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읽기 아까운 글들 ⑵

 

 

 

인생이란 무엇인가, 레프 톨스토이 지음·채수동·고산 옮김,동서문화사

 

1월 1일

 

1

그리 중요치 않은 평범한 것을 많이 알기보다는 참으로 좋고 필요한 것을 조금 아는 것이 더 낫다.

 

2

잘 갖추어진 작은 서재에 굉장한 보배가 존재할 수 있다. 수천 년에 걸친 세계의 모든 문명국에서 추려낸 가장 지혜롭고 고귀한 위인들의 세계, 즉 그들의 연구와 지혜의 소산이 그 책들 속에 고스란히 살아 숨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가까이 하기 어려운 존재인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고독을 깨뜨리거나 자신들의 작업을 방해하는 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고, 또는 사회적 조건들이 그들과의 교류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 속에는 그들의 최상의 벗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사상이, 세기를 건너뛰어 누구인지도 모르는 우리에게 명료한 언어로 펼쳐져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큰 정신적 은혜를 책 속에서 얻고 있는 것이다. 에머슨

 

3

인간은 원래 반추동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많은 책을 머리에 채워 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삼킨 것을 잘 새김질하여 소화시키지 않는다면 책은 우리에게 아무런 힘과 자양도 주지 않을 것이다. 로크

 

4

다양한 저자의 저술과 온갖 종류의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 머리 속에 혼란과 모호함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만약 독서를 통해 무엇인가 유익한 것을 끌어내고 싶거든 진정으로 가치 있는 저자의 책만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 책을 무턱대고 많이 읽는 것은 두뇌를 산만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확실히 양서로 정평이 나 있는 책만 읽도록 하라. 만약 잠시 다른 종류의 책을 접하고 싶은 생각이 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본래의 독서법으로 돌아가기를 잊지 말라. 세네카

 

5

무엇보다 먼저 좋은 책부터 읽어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평생 그 책을 읽을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소로

 

6

자신의 사상이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책을 읽어야 한다. 그것은 지극히 총명한 사람들에게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독서에 의해, 아직 완성되지 못한 자신의 사상을 혼란케 하는 일은, 자기 영혼에 대한 범죄 행위이다. 쇼펜하우어

 

7

문학에서도 인생에서와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어디를 돌아보나 마치 여름철 파리처럼 득실거리며 모든 것을 더럽히고 있는 구제할 길 없는 속된 무리와 부딪히게 된다. 그것 때문에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악서의 범람과 좋은 씨앗의 발아를 방해하는 문학적 독초의 이상 번식이 일어나고 있다. 그와 같은 책들은, 엄선된 참으로 뛰어난 작품에 투자해야 할 시간과 돈과 정신력을 훔치고 있다.

악서는 무익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단연코 유해하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문학서 가운데 십중팔구는 우매한 독자의 호주머니에서 조금이라도 더 돈을 뜯어내려는 목적으로 출판되고 있다. 그래서 저자와 출판업자와 인쇄업자들은 고의로 책을 두껍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돈벌이를 위해 글을 쓰는 매문업자는 더더욱 유해하고 후안무치한 기만을 자행하고 있다. 하찮은 문장을 늘어놓고 한 줄에 얼마라고 하는 이 일용 노동자들은 독자의 기호에 흠집을 내고 참된 문화를 망치고 있다.

이 같은 해독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 우리는 반드시 ‘읽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즉,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책, 평판이 자자한 책은 아예 읽지 말아야 한다. 더욱 과감하게 말하면, 발행된 첫해가 그 존재의 마지막해가 되는 책은 모두 멀리해야 한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자가 언제나 가장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법이다. 우리는 이 짧고 덧없고 한정된 생애를, 동서고금의 위대한 작품과 수많은 열등작가들 위에 탑처럼 우뚝 솟아 있는 천재적 작가들의 작품을 가까이하며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이러한 저자들만이 우리를 정말로 움직일 수 있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서는 아무리 적게 읽어도 지나치지 않고, 양서는 아무리 많이 읽어도 과하다고 할 수 없다. 악서는 마음을 흐리게 하는 정신적인 독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고금의 양서는 읽을 줄 모르고, 그저 그 시대의 새로운 작품만 읽기에 바쁘다. 때문에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같은 주제를 우려먹으며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 시대는 해악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8

물질적인 독물과 정신적인 독물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물질적인 독물은 대부분 맛이 불쾌하지만, 저급한 신문이나 악서 같은 정신적인 독물은 불행히도 아주 매혹적이라는 점이다.

