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의 시 모음

 

 

 

■ 가 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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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을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 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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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

 

감사는

믿음이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도 모른다.

감사는

반드시 얻은 후에 하지 않는다.

감사는

잃었을 때에도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사는

사랑이다.

감사할 줄 모르면

이 뜻도 알지 못한다.

사랑은 받는 것만이 아닌

사랑은 오히려 드리고 바친다.

몸에 지니인

가장 소중한 것으로--

과부는

과부의 엽전 한푼으로,

부자는

부자의 많은 보석(寶石)으로

그리고 나는 나의

서툴고 무딘 납변(納辯)의 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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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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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

 

슬픔은 나를

어리게 한다.

슬픔은

罪를 모른다.

사랑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슬픔은 내가

나를 안는다,

아무도 介入할 수 없다.

슬픔은 나를

목욕시켜 준다,

나를 다시 한번 깨끗게 하여 준다.

슬픈 눈에는

그 영혼이 비추인다.

고요한 밤에는

먼 나라의 말소리도 들리듯이.

슬픔 안에 있으면

나는 바르다!

信仰이 무엇인가 나는 아직 모르지만,

슬픔이 오고 나면

풀밭과 같이 부푸는

어딘가 나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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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自畵像

 

내 목이 가늘어 회의(懷疑)에 기울기 좋고,

혈액(血液)은 철분(鐵分)이 셋에 눈물이 일곱이기

포효(咆哮)보담 술을 마시는 나이팅게일......

마흔이 넘은 그보다도 뺨이 쪼들어 연애(戀愛)엔 아주 실망(失望)이고,

눈이 커서 눈이 서러워

모질고 사특하진 않으나,

신앙(信仰)과 이웃들에게 자못 길들기 어려운 나--

사랑이고 원수고 몰아쳐 허허 웃어 버리는

비만(肥滿)한 모가지일 수 없는 나--

내가 죽는 날

단테의 연옥(煉獄)에선 어느 비문(鼻門)이 열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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