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관점: 보수와 진보

 

 

 

 

보수적 사학자들이 한국사의 史觀들에 대해 고찰한 『현대한국사학과 사관』(이기백外, 일조각, 1991)을 읽으면서 보수주의란 현재를 존재케 한 요인들만이 유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옹호하는 입장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민중사관이 “아래로부터의 역사”만을 강조하는 것을 사회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신랄히 비판하면서 “위로부터의 역사”가 필수적이라고 역겨울 만큼 훈계하고 있다. 역겨울 만큼의 철저함이 모든 종류의 보수주의의 속성인 것 같다.

 

“아래로부터의 역사”만이 전부인양 강조하며 민중과 함께 현실 참여를 주장하는 민중사관 역시 역겨움이 느껴진다. 역사란 “위로부터의 역사”와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진행된다는 건 상식인데, 왜 한 쪽만을 거의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모든 학문의 본질은 현실에 아프게 부딪치는 가운데서도, 그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문제를 정리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회 참여를 위한 뜨거운 열정에 앞서 냉철한 안목이 필수적인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역사는 기록하고 해석하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기록은 객관적이 되어야 함에 생명을 걸고 있다. 그런 기록의 객관성 위해서 만이 다양한 해석이 시도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해석에는 보다 자유로운 주관적 판단이 허용이 되고 있다. 또한 학문의 자유에는 최소한 다양한 입장의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성이란 책임이 뒤따른다.

민중 사관 역시 그러한 다양한 해석들 가운데 하나다. 민중이란 정의가 모호한 것이 아킬레스건이지만, 한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어 있는 최하층 집단을 모두 포함시키려는 것 같다. 그러나 민중이란 개념을 조동일교수가 주체적 성향과 집단적 행동을 부각시키는 용어로 재 정의한 “소수의 특권층과 구별되는 다수의 예사 사람”으로 보아야 정확할 것이다. 역사를 추진시킬 수 있는 그러한 민중은 주체적으로 각성되지 못한 최하층 집단에서는 나올 수 없다. 주체적으로 각성된 민중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최하층 집단에서 벗어나서 신분 상승을 욕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특권층의 억압을 의식하고 대항하려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통칭하려는 혼란스런 기존의 민중론의 개념이 수정·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진다.

어느 시대의 사회에서나 가장 소외된 최하층 집단이 물질적, 정신적으로 지위가 향상되어 가는 것을 진정한 역사 발전의 척도로 여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존의 민중 사학이 한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역사의 시야에서 소외되었던 민중을 발견하고 그들이 역사에 기여한 몫을 밝히는 일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역사를 일방적으로 전도시켜서 역사를 발전시켜 간 것은 오직 민중이고, 집권 세력들은 방해꾼으로서만 작용해 왔을 뿐이라는 식의 단순 논리는 타당성이 없다.

우리 사회의 현 단계에서 가장 소외된 최하층 집단을 민중으로 인정할 만큼 성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 백년, 몇 천년 전에도 오늘날같이 민중이 역사를 이끌었다는 논리는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시기에도 민중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를 찾아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역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의식적인 수준을 갖춘 세력으로서 존재할 수는 없었다고 보아야 정확할 것 같다. 역사란 바로 그들의 성장 과정을 규명하는 데에 사명과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연구는 현재적 관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소위 제도권에서 왜곡시킨 역사적 실상을 정확히 밝혀야지 관심만 앞세워 제도권의 해석을 무조건 부정만 해선 안 된다. 어쩌면 민중론자들에게 그런 능력이나 여유가 부족한지 모른다. 그래서 실증적 논리로 무장한 제도권에게 늘 당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보다는 운동에 더 열중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학문은 어디까지나 논리의 대결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 독자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되 다양한 관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면서 서로의 관점과 논리를 보완해 가려는 자세가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