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해병대 캠프

 

 

 

1996년에 사단법인이 된 한국장애인선교단체총연합회(이하 한장선)에서
첫 번째 연합 선교대회를 <한반도 장애인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표어로
8월 11-14에 걸쳐서 포항의 해병대 1사단에서 열렸다.

장애인으로써는 감히 엄두도 못 내었던 군대 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다.
바로 3박 4일의 군 생활의 일기를 소개한다.

 


                      1997. 8. 11. 月. 흐리고비. 

캠프를 떠나는 날. 베데스다 선교회 재가 장애인팀의 이만희팀장이 새벽 5시에 데리려 온다고 해서 4시 반에 일어나 준비해야 했다. 내가 캠프를 간다는 걸 알고는 동생이 직장의 휴양관을 어머니를 위해 역시 3박 4일로 예약해 놓아서 어머니께 진짜 휴가를 드리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팀장이 30분 늦게 오는 바람에 어머니가 새벽같이 싸 주신 김밥을 먹고 만반의 준비하고 떠날 수 있었다. 오래 만에 나오는 박문규집사와 함께 와서 성북구까지 가서 최영숙씨를 태우고 집결지인 구의동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회원은 여기 탄 사람이 전부인데 이 팀장도 사정상 못 간다고 해서 뭔가에 속은 기분이었다.
 

이만희팀장이 못 가는 줄 알았으면 그만 두었을 텐데 하는 미안한 마음으로 내리자 최영숙씨가 정보에 어두운 사람만 가는 거라며 도와 줄 없을 건데 어떻게 하냐고 몹시 걱정해서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오히려 위로해 주었다. 8시가 넘어서 회원들이 차례로 도착하고 1급 봉사우인 여민구집사도 나오니 마음이 푹 놓인다.

9시가 되어 버스에 올라 포항 해병대 1사단을 향해 출발. 버스 안에서 노래방으로 긴 여정의 지루함을 잊게 했다.

포항에 가까워지면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굻어지더니 4시, 포항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해병대 1사단을 물어 물어서 부대 안으로 찾아 들어갔다. 먼저 여자들을 여자 숙소에 내려 주고 남자들은 동원 예비군 훈련 숙소에 짐을 풀었다. 난생 처음 부대에 들어가 군복으로 갈아 입고 말로만 듣던 군 생활을 체험해 보게 되었다.

각 부대에서 차출된 100명의 병사들이 봉사자가 되어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식당에서 짠밥으로 식사, 맛있게 먹었는데 소문대로 금방 배가 고프다.

식사를 마치자 바로 강당으로 이동, 저녁 집회에 참석했다. 한장선 산하 4백여 명과 식대와 교통비를 후원하는 포항 안디옥교회의 성도 80명 그리고 병사 100명등 6백여 명이 모여 뜨겁게 찬양을 드리며 감사 예배를 드렸다.

숙소에 돌아와 취침하려고 준비하는데 점호를 한다고 각자 자리에서 부동 자세로 대기하라는 교관의 호령에 여기가 진짜 군대로 구나 실감케 해 주었다.

각자 개인용 모기장을 치고 자는데 박동호집사와 한 모기장을 치고 자게 되었다. 그래서 지체 장애인인 박집사는 단짝이 되어서 온갖 시중을 꼼꼼히도 해 주었다.


                    1997. 8. 12. 火. 흐리고비.

아침에 비가 와서 입소식을 강당에서 하게 되었는데 사단장에 대한 경례를 몇 번씩이나 연습시켜서 별이 역시 대단하다는 것은 실감하게 해 주었다. 예정된 오전 순서가 취소되어 예배로 때워야 했다. 주 강사인 안디옥 교회 배진기목사님이 오전 시간을 대타로 나와서 이 캠프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풀어 주셔서 알 수 있었다.

장애인 캠프를 해 온 안디옥교회에서 한장선의 연합 캠프를 초청하기 했는데 수용 인원이 많아서 걱정하던 중에 매년 7-8월에 실시하는 해병대 캠프를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장선, 안디옥교회, 해병대가 함께 운영하는 진짜 연합 캠프란다.

해병대 수뇌부에 복음화가 놀랍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계기로 군 복음화를 촉진시켜서 신앙으로 무장된 강한 군대가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이번 캠프를 열게 된 목적일 것이란 말씀에 은혜 받았다. 몸이 불편한 대신 기도는 더 많이 할 수 있기에..