 

1월 2일

 

1

가장 야만적인 미신의 하나는, 현대의 대다수 학자들에게 만연하고 있는, ‘인간은 신앙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미신이다.

 

2

언제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사람들은, 자신을 처음으로 이 세상에 보낸 이가 누구이고, 또 그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며, 적어도 그것에 대해 자기 나름의 이해를 가지기를 열망해왔다. 그래서 이 같은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인을 하나의 기원을 가진 형제로 결합시키고, 그들의 삶에 공통된 과제와 공통된 궁극의 목적을 천명하기 위해 종교가 등장한 것이다. 주세페 마치니

 

3

진정한 종교는, 사람들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무한한 삶과의 사이에 수립하는 관계를 뜻한다. 그 관계가 그의 삶과 이 무한한 삶을 연결하여 그의 행위를 지도하는 것이다.

 

4

모든 종교의 본질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나를 둘러싼 무한한 세계와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에 있다. 가장 고차원적인 종교에서 가장 야만적인 종교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교가 그 밑바탕에, 이러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나’의 관계의 수립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5

종교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교육자이며 최대의 계몽자이지만, 반면에 외면적인 현상과 정치상의 이기적 활동은 인류의 진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종교의 본질인 신성함과 영원함은 살아 있는 한, 느끼는 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한결같이 채워준다.

우리가 탐구의 길로 나아가면 갈수록, 모든 위대한 종교의 근본 원리는 하나라는 것, 천지창조 이후 오늘날까지 연면히 이어져온 가르침이 그 하나로 관철되어 있음이 밝혀질 것이다.

모든 신앙의 밑바탕에는 오직 하나의 영원한 진리의 흐름이 있다.

조로아스터교도는 조로아스터교의 깃발을, 유대교도는 유대교의 깃발을, 그리스도교도는 십자가를, 이슬람교도는 그들의 반월기(半月旗)를 걸게 하라. 그러나 그들도 모두, 그러한 것은 단순한 외면적인 표징(表徵)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종교의 본질적 원리는 예수, 바울, 마누, 조로아스터, 부처, 모세, 소크라테스, 실러, 마호메트가 한결같이 설파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리스 플류겔

 

6

특정한 가르침을 신의 계시로 정하는(그래서 그것을 신학이라고 부르지만)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의무를 신의 계율로 정하는 것 속에 모든 종교의 본질이 존재한다. -칸트

 

7

신앙이 없는 사람의 생활은 금수의 생활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1월 3일

 

1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사업을 성취하는 데 있다”고 그리스도는 말했다. 우리에게도 저마다 우리를 보내신 분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신이 우리를 통해 이룩할 사업의 전모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모를 수가 없다.

 

2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제7장 21절

 

3

타오르는 힘, 빛을 발하는 힘이 없다면, 적어도 빛을 가리지는 않도록 하라.

 

4

지혜의 법칙을 아는 자는 그것을 사랑하는 자보다 못하다. 그것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실천하는 자보다 못하다. 중국 잠언

 

5

우리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생애에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낸 이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 탈무드

 

6

나는 괴롭다, 나는 신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내가 신을 섬겨야 하는 것이지 신이 나를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것을 깨닫는다면 괴로움은 절로 가벼워질 것이다.

 

7

이 지상과 천상 사이에 심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신이 우리에게 준 주거가 영원히 악과 이기주의와 압박의 지배 아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상은 단순한 속죄의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진리와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곳이다. 그 진리와 정의에 대한 갈망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다. 주세페 마치니

 

8

언젠가 우리는 천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든, 옛날에는 연체동물이었다고 믿고 있든,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그리고 실수 없이 완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존 러스킨

 

9

인생의 목적을 단순히 일신상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 인생은 견디기 어려운 허망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성현이, 그리고 우리의 이성, 우리의 심장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인생이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에 대한 봉사라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부터 인생은 끊임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1월 4일

 

1

우리는 아무리 그럴 생각이 없어도, 싫든 좋든 이 세상과 맺어져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산업, 교역, 예술, 지식 등이, 특히 우리 처지의 동일성, 세계에 대한 관계의 동일성이 우리를 결합시키고 있다.

