평을 활용한 자유주의적 성서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진화론에 신경 쓸 겨를이 별로 없었죠.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 교파들이 진화론의 무신론적 함의를 염려하기는 했지만, (이들은 미국의 보수적인 개신교 교파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그 연결 고리는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죠.) 성공회 전반에서나 주류 개신교 교파들에서는 신이 진화를 통해 일한다고 보는 절충적 입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3∼1903년)가 인간이 진화의 산물임은 인정하지만 인간의 영혼은 신이 직접 창조하신다는 입장을 표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가톨릭도 진화론에 그리 적대적이지는 않았고요. (가톨릭은 1996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화론을 전면 수용하기 전까지 상반된 입장들이 계속 교차해 왔습니다.)

적어도 20세기 초까지는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국이나 대륙과 달리 미국에서는 복음주의 개신교 교파들이 주류였지만, 이들도 진화론을 딱히 거부하지는 않았죠. 물론 가톨릭도 마찬가지였고요. 진화를 인정하면서 이를 신의 창조 과정의 일부로 보는 입장이 주류였죠. 하지만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여파와 경제 공황의 위기 속에서 미국의 보수 세력이 결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핵심에 있었던 건 바로 건국 이후 내내 미국의 주인을 자처해 온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이었죠. 그들은 근대화를 세속화로 여겼고,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고 보았으며,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종교가 다양해지는 것을 염려했죠. 이런 배경 속에서 근본주의 신앙이 흥기하기 시작했고,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미국 개신교 진영의 상당 부분이 근본주의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과학에 대해서도 매우 적대적이었고, 특히 진화론에 관해서는 그것이 성경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무신론과 우생학적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나쁜 과학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죠.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은 이내 진화론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1923년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진화론을 배제한 비검정 교과서가 승인되었고, 이어 플로리다 주에서는 반진화론법이 통과되었으며, 1925년에는 테네시 주가 공립 학교에서의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죠. (미국에서 창조론과 진화론 교육 문제는 공립 학교에만 국한되었습니다. 사립 학교는 자율권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와 별 상관이 없었죠. 물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테네시 주 법안은 미국의 진보 세력을 자극했습니다. 그들은 이런 법이 시민권에 대한 침해이자 국교를 금지한 '헌법 수정 조항 제1조'에 대한 위반이라고 여겼죠. 진보 세력의 중심인 미국 시민 자유 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ACLU)이 즉각 조치를 취했는데, 그 조치란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다가 기소됨으로써 법정 싸움을 통해 진화론 교육 금지법을 문제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존 토머스 스코프스(John Thomas Scopes, 1900∼1970년)가 자원자로 나섰고, 계획대로 진화론을 가르치다가 기소되었죠. '원숭이 재판'이라 불리기도 한 이 '스코프스 재판'에 대해서는 두 분 모두 잘 아실 테니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주 정부 측의 브라이언과 자유연맹 측의 클래런스 대로(Clarence Darrow) 사이에 오간 법정 공방은 워낙 유명해서 연극,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죠(<신의 법정>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출시된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비디오는 1988년에 TV 드라마로 제작된 것이다 : 필자).

영화 같은 데서 사실이 너무 많이 각색되고, 브라이언이 너무 고집스럽고 멍청하게 묘사된 탓에, 스코프스 재판은 흔히 진화론이 창조론을 이긴 사건으로 오해되고는 하죠. 물론 스코프스 재판이 진화론 교육 금지법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법이 위헌이 아니라는 결론과 함께 스코프스에게 100달러(지금으로 치면 1,000달러 정도)의 벌금형을 부과했죠. 그리고 이에 항소해 연방 대법원까지 재판을 끌고 가려던 자유 연맹 측의 계획은 테네시 주의 독특한 배심원 제도 때문에 좌절되었고요. (벌금이 50달러가 넘을 경우 판결은 판사가 아닌 배심원의 권한이었고, 결국 스코프스는 무죄 판결을 받았죠.) 게다가 이 재판 때문에 교육계와 교과서 출판업자들이 진화론을 껄끄럽게 여기게 되는 바람에 오히려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초래되었죠. 이는 수십 년간 지속되었고요.

상황이 반전된 것은 1960년대였습니다. 소련이 미국에 앞서 세계 최초로 인공 위성을 발사하자 미국은 자존심이 상했고, 정부와 온 사회가 과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죠. 이런 분위기 속에 1967년에는 테네시 주에서, 1968년에는 아칸소 주에서 진화론 교육 금지법이 폐지되는 등 일련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진화론이 수십 년 만에 다시 교실로 돌아왔고, 바야흐로 과학 교육의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죠.

하지만 창조론 진영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성경에만 근거해 창조론을 주장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진화론을 이길 수 없다는 건 분명했죠. 이제 교실에서 진화론을 쫓아낼 수 없다는 것도 명백했고요. 그렇다면 전략을 바꿔야 하는 법. '진화론을 쫓아낼 수 없다면, 대신에 창조론을 교실로 들여보내자. 진화론과 창조론을 나란히 가르치게 하자.' 이것이 새로운 전략이었죠. 하지만 과학적 토대가 빈약한 기존의 성서적 창조론으로는 이런 전략이 실현되기 힘들었습니다.

해결책은 금세 확보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창조 과학이었습니다. 창조 과학의 효시는 존 휘트콤(John Whitcomb)과 헨리 모리스(Henry Morris)가 1961년에 쓴 <창세기 대홍수(The Genesis Flood)>라는 책인데, 이는 창조 과학자들 중에서도 '젊은 지구 이론'을 주장하는 극단적인 사람들이 지금도 지지하고 있는 견해, 즉 지형과 지층을 형성한 지질학적 대격변의 원인은 노아의 대홍수이며, 지구의 나이는 6000년에서 1만 년 정도라는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한 최초의 책이죠. 이후 1970년대 들어 남침례교를 비롯한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교파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창조 과학 연구소가 세워지고, 연구자들이 늘어나고, 교회, 서클, 신학교, 종단 설립 사립 학교에서 대대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창조 과학의 저변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창조 과학이 진화론과 대등한 과학적 위상을 지닌다고 여기게 된 창조론자들은 이를 공립 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있게 만들려는 로비를 펼쳤죠.

전략은 그럭저럭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아칸소 주나 루이지애나 주 등 일부 지역에서나마 진화론과 창조 과학을 나란히 가르쳐야 한다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창조 과학이 다시 교실로 들어오게 되었죠. 하지만 성공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이런 주들에서는 교사, 학부모, 과학자 들이 연이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소송이 막바지에 이른 1987년, 미국 대법원이 창조 과학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며 따라서 이를 공립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국가와 종교의 분리를 명시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최종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창조 과학은 교실 밖으로 완전히 밀려났고, 다시는 교실로 되돌아올 수 없게 되었죠.

창조 과학이 무용지물이 되자, 창조론 진영은 다시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습니다. 그 대안이 바로 지적 설계론이죠.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라는 용어는 사상과 윤리 재단(Foundation for Thought and Ethics, FTE)이 1989년에 펴낸 <판다와 인간에 관하여: 생물학적 기원에 관한 중심 질문(Of Pandas and People: The Central Question of Biological Origins)>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이 책은 '창조'나 '신' 같은 단어를 사용하거나 성경을 직접 인용하는 식의 종교적 색채를 철저히 배제하면서 단지 자연 뒤에는 이를 설계한 지적인 행위자가 있다고만 주장하고 있었고, 많은 사립 학교들에서 이를 교과서로 사용하기 시작했죠.

1990년대 들어 관련 연구소가 설립되고, 필립 존스(Phillip E. Johnson), 마이클 베히(Michael Behe),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ski) 같은 논객들이 잇따라 저술들을 출판하는 등 지적 설계론의 기반이 탄탄해지고 저변이 넓어지자, 창조론 진영은 이를 공립 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있게 하기 위한 운동과 로비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 설계 운동의 기본 전략은 창조 과학 운동 당시와 마찬가지로 '진화론과 나란히 지적 설계론도 가르치게 하자'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논쟁을 가르치라'는 모토가 하나 더 추가되었죠.

하지만 이 노력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2005년 5월에 시작된 열린 캔자스 주의 진화론 청문회에서 보수 정치인들이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나란히 담은 공립 학교 교과 과정을 관철시키려 했지만, 반대가 만만치 않았죠. 결국 지난 2007년 2월에 "과학이란 우주에서 관찰되는 것에 대한 자연적 설명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정의 아래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최종 결론이 나면서 청문회가 종료되었습니다.

또 2005년에 펜실베이니아 주 도버 지구에서는 교육 위원회가 "진화론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라는 내용 등을 담은 문건을 교실에서 낭독하고 지적 설계론 서적을 교과서로 사용하게 하는 정책을 강행하자, 교사, 학부모, 과학계가 소송을 제기해 대대적인 재판이 열렸죠. 전례 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참여한 이 재판은 9월에 시작되어 12월에 종료되었는데, 결국 원고 측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139쪽에 이르는 판결문은 과학의 정의를 다시 한 번 명확히 하면서 지적 설계론은 창조 과학을 계승하는 종교적 주장일 뿐이며 결코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죠. (도버 재판의 과정은 2007년 11월에 2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3월에 EBS를 통해 방영되었다. : 필자).

정책이 관철되거나 재판에서 이긴 적은 없지만, 지적 설계론을 공립 학교 교실로 들여보내기 위한 창조론 진영의 운동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처럼 독실한 근본주의 신앙을 지닌 보수 정치인들이 이를 적극 후원하고 있죠. 1925년의 스코프스 재판에서 2005년의 도버 재판에 이르기까지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일련의 논쟁과 법정 공방은 진화 vs 창조 문제가 단지 종교와 과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정치를 비롯한 온갖 요소가 얽힌 극도로 복잡한 문제임을 말해 줍니다. 진화 vs 창조 논쟁을 쉽게 끝나지 않는 지속적인 과정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이 복잡성이죠. 여러 요소들 중에 어느 하나만 변해도 판이 새로 짜이면서 논쟁이 재개되고 법정 공방이 다시 시작될 겁니다.


한국 개신교계에서 창조 과학이 지배적인 이유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죠. 기존에 연구된 바가 없기에 우리나라에서 창조 vs 진화 논쟁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 종교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1920년대와 30년대에 과학과 종교를 둘러싸고 무신론자들과 사회주의자들, 자유주의 신학자들, 근본주의 신학자들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론적 차원에서 서로 비방하거나 대화를 모색하거나 간섭하지 말자는 내용의 논의였을 뿐 진화와 창조 문제 같은 세부 주제에 대한 논의는 아니었죠.

그 후로도 한동안 진화와 창조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논쟁이 있었더라도 지금처럼 구체적인 과학적 증거나 이론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아니었을 겁니다. 과학적 사안을 둘러싼 구체적인 논쟁은 미국에서도 창조 과학이 확산된 1980년대에나 본격화되었으니까요.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진화 vs 창조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아마도 한국 창조 과학회가 설립된 1981년 즈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국 창조 과학회의 설립 연도를 보면 우리나라 개신교계가 창조 과학을 얼마나 신속하게 들여왔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실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개신교는 전래 초기부터 줄곧 미국 개신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근본주의 교파들이나 사실상 근본주의와 별 차이가 없는 복음주의 교파들이 주류를 이루어 왔으니, 당연한 일이겠죠.

창조 과학은 걸출한 개신교계 지도자와 내로라하는 대형 교회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개신교 교회들과 개신교계 사립 학교는 물론 일반 고등학교, 대학교의 서클들을 통해 널리 보급되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미국에서는 지적 설계론이 등장하면서 창조 과학이 극단적 근본주의자들만의 게토로 위축되어 들어간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지적 설계론도 일찌감치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적 설계론보다는 창조 과학이 압도적이죠.

이러한 현실과 그 원인에 대해서는 장 선생님과 신 선생님이 더 잘 아실 테니, 두 분의 설명을 기대하겠습니다만, 일단 제 나름대로 진단해 본 이유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서 지적 설계론보다 창조 과학이 우세한 건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무 간단한가요? 좀 더 이야기를 풀어 보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미국의 진화 vs 창조 논쟁에는 종교, 과학, 교육, 정치 등 온갖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미국은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엄연한 세속 국가지만, 개신교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죠. 특히 교계 지도자와 보수 정치인들의 연합 속에 개신교와 정치가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미국에서 창조 vs 진화 논쟁과 법정 공방이 신학계와 과학계의 대립보다는 주로 교육을 둘러싼 보수 정치권과 시민 운동권의 대립 속에 펼쳐져 온 것은 이 때문이죠. 개신교계와 보수 정치권이 손을 잡고 공립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거나 창조론 교육을 추가하려 하면, 올바른 과학 교육을 원하고 국교를 금지하고 종교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적 권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이를 문제 삼으며 법정 싸움을 벌여 온 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개신교가 미국에서처럼 그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지는 않습니다. 개신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개신교가 너무 두드러진다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개신교는 천주교와 불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과 경쟁하며 공존하는 하나의 종교일 뿐이죠. 또 종교들이 정치와 영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개신교만 그런 건 아니기 때문에 미국에서처럼 개신교계와 보수 정치권이 결탁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일이 쉽게 벌어지지는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우리나라에서 진화 vs 창조 논쟁은 일단 일부 개신교인들과 과학자들에게만 국한됩니다. 그래서 미국과 달리 우리의 경우는 교육계와 정치권이 개입하여 논쟁이 확대되는 일도, 교육 정책이 바뀌는 일도,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일도 없었던 거죠. 미국에서는 종교, 과학, 교육, 정치가 뒤엉키면서 치열한 논쟁과 법정 공방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창조 과학으로는 도저히 진화론에 맞설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결국 지적 설계론이 창조 과학을 대체하게 되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대적인 논쟁이 벌어진 적도 없고, 더욱이 법정 공방이 벌어진 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창조 과학은 공적인 시험대 위에 오르는 일 없이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에서와 같은 치열한 논쟁과 법정 공방이 벌어진다면, 창조 과학이 퇴조하고 지적 설계론이 창조론 진영의 주류 이론으로 떠오를지도 모르죠. 그런 일이 쉽게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진화 vs 창조 문제가 개신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


위에서 제가 창조 vs 진화 문제가 일부 개신교인들과 과학자들에게 국한된 일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좀 더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상황은 좀 더 복잡하죠. 그렇기에 저는 이 문제가 좀 더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죠.

우선, 창조 과학이든 지적 설계든,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과학적 창조론이 일부 근본주의 개신교 교단뿐만 아니라 거의 한국 개신교 전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영국과 유럽에서는 근본주의적 흐름이 미약했기 때문에 창조-진화 문제 자체가 크게 불거진 적이 거의 없었죠. 미국의 경우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이 아무리 막강해도 자유주의나 온건한 복음주의 계열의 개신교 진영이 이와 팽팽히 맞서며 균형을 이루어 있기 때문에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개신교 전반을 장악하지는 못해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 개신교에서는 일부 자유주의 교단을 제외하고는 복음주의나 근본주의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교단이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짐작하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주의 개신교 진영의 규모가 너무 작고,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경계가 아주 모호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만, 정확한 원인은 좀 더 따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 신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실 수 있겠는지요?

