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금강산 효도 여행 동행기

 

 

 

 

우리 교회에서는 해마다 봄가을로 60세 이상 되시는 어르신들께 효도 관광을 보내 드리고 있는데, 올 봄에는 금강산으로 효도 여행을 실시하게 되었다.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비용 상으로나 여러 모로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더욱이 어르신 분들께서는 걱정부터 하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담임 목사님의 원대한 계획에 언제나 순종하는 성도님들의 기도와 힘을 모아 가능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이 있으니 아무 참가 자격도 안 되고 짐만 될 저를 목사님께서 동행시키신 것. 저 역시 무리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지만, 목사님께서 강권하셔서 염치 불구하고 리포터를 자임하고서 따라 나서게 되었다.

지난주부터 감기에 걸려 걱정이 되었었다. 어머니는 염려가 되어 가지 말자고 하시고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놓칠 수 없고 해서 의사인 최규종박사님께 이 몸으로 갈 수 있을지 메일을 띄었더니 바쁜 중에도 채팅으로 만나 상담해 주셨는데, 좋은 기회니 꼭 가라며 약을 갖고 가라고 하셔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링거를 맞고 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어제 저녁에 청해 맞았다.

짐을 꾸리면서도 기침이 여전히 심해서 가지 말자는 어머니 걱정에 난감해지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도 떠밀리듯 시간에 맞춰 준비하고 교회로 향했다. 그런데 휠체어가 이상해서 보니 바퀴에 바람이 빠진 것 같다. 자전거포가 중간에 있어서 바람을 넣어 달라고 하니 펑크가 난 거라고 한다. 며칠 전에 여기서 타이어를 갈았는데 그새 펑크 났으니 다른 걸로 갈아 달라고 하니 안 된다고 하고 시간이 없어서 돈을 주고 때우고 말았다. 가지 말라고 말리는 것 같다.

결국 시간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도착하게 되었다. 1시 40분, 따가운 5월의 햇살보다 더 뜨거운 목사님과 성도님의 환송을 받으며 교회에서 44명이 출발했다. 고성의 금강산 콘도까지 홍천, 인제를 거쳐 진부령을 넘는 최단 거리로 달리는데 크고 작은 산자락마다 연초록으로 피어나는 듯한 신록의 향연이 긴 여정을 싱그럽게 만들어 주었다.

중간에서 저녁 식사를 들고 7시 경 금강산 콘도에 도착했다. 특별히 어머니와 2인실을 쓰게 해주셔서 황송했는데 바닷가 전망이 환상적이었다. 감사 예배드리고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 일정 때문에 일찍 자야 했다.


5월 3일,

5시 반에 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버스에 올라 여행증을 수령해 목에 걸고 통일전망대로 이동. 남측 CIQ(출입국사무소)에서 출국 검사를 받고 육로 수송 버스로 갈아탔는데 16대가 함께 출발, DMZ을 넘다.

10여 분만에 북측 CIQ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짐을 갖고 내려야 했는데 시장같이 자유로운 남측 분위기와 달리 번호대로 두 줄로 서서 검사대를 통과하게 하는 북측의 질서가 낫선 나라에 온 것 같게 만들어 준다. 남측에선 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직원들이 우선적으로 통과시키고 버스까지 밀어다 주는 반면 북측은 예외없이 줄을 서게 만들고 문턱에 걸려도 무표정하게 까딱 않고 서 있는 아저씨들에게서 경직된 질서의 단면을 느끼게 한다.

다시 타고 잘 닦인 도로를 달리는데 양 쪽에 펼쳐진 4km의 DMZ에 빽빽이 우거진 숲이 기나긴 단절의 시간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북녘 땅에 들어서자 산세가 일변해 바위를 쌓아 올린 것 같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들이 별천지에 들어선 것 같이 여겨지게 만들어 준다.

금강산의 여행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온정각 휴게소에 내려 북녘 땅에 첫 발을 밝아 보다. 북녘 땅이라기보다 남녘의 어느 관광지에 온 듯 건물들도 같고 남측에서 온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금강산 관광 코스는 등산 코스인 구롱연, 만물상과 해금강인데 구롱연은 기본 코스이고 뒤의 둘은 선택 코스다. 만물상은 등산로가 험해서 아무나 못 가기 때문....

그래서 버스를 타고 첫 코스인 구롱연으로 이동. 주차장에서 목란관까지 길이 포장되어 있어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었다. 거기서 있기로 했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도 한 발짝도 못 올라가 보고 그냥 있기가 아까웠는데 마침 이수근목사님과 한상윤권사님이 지나가셔서 부축해서 가는 데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조금 가니 앉아서 쉬시는 분들이 있어서 더 올라 가자고 하셨지만, 같이 쉬기로 했다. 가이드가 가르쳐 주기를 각자 능력대로 올라가서는 거기까지 갔으니 구롱폭포까지 갔었다고 자랑하면 된다고 했으니까...... (어제 올 때 바퀴에 펑크가 안 났었으면 일을 냈을 건데......) 

1시, 셔틀 버스로 온정각 휴게소로 돌아와 뷔페식 산채 비빔밥으로 점심. 그리고 4시 반 교예 공연까지 좀 지루한 휴식. 덕분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다. 인터넷으로 금강산 관광에 대해 검색할 땐 벌금을 물린다고 한 항목이 많이 있어서 감시가 심할 줄 알았었는데 휴게소 안에서는 감시하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고 어색하게 하는 구석이 없이 자유스럽다.

