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간증

 

 

지팡이 짚고 산책하다 보면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되곤 한다. 가끔 장난기가 발동해 안 믿는다고 고개를 흔들어 보면 불상하고 한심하다는 등 반응이 갖가지로 나온다.

이래 뵈도 집사 직분까지 받았는데 내 신앙이 부족해서일까, 그 쪽의 안목이 부족해서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렇게 신앙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원래 믿지 않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 사택 안에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너살 무렵 뇌성마비 장애를 입은 나를 안타깝게 여긴 이웃 집사님의 전도로 어머니가 마지 못해 나를 업고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일찍부터 예배 드리는 분위기에 익숙해지게 된 것 같다.  

할아버님께서 근무하시던 다른 사택으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거기에도 교회가 있었지만 원래 유교 집안이었기에 감히 교회에 나갈 수 없었다. 당시 개척 중이던 한영교회에 문학선 목사님이 부임하시면서 완고하신 할아버님을 몇 년을 끈질기게 전도하셔서 할아버님께서 주님을 영접하시자 교회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유년 주일학교에 나가게 되었고 일반 아이들과 섞여서 자연스럽게 다닐 수 있었다. 더러는 귀찮게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도리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도와주어서 교회에 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겨울엔 모자나 장갑을 잔뜩 끼고 가면 자기 일처럼 벗겨 주고는 나올 땐 일일이 챙겨 주고 집에까지 부축해 데려다 주기도 했던 친구들이 고맙게 생각나곤 한다.

그렇게 해서 주일학교를 마칠 수 있었는데 요새 말하는 교회에서의 통합 교육이었다고 할 것 같다. 그러나 단독 주택으로 이사하게 되어 교회가 멀어서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몇 년을 교회에 못 나가게 되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떨어져 버리고 만 것 같다. 집안 형편도 어려워져서 내게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게 되자 아무 소망도 없이 되는대로 지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 우연히 라디오를 돌리다가 주일 예배 실황을 듣게 되어 그를 계기로 4, 5년을 라디오로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은혜를 새롭게 받기 시작했다. 은혜를 받게 될수록 교회에 나가서 예배 드리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 되게 되었다.

몇 년 후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꼭 나오라는 간곡한 권유를 받고 나가게 되어서 큰 은혜를 받고 주님을 더욱 확실히 영접할 수 있었다. 그를 계기로 소원대로10년만에 교회에 나가 예배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토록 소망하던 교회에 나갈 수 있게 되긴 했지만, 택시를 타고 교회에 가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잡아타는 바람에 기다리다 비만 쫄딱 맞고 돌아서야 했고, 어머니가 교회에서 바쁜 일이 있으면 못 나가고... 무슨 사정이 그렇게 많은지 못 나가고 말아야 하는 주일이 많았다고 할 정도였다. 돌아올 때는 교회에서 차를 태워 주기도 하고 여러 성도님들이 고맙게 도와주었지만, 주일학교 때 도와주던 친구들처럼 되어 주지 못해서 어머니께만 의존해서 다닐 수밖에 없어서 힘들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주일마다 안 빠지고 교회에 나갈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다시 간구해야 했다. 몇 년 기도 끝에 목동으로 이사와서 집 바로 옆에 있는 교회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계단 때문에 또 어머니께 의존해서 다닐 수밖에 없게 되어서 너무 힘들어 또 못 나가게 되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제발 계단이 없는 가까운 교회' 란 조건의 기도를 다시 드려야 했다.

산책길을 찾아다니다가 정말 계단이 없는 작은 교회를 발견할 수 있었다. 85년도 첫 주일 예배를 목양교회에서 드리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내가 바라던 대로 내게 꼭 맞추어 놓은 것 같았다. 바다를 건너 신앙의 자유를 찾은 퓨리턴이 된 듯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본 교회를 바꿀 입장이 못 되어서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꾸준히 나가 주일을 지키니 교회에서도 [미등록 교인]으로 인정해 주고 교인들이 날 어떻게 대해 줄지 익숙해져서 더욱 마음 편히 다닐 수 있었다. 늘 같은 자리에 앉게 되는데 특히 몇 사람과는 예배를 같이 드리게 되어서 훨씬 편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음놓고 본 교회에 나가서 맡은 직분의 일을 보실 수 있었다.

