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 만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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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家의 형제들』『장 크리스또프』『사기열전』등에서 다양한 인간상을 만날 수 있었다.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는 어느 사회에서나 만날 수 있을 각기 장단점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들이 깊이 와 닿았다. 그 불완전함 때문에 겪게 되는 비극적인 진행 속에서 신의 사랑을 경험을 하게 하는 가운데 종교적 진리와 만나게 해주었다. 『장 크리스또프』는 베토벤을 재현시키며 운명처럼 따라 다닌 고독을 예술에의 열정으로 승화시킨 인생 역정을 강렬하게 보여 주었다. 인생이란 어떠한 부정적인 조건들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진지하게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너의 최선을 다하라. 그러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라고. 『사기열전』은 사마천 자신이 당한 평생의 치욕을 갚기 위해 생의 갈림길에서 치욕스런 생을 포기하지 않고 필생의 과업인 역사를 기록함으로써 자신을 심판하게 한 역사를 만든 인물들을 영원히 심판한 것을 읽을 수 있었다. 『四書三經』은 지극히 상식적인 쉬운 내용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를 제대로 행하지 못해서 人間事의 모든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의미 깊게 받아 들여졌다. 특히 「맹자」는 신랄할 현실 비판 정신과 시대를 뛰어넘은 民本思想이 매료되게 했다. 어떠한 사상보다도 人本主義적이다.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와 만난 것을 운명적이라고 하고 싶다. 그 당시 사로잡혀 있었던 회의적인 물음들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똑같게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반복과 진보의 운동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수레바퀴 개념에서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희미할지라도 일정한 만큼의 전진은 항상 계속되어져 가는 법이라는 것을 일종의 신앙처럼 일깨워 주었다. 또 도전과 응전의 개념과 은퇴와 복귀의 개념은 그 후 성경을 읽으면서 그 섭리와 일치됨을 깨닫게 되었을 때 인생을 다 깨달은 것 같았다.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이렇게 까지 솔직하게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하는 가운데 인생의 본질을 꿰뚫어 보여 주었다. 평생을 담석증에 시달리면서도 의사의 처방에 얽매여 쩔쩔매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자연스럽게 행하는 것이 가장 유익한 처방이라는 신조처럼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간 자세에서 中庸(중용)의 정신을 체득하게 해주었다. 질병이나 죽음도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게 했다. 그를 이어 받은 루소의 책들에서 가까운 친구를 만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파스칼의 『팡세』는 아마 이성과 신앙을 가장 잘 조화시킨 사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인문』을 읽게 되면서 정신분석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심리학을 공부하려고 했었는데 그 대상인 인간의 내부가 너무 비참하게 여겨지게 했다. 정신분석을 사회이론에 적용한 프롬의 첫번째 저서 마지막 저서인 『자유에서의 도피』와 『소유냐와 삶이냐』를 연이어 읽으면서 그에게 반하게 되어서 많은 저서들을 읽게 되었다. 특히 『인간 파괴성의 해부』에서 인간의 본성이란 자기 방어적인 선한 공격성이 있는데 사회 환경에 의해 올바른 방향으로 자아 실현을 못하게 방해를 받게 되면 악한 공격성으로 표출하게 되어 히틀러와 같은 稀代(희대)의 폭군이 나오게 된다고 했다. 거기에서 인간이란 사회 속에서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인간관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 사회학으로 기울려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老子(노자)』와 『菜根譚(채근담)』몇 년 뒤에 읽은 『壯者(장자)』에서 인생의 상식을 뛰어넘어 자신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인 것 같았다. 어떠한 형식에 구속 받지 않고 주어진 삶을 그대로 향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계에서 절제해야 한다는 지혜를 터득할 수 있었다. <無爲自然(무위자연)> 이와 같이 고전 목록에는 감동적인 것도 많았지만 과연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납득이 안 가는 것도 더러 발견되었다. 특히 『데카메론』같은 경우 국어 교과서에 어떻게 명작이라고 나왔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비록 文學史的 의미가 크다고 해도 말이다. 방송통신大 행정학 2년 과정을 독학으로 마치면서 교과서를 벗어나서 진짜 獨學(독학)을 시작하게 되었다. 『철학개설』(박종홍) 『법학통론』(황산덕) 『심리학』(장병림,정한택) 『사회학』(김대환)등 개론서로 시작했는데 법학은 응용 학문이라서인지 철학과 사회학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새로 나오는 책은 신문에서 주로 보고 선택할 할 수밖에 없었는데, <출판 문화 대상> 선정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책을 선택하는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해마다 거의 국학 분야에 수여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대부분의 학문들이 서양에서 건너 온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인 우리 입장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 쪽 사람들을 쫓아가기도 바쁠 뿐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오리지널인 <國學(국학)>을 하자는 마음이 들게 해준 것 같다. 원래 역사에 대해 흥미가 있어서 한국사에 대해 여러 책을 읽어 왔지만, 첫 번째로 『한국의 역사인식』(창작과비평사,1976)에서 史學史(사학사)라는 논문들을 대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입문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학이란 과거의 사실이나 사상의 의미를 그 시대 속에서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인 동시에 그것이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역사를 인식하는 주체에게 미치는 의미를 주관적으로 재인식하는 것이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역사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한국철학연구』(동명사, 1976)를 읽게 했다. 사람의 행위를 끄는 건 정신이기에 그 정신의 흐름을 추적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철학이라는 정신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보다 더 깊은 차원의 것에 대해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려시대를 공부하면서 그 사회의식에 영향을 끼친 思潮(사조)가 불교였지만, 정치적 측면에서는 유교가 지배했을 수밖에 없었고 그 심층에는 上下 계층에 풍수지리설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한국의 風水사상』(최창조, 민음사, 1985)을 읽어야 했다. 그렇게 더 기층사상으로 파고 내려가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인의 생활의식과 민중예술』(성大대동문화연구소編, 성大출판부, 1984』과 『한국무교의 역사와 구조』(유동식, 연세大출판부, 1975)을 읽게 되면서 思想史에서 社會史로 넘어가는 추세이다. 최근 들어서 『사생활의 역사』(새물결)『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와 같이 쉽지만 시대상의 단면을 시시콜콜하게 재현해내는 生活史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역사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살피려는 거시사에 대해 각 분야의 역사를 세밀하게 다루는 미시사의 대두를 반영하듯 내 지적 편력은 학계의 최첨단 프론티어를 추적해 가고 있는 맛에 쉴 줄 모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