창조 vs 진화 문제를 일부 개신교계에 국한된 지엽적 문제로 접어 둘 수만은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미국에서처럼 종교계와 정치권이 결탁하거나, 논쟁이 공론화되거나, 법정 공방이 벌어진 적은 없어도,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창조 vs 진화 문제가 종교계뿐만 아니라 과학계와 교육계가 일정 정도 관련된 공적인 문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 선생님이 아마 자세하게 잘 아시겠지만, 카이스트 구내에 작은 창조 과학 전시관이 있죠? 한국 창조 과학회가 1993년에 설립한 전시관이 여러 우여곡절을 겪다가 2003년에 카이스트 구내로 이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고, 또 가능했는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물론 이곳 말고도 전국에 작은 창조 과학 전시관이 몇 군데 더 있기는 하죠. 또 대형 교회들을 중심으로 막대한 후원 기금이 마련되어 대규모 창조 과학 박물관을 건립하는 일도 착착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 미국에서도 얼마 후면 세계 최초의 대규모 창조 과학 박물관이 개관한다고 하더군요. (켄터키 주 신시내티의 피터스버그에 소재하고 있으며, 2007년 5월에 개관했다. : 필자)

이런 전시관이나 박물관이 개신교계가 마련한 일반 부지에 있다면야 굳이 제3자가 나서서 시비를 걸 것까지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국립 연구 교육 기관인 카이스트 구내에 창조 과학 전시관이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창조 과학이 맞는지 틀리는지, 과연 그것이 과학인지, 이런 문제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창조 과학이 개신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리와 신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그러니 규모가 크든 작든, 또 그 위상이 어떠하든, 국립 기관인 카이스트 측이 구내에 창조 과학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공간을 제공했다는 건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많아 보입니다.

물론 누구든 사적인 차원에서 종교 서클 활동을 할 수 있고, 국립 기관에서도 이들에게 서클룸을 제공할 수는 있습니다. 카이스트에서도 교수들과 학생들이 공식 수업과 별도로 얼마든지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공부할 수 있고, 이는 그들의 자유이자 권리죠. 하지만 소규모 공동체의 사적 공간인 서클룸과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 공적 공간의 성격이 강한 전시관은 엄연히 다릅니다. 국립 서울 대학교에 많은 종교 서클들이 있고 강당 같은 데서 수시로 종교 집회들이 열리기는 해도, 결코 교회나 사찰 같은 종교 시설이 서울대 구내에 설립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죠. 카이스트 쪽 상황을 잘 몰라서 일이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카이스트 구내의 창조 과학 전시관은 다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중등 교원들을 위한 '특수 분야 직무 연수'라는 것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2000년대 초반에 한국 창조 과학회가 이 직무 연수 기관으로 지정되었더군요. 한국 창조 과학회와 몇몇 개신교계 사립 대학들이 공동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개신교인 교사들을 위한 창조 과학 연수를 제공해 오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여기도 문제의 소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직무 연수 기관에 교육부 보조금이 얼마나 제공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제공된다면 이 역시 헌법의 국교 금지 조항에 위배될 수 있죠. 설령 교육부 보조금이 없다 해도, 연수 과정에서 이수한 학점이 교사의 인사 고과 평가 점수에 포함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기는 여전히 마찬가집니다. 보조금을 지원하든, 인사 고과 점수에 반영하든, 정부가 공교육 영역에서 특정 종교를 직접적으로 후원하는 셈이기 때문이죠.

사립 학교의 경우라면 굳이 문제가 되겠느냐고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와도 달리, 우리나라는 사립 학교가 정말 사립 학교가 아니기 때문이죠. 초등학교와 대학교는 국고 보조금이 거의 없고, 입학도 전적으로 학부모와 학생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굳이 문제될 게 없습니다. (사실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사립 학교라도 운영비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한 재단의 자율권에는 일정한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중고등학교는 다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사립 중고등학교들은 운영비의 거의 전액을 국고 지원금과 학생 등록금에 의존합니다. 재단 전입금은 거의 없거나 아주 미미하죠. 게다가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 특수 학교나 대안 학교 등을 제외하면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학교를 배정받을 뿐 선택의 기회나 권리가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우리나라 사립 중고등학교는 이름만 사립일 뿐 사실상 공립이나 마찬가지죠. 사립 중고등학교는 사학 재단의 자율권보다 학생의 피교육권이 더 중요한 엄연한 공교육 영역에 속합니다. (2004년에 대광고의 강의석 군이 종교 행사 참여를 의무화한 학교 규정을 거부하며 싸움을 벌였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죠.) 그러니 아무리 사립 학교라도 특정 종교 단체가 관련된 창조 과학 직무 연수 성과를 인사 고과에 반영하는 건 공교육에 대한 침해의 소지가 큽니다.

또 공립 학교는 물론 사립 학교에서조차도 과학 교사가 수업 시간에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가르치는 건 더더욱 안 될 일이죠. (많지는 않아도, 그런 일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수업 외 서클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사적으로 진화와 창조 문제를 공부하는 거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립 학교가 공교육 영역 안에 있는 한 특정 종교에 근거한 창조론은 결코 교실로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이는 미국과 우리가 크게 다른 점이죠. 미국에서 창조론과 진화론 교육 문제는 어디까지나 공립 학교에 국한된 문제입니다. 사립 학교와 공립 학교가 철저히 구분되기 때문에 사립 학교의 교육 내용에 대해 설령 학부모는 간섭할 수 있어도 정부가 절대 간섭할 수는 없죠. 이와 달리 우리는 사립 학교와 공립 학교의 구분이 거의 없고, 사립 학교가 사실상 공교육 영역 안에 있기 때문에 사학 재단의 자율권보다 학생의 권리가 우선되고, 정부의 교육 정책이 개입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립 학교나 사립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혹시 창조론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되거나 연구된 바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98년에 전국의 많은 개신교인 교사들이 단체를 결성해 창조 과학을 연구하고 진화론 위주 교과서와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을 해 온 것을 보면, 교실 현장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해 실태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창조론 교육이 사립 학교나 공립 학교의 공교육 현장으로 들어온다면 과학 교육은 일거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 과학이 과학이다, 아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문제는 다른 자리에서 논할 사안이죠.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종교의 다양성과 종교의 자유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Church of Flying Spaghetti Monster)'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죠? 2005년에 열린 캔자스 주의 진화론 청문회에서 지적 설계론을 공립 학교 교과 과정에 끼워 넣으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물리학을 전공한 한 대학원생이 캔자스 주 정부에 긴 항의 편지를 보냈죠. "나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 신자다. 우리에게도 자연에 관한 과학적 이론이 있다. 그러니 진화론이나 지적 설계론과 나란히 우리의 이론도 교실에서 가르칠 수 있게 해 달라." 대략 이런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물론 그런 종교가 실제 있는 건 아니고, 단지 종교를 패러디한 것일 뿐이었죠. 캔자스 주 정부는 이를 가볍게 무시했고요. 다행히 지적 설계론이 교과 과정에 포함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아무튼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교회는 창조 vs 진화 논쟁의 한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되었죠. 종교 패러디 놀이에 흥미를 느낀 많은 사람이 스파게티 괴물 교회에 가입하기 시작해 지금은 가입자가 엄청나게 많아졌고, 스파게티 괴물 복음서도 내고, 스파게티 괴물을 소재로 한 소품들을 판매해 기금을 마련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스파게티 괴물 교회의 종교 패러디 놀이가 무신론 운동과 반종교 운동의 중요한 거점이 되어 가고 있는 거죠.

스파게티 괴물 교회의 사례는 창조론이 공교육 현장으로 들어와서는 안 되는 이유를 웅변적으로 말해 줍니다.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가르칠 수 있다면, 화학과 연금술, 천문학과 점성술, 뇌과학과 골상학, 신경 과학과 기(氣)과학도 나란히 가르칠 수 있어야 마땅하죠. 이런 것들도 한때는 모두 '과학'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이를 '과학'이라 믿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과학' 개념의 정의와 범주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더 이상 올바른 과학 교육은 불가능할 겁니다. 온갖 사이비 과학들이 교실에서 난무하겠죠.

좀 극단적인 가정이긴 했습니다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얼마나 정확하든, 또 그것이 과학이든 아니든, 거기에 일말의 종교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또 거기에 실제로 종교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한 한, 그것은 결코 공교육 속으로 들어올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아직은 이런 문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것 같아 다행스럽긴 합니다만, 겉으로만 불거지지 않았을 뿐 문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국처럼 노골적이거나 치열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창조 vs 진화 문제가 개신교 일부 진영에만 국한되지 않고 공적 교육의 제도와 현장에도 일정 정도 얽혀 들어와 있기 때문이죠.

머리가 복잡하고 풀리지 않은 생각들도 많지만, 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신 선생님과 장 선생님은 개신교계에서 또 과학계에서 창조-진화 논쟁에 직접 뛰어들어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연구하시는 분들과 지속적으로 토론을 해 오셨으니, 두 분께 듣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새벽인가 싶더니 어느새 바깥이 환하네요. 오늘은 이만 접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곧 다시 뵙지요.


2007년 4월 15일

오산 양산봉 기슭에서

김윤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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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서울대 '접수'한 교회…그 다음은?"

과학과 종교의 대화 <12> 나의 '진화 vs 창조' 논쟁사



장대익 교수는 국내에서 진행된 '진화 vs 창조'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론과 그것의 한 부류인 '지적 설계' 주장이 전개돼온 역사를 훑으면서, 그것의 학문적 기초가 얼마나 허약한지 낱낱이 해부한다. 특히 그는 "끊임없이 '논쟁'을 시도함으로써 발언권을 확보하려는 창조론자의 전략"을 소개하면서 '진화 vs 창조' 논쟁이 계속되는 중요한 근거를 제시한다.



신재식 선생님과 김윤성 선생님께,


보스턴에 온 지 벌써 한해가 다 되어 갑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해 살다 오기에 1년이라는 기간은 정말 짧은 것 같아요. 적응하는 데 두 달, 떠나는 데 두 달이라는데, 그렇다면 이제 주변을 정리하고 짐을 싸야 하는 시점입니다. 여기 학기도 거의 끝나가니 지난 1년간의 삶을 자연스레 되돌아보게 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크고 도전적인 지적인 자극을 받았던 시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앞으로 어떤 자세로 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화두를 갖고 연구해야 할지, 그리고 어떤 흐름을 좇아야 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김윤성 선생님의 편지는 지난 1년 정도가 아니라 지난 10여 년의 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더군요. 선생님의 '창조 과학 탈출기'도 무척 공감하면서 읽었지만, KAIST 내의 창조 과학 전시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시는 대목에서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제가 거기 출신이거든요.


'창조 과학'은 한물간 지적 퇴행

 

우선,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이공계 대학 KAIST와 그 속에 동아리 형태로 존재하는 과학원 교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창조 과학 전시관의 관계에 대해 저도 좀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김 선생님의 '창조 과학 탈출기'랄 만한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진화 vs 창조 논쟁기'는 있습니다. 제가 과학고등학교와 KAIST라는 이공계 대학을 다니며 과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좀 익숙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대학에 와 기독교인으로 거듭난(?) 이후에도 저는 창조 과학 같은 것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좀 불편한 점도 있었지요. 솔직히 천박해 보였거든요. 학부 시절에 저의 신앙에 가장 큰 걸림돌은 진화론보다는 오히려 종교 다원주의 같은 상대주의 철학이었습니다.

어쨌든, 대학 3학년 때였던가요, 기독교에서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한창 열심히 배우러 다니던 때였습니다. 제가 KAIST의 밖에 있는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교내 기독 공동체에서도 활동을 했기 때문에 교내에 있는 과학원 교회라는 곳에 들락거리기도 했었죠. 거기에는 창조 과학 연구회(RACS)라는 단체가 하부 조직으로 있었습니다. 그 연구회 멤버들이 말하자면 과학원 교회의 핵심 멤버들이었습니다. 제가 그 선배들과 인간적으로 친하게 지내서인지 자연스럽게 과학원 교회나 창조 과학 연구회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었지요.

제가 창조 과학을 의심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바고 그때였습니다. 대학원생 선배들이 교회에 나가 일반 신도들을 대상으로 창조 과학 강연회를 다녀오곤 했습니다. 대체로 박사 과정 선배들이었지만 개중에는 석사과정생도 있었지요. 그들은 창조 과학회에서 제작해 준 슬라이드와 대본 등으로 일정 정도 훈련을 받은 후에 틈나는 대로 강연을 뛰어 다녔습니다. 그 '대본'이 지금 생각해 보면, 김 선생님도 열심히 공부하셨다던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였던 것 같아요. 그걸 달달 외워서 교회에 나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했었죠.

그들 중에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같은 자연 과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도 있었지만 주류는 공학도들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은 150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검증받고 승인된 진화론을 300쪽도 안 되는 책 한 권으로 단 1시간 만에 자빠뜨리더군요. 참으로 용감한 선배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늘 의기양양하여 돌아왔습니다. 마치 은폐된 진실-진화론은 거짓이고 창조 과학이 사실이라는-을 당당하게 밝혀낸 전사들의 모습이었다.

두 분도 잘 아시겠지만, 과학은 이런 식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김 선생님도 지적하셨듯이 과학은 기본적으로 집단적인 작업이지 않습니까? 어떤 주제를 연구하는 일군의 과학자 공동체가 있고, 그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제, 해답, 풀이 방식이 존재합니다. 이건 꼭 과학 철학자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지요. 그래서 만일 어떤 이들이,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기존의 과학 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면, 기본적인 규칙을 잘 지켜서 해야 합니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믿고 받아들이는 진화론을 일개 대학원생이 하루 이틀 공부하고 대본을 달달 외워 선량한 교인들을 상대로 "아멘, 할렐루야"를 이끌어내는 행위는 열성적 종교 행위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과학자들이 대중들과 소통하는 정상적인 방식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저도 기독교인이었고, '모든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이라는 야무진 생각을 갖고 있었던 때라 창조 과학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종교 행위를 과학 활동과 혼동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적잖이 실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 분 선생님 모두 그런 경험 있으실 거예요. 젊은 과학도나 박사, 혹은 교수가 교회에 와서 창조 과학 강연을 하면 순진한 교인들은 과학에 권위를 갖고 계신 분이 와서 과학계의 진실을 이야기하고 간다고 느끼잖아요. 특히, 그동안 지식이 없어서 찜찜하게만 여겼던 진화론을 잘근잘근 씹어 주니까 얼마나 통쾌하겠습니까? 지적 열등감이 단숨에 해소되는 경험이랄까요. 저도 교회에서 중고등학교 때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어요. 특히 고등학교 때는 제법 진지한 고민도 했었죠. 학교 생물 시간에는 진화론을 배우지만 교회에서는 창조 과학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대학에 가 보니 창조 과학 강연자들이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선배 과학도였고, 학문적 권위를 갖고 강연 내용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거죠. 말하자면 저는 창조 과학에 매력을 느끼기도 전에 이미 그 내부의 실상을 보게 된 경우입니다. 인문학도들의 입장에서는 과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어서, 김 선생님처럼 창조 과학의 내용 자체를 진지하게 공부해 보는 사람도 계시지만, 저의 경우는 금세 감이 왔다고 할까요. 이건 아니다….

과학에 대해 사람들이 자주 혼동하는 몇 가지가 있는 듯해요. 과학의 본질은 '내용'이 아니라 '절차' 또는 '방법'인데, 사람들은 자꾸 내용에 대해서만 물어요. '공룡과 인간이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주장이 과학이냐?', '외계인이 사람을 납치해 간다는 주장이 과학이냐?', 'B형 남자는 성질이 더럽다는데 그게 과학적 사실이냐?' 등.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어떤 내용을 담은 주장도 원칙적으로 제지당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이 모든 것이 과학이라고 해도 경찰에 연행되지는 않지요(도대체 뭔 이야기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갈릴레이 때까지만 해도 끌려가고 심지어 화형도 당했으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는 아니겠죠?).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주장들이 과학자 공동체의 인정을 받진 못합니다. 과학자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주장들이 과학적 절차나 방법을 거쳐서 나온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누구나 참신하고 엉뚱한 주장을 할 수는 있겠지만, 과학자 공동체는 그 주장의 내용보다 그 주장이 나온 절차를 문제 삼습니다. 물론 그 절차에 대해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20세기 과학 철학의 역사 속에 등장한 귀납주의, 가설 연역주의, 반증주의, 패러다임 이론 등은 바로 그 절차에 관한 논쟁의 결과물들입니다.