 

2

선한 사람들은 굳이 그것을 의식하지 않고 서로 돕고 산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적대행위를 하기 마련이다. 중국 속담

 

3

모든 사람은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고, 저마다 결점을 가지고 있다.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대화하고 충고하면서 돕지 않으면 안 된다. 성현의 사상

 

4

이 세상은 천 사람이 함께 일하면 같은 천 사람이 따로따로 일할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구백구십구 명의 사람이 한 사람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헨리 조지

 

5

선한 사람은 악한 사람의 스승이다. 악인은 선인이 교육해야 할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스승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제자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노자

 

6

인간은 모두 아담의 자식, 말하자면 하나의 몸에 딸린 손이고 발이다. 손이 괴로우면 발도 괴롭다. 남의 괴로움에 냉담한 자는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사디

 

7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활은 인류 전체의 생활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영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조화와 합일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계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정신계에 있어서도 모든 생명 현상은 서로 긴밀한 관계로 맺어져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8

천지창조 이후의 인류 역사는 인류의 합일을 향한 끊임없는 전진의 역사이다. 이 합일은 수많은 다양한 방법으로 달성되는 것이며, 그 합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까지 거기에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1월 5일

 

1

사람들이 북적대는 건물 안에서 누군가가 “불이야!” 하고 외친다. 그러면 사람들은 한꺼번에 출구로 몰려가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게 된다.

 

2

언어에 의한 해독은 명백하다. 우리가 우리의 언어에 의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보지 않는다 해도 그 해독이 큰 것은 마찬가지이다. 총에 맞은 상처는 나을 수 있지만, 언어에 의해 입은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는다. 페르시아 격언

 

3

우리는 모두 실수하는 일이 많습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완전한 사람입니다. 말은 입에 재갈을 물려야 고분고분해집니다. 그래야 그 말을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습니다. 또 배를 보십시오. 거센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크디 큰 배라도 아주 작은 키 하나로 조종됩니다. 그래서 키잡이는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배를 마음대로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혀도 인체에서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엄청나게 허풍을 떱니다. 아주 작은 불씨가 굉장히 큰 숲을 불살라 버릴 수도 있습니다. 혀는 불과 같습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부분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고 세상살이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 망쳐 버리는 악의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혀 자체도 결국 지옥 불에 타 버리고 맙니다. 야고보서 제3장 26절

 

4

남을 헐뜯는 얘기를 들을 경우, 그들과 함께 맞장구를 치지 말라. 남의 험담을 들으면 끝까지 다 듣지 말고 이미 들은 것은 잊도록 하라. 반대로 남의 선행에 대한 말을 듣거든 그것을 마음에 새겨 두고 여러 사람에게 얘기하라. 그렇게 하면 우리는 이내 그런 것에 길들여져, 남의 험담을 들을 때는 자신이 욕을 얻어먹은 것처럼 괴로움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남에 대해 험담을 해버렸을 때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때린 것처럼 아프게 느낄 것이다. 동양의 금언

 

5

논쟁에는 귀를 기울이되 거기에 끼어들지는 말라.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말에도 격앙과 흥분을 경계하라. 노여움은 어떠한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옳은 일을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노여움이 그 옳은 일을 흐려놓기 때문이다. 고골리

 

6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죄를 범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재갈을 물리리라 하였도다. 시편 제39편 1

 

7

말로 사람들 마음에 서로의 반감을 부채질하여 그들의 합일을 방해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1월 6일

 

1

착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악을 행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2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는 자제심이 가장 중요하다. 그 자제심은 되도록 일찍부터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그것이 몸에 배여 있으면 우리의 덕행은 견고한 것이 될 것이다. 덕행이 견고한 사람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노자

 

3

사람들이 그처럼 매혹되어 있는 모든 것,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그처럼 골몰하고 있는 것, 그러한 것은 그들에게 아무런 행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골몰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 갈망하는 것 속에 자신들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손에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다시 안절부절못하고 아직 손에 넣지 못한 것을 바라며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을 부러워한다. 마음의 평화는 헛된 욕망의 충족에 의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같은 욕망을 버림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러한 헛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네가 오늘까지 쏟아온 노력의 반이라도 좋으니, 그러한 욕망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 힘써 보라. 그러면 너는 곧 그렇게 함으로써 훨씬 더 많은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에픽테토스

 

4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하느님은 모든 자들을 시험한다. 어떤 사람은 부(富)를 통해, 어떤 사람은 가난을 통해.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에게 아낌없이 베푸는지, 가난한 자는 그 가난을 원망하지 않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는지를. 탈무드

 

5

화살같이 달리는 마차와도 같은 자신의 분노를 꾹 참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좋은 마부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그 밖의 힘없는 사람은 그저 고삐만 잡고 있을 뿐이다. 부처의 가르침

 

6

만일 불쾌한 일이 자꾸 겹쳐서 분노와 격앙을 느끼거든 얼른 자기 자신 속에 침잠하여 자제심을 잃지 말도록 하라. 우리가 의지의 힘으로 평화로운 정신 상태로 돌아가는 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 내부의 정신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능력은 커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7

우리가 자신의 욕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여러 번 죄에 빠지더라도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된다. 욕정과의 싸움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그 힘이 약해져서 쉽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

 

1월 7일

 

1

사람들에 대한 선의는 인간의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선의로써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 된다.

