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책

- 시간과 존재 -

 

 

 

누구에게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책이 있을 것이다. 내겐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체』, 푸고의 『지식의 고고학』, 하버마스의 『KNOWLEDGE&HUMAN INTERESTS』, 『이론과 실천』,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 등 들 수 있는데 특히 옛날에 샀었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하이데거의 『존재와 존재』는 번역이 잘못되어서 읽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난해하기로 유명한 책들을 읽게 되어서 이런 책을 절대로 안 보겠다면서 호기심에서 사서 울며 겨자 먹기로 읽는 것이 취미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그 중에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내 평생의 숙적인양 늘 도전해야 할 대상이었다.

책을 사서 한번 읽기 시작하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읽어 내는 것이 내 취미이자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서 읽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유일한 책이 바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다.

철학과 신학을 깊이 공부해 들어 갈수록 하이데거라는 존재에게 부딪치게 된다. 그와 처음으로 부딪게 된 것은 방송통신大 철학개론에서이었고, 그 이어 『시간과 존재』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읽게 되었었다.

한참 뒤에 안 것이지만, 난해한 것 이상으로 번역이 너무 부실한 탓에 途中下車하고 말았던 것이다. 철학 전공자도 읽기 힘들만큼 지독한 오역 투성이였다고 안 건 한참 뒤였다.

이번에 읽을 만한 수준으로(이기상역, 까치) 번역이 되었다고 해서 한을 풀기 위해 샀다. 이제껏 공부해 온 현대 철학이 하이데거에 관한 것들이었다. 특히 관심이 많은 현상학과 해석학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어 왔기 때문에 도전해 보고 싶게 했다. 그렇게 하이데거에 관한 것들을 많이 읽어 왔으면서도 그 진원지를 안 읽고 넘어 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인간성에는 경멸하는데 사상 내용은 완전히 내 생각과 일치하는 것 같으니 이상하다.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에 현혹되어서 철학도 과학적 방법을 모방해서 발전(?)시켜 보려는 해괴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으나 이나 철학 본래의 의미를 망각한 것이다.

더욱이 실증주의적 사고에 편향되어 추상적이 되어 버린 인식론에 반발해서 존재의 상황을 강조한 존재론적 인식론이 인간의 한계까지 인식하는 성숙한 인식론으로 여겨진다.

"이해의 과제는... TEXT자체가 독립적으로 말하는 고유한 사실과의 대화로 나아가게 된다. 후기 하이데거에 있어서 이해 또는 해석이란 단순히 개방되어 있고 선입견 없는 질문만이 아니라 TEXT의 존재가 드러나는 처소를 발견하고 기다리는 것이 된다... 후기 하이데거의 해석학의 결정적인 성격은 해석의 행위를 인간학적 행위 내지 주관주의의 행위로 보지 않고, 은폐성 속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 진리의 빛 속으로 나서는 행위, 곧 존재론적인 행위로 보았다는 데 있다... 선-개념성과 비-객관화를 강조하는 후기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고는 현대인간으로 하여금 표상적인 세계를 떠나서, 근원적인 세계로 되돌아가도록 하며 규제하고 조작하고 구성하는 사고가 아니라, 명상적이고 숙고적이고, 상응하는 사고를 제시하고 있다"(김영한, 『하이데거에서 리꾀르까지』, 박영사, 1987).

1년 이상을 끌며 안간힘을 다해 정독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하이데거는 쉬운 일상 용어로 그의 철학을 서술하려 했다는 것을 이번 번역본에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소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그 이상은 모르겠다. 내 지적 한계인지 하이데거의 난해함인지, 번역의 한계에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 여하튼 20년 묵은 빚을 갚은 기분이다. 철학이란 모름지기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모르는가를 확인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둔한 머리에 자위할 수 있으리라....

 

참고로,

『TV 독서토론』에서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다루었는데, 독서란 저자와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 책이 탄생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읽어야 자신의 체험과 연결되는 독서가 되는데, 우리 현실은 그 점을 간과한채 책들이 만들어지고 읽혀지고 있는 것이라고. 특히 번역의 경우가 그렇다며 자세한 해설과 역주가 필요하다고 한다. 내게 일러 주는 것 같았다.

 

내 지적 도전은 계속 된다. 죽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