그렇다면 창조 과학은 과학이랄 수 있을까요? 다들 동의하시겠지만, 과학에 대한 그 어떤 기준을 들이대도 창조 과학은 과학의 문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카를 포퍼식으로 이야기하면, 창조 과학은 '반증 불가능한 이론의 집합'이고, 토머스 쿤식으로 이야기하면 창조 과학에는 '인상적인 문제 풀이가 전혀 없'습니다. 이미 김 선생님께서 현대 과학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창조 과학의 몇 가지 가설과 주장들에 대해 언급을 해 주셨는데요, 지금도 한국 창조 과학회 홈페이지(☞바로 가기)에는 과학자들이 보기에 정말로 쇼킹한 이야기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6500만 년 전에 멸종한 공룡과 몇 십만 년 전쯤에 진화한 현생 인류가 공존했다는 기사가 최신 뉴스가 되질 않나, 지구의 실제 나이는 1만 년 정도라고 하질 않나, 과거에 빛의 속도가 변했었다고 말하지 않나, 정말 점입가경입니다. 과학계를 통해 검증받지 않은 황당한 주장들이 아무런 제재 없이 사실로 둔갑하여 교인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사실, 일반 교인들에게 이공계 박사, 교수라고 하면 자연 세계에 대해 만물박사인 양 권위를 인정받기 일쑤입니다. 일반인들은 입자 물리학 전공 박사에게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의 디테일을 묻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여기지요. 그런데 어디 그렇습니까? 전문 과학자들은 만물박사가 아니잖아요. 한국의 창조 과학 옹호자들은 교인들의 이런 무딘 지성을 십분 활용하여 교회 내에서 권위를 획득해 왔지요.

여기서 제가 '창조 과학자'라는 말 대신에 창조 과학 '옹호자'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과학자'라고 하면 자신의 연구 주제와 방법론을 가지고 연구 성과라는 것을 내는 사람들이지요. 국내 창조 과학회 회원들 중에서 이런 실천을 보이는 사람은 제가 알기로 없습니다. 다시 말해 창조 과학을 옹호하고 그것에 대해 강연을 하고 심지어 그것을 가르치려는 사람들은 있지만, 정작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지요. 이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입니다. 창조 과학은 새로운 사실을 예측하거나 기존의 설명보다 더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하기는커녕, 반례들에 대해 땜질도 잘 못하는 수준이니까요. 과학 철학자 라카토슈는 이런 수준의 가설들을 "퇴행적 연구 프로그램"이라 부르고 과학이 아니라고 판결해 줬지요.

상식적으로 문제를 볼게요. 어떤 분야의 과학자 공동체가 있고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는 개별 과학자들이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학술지가 존재합니다. 한국 창조 과학회의 경우에는 1981년에 <창조>라는 정기 간행물을 출간하여 139호까지 발간해 오다가 최근에는 웹 소식지를 매월 발간하는 형태로 바꿨습니다. 물론 학술지나 편집 위원, 그리고 연구 논문 시스템 같은 학회의 기본 구조는 전혀 갖추지 못했습니다. 대신 신도들을 위한 강연, 창조 과학 사역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독교권 밖에서는 "변변한 전문 연구지 하나 없는, 학술 단체를 빙자한 종교 단체" 정도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지요. 정리하자면 한국의 창조 과학 운동은 기존의 과학자 공동체에는 전혀 호소력이 없는 반면,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교인들에게만 위안이 되는 교회 대중 운동으로서 교회를 순회하거나 정기 강연회를 열어 교회 내에서 지지 세력을 형성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 있는 창조 과학의 위상은 사뭇 달라 보입니다. 한국 창조 과학회 홈페이지에 가 보면 현재 "석·박사급 과학자, 의사, 교수, 교사로 구성된 1000여 명의 회원과 1만여 명의 온라인 회원, 그리고 16개의 국내 지부와 5개의 국외 지부를 가진 비영리 사단 법인으로 성장"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조직입니다. 그리고 김 선생님도 지적하셨듯이 온누리 교회를 비롯한 개신교 대형 교회들, 그리고 한동 대학교, 명지 대학교를 비롯한 복음주의권 사립 대학들이 이 조직을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창조 과학은 한국 주류 기독교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창조 과학 운동이 한국의 과학 문화에 끼친 악영향은 미미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한국 교회에서 이런 강연회와 교육은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진화에 대한 충실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 않은 현실에서 (많게는) 거의 매주 창조론을 옹호하는 설교나 강연을 학생들이 듣게 된다는 것은 과학 교육 측면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과학계의 컬트 문화에 불과한 창조 과학이 한국 사회에서는 왜 이렇게 개신교의 주류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본격적인 답은 아무래도 신학자이신 신 선생님께서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저는 창조 과학과 겪었던 불화의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카이스트와 서울대 안에 교회 있는 거 아세요?


제가 창조 과학의 메카(?)인 KAIST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과학 철학, 과학사, 진화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제게 창조 과학은 어떻게든 정리되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박사 과정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던 중에 어떻게 하다 보니 <복음과 상황>이라는 복음주의 계열 잡지의 편집 위원으로 몇 년을 일하게 되었죠. 두 분은 이 잡지의 성격에 대해 잘 아실 겁니다. 1980년대 후반에 창간되었고 복음주의 계열에서 거의 유일하게 진보적 성격을 띠었던 잡지였지요.

저는 1997년 10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진화론과 기독교"라는 큰 제목으로 기독교와 진화론의 화해 가능성을 모색해 보는 글들을 연재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영미권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던 이른바 '과학과 종교(science and religion)' 연구 프로그램에 입각하여 과학과 종교의 화해를 모색하는 일련의 흐름들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소개했습니다. 한마디로, 한국의 개신교가 진화론을 공공의 적으로 상정할 필요는 없다는 논증을 펼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창조 과학 운동을 건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혈기왕성한 20대였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보다는 직설적으로 비판했지요. 심지어 "창조 과학회는 사이비 과학으로 교인들에게 사기를 치는 단체 아니냐"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진화론을 연구하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어떻게든 진화론과 기독교를 화해시켜 보려고 애를 썼던 상황이었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은 나름 뜨거웠지요. 돌 맞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지만 창조 과학은 영 아닌 것 같았는데, 가려운 데를 긁어 줘서 고맙다"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응원의 이메일 메시지를 보내 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창조 과학회 측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지 않았었지요. 그러다 거의 1년이 지난 후에 창조 과학회 측 임원(모 대학 의대 교수)이 같은 잡지에 기고한 답장이 있었지요.

그 답장의 요지는 첫째 "진화론은 과학적이지 않다."라는 것이고 둘째는 "진화론은 무신론"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다음 호에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면 과학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반론에 즉각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창조 과학 옹호자들이 과학에 대해서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는 지적을 했지요. 예컨대 진화론을 비판할 때는 지나치게 엄격한, 그래서 그 어떤 과학적 활동도 사이비 활동처럼 만들어 버리는 기준을 택하는가 하면 창조 과학을 내세울 때는 지나치게 느슨한, 그래서 그 어떤 활동도 과학의 캠프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드는 기준을 들이댄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창조 과학을 진화론의 위에 놓을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한편, "진화론은 무신론"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대응을 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의 제 상황에서 보면 대응하지 않은 게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무신론적 진화론자 아닙니까?)

몇 달 후에 창조 과학회의 핵심 멤버였던 모 교수가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그 교수는 제 글의 내용보다 저의 태도를 문제 삼더군요. 자세한 것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네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저더러 "젊은 것이 오만불손하다"는 거였습니다. 당시에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대응을 할지 말지를 고민했던 것 같은데요, 결국 그 논쟁에서 저는 빠지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논쟁을 이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지적과 공격적인 단어들은 논쟁의 진정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특성을 태도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태도는 당시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이해를 합니다. 원래 종교, 특히 기독교 내에서 토론다운 토론을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핵심을 문제 삼게 되면 태도의 문제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이 종교에는 있는 것 같아요. 새파란 젊은 것이 자신들의 텃밭인 창조 과학의 정체를 까발리고 있으니 얼마나 불손해 보였겠습니까? "오만한 놈"이라는 비난을 당했어도 저는 그때 과학계의 진실을 기독교권 내로 알렸다는 사실에 당당했습니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방금 전에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니 지금도 당시의 글들이 인터넷에 떠도네요. 좋은 세상이긴 하지만 한편 무섭습니다. 무신론자인데도 인터넷의 증거상으로는 저는 아직까지 기독교와 진화론을 어떻게든 화해시켜 보려는 유신론적 진화론자입니다.

KAIST와 과학원 교회, 그리고 창조 과학 전시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창조 과학은 이제 그만 언급하고 싶습니다. 김 선생님께서는 국립 대학인 KAIST 내에 특정 종교에 바탕을 둔 창조 과학 전시관이 있다는 사실을 문제 삼으시면서 그것을 '종교의 자유' 문제와 연관을 시키셨는데요,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저는 더 심각한 문제를 추가로 지적하고 싶어요.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창조 과학 전시관은 동아리로 등록된 '과학원 교회'의 내부에 있습니다. 국립 대학 내에 교회가 버젓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동아리로 등록되어 있으니 틀림없이 동아리 지원금도 받고 있을 터고요. KAIST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목회자를 포함하여)이 교회의 중요한 멤버로서 참여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일개 동아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공간(1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예배당)도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국립 서울 대학교 내부에 이런 교회가 있다고 해 보세요. 학교의 지원금도 받고, 공간도 할당받고, 외부에서 온 목사가 중심이 되어 예배를 인도한다고 해 보세요. 그것도 일요일에만 학교 건물을 빌리는 게 아니라 매일 자기 방처럼 쓴다고 한다면, 학교 구성원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입니다. 그 중에는 이번 기회를 통해 학교에 작은 사찰을 만들자는 불자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요구를 어떻게 막겠습니까? 다시 말해, 특정 종교의 회당이 학교 내로 들어와 마치 동아리처럼 활동하는 것은 국교를 부정하는 헌법의 기본 조항에 위배되는 경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여러 종교들 중에서 유독 기독교 계통의 종교들이 특히 이런 얌체 같은 짓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혹시나 해서 포털에 "서울 대학교 교회"라고 쳐 보니 "서울 대학 교회"가 뜨네요. 홈피에 들어가 보니 정말로 서울 대학교 내에서 강당을 빌려 모임을 갖는 교회가 있습니다. 서울대 교수들이 주축인 것 같지만 외부에서 목사도 초빙한 것 같군요. 국립 대학에서 이래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저도 한때 KAIST의 과학원 교회에 발을 깊숙이 담갔던 사람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관련 기사 : "이명박 되면 청와대에 교회 짓는다고요?")


지적 설계론, 그저 사이비 과학일 뿐!


이제 화제를 좀 바꿔 볼게요. 영 아닌 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기하려니 점점 재미가 없어집니다. 김 선생님은 주로 창조 과학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최근 영미권에서 유행처럼 번진 '지적 설계 운동(intelligent design movement)'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논의를 해 보는 게 좋을 듯해요.

두 분 혹시 누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함께 가르쳐 학생들에게 논쟁이 무엇인지를 이해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어느 목사의 주장이 아니랍니다. 2005년 8월 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 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거든요. 도대체 지적 설계론이 무엇이기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가르치라 마라 하는 것일까요?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150년이 지나는 동안 진화론의 수용과 관련하여 가장 흥미로운 반응을 보인 국가는 아마도 미국일 것입니다. 김 선생님도 요약해 주셨듯이, '원숭이 재판'이라 불리기도 하는 스코프스 재판(1925년 테네시 주)에서 반진화론법이 통과된 사건부터 1981년에 알칸소 주에서 창조론자들이 요구했던 '동등시간법'(진화론을 가르치는 시간만큼 창조론도 동등한 시간 동안 가르치도록 요구한 법)의 등장까지, 과학계에서는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진화론에 대해 미국의 보수주의 기독교 층은 계속해서 딴죽을 걸어 왔지요. 이런 맥락에서 1990년대 등장한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 이하 ID)은 진공 속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창조론이 좀 더 세련되어진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CBS 방송사가 2004년 말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65%가 창조론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치길 원하고, 심지어 37%는 진화론 대신에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시 후보를 찍은 유권자 중 45%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답한 반면, 존 케리 후보(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자 중에는 24%정도만이 이에 찬성했지요. 또한 2004년 성탄절 직전에 한 뉴스위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중 62% 공립 학교에서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게다가, 신이 우리 인간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했다고 믿는 미국인은 55% 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의 ID 옹호 발언을 이해 못 할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게다가 부시 대통령의 보수적 신앙심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도 가장 특출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ID와 진화론 간의 논쟁을 가르치라.'는 미 대통령의 발언에는 ID 운동의 집요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논쟁을 가르치라(Teach the controversy)"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전략은 지난 10여 년 동안 ID 운동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디스커버리 연구소(Discovery Institute, 이하 DI)의 작품입니다. 미국의 ID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DI와 그 주변의 인물들, 그리고 그들의 활동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DI는 미국 워싱턴 주의 시애틀에 본부를 두고 있는 보수 기독교계의 싱크 탱크로서 공화당 정치인 출신의 부르스 채프먼(Bruce Chapman)과 정보 기술의 석학인 조지 길더(George Gilder)가 1990년에 의기투합하여 만든 공공 정책 연구 기관이었습니다. 이렇게 출발한 DI는 1996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과학 철학으로 박사를 갓 받은 스티븐 메이어(Stephen C. Meyer)의 합류로 '과학과 문화 갱신 센터(Center for the Renewal of Science and Culture)'라는 부설 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지요.

이 연구소는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법학 교수 필립 존슨(Phillip E. Johnson, 1940년~ )의 주도로 1998년부터 이른바 '쐐기 문건(Wedge document)'을 작성하게 됩니다. 이 문건에는 미국에 ID를 퍼뜨리기 위한 향후 5개년 전략이 담겨져 있었는데, 내부용으로 회람되던 것이 1999년에 인터넷을 통해 그 내용이 새어 나왔습니다. (필립 존슨 사진)

'쐐기 전략(Wedge strategy)'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전략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다음의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과학적 유물론(scientific materialism)과 그것의 파괴적인 도덕적·문화적·정치적 유산을 물리치는 일이고, 둘째는 유물론적 설명을 인간과 자연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유신론적 이해로 대체하는 일입니다"

이 문건이 공개되자 많은 사람들은 DI가 ID를 내세워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운동을 전개하는 궁극적 이유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과학적 성취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유신론적 세계관의 확산을 위한 것이었죠. DI는 유신론의 확산을 가로막는 원흉으로서 진화론을 지목했고 그것의 지위를 흔들기 위한 방법으로서 ID를 들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진화론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ID는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이론이다. 사람들에게 이 둘 간의 논쟁을 가르쳐야 한다. 열린 마음을 갖은 사람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이라고요.

김 선생님도 지적하셨듯이, "ID"라는 용어 자체는 1989년에 '사상과 윤리 재단(Foundation of Thought and Ethics)'이 출간한 <판다와 사람에 관하여(Of Pandas and People)>에서부터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 책은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용으로 씌어졌는데, 창세기의 구절들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창조 과학의 방식과는 달리, 성서를 참조하지 않으면서 "창조"나 "창조론" 등의 용어들을 "지적 설계(ID)"라는 탈기독교적 용어로 대체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었죠. 이 책의 저자들은 ID가 "생명의 다양한 형태들이 본래의 특성을 가진 상태에서 갑자기 지적인 행위자(intelligent agent)에 의해 시작되었다"라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적인 행위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공립 학교 교과서의 최소 요건 중 하나-"특정 종교의 확립에 기여해서는 안 된다"라는-를 만족시키려 했습니다. 이때부터 출판사는 여러 자원들을 동원하여 교육 위원회들이 이 책을 교과서로 택할 수 있도록 홍보와 로비를 펼치기 시작합니다.