 

2

아무리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그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어떤 사람의 내부에도, 우리들 속에 살고 있는 것과 똑같은 영혼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때도, ‘그래, 세상에는 온갖 사람이 다 있게 마련이니까 참아야지’ 하고 생각하라. 만일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드러낸다면, 첫째로 우리는 옳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둘째로 그들을 결사적인 싸움으로 유인하게 된다. 그가 어떤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을 바꿀 수는 없다. 그로서는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우리와 싸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우리는 그가 현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면 좀더 잘해 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라도 선의로 대하며, 그에게 다른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쇼펜하우어

 

3

악의 유혹에 빠진 사람을 잔인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자신도 남에게 위로받은 적이 있는 것처럼, 그 사람을 위로하기에 힘써라. 성현의 사상

 

4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오만은 의식주에 필요한 경비보다 더 비싼 값을 치르게 한다.

우리는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얼마나 괴로워하는가!

만약 화가 나거든 무엇인가를 하거나 말을 하기 전에 열을 세도록 하라.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거든 백까지, 그래도 안 된다면 천까지 세도록 하라. 제퍼슨

 

5

어느 누구도 얕보지 마라. 이웃에 대한 악의와 시기심을 버려라. 남의 행위와 말은 언제나 선의로 해석하라. 성현의 사상

 

6

성인은 강직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성인은 자신의 열린 마음을 만인의 마음에 적응시킨다. 그래서 선덕이 있는 사람은 선덕이 있는 사람으로 대하고, 죄 많은 사람은 선덕의 가능성을 지닌 사람으로 대한다. 동양의 잠언

 

7

총명하고 선량한 사람일수록 사람들 속에 있는 선을 알아본다. 파스칼

 

8

친절한 마음은 모든 모순을 풀어 주는 인생의 꽃이다. 그것은 싸움을 해결해주고, 어려운 일을 수월하게 해주며, 어둠을 밝게 해준다.

 

 

이레째 읽을거리 : 도둑의 아들

 

어느 고을에서 배심재판이 열렸다. 배심원은 농부와 귀족과 상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배심장은 명망 있는 상인 이반 아키모비치 벨로프라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이 선량한 상인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는 장사를 무척 정직하게 하는 데다 누구도 속이는 일이라곤 없고, 계산이 정확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일흔 살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배심원들이 모여 선서를 하고 저마다 자리에 앉자, 한 농부의 말을 한 마리 훔친 죄로 기소된 남자가 끌려 나왔다. 막 재판이 시작되려는 순간, 이반 아키모비치가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장에게 말했다.

“재판장님, 허락해주십시오. 저는 평결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재판장은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튼 저는 할 수 없습니다. 부디 배심원에서 제외시켜 주십시오.”

이반 아키모비치의 목소리가 갑자기 떨리는 것 같더니, 곧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찌나 우는지 한참 동안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재판장에게 말했다.

“재판장님, 제가 평결을 내릴 수 없는 것은, 저나 제 아비가 어쩌면 이 도둑보다 더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나하고 똑같은 인간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전 못합니다. 제발 허락해주십시오.”

재판장은 이반 아키모비치를 일단 돌려보낸 다음, 저녁에 자기 집에 불러 물었다.

“어째서 재판을 거부하셨습니까?”

“사실은 이렇습니다.”

