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제주도 선교 여행

 

 

 

베데스다 선교회의 1993년 제주도 선교 여행 때 쓴 일기이다.

 

      1993.  8.  9.     月.      비흐림.

7시 20분 비행기로 출발하는데 밤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바람에 걱정이 되서인지 잠이 좀처럼 들지 않아 거의 꼬빡 새우고 말았다. 5시가 넘자 비가 그쳐 가서 어머니가 일어나라 하셔서 행장을 갖추고 나서니 6시가 넘어 선다.

공항에 처음 들어서자 먼데 사는 회원들이 벌써 많이 와 있었다. 장애자에게 봉사자와 반액 서비스를 이용해서 장애자와 봉사자가 1대 1이 되어 38명이 선교 여행을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10분전까지 탑승을 완료해야 되는데 출구에 모두 모였지만 시간이 다 되어도 표를 갖고 있는 양전도사님이 갑자기 안 보이는 것이다. 위기 일발의 순간이었다. 한명이 장애자 등록을 안해서 수속이 오래 걸리게 되는 바람에  출발 시각에야 오셔서 간신히 타게 됐다. 늦었다고 직원들이 나서서 휠체어를 트랩까지 쏜살같이 밀고 들어가 진짜 특공대의 기습 작전을 벌이는 것 같았다.

난생 처음 타보는 비행기 안에서 조그마한 창으로 내다 보이는 풍경이 신기스럽기만 하다.  이룩하면서 보이던 김포 평야가 곧 구름 속으로 가려지고 만다. 구름 사이에서 간간히 드러나던 푸른 빛이 갈수록 구름 떼가 흩어지고 활짝 개인 하늘과 바다가 상큼한 코발트 빛으로 눈부시다.

50분만에  녹색 융단처럼 펼쳐진 제주 들판이 보이더니 사뿐히 착륙한다. 짐을 챙겨 공항을 빠져 나오자 숙소인 기독교 수양관의 이종남집사님이 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숙소까지 짧은 거리를 가는데도  야자수가 늘어선 길이 완전히 이국적인 풍경이 물씬 느껴진다.

숙소에 도착하자 먼저 늦은 아침 식사를 맞는데 정옥선간사와 생일 축하를 받았다. 조편성을 하고 인사할 틈도 없이 서귀포 교회에서 학생 집회를 하는 6시까지 남쪽 지역을 관광을 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중문 단지 내의 여미지 식물원에 내려서 구경했다. 세계 최대의 식물원답게  각종 식물군을 분류해 놓은 것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 보아도 다 못 볼 정도였다.  한복판에 있는 전망대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보니 끝 간 데없는 시야가  딴 세상에 올라가 있는 것 같다.  투명한 하늘아래 탁트인 바다가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었다. 식물원 바깥에도 볼 게 많은데 일정이 촉박해 점심도 거른채  다음 행선지로 떠밀리듯 출발해야 했다.

 

 

천제연 폭포를 보기 위해 입구에서 휠체어를 타고 한참 내려 가서야 장대한 위용을 뽐내며  까마득하게 쳐다 보이는 위에서  토해내는 폭포를 볼 수 있었다.  워낙 공기가 맑은 곳이라  매미가 한나무에도 수없이 붙어서  울어대어 귀가 어리둥절할 정도다.

허니문 하우스에 도착하자  모두들 지쳐서  안 내리겠다 하니 이집사님이 이렇게 좋은 데를 안 보고 가면 되느냐고 야단해서 내려서 보니 역시 절경이다. 아담한 솔밭 계단을 내려 가자  절벽아래로 파도가 무섭게 달려 들며 부서지고 있다.

서귀포 교회에 내리니 비가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평일이라 학생들 밖에 못 모인다고 했어도 너무 무성의하게 대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썰렁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찬양을 불렀다. 밀어 주는 휠체어를 타고 편히 구경만 해서 미안했였는데 양전도사님이 암탉과 돼지의 비유를 들었는데, 내 사명이 돼지이로구나!

- 암탉이 자기는 매일 알을 낳아 주인을 섬긴다고 자랑하자 돼지가 자긴 바베큐가 되어 통째로 드린다고...-

어둠이 깔린 길을 달려서 9가 넘어서야 숙소에서 저녁을 나눌 수 있었다.

 

      1993.  8.  10.     火.      비맑음.

걱정을 많이 하게 한 태풍이 밤새 요란하게 부는 가운데 첫 밤을 무사히 잘 수 있었다. 다행히 태풍이 비켜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후에 해수욕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자꾸 밖을 내다 보며 걱정이 된다. 아침을 들고 성경 공부를 하는데도 여전히 비가 구질게 내려서 일정을 또 바꾸어야겠다고 하는데 끝날 무렵이 되자 비가 끝치고 파란 하늘이 활짝 드러난다. 모두들 역시 대단한 베데스다야 하며 환성을 질렸다. 게다가 이종남집사님이 제주에서 보기 드문 날씨란다. 예정대로 해수욕을 가기로 했다.

서쪽으로 달려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 2년만에 바닷물에 풍덩했다. 이번엔 여자들이 남자들을 빠뜨리기로 해서 황간사와 양간사가 날 끌고 들어가 짠물을 먹였다. 쉬려 나오니 바닷물이 오히려 따스하게 여겨진다. 태풍이 열대 바닷물을 몰아온 모양이다. 썰령해서 모래 밭에서 일광욕을 했다.

