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 만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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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화사의 399원 하던 그레이트북스가 고전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 주었다. 아담 스미드의 『국부론』, 다윈의 『종의 기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 등 삼성문화재단에서 나온 100원 하던 삼성문화문고가 문학, 역사, 철학 등 여러 분야의 서적을 포함하고 있어서 아주 싼 가격에 액기스만 모아 놓은 것 같았다. 그중에 좌담집인 『우리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공부의 방향을 가늠하게 해주었다. 과학 분야에선 전파과학사의 현대과학신서에서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첫 번째 책인 『우주.물질.생명』은 작은 자연과학 개론이라 할만했다. 그래서 문학을 탐닉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자유롭게 탐구하면서도 자연과학을 탐독하게 되었다. 『까라마조프家의 형제들』,『장 크리스또프』,『사기열전』등에서 다양한 인간상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는 어느 사회에서나 만날 수 있을 각기 장단점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들이 깊이 와 닿았다. 그 불완전함 때문에 겪게 되는 비극적인 진행 속에서 신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가운데 종교적 진리와 만나게 해 주었다. 『장 크리스또프』는 베토벤을 재현시키며 운명처럼 따라다닌 고독을 예술에의 열정으로 승화시킨 인생 역정을 강렬하게 보여 주었다. 인생이란 어떠한 부정적인 조건들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진지하게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너의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라고. 『사기열전』은 사마천 자신이 당한 평생의 치욕을 갚기 위해 생의 갈림길에서 치욕스런 생을 포기하지 않고 필생의 과업인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자신을 심판하게 한 역사를 만든 인물들을 영원히 심판한 것을 읽을 수 있었다. 『四書三經』은 지극히 상식적인 쉬운 내용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를 제대로 행하지 못해서 人間事의 모든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의미 깊게 받아들여졌다. 특히 『맹자』는 신랄할 현실 비판 정신과 시대를 뛰어넘은 民本思想에 매료되게 했다. 어떠한 사상보다도 人本主義적이다. 『老子(노자)』와 『菜根譚(채근담)』 몇 년 뒤에 읽은 『壯者(장자)』에서 인생의 상식을 뛰어넘어 자신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인 것 같았다. 어떠한 형식에 구속당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그대로 향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계에서 절제해야 한다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었다. <無爲自然(무위자연)>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와 만난 것을 운명적이라고 하고 싶다. 그 당시 사로잡혀 있었던 회의적인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똑같게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수레바퀴가 돌아간 만큼 반복과 전진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개념에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희미할지라도 일정한 만큼의 전진은 항상 계속돼 가는 법이라는 것을 일종의 신앙처럼 일깨워주었다. 또 크고 작은 자극에 대응해 나간다는 <도전과 응전>의 개념과 역사의 무대에서 자의든 타의든 쫓겨나기도 하지만 그 뒤편에서 새롭게 준비해 재등장한다는 <은퇴와 복귀>의 개념은 그 후 성경을 읽으면서 "고난을 통한 영광"이라는 그 섭리와 일치됨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인생을 다 깨달은 것 같았다.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가운데 인생의 본질을 꿰뚫어 보여 주었다. 평생을 담석증에 시달리면서도 의사의 처방에 얽매여 쩔쩔매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 가장 유익한 처방이라는 신조처럼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간 자세에서 中庸의 정신을 체득하게 해주었다. 질병이나 죽음도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게 했다. 그를 이어받은 루소의 『고백록』 등에서 가까운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파스칼의 『팡세』는 아마 이성과 신앙을 가장 잘 조화시킨 사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인문』을 읽게 되면서 정신분석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려고 했었는데 그 대상인 인간의 내부가 너무 비참하게 여겨지게 했다. 정신분석을 사회이론에 적용한 에리히 프롬의 첫 번째 저서와 마지막 저서인 『자유에서의 도피』와 『소유냐와 삶이냐』를 연이어 읽으면서 그에게 반하게 되어서 그가 쓴 저서들을 수집해 읽게 되었다. 특히 『인간 파괴성의 해부』에서 인간의 본성이란 자기방어적인 선한 공격성이 있는데 사회 환경에 의해 올바른 방향으로 자아실현을 못 하게 방해를 받게 되면 악한 공격성으로 표출하게 되어 히틀러와 같은 稀代(희대)의 폭군이 나오게 된다고 했다. 거기에서 인간이란 사회 속에서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인간관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 사회학으로 기울여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방송통신大 행정학 2년 과정을 독학으로 마치면서 교과서를 벗어나서 진짜 홀로배우기(獨學독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철학개설』(박종홍) 『법학통론』(황산덕) 『심리학』(장병림,정한택) 『사회학』(김대환)등 개론서로 시작했는데 법학은 응용 학문이라서인지 철학과 사회학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새로 나오는 책은 신문에서 주로 보고 선택할 할 수밖에 없었는데, <출판문화 대상> 선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책을 선택하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해마다 거의 국학 분야에 수여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대부분의 학문들이 서양에서 건너온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인 우리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쪽 사람들을 쫓아가기도 바쁠 뿐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오리지널인 <國學(국학)>을 하자는 마음이 들게 해 준 것 같다. 