오후에 비가 그쳐 공수 기초 교육을 참관할 수 있었다. 사람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3층 높이에서 줄을 타고 미끌어 뛰어 내리는 공수 기초 교육을 TV에서 많이 보았었는데 올려다 보니 실감난다.

숙소, 식당, 강당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휠체어끼리 3열로 줄을 맞추어 교관의 신호에 따라 하루 3차례 행군하게 되어서 교관이 <휠체어 중대>라고 부른다. 구령에 맞추어 구보도 하고 군가도 부르며 행군하다 보니 진짜 어였한 <휠체어 중대>가 되어 버렸다!


                   1997. 8. 13. 水. 흐리고비.

오늘도 새벽부터 부슬부슬 내린다. 하루 일정이 또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QT와 아침 식사를 하고 나자 버스를 타고 바닷가로 간단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해안가에서 맞으며 상륙용 장갑차를 타 보았는데 밖이 보이지 않아서 바다를 가는지 땅 위를 가는지 알 수 없는데 한참 흔들리고 나니 내리라고 해서 싱거웠다. 이어 포 사격장으로 이동해 전차포 시범 참관했다.

오후에 비 때문에 해수욕이 취소되어 대신 경주 관광을 하기로 했단다. 점심을 들고 숙소에 가서 좀 쉬려고 하니 버스를 타라고 몰아 친다.

짠밥이 금방 배가 고파지는데 본부에서 굶주리고 있는 북한 장애인들을 생각하라고 일부러 간식을 안 주고 PX에도 팔지 못하게 했다고 해서 어제 사다리 게임을 해 간식을 살 돈을 거둔 걸 김전도사님에게 압수당해 북한 장애인들을 위한 헌금으로 내기로 했었다.

오늘은 경주로 나가게 되었으니 기회가 왔다고 또 사다리 게임을 해 돈을 거두자고 해서 가져온 비상금을 쓸 기회가 왔다고 먼저 나서서 번호를 잡았다. 버스에 올라 결과를 열어 보니 제일 비싼 7000원이 걸려 털렸다.

도착하고 보니 국립박물관이다. 몇 년전에 와 보았지만 휠체어를 탔으니 여유 있게 감상해야겠다고 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밀어 주게 되었는데 열심히 밀어 주는 바람에 본관을 도는데 5분도 안 걸려 감상을 할 수 없었다. 학교 교육의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밀지 말라고 하고 발로 끌면서 보았다.

밖으로 나와 보니 어른들은 감상할 생각은 아예 없고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못 가 본 별관을 보러 가자고 하니 여집사가 밀어 주어서 제대로 보게 되는가 했는데 시간이 다 되었다고 버스에 오르라는 호령에 끌려 나오다시피 했다. 경주 관광은 지겨운 부대를 잠시 탈출했었다는 것밖에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돌아오자 바로 식당으로 직행. 식사 후 저녁 집회를 하러 강당으로 행군. 마지막 집회라서 단체 별로 앉으라고 했는데 예배 후 단체 별 순서가 이어졌다.

마지막 날 밤, 낮에 사 온 과자와 음료수를 수고한 병사들과 나누었다.


                    1997. 8. 14. 木. 흐리고비.

퇴소식을 하러 간다고 교관을 따라 가니 연병장으로 인도한다. 간단한 퇴소식을 하는데 임석 상관에 대한 경례를 또 몇 번씩이나 연습시킨다. 이어 연단에 모두 올라가 의장대 시범을 보았다. 함께 한 병사들도 처음 본다고 신기해 하니 진짜 VIP가 된 것 같다.

퇴소식을 마치자 예정에 없던 포철 견학하러 버스에 오르라고 한다. TV에서나 보고나 지나다 멀리 보았던 포철 공장을 들어가 보게 되어서 기대가 되었지만 주부 사원의 안내로 버스를 탄 채로 돌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넓긴 되게 넓었다.

다시 부대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 서울로 오는 버스에서 여자들과 합류해 귀로에 올랐다. 남녀를 완전히 분리 생활하게 해서 캠프에서 여자들이 보고 싶었던 것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부대에서 사는 군인들은 오죽 할까. 이와 같이 얘기로만 듣던 군대 생활을 며칠 동안이라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소득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생인 조카에게 군대에 갔다 왔다고 자랑했더니 믿지 않아서 찍어온 군복 입은 사진을 보여 주자 놀라와 한다. 바로 생전에 기대도 않던 꿈같은 일을 해 보게 되었다.

(1997년 11월 사랑의 소리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