이반 아키모비치는 재판장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재판장님은 아마 제가 상인의 아들이고 이 고을에서 태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계시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농부의 아들입니다. 제 아비는 농부였지만, 이 일대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도둑으로 결국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착한 사람이었는데, 한번 술에 취하기만 하면 어머니를 때리고 온갖 난폭한 짓을 다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술이 깨면 후회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도둑질을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한번이 나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준 겁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제 아버지는 다른 도둑들과 주막에서 만나, 어디 좋은 벌이가 될 만한 데가 없는지 서로 의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들, 좋은 수가 있네. 왜 그 큰 길가에 있는 벨로프네 가게 창고 알지? 그 창고 안에는 어마어마한 재물이 잔뜩 들어 있는데, 문제는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궁리를 해봤는데, 그 창고에는 조그만 들창이 하나 있어. 그런데 그 들창이 높은 곳에 있는 데다 좁아서 어른은 들어갈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나는 또 생각해 봤지. 우리 집에 날쌘 개구쟁이 녀석이 하나 있는데(그건 바로 저를 두고 하는 말이었지요) 말이야, 그 녀석을 데리고 가서 가는 삼노끈으로 묶어 창문까지 당겨 올리는 거야. 그러면 그 놈이 창문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지 않겠어? 그런 다음 또 하나의 끈을 그 녀석에게 들려주는 거지. 그러면 아이가 그 끈에 재물을 매달아 올리고, 우리는 그것을 끌어올리면 되는 거야. 다 됐다 싶으면 이번에는 그 녀석을 끌어내면 돼.”

도둑들은 그 묘안을 크게 환영하며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당장 자네 아들놈을 데려와.”

그래서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큰 소리로 저를 불렀습니다.

“그 아인 왜요?” 하고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볼일이 있으니까 부르지.”

“그 아인 지금 밖에 나가 있는걸요.”

“어서 가서 불러 와.”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있을 때는 아무리 말해봤자 소용없고, 이내 손이 올라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밖에 나가 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바니카! 너 기어들어가는 건 잘 할 수 있지?”

“그럼요, 어디든지 기어들어갈 수 있어요.”

“그럼 나하고 같이 가자.”

어머니가 말리려 했지만 아버지가 주먹을 치켜드는 바람에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주막에 데리고 가서 차와 과자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저녁때까지 그곳에 앉아 있다가,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진 뒤에 출발했습니다. 도둑 세 명과 어린 저는 잠시 뒤 그 벨로프라는 상인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도둑들은 저를 가는 삼노끈에 묶고 또 한 가닥의 끈을 손에 쥐어 주고는 달아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서우냐?”

“무섭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럼 창문으로 기어들어가. 그리고 내 얘기 잘 들어라, 잘 살펴보고 가능한 한 비싼 물건을 고르는 거야. 모피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그걸 끈에다 묶는데, 주의해야 한다. 끝에다 매지 말고 중간에다 매란 말이야. 우리가 끌어당길 때 끝자락이 네 손에 남아있도록 말이다. 알겠어?”

“예, 잘 알겠어요.”

그리하여 그들은 저를 들창까지 올려주었고, 제가 들창 안으로 기어 들어가자, 이번에는 다시 내려주었습니다. 바닥에 내려선 저는 이내 두 손으로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깜깜해서 뭐가 뭔지 보여야 말이지요. 그저 손으로 더듬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뭔가 모피일 성싶은 것이 손에 걸리면 그것을 끈 끝자락이 아닌 중간에 매었습니다. 그러면 밖에서 그것을 잡아당겼지요. 다시 끈을 끌어내려주면 물건을 또 비끄러매었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하고 나자 끈이 완전히 밖으로 나가버리더군요. 이제 그만하면 충분했던 거지요. 그리고 이번에는 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조그만 두 손으로 줄을 꼭 붙들자 세 사람은 그것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런데 절반쯤 올라갔을 때 툭 하고 줄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아래로 떨어졌는데, 다행히 커다란 베개 위에 떨어져서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로 그때 야경꾼이 세 사람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들은 훔친 물건을 걸머지고 냅다 줄행랑을 쳐버린 것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도망치고 저는 혼자 남았습니다. 어둠 속에 혼자 있으려니까 와락 무서운 생각이 들어 엄마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하지만 무서움과 눈물에 지친 데다 그때까지 잠도 자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 베개 위에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얼마 뒤 문득 눈을 뜨자 눈앞에 등불을 든 바로 그 상인 벨로프와 순경이 서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순경이 저에게 누가 널 데리고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버지하고 같이 왔다고 대답했지요. “네 아버지가 누구냐?”

저는 또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벨로프 영감님이 순경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오. 어린아이는 천사입니다. 저 아이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대라고 할 수는 없어요. 이미 잃어버린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지금은 천국에 가 계시지만, 벨로프씨는 정말 어진 분이었습니다. 게다가 노부인은 그분보다 한결 더 자비로운 분이었어요. 노부인은 저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과자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울음을 그쳤지요. 아시다시피 어린아이들이란 조그마한 일에도 기뻐하는 법이니까요.