ID가 <판다와 사람에 관하여>에서 시작된 용어이긴 하지만, 1990년대 전반부에 ID의 확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책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명한 법 논리학 교수인 필립 존슨이 1991년에 출간한 <심판대의 다윈(Darwin on Trial)>(이승엽 외 옮김, 까치 펴냄)입니다. 존슨은 생물학 교육을 공식적으로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 책에서 법의 논리로 현대 진화론의 난점들을 고발하려고 했습니다. 이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ID는 새로운 유형의 창조론으로 미국 대중들의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는 후속작들을 통해 단순히 진화론 비판에 머물지 않고 과학계의 '방법론적 자연주의(methodological naturalism)' 자체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방법론은 "유신론적 실재론(theistic realism)"입니다. 이런 그의 입장은 DI의 쐐기 문건에서 적시된 두 가지 목표와 정확히 일치하지요. 그는 1999년에 공화당 텃밭인 캔자스 주의 교육 위원회가 공립 학교에서 생명의 기원을 어떤 이론으로 가르쳐야 할지를 놓고 벌인 일련의 회의에 깊숙이 관여하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논쟁을 가르치라.'라는 캠페인을 시작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DI는 이 모든 전략과 캠페인을 공식화하는 막강한 후원 기관이고 존슨은 DI 산하의 '과학과 문화 센터'에서 고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류 대학의 석학이 든 깃발은 기존의 창조 과학에 식상해 있던 (교육 수준이 높은)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young earth creationism)'을 주장하는 창조 과학자들이 주로 신자들을 교육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면, ID학자들은 그 일 외에도 열린 공간에서 주류 학자들과 공개적으로 논쟁하는 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논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고 해야 더 옳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DI의 '쐐기 전략'과 '논쟁을 가르치라' 캠페인은 지적 열등감을 떨쳐 버리려는 보수주의 기독교계의 몸부림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ID 운동은 '지적 설계자'를 특정화하지 않음으로써 개신교의 많은 분파들과 가톨릭을 포함한 유신론 진영을 모두 품는 데 적잖이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관용(?) 때문에 창조 과학에 익숙한 한국 주류 개신교 내부에서는 ID를 아직 경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15년간의 ID 운동의 역사가 녹아 있는 DI 홈페이지(☞바로 가기)에는 ID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습니다. "ID는, 세계와 생명의 어떤 특성들은 자연 선택과 같은 방향성 없는 과정보다는 어떤 지적인 원인(intelligent cause)에 의해서 더 잘 설명된다는 주장이다."

누군가 깃발을 꽂으면 그 주변으로 사람이 몰리는 법입니다. "다윈주의: 과학인가 철학인가?"라는 주제로 1992년에 남부 감리교 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존슨은 향후 ID 운동을 함께 짊어질 동지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중에서 마이클 비히(Michael Behe)와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는 존슨과 더불어 지난 10년간의 ID운동을 이끈 핵심 논자들입니다.

미국 리하이 대학교(Lehigh University)의 생화학 교수인 마이클 비히(Michael Behe, 1952년~)는 1996년에 <다윈의 블랙박스(Darwin's Black Box)>(김창환 외 옮김, 풀빛)라는 책을 통해 현대 진화론이 세포의 진화조차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컨대, 그는 하나의 편모에도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이 존재하는데 그런 복잡성은 다윈의 진화론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으며 오히려 '지적 설계자'의 존재와 개입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결론 내리지요. '진화론이 위기이며 그 대안이 ID다.'라는 식의 이런 주장은 ID 운동의 기본 노선에 충실한 경우이긴 하지만, 생물학자로서 그는 법학자인 존슨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ID 운동에 기여했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당시 미국 출판계를 강타해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난 10여 년 동안에는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요.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ID 운동이 대중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전문 생물학자가 메이저급 출판사를 통해 주류 진화론을 반박하는 도발적인 책을 내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책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지자 각종 매체들은 앞 다투어 서평과 인터뷰를 실었는데, 그중 몇몇 저명한 서평 저널에서는 이 책을 바라보는 진화론자와 창조론자들 간의 뜨거운 논쟁을 싣기도 했습니다. "다윈에 도전하는 엄청난 책"이라는 찬사로부터 "변장한 창조론에 불과한 쓰레기 같은 책"이라는 혹평에 이르기까지 반응들도 다양했지요. 존슨이 탁월한 법 논리를 전개하는 법학자이긴 하지만 과학의 논리를 잘 아는 과학자는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ID가 번번이 과학자 공동체에서 문전박대부터 당했던 것에 비하면, 비히에 대한 대접은 ID 운동이 한 단계 격상되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였죠. 좋든 싫든 생물학자 비히의 주장에 대해서는 과학자 공동체가 어떤 식으로든 대응을 해 줘야 했습니다.

<다윈의 블랙박스>의 핵심 개념인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은 어떤 체계를 이루는 여러 부분들 중 하나라도 없어지면 그 체계가 기능을 하지 못하는 그런 복잡성을 뜻합니다. 비히에 따르면, 마치 쥐덫을 이루는 다섯 개의 핵심 부분(해머, 스프링, 걸쇠, 나무판자, 금속막대) 중 하나라도 고장 나면 쥐덫으로서의 기능이 정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포 수준의 복잡성도 이런 것이어서 다윈의 점진적인 자연 선택론으로는 세포 하나의 존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마치 생화학자가 된 윌리엄 페일리를 보는 듯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은 세포 수준의 복잡성과 그것의 진화에 대해 그동안 많은 연구들을 해 왔으며 그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들을 계속 발전시켜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왜 비히가 엄연히 존재하는 진화론적 설명들을 진지하게 고려하지도 않았는지, 또 더 나은 진화론적 설명을 찾기 위해 왜 노력하지 않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불평합니다. 실제로 비히는 <다윈의 블랙박스>를 출간하기 전에 자신의 분야에 종사하는 동료 연구자들로부터 그 어떤 피드백도 받지 않았습니다. 매우 비정상적인 경우이지요.

한편, 신학계도 비히의 손을 들어 주지 않은 것 같았는데요, 그것은 비히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통해 신학적 변증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도 너무 성급했다는 비판입니다. 만일 그의 주장처럼, 기존의 과학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고 지적 설계에 의해 그 부분이 잘 설명된다고 해보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부분에 대한 더 나은 진화론적 설명이 제시되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그의 신(神)은 설명의 간격을 메우는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터이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그 간격은 점점 더 축소될 것입니다. 특히 과학적 성과들을 존중하는 신학자와 종교학자에게 이런 결론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세포 진화에 대해 비히도 흔쾌히 받아들일 만한 진화론적 설명이 조만간 누군가에 의해서 제시된다면 틀림없이 그 간격은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신의 활동 범위는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이 대목에서 다음 번 편지에서 신 선생님이 ID의 신학적 쟁점들을 좀 정리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어쨌든 이런 곤경에서 ID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요?

윌리엄 뎀스키(William A. Dembski, 1960년~)는 바로 이 취약점들을 정면 돌파하며 ID 이론의 지위를 한 단계 높이려 시도한 사람입니다. 그는 시카고 대학교에서 수학 박사를 받았고(1988년), 일리노이 대학교 시카고 캠퍼스에서 철학 박사를 받았으며(1996년), 그것도 모자라 같은 해애 프린스턴 신학 대학에서 신학 석사까지 받은 공부 욕심이 많은 소장 학자인데요, 그가 여타 ID 옹호자들보다 두드러진 면은 학위의 수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른바 ID 삼인방-존슨, 비히, 뎀스키-중에서 가장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고 있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자신의 철학 박사 학위 논문을 출판할 만큼 학문적 잠재력을 갖추었으며,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신세대 논객이거든요.

그는 1999년~2005년 동안 기독교 계열의 학교인 베일러 대학교(Baylor Univeristy)의 마이클 폴라니 센터(Michael Polanyi Center)에서 연구했으며, 현재는 남서부 침례 신학 대학의 연구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물론 그는 1996년부터 현재까지 DI의 '과학과 문화 센터'의 특별 연구원인데요, 그의 저서들 중에는 <설계 추론>(1998년) 외에 <설계 혁명>(2004년), <공짜 점심은 없다>(2002년) 등 6권의 단독 저서가 포함되어 있고, 저명한 생물 철학자 루즈(Michael Ruse)와 함께 편집한 <설계에 대해 논쟁하기>(2004년)를 비롯한 총 6권의 편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그의 <설계 추론>은 이런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든 지적 원천입니다. 그에 따르면, 자연적으로 생긴 복잡성을 능가하는 또 다른 종류의 복잡성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데, 그런 현상들은 "설계 추론(design inference)"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런 종류의 복잡성에 "특정화된 복잡성(specified complexity)"이라는 용어를 붙이면서 그것으로 우연성이나 복잡성과 구분하려 했지요. 쉽게 말하면, 자연적 과정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특정한 복잡성은 지적 설계자의 개입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발상은 진화론을 비판하고 유신론적 과학 방법론을 제시하려는 ID 운동의 기본 노선에 정확히 일치합니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뎀스키는 확률 이론과 정보 이론을 통해 비히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과학 철학자들은 그의 현란한 확률 테크닉 뒤에 작동 불가능한 끼워 맞추기식 과학 방법론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고 지적하고 우연성, 복잡성, 특정성을 구분하는 그의 '설명 필터(explanatory filter)' 이론 또한 작위적이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주류 학계의 이런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ID 운동의 삼인방이 펼친 지난 활동들은 미국의 진화 vs 창조 논쟁에 새 국면을 가져다줬다고 봅니다. 그것은 크게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음지의 창조론을 대중들의 관심 속으로 끌고 왔습니다. 둘째, 성서를 직접적으로 인용하지 않음으로써 진화 vs 창조 논쟁의 구도를 무신론 vs 유신론의 구도로 확장시켰지요. 셋째, 적어도 외양적으로는 학문적 능력을 갖춘 논자들이 전면에 나섬으로써 보수 엘리트 세력의 지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넷째 ID 옹호자들은 싱크탱크인 DI를 통해 각종 전략과 캠페인을 세우고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다섯째, ID 옹호자들은 ID 교과서 채택과 ID의 공교육 침투를 위해 법적인 투쟁을 꾸준히 전개해 왔습니다.

김 선생님도 언급하셨던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도버 지역에서 벌어진 최근의 법정 싸움은 ID 운동의 이 모든 특성들이 집약된 재판이었습니다. 저도 조금 부연할게요.

2005년 도버 카운티의 교육 위원회는 학교에서 진화론과 함께 ID을 가르치라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11명의 학부모와 미국 시민 자유 연맹(ACLU)의 교육 위원회는 1987년 연방 법원의 "공립 학교에서는 창조론을 과학 이론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이번 결정이 심각하게 훼손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지요. 학부모인 키츠밀러 등(Kitzmiller et al.)이 미국 연방 법원에 제기한 소송은 2005년 9월 26일에 시작되어 같은 해 12월 20일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 재판에 전문가 증언으로 참여한 학자들은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데요, ID의 옹호자로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라는 개념으로 ID계의 슈퍼스타가 된 마이클 비히 교수와 저명한 과학 사회학자 스티븐 풀러(Steven Fuller) 교수(영국 워릭 대학) 등이 참여했고, 반대자로는 브라운 대학교의 케네스 밀러(Kenneth Miller) 교수(생화학)와 미국 미시건 주립 대학교의 과학 철학자 로버트 페녹(Robert Pennock) 교수 등이 참여했습니다. 담당 판사인 존 존즈 3세(John E. Jones III)는 무려 139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통해 "ID은 창조론의 한 형태이며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학교에서 진화론과 함께 가르치라는 도버 카운티 교육 위원회 측의 결정은 미국 수정 헌법의 제 1조인 국교 금지 조항을 어긴 위법"이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로 ID를 학교에서 가르치려는 운동은 일단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되었습니다만, 반창조론 운동에 앞장서온 미국 과학 교육 센터의 스콧 소장은 "과거에도 보수 기독교인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최근만큼 심한 적은 없었다"라고 평가합니다. 미국 51개 주 가운데 진화론 수업을 줄여야 한다든지 창조론도 같이 가르쳐야 된다는 요구를 하는 주가 무려 31개 주에 이를 정도입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기독교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다윈이 미국이 아닌 영국의 과학자라 그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다윈의 나라 영국에서도 최근에 "창조론도 끼워 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1월 영국의 BBC 방송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0명의 응답자 중 40% 이상이 창조론이나 ID를 학교 과학 수업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구체적인 질문과 응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질문2> 어떤 과목(들)이 학교 수업에서 가르쳐져야 한다고 보는가?

1)창조론 - 44% 2)ID - 41% 3)진화론 - 69%

이런 결과를 놓고 영국 왕립 학회의 회장은 "다윈이 이미 150년 전에 제창하여 오늘날 방대한 증거들로 지지받고 있는 진화론이 일반인들에게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영국은 미국과는 달리 주요 종교 분파 중에서 진화론을 과학 수업에서 빼자고 주장하는 집단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라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개탄스러운 일이지요.

물론 진화론을 여전히 현대 생물학의 중요한 근간으로 여기고 있는 대다수의 미국 과학자들은 이런 일련의 흐름을 매우 걱정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가령 최근 <뉴욕타임스>는 저명한 과학자의 입을 빌어 "ID는 과학 이론이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전 세계의 가장 큰 과학자 집단인 미국 과학 진흥 협회의 회장은 "ID에는 과학이 없으며 과학적으로 대답될 수 있는 질문조차 없다"라고 일축했습니다.


"어이가 없다.", 주류 과학계의 지적 설계론 대응


영화 산업에 비유하자면, 어쨌든 ID는 흥행 몰이에는 성공한 운동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들에게는 냉혹한 평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ID의 질주에 대해 주류 생물학계와 지성계의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요?

흥미롭게도 이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같이 "진화론에 무슨 위기가 있고 진화론과 ID 간에 무슨 논쟁이 있느냐"는 반응이지요. 즉, ID 옹호자들의 주요 주장과 전략, 그리고 캠페인 등이 과학 공동체가 받아들이는 입증된 이론과 사실들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고, 유신론적 세계관을 선전하려는 종교ㆍ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 과학자 사회는 ID운동이 미국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는 판단을 내리고, 그동안 펼쳤던 '무시 전략'을 재고하기에 이릅니다. (지적 사고 표지)

<지적 사고(Intelligent Thought)>(1996년)는 주류 과학자 사회의 대(對) ID 전략이 변화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책입니다. 이 책은 세계 지성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출판 편집자로 불리는 미국의 존 브록만(John Brockman)이 편집하고 16명의 세계적 석학들이 ID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입장을 전개한 대표적인 ID 비판서입니다. 혹시 두 분 선생님께서는 읽어 보셨는지요. 필진에는 저명한 생물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물리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시카고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제리 코인(Jerry A. Coyne), 터프츠 대학교의 인지 철학자 데니얼 데닛(Deniel C. Dennett),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가급의 학자들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이런 필진들이 ID 하나만을 다루기 위해 함께 모였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뉴스거리죠.

이들은 모두 ID가 과학계의 사실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비판의 요지를 제 방식대로 재구성해 볼게요.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점령하지 않았다고 기술돼 있는 역사 교과서가 있다고 해 보죠. 그리고 그 저자들이 지금 교육부를 방문하여 연일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해봐요. 또 일부 인사들은 그 교과서의 채택을 목표로 고위층 로비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쪽 입장만 가르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양쪽 입장을 모두 가르쳐라" 이 얼마나 근사해 보이는 논리입니까!