어머니가 바쁘실 땐 목발을 짚고 힘들지만 혼자 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했다. 그 교회에서 7년 동안 주일을 지키다가 우리 집이 근처로 이사할 무렵 그 계단 없는 교회도 애석하게도 신시가지로 신축 이전하게 되어서 근처에 있는 성문교회로 옮겨야 했다.

제발 가까운 교회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 드렸는데 거리가 거의 비슷해 고난의 순례를 계속 해야 했다. 큰 교회인데 휠체어 경사로를 갖추는 등 장애인을 위해서 배려를 해 놓았다. 그렇지만 집이 계단이 많은 뒷문 쪽이여서 계단으로 다닐 수밖에 없어서, 다시 어머니께 의존해서 다닐 수밖에 없게 되 버렸다.

몇 년째가 되어 가자 먼젓번 교회에서처럼 교인들이 내게 익숙해져서 잘 도와주게 되었다. 비록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서로 힘든 경우가 많지만 몇몇 성도님들이 고맙게 잘 도와주시고 있어 적응이 되어 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노쇠해져 가시는 어머니께 짐이 되어서 교회에 다녀야 하는 것이 몸도 맘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머니께 의존하는 것을 당연하고 충분하다고 여기며 지나치고 있는 것 같다.

웬만한 걸음이면 5분 거리인 교회까지 어머니께 부축을 받고도 20분이나 걸어가야 했다. 걷는  것  자체가 워낙 느려서 숨차게 질주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수없이 지나가는 차들을 피해 걸어야 하는 것이 더 힘들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교회 계단 앞에 이르러서야 다른 쪽 팔을 부축해 줄 도움을 청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교회까지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어머니는 본 교회에서 맡으신 일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예배 드린 다음이나, 어떨 땐 데려다만 주고는 본교회로 버스를 타기 위해 달려가야 하셨다. 추운 때나 더운 때나 매주일 어김없이 반복되는 과정이어서 고난의 순례라고 하고 다녔다.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가 또 있을까 싶었고 어머니께 죄송한 일이요, 양쪽 교회에 미안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또 본 교회에 다닐 때에도 마찬가지였지만, 항상 예배에만 참석하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에 어느 교회든 낯선 기분 없이 다닐 수 있어서 좋긴 하지만, 몇 년을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어도 손님으로 그칠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면 안식일이 사람을 지켜 준다는 히브리 격언처럼 많은 고비마다 적절한 은혜로 주일을 지킬 수 있도록 날 지켜 주시고 있다는 것을 주일마다 확인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 오랜 기도대로 거의 10년이 넘는 동안 한번도 몸이 아파서 교회에 나가 주일을 지키지 못한 적이 없도록 날 지켜 주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아무 말 없이 지켜보시던 어느 집사님께서 얼마 전에 <무언의 간증>을 드리고 있다고 칭찬해 주신 적이 있다. 바로 고난의 순례를 통해서 언어 장애가 심한 내게 <무언의 간증>을 시키시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귀한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2000년 2월에 의왕시로 이사오게 되면서 포도원감리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지만 낯선 곳으로 이사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염려되는 점이 많게 되는데, 믿는 사람으로서는 교회를 선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특히 몸이 부자유한 나로선 이사오기로 할 때부터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사하면 가까운 거리에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교회에 나갈 수 있길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었다. 교회가 가까이에 있는 걸 발견하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나가 예배를 드리면서 나의 기도를 완벽하게 이루어 주셨음을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수년목사님의 열정적이고 은혜로우신 말씀과 세심하게 도와주시는 성도님들의 사랑에 매주일 새롭게 은혜를 체험하며 교회에 나가 주일을 지키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하찮은 일로 여길 수 있지만 내겐 교회에 나가 주일을 지킨다는 건 오랜 기다림과 기도의 결실이 아닐 수 없다. 은혜가 아니면 아무리 교회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으니 말이다.

그 해 가을 드디어 등록하게 되었고, 어머니도 이어 등록하게 되어서 마음 편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2002년 1월, 집사로 세워 주셨고, 2003년에는 인터넷선교위원장이라는 거창한 직분으로 교회 홈페이지의 게시판을 3년간 담당하게 되었다. 더욱이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기가 너무 힘들어 주일마다 투쟁을 벌이다시피 하며 땀을 많이 흘려야 되었는데 지금은 교회에서 사 준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 세상 누구보다 편하게 나가 예배드릴 수 있게 해주셨으니 보상을 받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