이튿날 아침 부인은 저에게 “아가, 집에 돌아가고 싶니?”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예” 하고 말했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부인이 “이 집에 있고 싶니?” 하고 물어서, 저는 또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여기 있으렴.”

그리하여 저는 그대로 그 집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그곳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지요. 그 집 사람들은 버려진 아이를 주웠다고 관청에 신고하고, 저를 수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처음에는 잔심부름을 했지만 적당한 나이가 되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가게에서 장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분들 보기에 제가 웬만큼 일을 해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분들이 워낙 좋은 분들이라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주셨기 때문이지요. 결국은 따님을 저와 결혼시켜 주고 저를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벨로프 영감님이 돌아가시자 재산은 온통 제 차지가 되었지요.

저란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도둑이었고, 도둑의 아들이었어요. 그런 제가 어떻게 남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재판장님,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도둑질로 죄를 범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을 벌하지 말고 오히려 불쌍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이반 아키모비치의 이야기가 끝났다. 그러자 판사는 더 이상의 질문을 그만두고, 그리스도교의 계명에 비추어, 누가 누구를 심판하는 일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하고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레스코프 원작, 레프 톨스토이 다시 씀

 

 

2월 26일

 

1

기도한다는 것은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인 하느님의 법칙을 인정하고 그것을 상기하며, 그 법칙에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행위를 적용하여 생각하는 일이다. 되도록 자주 기도하는 것이 좋다.

 

2

기도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먼저 자신이 그 시간 동안 온전하게 정신을 집중할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보라. 만약 그것이 되지 않을 때는 기도하지 말라.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진실한 기도라고 할 수 없다. 탈무드

 

3

우리의 약점과 싸우는 수단인 기도를 어찌 자신으로부터 빼앗아야 한단 말인가?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모든 정신적인 노력은 우리를 아집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신에게 도움을 구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자기 자신 속에서 발견하는 것을 배운다. 신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신에게 간절하게 바라는 모든 것은 우리 스스로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루소

 

4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 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마태복음 제7장 5~8절

 

5

기도는 오랜 옛날부터 인간에게 필요한 것으로 인정되어 왔다. 옛날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도(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지만)는 일정한 상황과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동작과 언어로 하느님 또는 여러 신들에게 말을 걸어 그 자비와 은혜를 청하는 것을 뜻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그러한 기도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기도란 이 세상에서의 불행에서 벗어나고 개인적인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죄악과의 싸움에서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6

기도란 세속적인 것과 자신의 오관을 어지럽히는 모든 것에서 떠나(그 점에 있어서, 이슬람교도가 회당에 들어가거나 기도할 때 손가락으로 눈과 귀를 가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자기 내부에 신적 본원을 일깨우는 일이다. 이것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리스도가 가르친 대로 하는 것이다. 즉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는 것, 말하자면 혼자서 기도하는 것, 그 곳이 방안이든 들판 한가운데든 완전히 혼자가 되어 기도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기도란 모든 세속적인 것, 외면적인 것을 떠나 자기 속에 자기 영혼의 신적인 부분을 일깨워, 그 속에 몰입하고, 그것을 통해 그것이 그 일부분 불과한 전체, 즉 하느님과의 교류에 들어가 자신을 하느님의 종으로 인식하며, 세속적이고 외적인 조건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영적인 부분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행동과 자신의 소망을 점검하는 일이다.

그러한 기도는 노래와 그림과 조명과 설교를 곁들인 세속의 일반적인 기도가 자아내는 공허한 감동과 흥분과는 달리, 영혼의 구원이고 단련이며 향상이다. 그것은 참회이고 과거의 모든 행위의 검증이며 앞으로의 행동에 대한 지침이다.

 

7

자신의 기도방법을 새롭게 하는 것, 즉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관계의 표현을 새롭게 바꾸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러므로 그의 하느님에 대한 관계도 변화하고 또 분명해진다. 따라서 기도도 성장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힐티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176-

 

위대한 사상은 반드시 고통이라는 밭을 갈아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모든 고통은 차라리 인생의 벗이다.

행복한 사람은 이기심을 떠나 어떤 위대한 사상에 몸을 바친 사람이다. 이기심과 행복은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성공에도 신은 반드시 한 방울의 쓴맛을 친다. 그것이 당신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7월 2일

오늘날 교양있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가장 한탄스러운 현상의 하나는, 그들이 건강에 너무도 지나치게 큰 가치를 두는 것이다. 실제로 그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는 관심이 온갖 다른 관심을 완전히 능가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들은 세계 역사상 많은 병약자들이 병약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때로는 병약함으로 인하여 가장 큰 사업을 이룩하고 고난에 견디었다는 사실이 있음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다.