몇 년 전에 일본에서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있어서 크게 뉴스화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과 다수의 일본 지식인들은 그런 '운동'에 주저 없이 '역사 왜곡', '사실 왜곡'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줬습니다. 왜냐하면 강제 점령의 증인들이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증거들을 보았을 때 적어도 일제의 조선 강점에 대해 '논란의 여지'는 없어야 합니다. 이 역사적 사실 앞에 '양쪽 입장'은 있을 수 없는 것이지요.

<지적 사고>의 필진들은 과학 영역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ID를 믿는 창조론자들이 생명이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각 주의 교육 위원회를 압박하고 있고, 급기야 보수주의 기독교 인사들의 로비에 편승한 부시 대통령은 최근에 "국민들이 상충하는 견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진화론과 지적 설계 가설 간의 논쟁을 함께 가르치는 게 좋지 않겠나." 라며 한 수 거들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과학적 무신론자인 데닛은 "이 둘 사이에 '논쟁'이란 게 실제로 있는가?"라고 반문합니다. ID 운동의 이 공정해 보이는 듯한 태도 뒤에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외면과 왜곡이 숨어 있다는 지적이지요. 그에 따르면, ID의 기본 전략은 공개적으로 진화론을 오해하거나 오용해 놓고는 생물학자들이 그에 대해 마지못해 몇 마디 대꾸하면 "거봐라 여기에 논쟁이 있지 않느냐"라는 식이라는 거죠. 또, '성의 진화', '인간 마음의 진화', '자연선택의 힘' 등과 같은 진화론 내부의 진짜 논쟁들을 부풀려 마치 진화론이 좌초 직전에 있는 양 떠벌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만 덧붙이지요. '그러니 ID이 옳을 수밖에.' 하지만 <지적 사고>의 필진들은 이런 전략은 정상적인 과학자의 관점에서는 마치 일본 보수 우익들의 '망언'과 비견될 만큼 과학의 진실을 왜곡하는 저질스러운 행동이라고 규탄합니다.

진화론을 훌륭한 과학으로 받아들이는 절대 다수의 학자들은 이렇게 ID 운동에는 진짜 과학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들에 따르면 거기에는 과학자라면 누구나 참여해야 할 논문 심사 시스템이 없고, 혹시 학회와 학술지가 있을라치면 그것은 늘 '그들만의 리그'일 뿐입니다. 그러니 연구 프로그램과 그 성과물이 있을 리 없습니다. 반면 어떻게든 교과서는 만들었습니다. 또한 대중 강좌 프로그램은 바쁘게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과학의 내용과 논리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들이 그들의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이것은 바로 사이비 과학의 전형적인 징표이지요.

예컨대 데닛은 ID 운동과 진화론을 다음과 같이 비교합니다. "진화 생물학은 생물학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모든 것들에 대해 확실한 설명을 제공하진 못해 왔다. 하지만 ID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아직 하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ID를 과학 수업 시간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하도록 해야겠지만, 현안이나 정치, 사회 현상 등을 다루는 사회과 수업에는 오히려 좋은 소재로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소위 '혈액형 심리학', 'UFO학', '심령술', '토정비결'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아, 우리에겐 황우석의 인간 줄기 세포 스캔들도 있었군요! 이건 이제 과학의 주제가 아니라 인문 사회학의 소재잖아요.

ID를 과학계에서 추방하고자 하는 <지적 사고> 필진의 한 목소리를 저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9·11 테러와 더불어 ID 운동이 미국 사회에서 새로운 지성 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원래 개인 플레이에 능한 사람들이잖아요. 상대적으로 자존심도 좀 강하고 잘 뭉치지 않는 사람들인데요, 이들이 '반 ID'를 목표로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뭉쳤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컨대 진화론의 쟁점들에 대해서는 서로 앙숙처럼 싸웠던 이들도(가령, 도킨스와 코인), ID 운동의 '어이없음'을 고발하기 위해서 한 배를 탔거든요. 이런 맥락에서 <지적 사고>는 어쩌면 한권의 편저서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꼭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국내에도 창조 과학에 식상한 젊은 기독교들을 중심으로 해서 전 세계의 ID 운동에 동참하는 집단들이 생겨났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서울 대학교의 동아리로 등록하여 활동 중인 '서울 대학교 지적 설계 연구회'입니다. 이 모임은 1998년 11월, 창조론과 기독교적 학문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서울 대학교 '창조 과학 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회원들은 기독교적 학문 연구의 가능성, 다양한 창조론에 대한 조망, 그리고 최근에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지적 설계 운동 등을 중심으로 함께 공부 및 연구하며 여러 가지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바로 가기).

또한 몇몇 현직 교수들과 서울 대학교 지적 설계 연구회의 젊은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지적 설계 연구회(KRAID)'라는 연구 단체가 2004년 8월 21일에 발족했더군요. KRAID의 구성원들은 스스로 미국 ID 운동의 기본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에 모 일간지의 한 면에서 지적 설계 운동에 관한 논쟁이 있었어요. 두 분은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기자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ID 운동을 소개하고 지적 설계 연구회의 회장인 모 대학 공대 교수가 찬성 입장을, 그리고 어쩌다 제가 반대 입장을 개진하는 식이었죠. 저는 갑작스러운 부탁에 전체 기획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상태에서 주어진 원고를 보냈었는데요, 나중에 나온 기사를 보고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ID를 옹호하는 쪽의 지면이 전체의 3분의 2 정도였고 제 글은 구석으로 밀려 있더군요. 사태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사람의 입장으로는, 진화론이 마치 ID에 대드는 형국처럼 보일 것 같았습니다. 좋게 해석해 본다면, 진화론이 ID의 거센 도전에 주저앉기 직전 상태에 있다는 식으로 비쳐졌을 것입니다.

국내 주류 기독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창조 과학이나 젊은 엘리트 기독교인 층의 관심을 받고 있는 ID는 세부적인 측면에서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가 유신론을 과학에 억지로 입히려는 시도라는 측면에서 유사해 보입니다. 또한, 한국의 창조론 진영은 미국의 창조 과학을 그대로 수용했던 1980년대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에는 미국의 ID를 국내에 소개하는 일에 주력해 왔습니다. 즉 내용과 전략 면에서 철저히 미국 기독교 진영을 그대로 따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수입 대리점인 셈이지요.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아직 국내에서는 ID를 과학 수업에 가르치기 위한 법정 투쟁 같은 게 없다는 점이지요. 김 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우리 같은 다종교 국가에서는 전면전은 힘들겠지만, 기독교 재단의 사립 학교에서는 시도될 가능성이 낮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교사 직무 연수 같은 형태로 창조 과학이 슬그머니 과학 수업의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창조 과학이나 ID 옹호자들이 좀 정직하게 논쟁을 걸어 왔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어딘지를 좀 정확히 인정한 상태에서 출발을 하면 그나마 논의가 될 것 같은데요, 그들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신들 앞에, 150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검증하고 활용해 온 진화론이라는 커다란 산이 우뚝 서 있다는 사실을 먼저 좀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차근차근 산을 올라 다른 산으로 가기도 하고 그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창조론자들을 보면 뒷산에 몇 번 올라 보고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할 수 있다고 떠벌리는 사람들 같아요.

창조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국내의 진화 vs 창조 논쟁사에서 참여자로 살아온 탓이겠지요. 김 선생님도 아주 개인적인 '나의 창조 과학 탈출기'를 보내 주셨고, 저도 이번에 '나의 진화 vs 창조 논쟁사' 같은 경험담을 보내드렸으니, 이제 신 선생님의 답장이 기다려집니다. 목사이시고 신학자이시니 저희 둘과는 또 다른 독특한 경험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한번 풀어놓아 주시죠. 기대하겠습니다.

저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이 미국 여행을 하고 싶은데요, 경비가 문제네요. 다음번 편지는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곳에서 쓰면 멋질 것 같은데, 될지 모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2007년 5월 9일

보스턴에서

장대익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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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과학'이 한국 교회를 삼키다"

과학과 종교의 대화 <13> 나의 '창조 vs 진화' 논쟁 관전평


장대익, 김윤성 교수에 이어 신재식 교수가 답한다.

신재식 교수는 "한국 교회 안에서 창조 과학이 환영을 받는 근본 이유는 그 주장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 부족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피해 의식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창조 과학을 옹호하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종교는 열등한 것"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

신재식 교수는 "신앙의 기초로 과학, 그것도 '사이비' 과학을 놓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라며 "창조 과학에 근거한 신앙은 '모래 위에 세운 집'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 창조 과학에 호의적인 한국 교회의 특징은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에 맞닿아 있는 한국 교회의 보수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한국 교회가 이런 '보수주의'의 온실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결코 건강한 교회와 신학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창조론자입니다


김윤성 선생님과 장대익 선생님께


이번 봄 학기도 거의 다 지나가는군요. 장 선생님은 귀국을 앞두고 있으니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낄 겁니다. 두 분 선생님의 경험이 담긴 '탈출기'와 '논쟁사'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 선생님이 창조 vs 진화 논쟁의 배경을, 장 선생님이 과학적 측면을 이미 언급하셨기 때문에, 저는 신학자로서 이 논쟁의 신앙적 또는 신학적 측면을 주로 말씀드리지요. 두 분 선생님의 제목에 운율을 맞춘다면, 이 편지는 '나의 창조 vs 진화 논쟁 관전평'에 해당하겠네요. 한국 교회에서 흥행에 성공한 창조 과학에 대한 평가가 될 듯합니다.

먼저, 창조 vs 진화 논쟁에 대한 제 입장을 밝히고 시작하지요. 저는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신학 작업을 하는 유신론자입니다. 목사로서 저는 진화가 그리스도교에 도전이지만 동시에 제 신앙과 신학을 다시 성찰하게 해 주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신학자로서 저는 '진화'가 신과 세계, 생명을 해명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아주 유용한 개념이라고 확신합니다. 어쩌면 진화라는 사유의 틀은 그리스도교 신학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과학 이론으로서 진화론은 '여전히' 생명 세계를 아주 잘 설명하는 강력한 이론이라고 판단합니다. '여전히'라 함은 과학적 측면에서 진화론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에 대해 제가 계속해서 비판적으로 주시할 것이라는 의미이지요. 그러나 진화론을 형이상학 자연주의나 유물론적 무신론을 이념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입장이나, 진화론이 생명에 대한 '유일한' '충분한' 설명이라는 과학적 환원주의에는 아주 비판적이고요.

이런 저를 창조 vs 진화 논쟁에 자리 매김한다면 '진화론적 유신론자'나 '진화론적 창조론자'(창조론 명칭의 통일성을 고려할 때, 이 용어가 진화론적 유신론보다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신학적 입장을 좀 더 포괄적으로 함축하는 '진화론적 유신론'을 선호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론을 수용한 입장을 '유신론적 진화론(유신 진화론)'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적절치 못한 용어입니다. 이 명칭을 고집하는 데는 특정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유신론이 수식어 역할을 하면서 '진화론'이라는 '과학적' 측면을 은연중 강조하고 입습니다. 실제로 늘 '과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옹호자들이 이 명칭을 선호하죠. 창조 vs 진화 논쟁이 '과학'이라는 링에서 승부를 벌이는 것처럼 보이길 원하는 이들은, 진화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입장을 전부 다 '과학'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말하는 '진화론적 유신론'은 진화를 수용하고 신학적으로 성찰하는 '신학적' 입장, 즉 '종교적' 입장이지 '과학적' 입장이 아닙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그럼 제가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을 둘러싼 창조 vs 진화 논쟁을 어떻게 보는지 먼저 밝히지요.

우선 저는 그리스도교에는 진화론에 대한 입장이 거부에서 수용까지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창조 vs 진화 논쟁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지요.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 운동이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지요. 이들은 본질적으로 과학적 운동이 아닙니다. 과학계 밖, 종교계 안에 있는 제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운동은 뿌리도 동인도 그리스도교 신앙에 둔 종교 운동일 뿐입니다. 게다가 과학과 종교를 동시에 왜곡하는 문제 많은 운동입니다. 잘못된 신앙 행태를 조장하고, 그리스도교의 핵심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죠. 저는 한국의 교계가 이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이 주는 미망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 과학이 아니라 종교입니다


먼저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에 대한 제가 보는 관점을 말씀드리죠. 장 선생님께서 지적 설계론의 과학적 측면을 지적하면서, 이들의 신학적 논점을 질문했기에 저는 신학적 측면에서 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기에는 진화론을 수용하는 신학자로서 목회자로서 제 입장이 당연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진화에 대한 다른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창조 과학의 '과학적'(?) 주장은 크게 두 측면으로 나눌 수 있지요. 진화론을 비판하는 측면과, 성서의 창조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측면이 그것이지요. 저는 이 둘 모두 과학이 아니라고 단정합니다. 이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위 자신들이 말하는 '경험적' 모델의 과학이 '참(true)' 과학적일지는 모르지만. 이들은 진화론에 대한 비판이나, 창조 이야기에 대한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에 따른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수많은 자료 가운데 의도적으로 일부만을 취사선택하고 정교하게 가공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진화론자들이 진화를 주장하면서 언급한 자료마저 창조 과학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둔갑하지요. 이들이 제시하는 '과학적 증거'라는 것은 자신의 신학적 전제이자 결론을 합리화시키는 것을 취사선택한 것입니다. 즉 그들이 믿는 신학적 입장이 자료를 선택하고 가공하는 기준이지요. 창조 이야기의 문자적 해석이나 교조적인 신학적 신념을 빼면, 창조 과학의 논의에서 뭐가 남을까요? 한마디로 그리스도교 특정 신념을 빼면 창조 과학은 존립 근거가 없지요.

둘째, 지적 설계론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장 선생님 지적처럼, 지적 설계론은 기본적으로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한다고 '믿는' 사례를 제시하면서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을 취하고 있지요. 지적 설계론이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한 신학자가 그 정당성이나 오류 판정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이건 과학자의 몫이고요.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적 설계론이 하나의 연구 프로그램으로서 진화론과 경쟁하는 과학 이론이라면 이 둘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자는 겁니다. 순수 과학 이론으로서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력, 일관성, 예측 가능성 등등의 조건을 걸어놓고 지적 설계론과 진화론을 비교해 보자는 것이지요. 물론 장 선생님 말씀처럼 자연 과학자들은 이런 시도 자체를 연금술과 화학을 똑같이 과학으로 대우하는 것처럼 느껴 무지 싫어하겠지만. '맞장'을 뜨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설계자의 정체까지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명시적으로 신에 대해서나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과학이 될 수는 없지요. 내부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변증을 위해 지적 설계론을 주장하고 있는 분명한 현실에서, 그리스도인이 빠진 지적 설계론 운동 상상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그리스도교 신앙 변증이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당한 태도로 보입니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 참 문제가 많은 신앙 운동입니다


이제부터는 좀 더 신학적 관점에서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에 대해서 다소 비판적으로 말씀드리죠. 신학자인 제 눈에 이 둘 모두 신앙 운동이지요. 두 운동 모두 그리스도교 신앙을 제거한다면, 사실상 존립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죠. 신학자로서 목회자로서 몇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말씀드리지요.

첫째, 종교와 과학의 관련성 문제입니다. 진화론이 오류이면 창조론은 저절로 정당성이 증명된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 모두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상당히 편향적인 흑백 논리에 빠져 있습니다. 이것은 '갑'이라는 이론이 특정한 사례를 해명하지 못한다면, '을'이라는 이론이 옳은 것이 분명하다는 논리이죠.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하니까 창조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들에게 종교와 과학은 완전히 경쟁하는 동일한 영역에 있는 겁니다. 이들은 과학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그 오류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증거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 모두 스스로의 설명력을 지니고 자체의 증거를 지닌 과학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의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겁니다. 진화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예외 사례 찾기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닙니다.

