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의 시

           

          ■ 행  복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생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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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깃  발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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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의 서(書)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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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위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깍이는 대로

          억 년 비정(非情)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짝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 꾸어도 노래하자 않고.

          두 쪽으로 게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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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야에 와서

           

          흥안령 가까운 북변(北邊)의

          이 망막한 벌판 끝에 와서

          죽어서 뉘우치지 않으려는 마음 위에

          오늘은 이레째 암수의 비 내리고

          내 망난이에 본받아

          화툿장을 뒤치고

          담배를 눌러꺼도 마음은 속으로 끝없이 울러노니

          아아 이는 다시 나를 과실(過失) 함이러뇨.

          이미 온갖을 저버라고

          사람도 나는 접어 주지 않으려는 이 자학(自虐)

          의 길에

          내 열 번 패망의 인생을 버려도 좋으련만

          아아 이 회오(悔悟)의 잃임을 어디메 호읍(號泣)

          할 곳 없어

          말없어 자리를 일어 나와 문을 열고 사면

          정거장도 2백 리 밖

          암담한 전창에 갇힌 철벽 같은 절망의 광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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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입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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