고린도 후서 4:16, 7:0, 10:10, 12:10, 골로새서1:24, 이사야 53:10․11,

 

그러나 건강과 체력에 대찬 이같은 동경의 진짜 배경을 이루고 있는 것은, 병약해 가지고는 아무 것도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없다는 걱정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향락에 대한 억제치 못하는 갈망이 저해당한다는 염려이다. 게다가 이 사실이 때로는 실제로 병자, 그것도 병고에 몹시 시달리고 있는 사람에게 충분한 동정을 보내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까지 한다.

건강이 의심할 여지없이 큰 선물임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을 너무 귀중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건강의 감퇴나 상실까지도 품위있게 참아 나가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왜냐하면 건강은 결코 불가결한 최고의 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7월 3일

병적인 상태는 우리가 지나치게 걱정을 하지 않고 있으면 저절로 사라져 버리는 수가 흔히 있다. 더구나 병약자이면서도 충분한 치료를 받을 만한 형편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도리어 다년간에 걸쳐서 그들의 의무를 충실하게, 기꺼이 이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각지의 요양소를 전전하며 마음의 위안도 없는 무익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대다수는 다만 무언가 해야 할 임무를 가르쳐 주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병투성이인 사람들에게는 정당한 직무와 사명 외에 실제로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체력에 맞는 의무나 과제를 과해 주면 어떤 치료나 안정이나 간호에 의하는 것보다도 훨씬 건강해질 것이다. 마부(馬夫)라면 누구나 자기의 말을 어떻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병자를 치료해야 할 많은 의사나 간호원은 그것을 모른다.

특히 건강에 소용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정직하고 진실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천한 이기주의를 당연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상한 약은 어떤 길거리에서도 팔고 있지 않으며 또 누구나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구나 그것의 서툰 흉내로 만족하고 있는 자에게는 특히 적용하기 힘든 약이다.

 

전능하신 주 예수, 만물의 창시자시여

당신은 우리를 이때 이 세계를 극히 아름답게 세우셨고 하늘은 우리에게 큰 즐거움이 되는 것들로 장식하사 낮에는 유익하게 하시고 밤에는 위로가 되게 하셨나이다. 당신은 땅을 계절의 순환으로 조절하사 그것이 우리와 모든 피조물들에게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게 하셨나이다. 이제 당신이 일어나시매 모든 만물은 소생하여 당신이 약속하신 부활의 소망을 확인하게 하셨나이다. 황량했던 들판은 푸르름으로 다시 뒤덮이고 보석 같은 꽃들로 뿌려졌나이다. 낟알은 자라고 씨는 그 무덤을 깨치고 나오며, 마른 나무에는 잎이 솟아나 꽃망울로 터져 장차 열매 맺을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나이다. 태양은 은혜로운 빛을 더하고 대자연의 얼굴은 눈길이 미치는 곳마다 인류에 대한 당신의 인자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 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당했으나 당신은 이러한 아름다운 것들로 이를 위로하셨나이다. 세례를 받아 다시 태어난 우리에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결코 다시 시들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성령으로 우리 붙드시고 힘을 주시며 청결한 마음으로 행하길 하시며. 점점 더 많은 덕을 갖추어 복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거하시며 영원토록 세계를 다스리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겨울

가장 지혜로우시며, 세계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당신의 명을 따라 계절은 정해진 변화를 순환하고 있나이다. 마치 시들어 버린 죽음에 이른 것처럼 겨울은 왔지만, 겨울의 황량함과 어려움은 머지않아 봄의 즐거움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잘 견딜 수 있나이다 한 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겉 사람도 유년에는 피어나고 청년에는 불타오르고 장년에는 성숙하고 노년에는 쇠하나이다. 그러나 부활의 희망이 있기에 죽음의 두려움은 사라진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이신 당신의 아들로 인하여 확실히 약속된 것입니다. 아들을 통하여 우리의 속 사람은 나이를 알지 못하고 다함이 없는 그의 도우심을 힘입어 순결함에는 유년 같고, 신앙의 열정에는 청년처럼 불타고 열매를 맺어, 이미 받은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나이다 물의 기력이 쇠할수록 영혼은 한층 더 흥왕하나이다. 기도하옵기는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지키시고 더하여 주시옵소서. 당신과 같은 자로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세계를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 37:23-4