설사 진화론이 정말 과학적으로 오류라고 증명되었다고 하더라도,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저절로 맞는 과학 이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론의 오류 여부를 떠나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진짜 과학이 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지요. 창조론이 저절로 사실로 증명되는 것도 더더욱 아니고요.

종교와 과학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화론을 선택하는 순간 신앙이 배제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그리스도교 신앙과 과학 이론으로서 진화론을 동일한 영역이나 동일한 수준의 논의라는 오류에 빠지는 겁니다. 명시적으로 성서를 인용하는 창조 과학은 종교적 언어와 과학적 언어를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하고 평가하는 겁니다. '내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라고 말하는 '고백'과, '키, 체중, 외모 등 아내의 실제 모습을 재고' '기술'하는 것과의 차이마저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이죠. 아니 어쩌면 이들은 아내의 키와 체중과 외형 모습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기준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겁니다.

둘째, 목회적인 차원에서 문제입니다. 교회 현장에서 보면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주장에 대해 대부분 교인들은 환영하고 안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국 교회 안에서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의 주장을 제대로 평가를 할 능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더 근원적인 원인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피해 의식과 두려움입니다. 과학이 이 시대의 사제가 된 이래, 종교는 열등한 것이고 신앙 지식은 유사 지식이라는 의식이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듣고 싶은 소리가 들립니다. "자, 여러분! 과학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진짜라는, 과학적으로도 사실이라는 것을 뒷받침합니다. 신앙의 적인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오류라고 증명되었습니다. 성서는 과학적으로 사실입니다" 그동안 신앙을 왜소하게 만들었던 과학, 그것을 과학자(?)가 와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니 얼마나 신이 납니까? 우리의 신앙이 확고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기뻐합니다.

신학자로서 목회자로서 제는 이런 상황에 심각한 우려를 표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었으니, 우리 신앙은 이제 확실한 토대를 갖추었다고요? 이런 신앙 태도가 교회를 지배한다면 그 결과는 아주 심각합니다. 이건 과학을 신앙의 토대를 삼는 겁니다. 신앙이 과학을 기반으로 성립한다고 했을 때, 그 기반인 과학이 무너지면 신앙은 당연히 함께 무너집니다. 제가 아는 한 과학은 항상 잠정적 유효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킨스 같은 강성 진화론자도, 만약 진화론에 반하는 증거가 나타난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진화론을 포기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지경입니다(아직까지 그런 증거는 없다고 덧붙이지만 말입니다). 과학자 사회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날 때 과학 이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런 과학에 근거해서 존립 근거를 확보한다면 정말 문제지요. 게다가 그들이 환호했던 '과학'이 사실은 제대로 된 과학이 아니라 '사이비' 과학이라면, 더 문제입니다. 한국 그리스도교가 좀 더 개방되고 교회 안에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될 때, 기존의 과학적 토대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면, 그것에 의존한 신앙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가 목회자로서 우려한 것이 이런 것이지요. 창조 과학에 근거한 신앙 '모래 위에 세운 집'입니다. 비가 오고 태풍이 불면 어떻게 되는지요?

다시 강조하지만, 그 어떤 종교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함해서, 그 존립 근거를 과학적 증거에 둘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성서의 내용이 증명되어 내 신앙이 확실해진 것이라면, 그 근거가 되는 과학이 어떤 과학인지, 거기에 근거한 신앙이 어떤 신앙인지 진지하게 다시 성찰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자적 성서 읽기, 성서를 왜곡합니다.


신학적 측면에서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을 짚어 보겠습니다. 제가 이 둘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비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이들이 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성서 해석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명시적으로 성서를 인용하는 창조 과학이 더 문제입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들은 성서의 글자 자체에 절대성을 부여하면서 창조 이야기를 비롯해 성서의 글자 한자 한자가 오류가 없다는 주장합니다. 극단적으로 과격한 성서 해석 방법인 '성서 문자주의' 이게 문제지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성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해되어 왔습니다. 성서 자체가 여러 문헌이 모인 것으로, 다양한 양식으로 씌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현대 신학자들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교부들이나,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을 비롯해 대부분의 전통적인 신학자들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기만을 고집하지 않았지요. 오히려 문자적, 역사적, 교훈적, 은유적 방법 등 다양한 관점에서 성서 읽기를 시도하면서 최선의 성서 이해를 추구했습니다. 이게 성서에 대한 전통적이며 정통적인 접근입니다. 창조 과학이 맹신하는 문자적 성서 읽기는 당시 세계상이 반영된 성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성서의 메시지를 상당 부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은 성서 해석뿐만 아니라 신학 작업에서도 문제입니다. 제가 창조 vs 진화 논쟁이 그리스도교 신학 전반에 걸친 문제도 아니라고 말씀드렸지요. 이와 직접 관련된 신학 주제는 창조론과 신론 정도가 될 겁니다. 그런데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가 이런 주제를 다룰 때, 신학 작업 적절한 절차마저 무시하고 있지요. 과학적 절차를 무시하듯이, 신학적 절차도 무시하지요. 아니 기본적으로 신학에 무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성서, 전통, 경험, 이성 등을 그 자원으로 삼고 있지요. 물론 그 중에서도 성서가 가장 중요한 전거 역할을 했지요. 그런데 이들의 논의를 따르면, 신학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우선 성서적 근거부터 왜곡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창조론은 창조에 관한 그리스도교 담론을 전부 다루지요. 물론 그 전거는 성서와 전통 등이며, 가장 중요한 자료는 성서이지요.

그런데 창조 과학은 성서의 극히 일부, 특정 구절만을, 그것도 특정 신학적 입장에서 이루어진 성서 해석을 가지고 창조론 전체를 재단하는 겁니다. 창조론은 적절하게 다루려면, 성서 전체에서 창조에 대한 논의를 전부 고려하는 것이 기본이지요. 창세기뿐만 아니라 욥기와 시편의 여러 곳, 요한복음에도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부 다 검토와 고려의 대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가 주장하는 창조는 철저하게 창세기 일부 구절에 한정됩니다. 신학자 입장에서 이들은 신학적 주장을 적절한 방식으로 다룰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의도적인 왜곡으로밖에 판단할 수 없습니다. 창조 과학의 뿌리와 전개과정을 살펴볼 때, 이 진영에 신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드물고, 물려받는 신학적 경향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이렇게 대담할 수 있는 일차적인 원인으로 보입니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 사이비 종교 운동이 그리스도교를 잡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적절치 못한 신학화는 교리적인 문제를 초래합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창조론과 신론은 정통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논점은 신이 태초에 현재의 모습으로 설계에 따라 생명체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창조론은 모든 사물이 태초에 완성된 상태로 있었으며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세계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신에 대한 이해와 아주 동떨어져 있지요. 창조 이후 더 이상 세계 속에서 개입하지 않는 신, 활동하지 않는 신은 자연 신학이나 이신론(理神論)의 신에 더 가깝습니다. 또한 완성된 세계라는 이들의 전제는 완벽하지 않는 설계의 모습을 보이는 생명계의 현실과 이들이 주장한 전능한 신과 당연히 모순을 이루고 있지요. 그리스도교의 신은 시간 속에서 세계와 관계를 가지는 역동적인 신입니다.

또한 창조에 대해 기존의 논의와 큰 차이를 보이지요. 정통 그리스도교의 창조론에서는 창조를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태초의 창조(original creation), 계속 창조(continuing creation), 궁극적 창조(final creation) 이렇게요. '태초의 창조'는 우주가 처음 만들어진 것을 말하며, '계속 창조'는 신이 우주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개입하면서 사물을 늘 새롭게 만들어 가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궁극적 창조'는 그리스도인이 말하는 종말에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을 이루는 최후의 창조, 완성된 창조를 말합니다. 이런 창조론에도 불구하고, 창조 신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논의에 따르면 결국에는 '최초의 창조'를 그리스도교 창조와 동일시하는 결과를 가지고 옵니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 신학계에는 유물론적 형이상학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진화론을 가지고 씨름하는 신학자는 많지만, 지적 설계론을 가지고 그리스도교 신학을 전개하는 신학자는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신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까요.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논지를 따르면, 신은 역사에서 더 이상 개입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것은 일회성 창조로 끝이 납니다. 신의 활동 여지를 아주 없애 버리지요. 활동을 멈춘 신은 더 이상 그리스도교 신이 아니죠.

그리스도교의 희망의 근원은 창조 과학이 말하듯이 설계로 완성된 태초의 창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역사가 열려 있다는 약속에 놓여 있지요. 신학적으로 말해서 종말론적 개방성이라고 하지요.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주장이 함축하고 있는 이런 신학적인 문제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학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신학자로서 이들의 논의를 더 심각하게 비판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들어서는 순간 그리스도교 신학은 중단됩니다.

신학적 측면에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지적 설계에서 '설계 논증이 신학적으로 적절한 신 존재 증명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지요. (저는 굳이 신 존재 증명을 해야만 그리스도교가 존립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신학자로서 혹시 그리스도인들이 지적 설계론이 세계가 진짜 설계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설계자가 있다는 것을 논증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 더 중요한 문제가 남아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런 논의의 지적 설계론은 이미 흄이 언급했던 설계 논증의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무슨 말인가 하면, 설사 설계자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설계자가 한 명인가 아니면 복수인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되며, 설사 설계자가 한 명이라도 그 설계자가 그리스도교의 신인가, 힌두교의 브라흐마인가, 이슬람의 알라인가는 여전히 논증해야 할 또 다른 문제로 남는 것이지요.

따라서 지적 설계론이 좀 더 진전된 신학적 주장을 하려면, 그 설계자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신이라는 것을 또다시 증명해야 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지적 설계론의 설계 논증을 신 존재 증명으로 볼 때, 그 원조라 할 수 있는 19세기의 페일 리가 제시한 설계 논증보다 후퇴한 것입니다. 페일리는 적어도 세계 속에서 발견되는 속성이 성서에서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신이 지닌 속성과 유사하다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그 설계자가 그리스도교의 신이라는 것을 개연적이나마 논증하려고 했기 때문이죠.

지적 설계론의 주장을 설계 논증으로 본다면 신학적으로는 근거가 빈약한 논증이며, 별로 고려할 가치가 없는 논증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몰라도, 지적 설계는 이런 논의를 전개하지 않죠.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서. 어쩌면 그래서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서 해석부터 시작해 신학적 논쟁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신학 분야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의 주류를 이루는 상황 자체가 창조 vs 진화 논쟁에서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제대로 된 신학도 없고, 과학도 없고, 사이비 신학과, 사이비 과학만이 있을 따름이지요. 결코 좋은 종교도 좋은 과학도 아닙니다.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은 결국 그리스도교와 신학의 종말을 자초하는 부메랑이 될 것입니다. 이게 아직까지 채 잉크도 마르지 않는 책들을 포함해서 최근까지 검토한 결론입니다.


왜 한국 교회는 창조 과학에 환호하는가?


이번에는 김 선생님께서 던진 질문, '왜 한국 교회에서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가 압도적으로 수용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죠.

원래 창조 vs 진화 논쟁은 미국과 한국의 보수주의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것으로 종교 지형에서 보면 아주 국지적인 문제입니다. 그리스도교 전체나 신학에서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지요. 다만 한국 교회가 그 영향권 안에 있고, 그 사회적 파급 효과 때문에 고려하는 것이지요.

김 선생님도 언급하셨듯이, 이 논쟁은 철저하게 미국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지요. 미국의 백인 주류 그리스도교는 19세기 말 20세기 초반 산업화와 세속화 등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안팎으로 사회적 주도권을 상실할 위기에 봉착합니다. 이들 중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위기 원인으로 교회 안에서는 '성서 비평학'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신학을, 교회 밖에서는 공산주의와 나치즘 등을 출현케 한 온갖 악의 원인으로 '진화론'을 규정합니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교회 안에서는 새로운 자유주의 신학을 추방하고, 외부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진화론을 척결하는 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창조 vs 진화 논쟁은 이런 변화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근본주의가 선택한 '퇴행적' 대안으로 결과로 오늘날까지 확대 재생산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 안에서도 창조 과학의 목소리가 환영받고 있지요. 미국은 그렇다고 치고, 왜 한국 교회까지 창조 과학에 덩달아 환호하는가? 미국에서는 반진화론적 창조론의 주류가 지적 설계로 넘어갔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 창조 과학이 압도적입니다. 창조 과학을 수입한 1세대가 여전히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기에 아직은 그 영향력이 유지되지만, 아마 조만간에 지적 설계로 주도권이 넘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창조 과학 진영 일부가 우주가 오래전에 창조되었다는 오랜 지구 창조론의 견해를 제시했는데, 2008년 8월 한국창조 과학회는 우주 나이 6000년을 지지하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 필자)

창조 과학 지지자들이 교회 안에서 성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선언하면, '아멘'과 '할렐루야'로 화답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요. 교회 안에서 이들은 무신론을 타파하는 복음의 '십자군'입니다. 신학자로서 목회자로서 이런 현상이 매우 당혹스럽습니다. 과학 앞에서 신앙의 정당화를 추구하려는 이런 태도를 한편으로는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이것은 결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잘못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김 선생님이나 장 선생님 모두 한국 교회는 왜 창조 과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지 궁금해 했지요? 한국 교회에서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경계가 모호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이런 말씀을 했지요. 복음주의나 근본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다소 정교한 논의가 필요한데, 그냥 간단히 말씀드리죠.(제가 대학원에서 개설하는 과목 주제이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말하는 복음주의는 신학적으로나 신앙 양식에서 근본주의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질문에 대한 제 답은, 한국 교회가 창조 과학에 환호하는 데는 보수적인 신앙과 창조 과학의 주장 사이에 '선택적 친화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 과학이 근본주의 흐름에서 나온 것인데, 근본주의나 보수주의 성향의 교회에서 환영받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지요. 한마디로 서로 잘 맞기 때문이죠. 정확히 말하면, 창조 과학은 보수적인 교회나 신앙인들이 '듣기 원하는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 교회의 보수주의 성향을 생각하면, 문득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초기 한국 교회를 지배하던 신학이, 바로 20세기 초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을 경험한 미국 교회를 보고 오히려 보수 반동으로 되돌아선 사람들과 선교사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하지요.

한국 교회의 보수주의 성향은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 기초가 세워졌지요. 그런데 이들은 지역을 나누어 선교를 담당했지요. 함경도를 담당한 캐나다 선교회를 제외하고는, 다른 지역의 선교사들은 대부분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배경을 가졌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 주류 교단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던 1920년대 이전에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복음과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보수적인 신앙을 지닌 사람들이었지요. 이들은 자신들의 모국 교회가 신학으로 인해 분리되는 아픔을 선교지 교회에서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에 조심했고요. 좀 말하기 뭐하지만, 당시의 신학적인 논의를 객관적으로 다룰 능력을 갖춘 선교사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아무튼지 이런 저런 이유로 초기 한국 교회나 신학 교육은 보수적인 신앙과 신학을 제한적으로 소개하는 수준이었을 뿐입니다.

한국 교회 보수주의 신학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박형룡 목사나 한경직 목사는 평안도 출신으로 미국 북장로교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미국 주류 교단이 서로 주도권 싸움을 벌이던 1920년대에 미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신학으로 인한 교단 분열의 부정적 결과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보수주의 신학은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통일성 유지하는 그 자체였죠. (그 신학 때문에 교단이 수도 없이 분열된 것 또한 아이러니입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 진보적이라 알려진 기독교 장로회의 상황은 좀 다릅니다. 초석을 놓은 김재준 목사가 함경북도 출신이지요. 이 지역은 성서 비평학을 비롯한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캐나다 선교부가 담당한 곳이어서, 일찍부터 자유주의 신학에 노출된 거지요. 한국 교회의 보수와 진보는 뿌린 대로 거둔 결과입니다. 미국 교회가 1920년대 겪은 교단 내 주도권 싸움을 우리는 1950∼1960년대에 겪고, 교단 분열로 마감한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 교회를 지배하게 된 보수주의 신앙은 창조 과학이 활개 칠 수 있는 아주 좋은 마당이 된 것입니다. 늘 과학 특히 진화론의 피해 의식에 젖어 있는데 그게 거짓이라니 그것도 신앙심 깊은 과학자가 와서 단언을 하니. 이건 '복음'이죠! 한국 교회의 본류 보수주의는 창조 과학이라는 방계 보수주의가 안착하기에 아주 적합한 토양인 겁니다.


