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휠체어 등정기

 

 

이 글은 한벗장애인이동봉사대에서 주관한 2박 3일 휠체어 장애인 지리산 등정기이다.(1999. 5. 21-3)

 

7개월만에 다시 지리산 등정에 나서게 되었다. 떠날 차비를 갖추는데 박준철님이 일찌감치 봉고를 몰고 왔다. 서둘려 차에 타니 약속한 9시.

30분만에 집결지인 충정로 사무실에 도착, 속속 모여드는 회원들과 10시 출발을 기다리는데, 회원들을 데리려 간 차 한대가 안 오니 무작정으로 기다릴 수밖에. 기다리며 점검해 보니 빠트린 것이 한둘이 아니다. 늦었다고 서둘려 나오다 보니 더 아쉬워지지만 잇몸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아무리 세심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항상 빠트린 게 있게 마련이니 잇몸으로 버티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맛일 것이다.

11시 10분에야 대장정에 오를 수 있었다. 서울에서 석 대의 승합차로 22명이 출발했는데, 대전과 인천의 이동봉사대가 합류하기로 되어 있다.

1시 반, 망향 휴게소에 내려서 점심을 들며 휴식을 취했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내내 신록으로 물든 산하가 정신을 맑게 해준다. 4시 전주에서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대전팀과 합류했다. 국도로 남원으로 향하는데 한가로운 길가에 흐트러지게 피어 있는 빨간 장미가 눈을 끈다.

남원제일교회에서 마련해 준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들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 다음에야 숙소로 잡은 남원 자연휴양림으로 찾아가서 짐을 풀고 누 울 수 있었다. 통나무 방갈로.

밤에서야 회원들이 둘러앉아 서로 소개하는 사귐의 시간을 가지며 얼굴을 익힐 수 있었다. 장애우들은 16명중에서 대부분 처음 참가하는데 장애가 심한 분들이 많다. 반면 봉사우들은 작년 그대로여서 마음이 푹 놓인다.

 


두째날,

 

노고단 등정하기 위해 6시 반 기상인데 일찌감치 일어나 밖에 나가 소나무 숲 속 맑은 공기를 심호흡했다.

아침을 들기 위해 원천교회에서 작년에 마련해 주셨던 식당으로 이동. 지리산으로 향하는 길가에 위치해 있어서 안성맞춤이다. 아침을 들자 바로 차에 올라 노고단을 향해 깎아 찌른 듯한 가파른 도로를 달린다. 이렇게 웅장하고 깊은 산에 도로가 잘 뚫어 놓았으니 정말 감사하다.

드디어 해발 천 미터의 성삼재 주차장에 내렸다. 휠체어를 끌고 올라갈 구레고 학생들을 데려 오는 동안 한가로이 까마득한 산 아래를 굽어보기도 하고 울라 갈 정상을 조망해 보기도 하면서 작년에도 올라갔었지만, 어떻게 올라갔었는지 또 이번엔 어떻게 올라갈지 신기할 뿐이다.

드디어 학생들이 도착했다. 학생 30명을 요청했었는데 40명이 지원해서 휠체어 한 대에 네 명이 배정되게 되었다. 3학년인 여학생 김진아, 이정은, 2학년인 남학생 박길선, 하경수와 한 조가 되었다.

 

 

10시 50분, 정상을 향해 출발. 한 명은 뒤에서 밀고 두 명은 휠체어 양쪽에 묶은 밧줄을 끌며 교대하면서 오르니 작년보다 조금은 쉬운 것 같다. 날씨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겨울 잠바를 입었는데 구름 한점 없이 볕이 따갑게 내리 쬔다.

중간 휴식지인 대피소까지 오르막 길이 포장과 비포장이 섞여 있어서 비교적 쉬워서 1시간만에 오를 수 있었다. 작년에 김밥이 나와서 혼자서 들 수 있게 포크를 가져 왔는데, 밥과 반찬이 따로 담긴 도시락이 나와서 식탁도 없어 먹여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진아와 정은이가 밥과 반찬을 양쪽에서 먹여 주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 닌가. 깜짝 놀라서 왜 우느냐고 했다. 나보다 장애가 더 심한 사람도 많은 데, 장애우들을 처음 대하게 되어서 그럴까?

작년에 학생들을 실어다 주었던 봉사우들이 돌아갈 때 차안이 눈물바다가 되었었다고 했는데, 순수한 마음을 보는 것 같다.

1시, 다시 웃으면서 정상 공격에 나섰다. 정상을 향해 더 오를수록 가파로운 훨씬 험해지는 산길이다. 밀고 끄는 사람들이 모두 숨이 차서 쉬엄쉬엄 올라가야 했다.

더 힘들어지지만,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아래에 펼쳐진 풍경을 굽어보며 정상이 점점 가까워 보일수록 피로를 모르게 하는 것 같다. 워낙 높은 산이라 나무 하나도 없으니 쏟아지는 따가운 볕을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르막 길이 포장이 된 부분과 안 된 부분이 교대로 나오니 휠체어의 진동도 가지가지다.

그렇게 꾸준히 밀고 끄는 수고 끝에 2시에 드디어 노고단 정상에 15대의 휠체어 모두 오를 수 있었다. 가을과 달리 눈에 보이는 산하가 온통 신록으로 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이 풍성하게 보인다. 지리산은 바위가 별로 없이 웅장한 산세에 울창한 숲이 덮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힘들게 올라왔던 과정을 음미하듯 1507m 정상에서 끝간데 없이 탁트인 시야를 만끽하며 학생들과 여흥 시간을 즐겼다. 수많은 분들의 도움과 수고로 다시 한번 꿈만 같은 정상에 오를 수 있었기에 깊은 감사와 감격이 인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바로 천국에 올라와 있는 것 같았다. 보다 자유로운 사람과 보다 불편한 사람들이 함께 땀을 흘리며 얻은 그 값진 성취를 기뻐하던 순간이 바로 천국이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정상에 서 있는 순간은 언제나 짧은 법이지만, 그 짧은 순간에 이르기 위해 바쳐야 했던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의 땀과 인내의 수고를 모두 성취의 기쁨과 의미로운 시간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정상에서의 짧은 순간을 아쉬워하며 내려와야 했다. 하산 길은 생각보다 쉬웠다. 4시 무렵 출발지인 주차장에 도착했다. 학생들과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몇 시간 안 되는 동안이지만, 함께 땀을 흘리며 힘겨운 목표를 성취 해 냈기에 깊은 정이 들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진아와 정은이는 또 눈물을 글썽인다.

그들을 보내며 그들이 흘리는 눈물이 일시적인 동정이 아니길 새삼 생각하게 된다. 짧은 동안이지만 함께 고난의 짐을 나누어지는 동료로서의 눈물로 기억하고 싶다.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나누어져야 할 짐들을 기꺼이 질 수 있는 눈물이기를..

정령치 고개를 넘어 돌아오는데 한마디로 지리산은 푸르름의 장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