한 쪽 가에 가니 철조망이 처져 있고 그 밖으로 초소가 있고 보초를 서고 있다. 그 너머로 밭이 있고 낡은 작은 집들이 보인다. 어르신들은 일제 강점기의 농촌을 보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땅이 척박한데 흙을 깊이 파지 않고 타성적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그렇게 굶주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신다. 모든 출입구마다 씌어있는 “우리식대로 살자”는 구호처럼 그들 체제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현실을 보여 주고 있는지 모른다.

교예 공연 시간이 되어서 갔는데 TV로 보고 매료되었었지만 그들의 교예에 넋이 빠질 만큼 절묘하고 놀랍다. 얼마나 연구하고 연습했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탄성이 나온다. 북측 사회자가 “우리는 하나”라는 마지막 멘트에 모두 가슴이 뭉클해진다.

6시가 넘어 숙소인 금강산 호텔에 투숙했다. 지정된 숙소가 별관 3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힘들다고 했더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본관 2인실로 배정해 주어서 감사했다.

역시 모든 시설은 현대에서 지었는데 직원들은 북측 사람들이다. 억양은 북쪽 말씨지만 상당히 부드럽고 친절해서 CIQ의 아저씨들에게서 받은 인상과 판이하다. 식사는 뷔페인데 맛있다. 불을 어둡게 켜놓았고 어떤 방엔 촛불을 켜놓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객실은 아주 깨끗한데 어둡게 해 놓아서 전력난이 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TV가 있어서 켜 보았더니 남측 방송이 잘 나오니 의외다.


5월 4일,

6시 반 아침 식사로 시작된 돌아가는 날의 오전 일정은 해금강 관광이다. 이동할 때는 북측 선도 차량이 인도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탄 버스들은 일렬종대로 질서정연하게 행진한다. 한 사람이라도 차를 바꿔 타게 될 경우 가이드가 무전기로 운영 본부와 다른 차에 보고한다.

마주 오는 차가 전혀 없어 일방통행이라 시원스러운데 간혹 길가에 메어 둔 소가 길을 막아서 애를 먹게 하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진다. 차창 밖으로 마을이나 학교도 보이는데 아주 낡아 있다. 고성 평야지대라 농사짓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황량하게 보인다. 남측의 산과 들은 어딜 가나 나무나 농작물로 빈틈없이 덮여 있어 푸르기 때문에 더 그런지 모르겠다.

해금강 중에서 바다 만물상부터 보았는데 주차장에서 바닷가까지 경사가 심해서 휠체어를 타고 가기 힘들 것 같아 걱정되었지만 운영 요원들이 타는 봉고를 타고 가게 해주어서 고마웠다. 

산 위의 만물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는데 바닷가에 기이한 형태의 바위들이 널려 있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여서 상상력을 자극시켜 주는 것이 신기롭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오묘한 솜씨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어 삼일포로 갔는데 커다란 호수가 시원스럽게 반겨 주었다. 단풍관에서 연화대까지 호숫가 산책로가 나 있어 한가롭게 돌며 호수를 감상했다. 장군대를 넘어서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꾸불꾸불 줄지어 올라가는 일행들의 오색의 옷 빛깔이 한 폭의 그림이다.

남측의 관광지와 다른 점은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잘 보존해 주고 있는 북측이 고마울 정도다. 그런데 잘 생긴 바위마다 온통 아무개를 찬양하는 글들이 새겨져 있으니 앞으로가 걱정된다.

온정각 휴게소로 돌아와서 점심을 들고 온천장으로 가는데 안 따라 가고 남아 있기로 했다. 막상 두어 시간을 있으려니 넘쳐나는 인파에 쉴만한 데가 없다. 누우면 기침이 심해 거의 잘 수 없었기에 밖에 있기가 걱정되어 방이라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니 거기도 병원이 있다고 찾아 가니 아산 병원의 분원인 것 같다.  약을 지어 주어서 먹었는데 여행 보험에 포함되어 무료라고 한다.

빈 침대가 몇 개가 있어서 누워서 쉬게 해달라고 사정을 얘기하니 그럼 쉬라고 해서 두 시간을 편히 누워 푹 쉴 수 있었다. 의사는 남측 분이고 간호사는 북측 아가씨인데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어서 너무나 고마웠다.

3시 40분, 떠나기 못내 아쉬운 금강산을 뒤로 하고 귀로에 오르다.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서 도우미를 최소화시킬 수밖에 없어 염려가 된다고 했었는데 어르신들이 서로를 챙겨 주며 인솔자의 지시대로 잘 준행해 주셔서 아주 평안하고 즐거운 여행이 될 수 있어서 감사하기만 하다.

올 때의 절차를 반대로 거쳐서 5시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대기하던 월명관광 기사님이 반겨 주셨는데 차안에 두고 가야 했던 성경이 그대로 있어 감사했다. 성경을 들고 북녘 땅을 밟을 날을 어서 주시기를 기도하게 된다.

 

40여 분의 거리에서 남북의 차이를 남의 자유와 북의 질서로 극명하게 여겨지게 만들어 주었다.

방종에 가깝게 돼버린 남의 자유는 북의 질서를 보고 회개해 절제하는 자유가 되어야 하고 숨 막힐 듯 경직된 북의 질서는 남의 자유를 배워 자율적인 질서가 되어 화합하는 가운데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

미가 4:3의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통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