창조 과학, 실력보다 타이틀로 승부하다


이번 학기에도 '종교와 과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교양 필수로 개설하는 과목이죠. 교수가 되고 보니, 이 과목이 학부에 개설되어 있었습니다. 강사는 이 지역 대학의 기계 공학 전공 교수님이었습니다. 교과 과정을 보니 창조 과학 일색이었지요. 창조 과학은 그렇게 신학 대학에 자리를 틀고 신학생들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다음 학기부터는 제가 그 과목을 담당했습니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서 종교와 과학의 역사적 관계부터 최근 이슈까지 소개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학생들이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당혹해하거나 당황해 합니다. 자신들이 알던 내용과 사뭇 다르거든요. 대부분의 학생이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 이미 이런 저런 세미나를 통해 창조 과학을 접하고 수업에 들어오는 겁니다. 이런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제 대학 시절이 생각납니다.

제가 창조 과학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인 1981년도입니다. 모태 신앙인 저는 그 전에 창조 과학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당연하죠. 창조 과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것이 1981년이니까요. 아마 한국에서 창조 과학에 노출된 첫 세대가 아닌가 합니다.

교양 과정으로 자연 과학 개론을 들었지요. 한 학기 동안 들었던 강의가 대부분이 '창조 과학'이었습니다! 그것이 '젊은 지구 창조론'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죠. 미국에서 막 공부하고 온 젊은 교수였죠. 당시 '졸업 정원제'(두 분은 아실지 모르겠네요. 전두환 정권이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입학 정원의 10%를 졸업시키지 않던 규정이죠.)가 목을 조르던 시절, 교수에게 항의는커녕 학점을 위해서 자연 과학 개론 교과서보다 창조 과학 책들을 더 열심히 파고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물론 학기 말 보고서도 창조 과학에 관련된 주제였지요. 썩 유쾌한 기억이 아닙니다.

왜 그때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을까요? 제 경우는 학기가 지나면서 창조 과학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정확히 뭔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유학 시절 서구 지성사에서 종교와 과학의 관계를 비롯해 이 분야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좀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무 말도 못했던 이유가, 교수-학생 사이의 불평등한 제도적 권력 관계도 있었지만(제 학점을 쥐고 있었으니까요.), 이쪽을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보다도 교수와 박사라는 타이틀에 눌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 경우만이 아니라, 지금도 한국 그리스도인이나 목회자가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와 마주치는 전형적인 상황입니다. 잘 알지 못하는데, 전문가가 말하니 들어야지!

창조 과학에 관련된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엘리트 계층입니다. 한국 창조 과학회를 설립한 사람들 대부분이 미국 유학한 이공계 엘리트였죠. 이들 대부분은 유학시절 창조 과학을 접했지요. 창조 과학은 자신의 전공이, 그것이 과학이든 공학이든, 그리스도교 진리를 확산시키는 첨병이라는 '사명감'을 넘치도록 부어줍니다. 이런 사람들이 귀국해서 '교수'나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깊은 신앙을 가진 '과학자'로 교회에서 등장합니다. 교인들은 물론 목회자도 우선은 그 '타이틀'에 눌립니다.

사실 지금 목회하는 기존의 목사님들 거의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이어지는 군사 독재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연히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제대로 신학 교육을 받을 여건이나 기회가 거의 없었지요. 성서 비평학은 물론이거니와 신앙과 무관하다고 생각되는 자연 과학은 더욱 그렇지요. 언제 그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으니, 이들이 과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고요.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마저 자연 과학을 잘 모르니 교인들의 상황은 말할 나위가 없지요.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 이야기를 정확하게 가늠해서 평가할 수 능력을 지닌 사람이 교회 안에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상황에서 대놓고 비판할 수 있는 그런 '불경한' 교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말하는 사람이 진화 생물학자인지, 기계 공학자인지 잘 구분하지 못하지요. 그저 과학자라니 자신의 전공과는 무관한 성서 해석을 들이대고, 화석을 이야기하면서 진화론을 비판해도 그저 '아! 그런가!' 보다 하지요. 머리에 각인된 것은 그저 '진화론은 무신론이고 오류'라는 슬로건뿐이지요. 이게 오늘의 교회 현실입니다.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의 진화 보기


그런데 진화론에 대해서는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이 그리스도교의 전부가 아닙니다. 앞서 편지에서도 간간이 언급했지만, 진화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요. 진화론에 대한 이런 다른 반응들이 창조 vs 진화 논쟁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창조 vs 진화에 대해 주요 입장을 창조에서 진화까지 자리매김한다면 이런 순서가 될 겁니다: (창조)젊은 지구 창조론-오랜 지구 창조론-지적 설계 창조론-진화론적 유신론(진화론적 창조론)-유물론적 진화론(진화).

현재 상황은 창조 vs 진화 논쟁이라는 링에 세 진영의 선수들이 올라와 있지요. 진화론을 부정하는 젊은 지구와 오랜 지구, 지적 설계론이 한 팀이며, 진화론을 수용하는 진화론적 유신론이 또 다른 팀이며, 유물론적 진화론이 마지막 한 팀입니다. 각 진영은 다른 두 진영을 동시에 상대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상대에 따라 서로 다른 전략을 사용하면서 비판하고 있지요. 이들의 입장을 간략히 말씀드리지요.

젊은 지구 창조론과 오랜 지구 창조론을 '과학적 창조론'이라는 한 묶음으로 먼저 말씀드리죠. 이들의 차이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지적 설계나 진화론적 유신론과 같은 다른 입장과 비교할 때 둘의 특징적 유사성이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창조론은 미국 근본주의의 반진화론 운동의 유산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입장이지요. 근본주의는 신학적으로 특정 교리를 고수하는 것 외에,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 과학에 대한 반대와, 성서의 모든 글자 하나하나가 신의 영감에 따라 기록되었다는 '축자 영감설'과 성서에는 전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성서 무오설'의 주장을 그 핵심적인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과학적 창조론은 창세기의 기록을 역사적이며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비롯한 자연 과학이 제시하는 생명의 오랜 진화의 역사 과정을 부정합니다.

이 창조론에서 가장 극단적인 흐름이 흔히 '과학적 창조론'과 동일시되기도 한 '젊은 지구 창조론'(Young Earth Creationism)입니다. '젊은 지구'라는 이름은 세계가 지난 수천 년 또는 1만 년 안에 창조되었다는 이들의 주장에서 비롯합니다. 장 선생님 이야기처럼, 우리나라에서 창조 과학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진영에 속해 있지요.


이들의 주된 주장은 이런 겁니다.


우주의 창조는 6000∼1만 년(길어야 2만 년) 이내에 있었으며, 24시간의 6일 동안 창조가 진행되었으며, 기본적인 생명 형태는 창세기 1-2에 나타난 창조가 발생했던 창조 주간에 신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직접 창조했으며, 창세기 3:14-19의 신의 저주로 인해 자연계에 죽음이 들어왔으며, 노아의 홍수는 역사적 사건이며 지구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물론 젊은 지구 창조론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는 엄청나게 많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저작이나 인터넷 홈페이지는 주로 지구의 나이가 아주 짧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선택된(?) 과학적 증거들을 제시하는 것과 진화론을 반박한다고 믿는(?) 과학적 사례를 제시하는 데 집중되어 있습니다. 지구의 나이를 아주 짧게 계산하는 이들은 천체 물리학, 지질학, 생물학 등 대폭발과 진화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과학을 당연히 거부하지요.

오랜 지구 창조론(Old Earth Creationism)은, 젊은 지구 창조론과 달리 지구 나이가 40억∼50억 년, 우주 나이가 100억∼200억 년이라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오랜 지구'라는 이름도 여기서 연유했지요. 이들은 현대 우주론과 지질학이 제시하는 오랜 우주와 지구에 대한 자료와 창세기의 기록을 동일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들 주장에서 핵심은, 오랜 기간 동안 신의 예정된 계획에 따라, 진화라는 절차 없이 신의 초자연적인 '직접' 개입에 의해 우주와 생명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랜 지구 창조론은 과학이 보여 주는 우주의 오랜 시간을 창조론과 조화시키기 위해서는 성서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 주지요. 결국 창세기의 창조 본문을 몇 가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이 입장은 이렇게 성서 해석에서 다소 여유를 갖는 것 외에도, 진화론을 제외한 현대 과학의 여러 분야의 업적을 그대로 수용하는 점에서 젊은 지구 창조론과 다릅니다. 그렇지만 진화를 부정하고, 생명의 형식이 신에 의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직접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젊은 지구 창조론과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요.

창조 vs 진화 논쟁에서 또 다른 한 축이 '지적 설계론'입니다. 장 선생님이 편지에서 이미 언급하고, 저도 지난 편지에서 조금 말씀드렸기에 짚고만 넘어가지요. 지적 설계론은 창조 vs 진화 논쟁의 본질이 과학적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 유신론과 무신론이라는 상충된 세계관의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보다 정교한 형태의 과학적 창조론을 제시합니다. 이들은 진화론만 거부하고 다른 현대 과학의 성취를 받아들이지요.

창조 vs 진화 논쟁에 관련해서, 이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이렇습니다. 자연주의에 근거한 과학은 특히 다윈주의 진화론은 과학적으로도 오류이며, 자연 세계는 고도의 지성을 지닌 지적 존재에 의해 '설계'되었으며, 그 설계의 증거는 '경험적' 모델에 의해서 과학적으로 증명된다. 다윈주의에 대한 비판, 자연주의에 대한 비판, 설계를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기준 제시, 이것이 지적 설계의 구성 요소입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의 진화 보기


이제 진화론적 유신론에 대해서 말씀드리지요. 이 입장은 진화를 수용하는 신학적 입장이기에, 상당히 전문적인 신학 논의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신학 내용보다는 창조 vs 진화 논쟁과 관련해서 지적 설계나 유물론적 진화론과의 차이를 중심으로 설명 드리죠.

진화론적 유신론은 생명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이 유효하며, 생명은 진화론이 기술하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진화론적 유신론은 비록 생명이 진화의 역사를 경험했다는 입장이지만, 그 과정은 무의식적이고 맹목적인 자연적인 힘의 결과가 아니며, 신이 진화의 전 과정을 주관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입장은 '과학' 작업에서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를 구분합니다. 이런 구분이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지적 설계론과 달리, 진화론적 유신론은 전자를 수용하고 후자를 거부하지요.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수용하는 것은 과학적인 차원에서 현대 자연 과학이 제시하는 진화론적 생명의 역사와 자연의 역사와 그 메커니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조 vs 진화 논쟁의 맥락에서 보면, 진화론적 유신론은 진화론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적 진화론과 일치하며, 생명의 과정을 설명하는 데 신을 도입하는 측면에서 창조론과 관점을 공유합니다. 즉 진화론적 유신론은 진화론과 결합된 유물론적 자연주의를 배제하면서, 진화와 유신론적 세계관을 결합한 것이지요. 결국 진화론적 유신론에서 '진화는 신이 생명을 창조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진화론적 유신론에서 창조와 진화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과 진화, 또는 종교와 과학은 기본적으로 배타적이거나 모순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의 양극단에 있는 창조 과학과 유물론적 진화론자들이 창조와 진화를 문제를 양자택일로 몰고 갔을 뿐이라고 판단합니다.

창조를 창조 과학 유형의 '특별 창조론'과 동일시하고, 진화를 '과학 개념'에 제한하지 않고 '무신론적 자연주의'나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라는 세계관을 포함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이 결과 창조 vs 진화 논쟁을 단순히 '창조론적 유신론'과 '진화론적 무신론' 사이의 선택의 문제로 끌고 가서 일반인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는 겁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은 창조 과학을 '종교적 환원주의'로 유물론적 진화론을 '과학적 환원주의'로 비판합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이 양자택일적 관점을 비판하는 근거는, 생명에 대한 설명은 모두 한 가지 수준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창조 과학과 유물론적 진화론은 모두 생명 현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수준과 가치를 무시하고, 창조와 진화 또는 종교와 과학을 동일한 차원에서 같은 수준의 설명을 제시하는 경쟁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에서 진화와 창조는 서로 다른 수준의 설명이기 때문에, 둘이 모순되거나 양자택일의 문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에게 생명과 세계는 여러 수준의 계층적 설명 방식의 상보적 해명을 통해서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실재입니다. 생명 현상에서 발견되는 여러 수준의 구조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게 제가 지난 편지에서 말씀드린, '설명의 다윈주의'와 '비환원주의적 인식론'과 관련을 갖고 있지요.


진화론적 유신론의 진화와 손잡기


앞서 제가 진화론적 유신론은 진화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라고 말씀드렸지요. 하나의 신학적 입장으로서 진화론적 유신론자의 일차적인 관심은 진화 이론 자체에 있는 것보다, 진화 개념을 통해 신학 개념을 재구성하는 데 있습니다. 즉 진화가 과학적으로 논증되는 사실이라거나, 진화론이 제시하는 생명의 역사나 자연의 역사가 성서의 증거와 일치하는가와 같은 문제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들은 진화라는 개념이 기존의 신학적 설명 체계에 어떤 새로운 통찰력을 줄 수 있으며, 신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더욱 강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진화 과학이 제공하는 세계관의 빛 아래서 '신학적 개념'이나 '종교적 의미'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신학화'에서 성서와 진화를 어떻게 보는지 말씀드리지요.

먼저 성서부터 볼까요. 사실 진화론에 대한 그리스도교인의 태도를 결정짓는 것은 성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판가름 납니다. 진화론적 유신론은 거의 전부가 역사·비평적 성서 해석 관점을 지닙니다. 이것은 이들이 창세기의 창조를 설명하는 구절들이 '문자적'으로 사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조와 관련된 창세기 1-11장의 기록을 비역사적인 설명으로 보는 것이지요. 성서가 특히 생명이나 우주의 기원에 관해서 '과학적인 증거'를 전혀 또는 거의 제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요.

특히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신앙 고백 결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기록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창세기 1장이 고도로 비유적이고 시적인 문학 형식으로 이해합니다. 창세기 1장의 내용을 비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진화론적 유신론자들에게 있어서, 성서는 신의 계시가 담겨 있지만 이를 과학 이론과 일치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잘못입니다. 창세기의 기록 목적이 21세기 과학 이론의 전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물론 창조 이야기가 역사적이나 과학적 기록이 아니라고 해서,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지요. 창조 이야기는, 이 세계가 본질적으로 선하면 질서 있으며, 이 세계는 신에 의존에 있으며, 신은 주권자이며 자유로운 존재로서 목적과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깊은 신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둘째, 진화와 창조는 양자택일의 관계가 아니며, 진화는 신학에 아주 유용한 개념입니다. 자연 과정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은 창조 이야기의 의도하는 신학적 의미와 그 영역이 중첩되지 않기 때문에, 진화를 신학적 체계 안으로 수용하는 데 아무런 장벽이 없습니다. 창조 이야기는 생명의 역사 전체를 포함하는 거대한 체계를 설명하며, 진화는 그 생명의 역사가 진행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진화론적 유신론은 진화 개념이 유신론적 세계관에 아주 유용하다고 주장합니다. 자연선택과 변화를 포함하는 진화 개념은, 피조세계에 보다 많은 활동성과 자율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더 잘 일치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요. 이렇게 진화론적 유신론에서 진화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 그리스도교 신학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학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더 나아가, 진화는 신학이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와 정황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신학의 구성을 촉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화론적 유신론은 그리스도교가 다윈 이전이 아니라 다윈 이후의 세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진화하는 우주는 전통적인 신학을 형성해 온 세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화 개념을 수용함으로써 세계의 창조, 계속 창조, 세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신, 세계 속에서 신적 창조성 등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하지요. 진화론적 유신론에 근거한 신학은 진화를 그리스도교 신학이 변증해야 하는 도전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를 그리스도교 신 이해를 위해 가장 중요한 맥락으로 삼고 이를 성찰하는 신학적 대응인 것입니다.


