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시 모음
■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 들어부었습니다.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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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누구의 발자취입니까.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복종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지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금합니다.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 나룻배와 行人
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
■ 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음으로 추수가 없습니다.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너를 도아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야 민적(民籍)이 없습니다.“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 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그를 저항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아아 온갓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말실까 망설일 때 당신을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