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행권 확보

 

 

 

 

밤에 하이텔의 두리하나 게시판을 보니 장애인 주차구역에 불법 주차한 것에 항의해 권리를 쟁취했다는 한 회원의 글을 보고 회원들이 쌓인 한을 서로 터트렸다. 그걸 보고 나도 할 말이 많아 글을 써서 올렸다.

 

난 차가 없지만 매일 산책 나가기 때문에 경사로 앞에 주차해 놓으면 큰 일이다. 작년 초 아파트로 이사와서 몇 달동안 고생해야 했다. 우리 아파트는 건물 앞쪽에 주차 구역을 만들어 놓아서 현관 앞이건 경사로 앞이건 마구 주차해서 주민들 전체가 불편했다.

관리소에 얘기해도 장애물을 갖다 놓으라고 할 뿐이고... 애써 갖다 놓으면 치우고 주차해 놓아 열받게 했다

그러다 얌체 주차를 두고 볼 수 없다고 나선 부녀회에서 내가 매일 산책하는데 불편하다는 사정을 알고 현관 앞과 경사로 앞에 화분을 사다 놓았다. 거기에 더해서 경사로 앞에다 "장애인 전용"이라고 민망할 정도로 대문짝만큼 크게 특수 페인트로 써 놓았다.

그 후 몇 달은 차가 얼씬도 못했다. 어느 날 새벽에 경사로 앞에 쓴 "장애인 전용"이란 글씨를 누군지 몰타르로 덧칠해 지워 버렸는데, 지우느라 고생 꽤나 했을 것 같다.

특권을 강탈당한 듯 불쾌하기 짝이 없었지만 한편으로 오히려 잘 지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몰타르가 마르기 전에 약수 물을 길러 온 끌차 바퀴 자국이 경사로에 선명히 나 있는 것처럼 나(장애인)만 경사로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과 유모차, 짐을 나르는 끌차 등이 더 많이 이용하고 있어서 "장애인 전용"이란 말이 무색했으니 지운 건 당연하다.

그런데 지우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주차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걸 보고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아니지.. 다른 회원처럼 말을 할 수 없으니 대신 글을 써서 프린트해 엘리베이터 안에 붙여 놓았다.

 

     "경사로 앞은 통로입니다.

 

      우리 아파트에는 많은 비용을 들여서  충분한 주차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데도 장애인의 접근권(ACCESS RIGHT)을   확보해 주기 위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시설인 경사로를  이용할 수 없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 경사로를 장애인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나 롤러스케이

      트를 타는 아이들과 유모차, 짐을 나르는 끌차 등이 더 많이 이용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커다란 화분을 갖다 놓고 지켰다. 그러자 주민들이 이해하고 화분을 치우는 사람이 없다. 간혹 외부 차량이 잠깐씩 주차하지만...

이제 거기에 주차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사로가 장애인을 위해 만든 편의 시설이 주민들에게 유용한 통로가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사람을 편하게 하면 모두가 편해지는 법이다.

얼마 안 가서 덧칠해 놓은 몰타르가 볏겨져 버리고 "장애인 전용"이란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었으니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누가 감히 건들겠는가...

(그런데 그 글자가 너무 크게 써 놓아서 흐려졌으면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떤 페인트인지 지워질 줄 모르고 있다)

현관에 계단없이 경사로만으로 출입구를 만든 이웃 LG 아파트처럼 모든 건물이 경사로만으로 출입구를 만들면 모두에게 편리하고 경제적이지 않을까.

 

어떤 사람이 화분에다 고추 모종 세 개를 꽂아 놓았다. 어머니가 가뭄내 물을 주어서 가꾸어 고추가 제법 열렸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아파트 주민들, 참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2000년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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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아파트 주민 대표 회의에서 경사로 앞을 주차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서 단속하게 만들어 놓았다.

 

모든 권리는 투쟁의 산물이다(예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