원래 역사에 대해 흥미가 있어서 한국사에 관해 여러 책을 읽어 왔지만, 첫 번째로 『한국의 역사 인식』(창작과비평사, 1976)에서 史學史(사학사)라는 논문들을 대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입문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학이란 과거의 사실이나 사상의 의미를 그 시대 속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인 동시에 그것이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역사를 인식하는 주체에게 미치는 의미를 주관적으로 재인식하는 것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역사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한국철학 연구』(동명사, 1976)를 읽게 했다. 사람의 행위를 끄는 건 정신이기에 그 정신의 흐름을 추적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지만, 철학이라는 정신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의 것에 관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려시대를 공부하면서 그 사회의식에 영향을 끼친 思潮가 불교였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유교가 지배했을 수밖에 없었고 그 심층에는 上下 계층에 풍수지리설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한국의 風水사상』(최창조, 민음사, 1985)을 읽어야 했다. 더 나아가 기층사상으로 파고 내려가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인의 생활의식과 민중예술』(성大대동문화연구소編, 성大출판부, 1984』과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유동식, 연세大출판부, 1975)을 읽게 되면서 思想史에서 社會史로 넘어가는 추세이다. 최근 들어서 『사생활의 역사』(새물결)나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와 같이 쉽지만, 시대상의 단면을 시시콜콜하게 재현해 내는 生活史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와 같이 숲 전체 흐름을 살펴보는 거시사와 나무 하나하나의 특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미시사를 함께 대조해 가는 공부를 계속해 나가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책이 나왔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가 출간되어 나와서 사서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한국문학통사』(지식산업사, 1989)다. 두 권짜리 국문학사도 없던 우리 풍토에서 5권의 大著를 낸 조동일 교수도 대단하게 여겨지지만, 4년에 걸쳐 한 권씩 사서 모두 읽으면서 著者 못지않은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워서 읽기를 두려워하다가 오랜 준비를 거쳐서 읽게 되는 것도 있다. 칼빈의 『기독교강요』(생명의말씀사, 신복윤外역) 전 3권을 2년에 걸쳐 읽었다. 이 책도 10여 년 전에 번역 중이라는 신문 기사를 보고 여러 번 사려고 했었지만, 그때마다 돈이 모자라고 절판이 되고 하는 바람에 늦어진 것이다. 역시 개신교의 뼈대라고 할 만하다. 오직 성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섭리 본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1,2권에 비해 카톨릭의 혼합주의 교리를 반박하는 3권은 지루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틸리히의 조직신학인 『SYSTEMATIC THEOLOGY』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며 10년이나 준비한 끝에 세 권을 원서로 독파해 냈을 때의 그 통쾌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랴! 낯선 신학적 개념을 이성과 계시, 존재와 하나님, 실존과 그리스도, 생명과 영, 역사와 하나님 나라로 철학적 개념과 비교한 것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100권 기념으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4권으로 몇 년에 걸쳐 번역되어 나오는 것을 차례로 사서 보았다. 문학과 예술이란 인간의 가장 높은 정신의 산물이 인간을 테두리 짓는 사회에서 만들어지면서 또 그 사회를 변모시켜 가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한 大著였다. 모든 종류의 사상 체계와 사회구조의 역동적인 관계가 나의 학문 방식이 되었다. 방송통신大 행정학 강의에서 들어서 귀에 익은 『막스 베버의 생애』라는 작은 문고판을 사서 읽게 되었는데, 사회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해주었다. 파슨스의 『사회의 유형』과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사회학이란 학문에 대해 白紙 상태에서 선택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문 꼬리를 제대로 잡은 것이었다. 파슨즈가 어떤 학자인지도 모른 채 『사회의 유형』을 먼저 사서 읽게 되었는데 그의 거시적인 체계화에 반발해서 밀즈가 쓴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제시한 미시적이면서 유연한 접근법이 인상적이었는데 베버의 입장을 이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역사 위에서 변동해 가는 사회를 관찰하려는 입장이었기에 내가 추구하려던 관점을 발견한 것 같았다. 굴드너의 『현대사회학의 위기』에서 분명히 할 수 있었다. 교과서적인 『사회학이론의 구조』에서 사회학에서의 다양한 관점들을 일목요연하게 배우게 해주었다. 처음으로 사게 된 원서인 『SOCIOLOGICAL THEORY』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사회학의 이론가들의 사상을 발취한 것을 섭렵하게 되었다. 역사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살피려는 거시사에 대해 각 부분을 세밀하게 미시사의 대두를 반영하듯 내 지적 편력은 학계의 최첨단 프론티어를 추적해 가고 있는 맛에 쉴 줄 모르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인문』을 읽게 되면서 정신분석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려고 했었는데 그 대상인 인간의 내부가 너무 비참하게 여겨지게 했다. 정신분석을 사회이론에 적용한 프롬의 첫번째 저서와 마지막 저서인 『자유에서의 도피』와 『소유냐와 삶이냐』를 연이어 읽으면서 그에게 반하게 되어서 많은 저서들을 읽게 되었다. 특히 『인간 파괴성의 해부』에서 인간의 본성이란 자기 방어적인 선한 공격성이 있는데 사회 환경에 의해 올바른 방향으로 자아 실현을 못하게 방해를 받게 되면 악한 공격성으로 표출하게 되어 히틀러와 같은 稀代(희대)의 폭군이 나오게 된다고 했다. 거기에서 인간이란 사회 속에서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인간관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 사회학으로 기울려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분야든 역사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살피려는 거시사에 대해 각 분야의 역사를 세밀하게 다루는 미시사의 대두를 반영하듯 내 지적 편력은 학계의 최첨단 프론티어를 추적해 가고 있는 맛에 쉴 줄 모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