한국 그리스도교, 온실에서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신학에 문외한인 어설픈 창조 과학이나 지적 설계에 신앙과 신학의 문제까지 위임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저를 비롯한 신학자들과 목회자의 책임이지요. 한국 교회 안에서 제대로 신학 교육을 받고 진화론을 비롯한 자연 과학에 정통한 목회자를 배출하는 과제입니다.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것은 책임 회피이고 직무 유기입니다.

사실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그리스도교가 우리에게는 100년이라는 단기간에 들어왔지요.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오랜 기간 동안 치열한 논쟁을 통해 형성되어 왔는데, 한국에는 마구 뒤섞여 들어오면서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문제의식이 간과되었지요. 오늘날 한국 신학계가 '현대 이후(post-modern)' 시대의 신학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국 교회 대부분은 여전히 '근대 이전(pre-modern)'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요. 교회는 여전히 과학 혁명과 계몽주의 이전의 신학 틀을 여전히 고수하는 보수주의 신학이 지배하고 있지요.

이렇게 보수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교회나 신학 대학 상황에서, 목회자를 양성하는 데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 과학에 대해 적절한 소양을 갖추도록 교육하는 교과 과정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인문계와 자연계를 구분하고, 학문 간에 담쌓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신학교육이 양자를 포괄하는 통합적인 교육으로 나가기는 요원하지요. 제가 신학을 공부할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몇 학교를 제외하고는 별로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없고, 가르칠 의지도 없고, 가르칠 능력을 갖춘 사람도 없고, 가르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으니까요. 현실에 안주하는 것, 보수주의, 무섭습니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우리가 지금 보수주의라는 신앙의 '온실'에서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겁니다. 온실에서나 가능한 폐쇄적인 신앙적 독단으로 인해 교회는 이미 한국 사회와 소통부재라는 중병을 앓고 있지요. 이미 가진 자가 되어 현실에 안주하는 교회와, 비만증 환자가 되어 이제 질병 저항력이 약해져 무균실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그리스도인이 머무는 곳이 바로 온실입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생기도 없는 온실을 버리고, 생존을 위해 '광야'로 나가할 때입니다. '광야'에서 '온갖' 거친 '바람'을 겪는 겁니다. 그런 바람 속에서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겁니다. 그런 연후에야 들꽃 같은 생명력을 지닌 건강한 교회와 신학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방학이 시작되면 다시 티베트로 갑니다. 장 선생님이 짐을 꾸려 들어오는데, 저는 짐을 꾸려서 나가네요. '바람'이 필요해서요. 제 자신이 자꾸 온실 속의 화초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보스턴의 '바람'도 좋지만, 설역고원의 '바람'이 그립습니다. 라싸에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거쳐 네팔로 빠질 겁니다. 가을에는 보스턴에서 맞은 '과학'의 바람과, 티베트에서 겪을 '종교'의 바람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갖도록 하지요.


2007년 6월 20일

빛고을에서

신재식 드림.

"소통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과학-종교의 현모습"

과학과 종교의 대화 <14·끝> 연재를 마치며


재작년 가을 사이언스북스로부터 과학과 종교라는 주제에 관해 각기 신학자, 과학철학자, 종교학자의 시각에서 편지를 써서 책으로 묶어 내자는 제의를 받은 후, 겨울부터 시작해 작년 여름까지 반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책을 위해 좌담 토론을 하고 글을 다듬던 중에 지난 봄 프레시안의 제의로 연재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다시 반년이 지났다. 과정들 사이에 약간의 간격이 있기는 했지만, 책을 기획하고, 글을 쓰고, 다듬고, 연재를 마치기까지 거의 두 해를 계속 달려온 셈이다. 이제 다시 편지들과 좌담들을 다듬어 책을 내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연재를 마치고나니 일단 큰 고비를 넘은 듯 홀가분하다.

조금은 답답했다. 살짝 다듬기는 했지만 이미 썼던 편지를 그대로 연재한 것이기에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달라진 생각을 끼워 넣을 수도 없었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요즘 세태에 대한 생각을 반영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인터넷 언론이라는 매체의 특성 덕분에 얻은 값진 선물, 즉 댓글과 편지로 나타난 독자들의 반응에 대해 역시 약간의 댓글과 짧은 편지로만 응답할 수 있었을 뿐, 연재 중인 편지 자체에는 이를 담을 수가 없었다. 사실 독자들의 반응이 워낙 많고 다양해서 이에 대해 일일이 댓글을 달고 답장을 쓰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필자들의 생각과 시도에 공감을 표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거나 문제점을 따끔하게 지적해 주는 독자들에게서 힘을 얻기도 했지만, 필자들이나 다른 독자들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혼자만의 생각을 독백처럼 마냥 풀어놓는 독자들이나 도대체 요즘 같은 형국에 웬 과학과 종교 타령이냐며 질타하는 독자들을 만나면 힘이 빠지기도 했다. 필자들의 생각과 글이 본래 의도했던 소통을 이루어 낼 만큼 다듬어지지 못한 한계도 있었지만, 애초에 소통에 대한 일말의 관심과 의지조차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은 적지 않게 실망스러웠다.

연재가 끝난 후 몇몇 독자들의 댓글과 편지를 게재하기로 했을 때, 그 많은 글들 중에서 무엇을 택할지 엄두도 내지 못하던 필자들을 대신에 프레시안 측에서 몇몇 글을 선정해 주었다.

공교롭게도 게재된 세 편 모두 소통하고자 하는 필자들의 의지에 대해 조언이나 반론을 통해 소통으로 화답해 준 글들이다. 필자들이 이루고자 했던 소통을 좀 더 진전시켜 보려는 프레시안 측의 판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연재를 마치면서 모든 독자들에게는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이 세 분의 독자에 대해서는 짧은 답변으로나마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 같다.

필자들이 추상화된 '과학'과 '종교'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에는 일말의 타당성이 있다. 분명 그런 과학이나 종교는 없다. 있다면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생겨나 여러 분야로 나뉘게 된 '과학들'과 역시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생겨난 상이한 신념 체계를 지니게 된 '종교들'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추상화된 개념과 범주로서 '과학'과 '종교'를 말하는 일을 그만둘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특수성이 반드시 일반성이나 보편성과 상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과학들이 있고 종교들이 있다 해도, 그 과학들 간의 또 종교들 간의 차이를 가로지르는 공통점을 추출하고, 이를 '과학'과 '종교'라는 추상적 개념과 범주로 묶어내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가 본질적으로 추상화 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한 이런 개념화와 범주화는 사실 불가피하다. 추상화된 논의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독자의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추상화 자체를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데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필자들의 논의가 다분히 서구 과학과 서구 그리스도교에 치중한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들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한 지 오래인 '우리'에게 있었다. 서구의 것은 '우리'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의 일부일 뿐이지만, 그것을 빼고 '우리'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좋든 싫든 서구 과학과 서구 그리스도교는 지금의 '우리'를 제대로 되살피기 위해 한 번쯤 제대로 직면해야 하는 대상이다. 물론 좀 더 잘하려면 '우리'를 구성하는 다른 것들, 예를 들어 동양의 과학들과 종교들에 대해서도 좀 더 다루어야 했겠지만, 이는 능력 밖의 일이었고,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한 번에 모든 측면을 다 볼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구 과학과 서구 그리스도교는 역사적 특수성과 범주의 보편성 사이에 있는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통해 '우리'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기 위한 하나의 사례이자 발판이었을 뿐이다.

과학과 종교가 일종의 '문화'라는 지적과 둘 다 '절대화'가 문제이며 중요한 건 '마음'과 '선택'의 문제라는 지적에도 대체로 공감한다. 과학과 종교는 분명 인간이 구축해 온 문화의 주요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문화 속에서 작동하는 온갖 힘들이 과학과 종교에서도 작동하기 마련이다. 종교는 물론 심지어 과학조차도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휘둘리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학 문화를 해부하여 그 이면의 숨은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이를 비판하는 일은 필요하며 절실하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를 논한 필자들의 작업도 이러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의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과학의 경우 이데올로기적 측면이 지나치게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데올로기가 과학을 좌우할 수는 있지만, 과학에는 이데올로기부터 자유로운 부분이 분명히 있다. 과학이 단지 '문화'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문화를 상징과 관련지어 이해한다면 더더욱 과학에는 그러한 문화와는 거리가 먼 부분이 많다. 과학이 비록 방법 면에서 스스로 상징을 사용하기도 하고 또 이러저러한 문화적 상징 조작에 동원되기도 하지만, 엄밀함의 추구와 검증의 노력을 핵심으로 하는 과학적 방법 자체는 상징이나 상징 조작과 별로 상관이 없다. 이 점을 간과하고 과학을 단지 상징과 문화의 일부로만 보면 과학적 방법이 지닌 일정한 가치를 지나치게 상대화하게 되며 결국 과학에 수시로 개입하는 이데올로기의 작용을 밝혀내는 일도 불가능해진다.

절대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과학적 이론이나 종교적 신념을 절대화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과학적 이론은 발견과 검증을 통해 끊임없이 폐기되고 갱신되며 구축된다. 또 종교적 신념들의 다양성은 자기 신념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그 어떤 종교의 주장도 모두 무너뜨린다. 그러나 여기서도 과학과 종교에서의 절대성 문제를 마구 뒤섞어 버리면 곤란하다. 또 절대성을 문제 삼으면서 극단적인 상대주의로 나아가서도 곤란하다. 모든 것이 그저 선택과 마음의 문제라고 보는 입장은 극단적 상대주의의 혐의가 짙다. 물론 우리가 아는 앎이란 우리의 감각과 사고의 능력 안에 갇힌 제한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식하는 것과 그러니까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고 선택하기에 달려 있다는 극단적 상대주의를 취하는 것은 전혀 별개다. 이러한 상대주의는 언뜻 타자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인정이 아니라 무관심 내지 무시다. 본래 상대주의란 권력 관계의 약자와 강자 모두의 절묘한 자기 방어 수단이었다. 서구의 힘 앞에서 비서구는 상대주의를 취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려 했고, 서구는 상대주의를 통해 제국주의의 과오에 대한 알리바이를 마련하려 해 왔던 것처럼 말이다. 상대주의는 자신과 타자 사이의 거리를 확실하게 고착화함으로써 타자에 대한 이해조차 시도하지 않은 채 자신 안에 함몰되는 나르시시즘이다.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다루면서 절대화를 경계하는 상대주의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극단적 상대주의는 모든 것을 선택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서로 다른 생각들 사이의 그 어떤 대화도 소통도 불가능해지게 만든다. 상대주의는 사고의 출발점이지 도달점이어서는 안 된다.

적확한 문제제기와 예리한 비판으로 도움을 준 독자들에게도 고마웠지만, 꼼꼼하고 다양한 정보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준 독자들, 특히 창조론자들과의 토론에 참여했던 경험과 이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비판적 논평을 보내 준 현장 과학자의 편지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우리가 기대한 소통 가능성이 헛된 바람만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 고마움은 특히 컸다.

필자들이 다른 주제들에 비해 창조와 진화 문제를 특히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이 문제가 대개의 개신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면서도 심히 왜곡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또한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종교인들에게는 개신교를 조롱하는 빌미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개신교 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한때 개신교에 깊이 몸담았던 무신론 과학철학자로서, 또 개신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갖는 종교학자로서, 필자들은 그리스도교 진영 내에서 진화와 창조 문제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이 공존해 온 현실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로써 창조 과학과 지적설계론이 창조와 진화 문제의 유일한 해답이라고 믿는 근본주의적 견해가 한국 개신교계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 상황을 문제 삼고자 했으며, 또 '개독교'라는 별명과 더불어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지나치게 만연하고 있는 상황도 문제 삼고자 했다.

교단과 신학의 차이를 막론하고 급속히 근본주의화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반성과 변화가 없다면 한국 개신교에는 미래가 없다. 또 비록 적지 않은 개신교인들이 다른 종교인들이나 무종교인들은 물론 심지어 같은 개신교인들에게조차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개독교'라는 별명으로 개신교인들을 뭉뚱그려 버린 채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마저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이해 없는 원초적인 비난만 난무한다면 건전한 비판적 담론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그러한 한 개신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미래가 없다. 개신교가 변화하느냐 마느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구성 요소를 이루고 있는 개신교라는 하나의 종교에 대해서조차 건강한 비판적 담론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사회라면 전반적인 종교 문화에 대해서는 물론 나아가 그 사회 자체에 대해서도 건강한 비판적 담론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들이 창조와 진화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 것은 이러한 건강한 비판적 담론이 출현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었다.

편지 주고받기를 막 끝내고 난 얼마 후인 작년 7월 개신교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희생자가 생기고 국고가 지출되는 큰 대가를 치른 후 귀국한 선교단원들이 국민 앞에 사과하면서 일단 사태는 마무리되었지만,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끝난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아 왔다. 개신교계에서 잘못된 선교 방식을 문제 삼는 반성의 움직임이 약간 일기는 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많은 개신교인들은 반성은커녕 순교의 사명을 더욱 미화하고 부추기면서 왜곡된 국내외 선교 행태를 계속 강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 여름 개신교 보수 연합 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역사적 예수에 관련된 서울방송(SBS)의 <신의 길 인간의 길>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단지 신학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방송 중단을 촉구하는 압력을 행사한 일이나, 장로 대통령의 정부가 출범한 후 온갖 발언, 인선, 정책에서의 종교적 편향성으로 인해 반감을 키우다가 급기야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일은 한국 개신교에서 반성과 변화란 아직 멀기만 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사회 전반에서 건강한 비판적 담론보다 이해 없는 원초적 비난이 더 무성한 현실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비롯해 특정 종교의 신자에서 무신론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저자들이 쓴 종교 비판 서적들이 쏟아져 나온 일이나, <PD수첩>과 <뉴스 후> 같은 방송 프로그램들이 굴지의 거대 종교들에 관련된 고질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룬 일은 우리 사회에서 종교에 관한 건강한 비판적 담론이 싹트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런 책들과 방송들에도 일정한 한계는 있기 마련이고, 이들이 단순한 일시적 유행에 그치거나 말초적 비난만 자극하는 데 그치는 경우도 많았지만, 적어도 지난 한해는 우리 사회에서 종교라는 화두를 중심으로 건강한 비판적 담론이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한 때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이해와 비판보다는 몰이해와 비난이 더 많아 보인다.

신학자, 과학철학자, 종교학자로서 우리 세 필자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말을 했지만,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관해 편지를 주고받고 이를 연재하면서 품었던 바람은 같았다. 과학이든 종교든, 또 과학과 종교든, 누구나의 관심을 끌 만한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었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으면서 우리의 논의에 귀를 기울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품었던 것은 과학과 종교에 관한 우리의 논의가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비판적 담론이 구축되는 작은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이로써 우리 사회에서 합리적 의사소통의 통로가 마련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연재는 끝났지만,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더 많고 진지한 논의들 속에서 우리의 바람이 조금 더 구체화되고 현실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 시작이다.


/김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