 

 

마틴 루터 킹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p.289~291)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친애하는 여러분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록 역경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가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들과 주지사가 간섭이니 무효니 하는 말을 떠벌리고 있는 앨라배마 주에서, 흑인어린이들이 백인어린이들과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지금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고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꿈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저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남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토막 내어 희망의 이정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나라 안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아름다운 형제애의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함께 행동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투쟁하고 함께 감옥에 가고 함께 자유를 위해서 싸울 수 있습니다

내 꿈이 실현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나의 조국은 아름다운 자유의 땅, 나는 조국을 노래 부르네. 나의 선조들이 묻힌 땅,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선조들의 자부심이 깃들이어 있는 땅. 모든 산허리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하라!" 주님의 모든 자녀들이 이 구절을 새로운 의미로 암송할 수 있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우리의 꿈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뉴햄프셔의 높은 산꼭대기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펜실베이니아의 웅장한 앨러게이니 산맥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콜로라도의 눈 덮인 로키산맥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캘리포니아의 구불한 산비탈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조지아의 스톤 산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테네시의 룩아웃산에서 자유의 노래가울리게 합시다.

미시시피의 수많은 언덕들과 둔덕들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전국의 모든 산허리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리게 합시다.

                                           

이렇게 모든 주, 모든 시, 모든 마을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린다면, 흑인과 백인, 유태교도와 기독교도, 신교도와 구교도를 가리지 않고 모든 주님의 자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오래 된 흑인영가를 함께 부르게 될 그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자유를 얻었네, 마침내 자유를 얻었네. 전능하신 주님의 은혜로, 마침내 우리는 자유를 얻었네."

 

 

헬렌 켈러 - A LIFE에서


앞을 볼 수 없는 나는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를 알려 줄 수 있다. 아니 볼 수 있는 크나큰 선물을 받은 이들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할 수 있다. 내일이면 앞을 볼 수 없게 되는 사람처럼 보라. 내일이면 듣지 못하게 되는 사람처럼 들으라, 음악 같은 목소리들을, 새의 지저귐을,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선율을. 내일이면 촉각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따뜻하게 만지라.....


이때는 애니 설리번이 살아 있을 때였다. 헬렌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 무엇을 가장 보고 싶은지 들려줌으로써 하고 싶은 이야기의 알맹이를 전해 주려 했다.

"내가 상상하는 동안 여러분도 함께 상상하기 바란다. 볼 수 있는 날이 앞으로 사흘밖에 남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보겠는가"

헬렌은 첫 번째 날 "친절과 따뜻함과 우정으로써 내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 준 사람들을 보고 싶다. 먼저 사랑하는 선생님, 앤 설리번 메이시 선생님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 싶다‥.“고 썼다. 그 첫 번째 날에 또한 "아기의 얼굴을 보고 싶다. 살면서 겪게 되는 갈등을 모르는, 열의에 찬, 깨끗한 아름다움을 보고 싶고, 내 개들의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런 눈동자와 사람들이 읽는 책들을 보고 싶다. 나는 수많은 밤을 책을 읽거나 다른 이가 읽어 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보냈다. 그 책들은 크고 환한 등대가 되어 사람들의 삶과 영혼의 가장 깊은 곳까지 가르쳐 주었다."고 했다. 그 날 오후에는 "오랫동안 숲을 거닐며 내 눈동자를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물들일 것이다.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늘 펼쳐져 있는 그 장엄한 아름다움을 모두 눈에 담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날에는 "동이 틀 때 일어나서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기적 같은 장관을 볼 것"이며 "뉴욕의 유명한 박물관들을 돌아다니며 세계의 과거와 현재를 허겁지겁 눈에 넣겠다"고 했다"과학 전시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위대한 예술작품을 손으로 만져 보고, 저녁에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이나 영화를 한 편 볼 것"이다. 볼 수 있는 마지막 세 번째 날에는 "혼자서 도시를 걸으며 바삐 돌아가는 세상을 보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 올랐다가, 5번가의 군중 속에 섞여도 보고 공장과 빈민촌 사람들을 찾아가서 상상과 현실을 비교해 보고 싶다"고 했다.

세 번째 날 해가 저물어 다시 앞을 볼 수 없게 되면, 그녀는 "앞을 볼 수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 똑똑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찬란한 기억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슬프지 않을 것이다. 그 뒤로는 만지는 것마다 어떻게 생긴 것이었는지 아련한 기억을 되살릴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