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외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t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 손을 씻는다

 

하루를 나갔다 오면

하루를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으로는 내키지 않는 그자와도

흔쾌하게 악수를 했다

이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될 것들을

스스럼없이 만졌다

의수를 외투 속에 꽂고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코리아나 호텔 앞

나는 공동정범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비누로 손을 씻는다

비누가 나를 씻는 것인지

내가 비누를 씻는 것인지

미끌미끌하다

----------------------------------

 

 

■ 거룩한 식사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