곧바로 도로 건너편 협재 굴 유원지를 구경했는데 굴은 휠체어가 힘들어 못 들어 가고 식물원을 둘러 보았다. 아기 자기하게 가꾼 꽃과 나무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여름을 잊게 해 주는 것이 에덴 동산의 정원을 산책하는 듯하다. 해안 도로를 따라 돌아오는데 노을에 붉게 물든 바다가 장엄한 한 편의 파노라마 영화를 감상하듯 황홀경에 빠져 들게 해 주었다.

저녁부터 들고 나서 뒤늦게 샤워를 했다.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밖에 나와 처음으로 잘 가꾼 정원 잔디 밭을 거닐어 보았다. 아직도 씻기 바쁜듯 혼자서 산책하는데 종일 휠체어를 밀어준 전미자자매가 나와서 평상에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모처럼 무드있게 대화다운 대화를 하는듯 싶은데 조원들이 모여 들어 밤에 할 촌극 걱정하는 바람에 다 깨고 만다. 촌극을 했는데 다른 조에 비해 30대답게 준비 부족이라 말씀이 아니다. 다른 조들의 연기 한번 대단하다.    

 

      1993.  8.  11.    水.      맑고흐림.

역시 한 숨 밖에 못 자고 7시에 정원에 나가 기도를 드리고 따가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남국의 짙은 하늘을 넋 나간듯 바라 보았다. 이 한 순간이나마 모든 걸 소유한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오늘도 아침에는 성경 야고보서를 공부하느라 정신없다. 양전도사님이 재미나게 잘 가르쳐 주신다.

오후에 가까이에 있는 조각 공원을 먼저 찾았다. 야산을 거스러 오르면서 늘어선 갖가지 모양의 조각들을 흉내내며 사진을 찍었다. 특히 맨 위에 있는 시비(詩碑)가 인상적이였다.

가파르다고 모두들 돌아서는데 황경윤이 밀고 올라가 주어서 속시원히 볼 수 있었다. 여러 모양의 비에 새겨져 있는 멋진 시들이 새로운 맛을 준다. 멀리 아련히 보이는 바다가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시간에 쫓겨 내려와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나무아래 벤취에서 김밥으로 꿀맛같이 점심을 들었다.

이 집사님이 한번 타고 내리기가 힘들어서 오래 가다 내려야지 했는데 이번엔 성읍까지 두시간을 달린다. 차안에서 노래 자랑이 펼쳐졌다.

제주 특유의 민가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똥 돼지와 토속 정수기가 신기하다. 느티 나무아래서 예수 믿으세요하고 찬양을 부르며 회보를 돌렸는데 어느 동네 사람이 콜라 한 상자를 사다 준다.

돌아 오는 길에 이 집사님이 일출봉을 향해 환상의 코스로 잡아 주셨다. 간증과 함께 제주도의 기독교사에 대해 얘기해 주셔서 은혜롭다. 240개의 잡신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섬기고 있어서 선교가 시급한 지역이라고...

이번 선교 여행의 목적이랄 수 있는 수요 예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돌아오자 마자 식사를 하고 제주 제일 교회로 달려 갔다. 계단이 없는 옛날식 구조의 교회였다. 작은 교회지만 꽉 채운 교인들이 이준우전도사가 인도하는 찬양팀에 뜨겁게 호응해서 은혜를 끼치려 갔다가 은혜를 받는 것 같았다.

간증을 누굴 시킬지 궁금했었는데 장애가 가장 심하고 가장 어린 신광수를 시켰다. 근육 디스로피로 몸이 심하게 뒤틀려서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든 상태다. 차 안에서 시트에 눕혀 놓고 흔들려 떨어지지 않도록 간사들이 교대로 쪼그리고 앉아 보살펴 주는 것이 눈물 겹도록 감동적이었다. 죽어 가는 몸으로 찬찬히 간증을 잘 했다.

전미자자매와 돌아 오면서 벌써 마지막 밤이라니 아쉬워진다고 했다. 숙소에 숨돌릴 틈도 없이 서로 간증을 하는 캔들 화이어 순서를 시작한다. 간증문을 준비하면서 누구에게 읽게 할지 걱정했는데 둘러 보아도 마땅한 사람이 띄지 않아 여전히 걱정이 된다.

전미자자매에게 꺼내 오라고 시킨 다음 다른 사람에게 대독을 부탁했다. 그런데 미자자매가 꺼내면서 미리 읽어 보고는 자기가 읽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어떻게 읽을지 걱정되어 가로등 밑에 가서 연습하게 했더니 나직한 음성으로 차분히 읽어서 안심이 된다.

초불을 십자가에 꽂으며 신앙 고백을 드리는데 눈물의 고백이 되어 버린다. 준비하며 예상하던 분위기와 딴판이라 읽어야 할지 또 걱정하게 만든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미자자매가 계속 우느라 잊었는지 그냥 마이크만 넘겨 주기만 한다. 읽지 말라는 뜻인가 싶어 두 마디만 하고 넘겼다.

먼저한 이준우전도사가 날 목욕을 시키면서 자기는 일년에 한번 시켜 주는데 부모님은 얼마나 힘들까 하고 자기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그동안 장애가 심하다고 주위 사람을 생각않고 너무 나만을 생각해 왔다고 회개했다.

다 끝나고 양전도사님이 내 말을 이해한 것이 맞는지 물어서 고쳐 주었다. 간증문을 준비했는데 예상하던 분위기와 달라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사람들이 읽어 보라고 해서 미자자매가 주문대로 부드럽게 읽어 주었다. 차라리 마지막에 읽었으면 했었는데 제대로 된 것 같다. 양전도사님이 언어 장애의 통역의 은사를 구하자고 해서 그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에 있다고 강조했다.

여자 봉사자들이 휠체어를 밀어 줄 때 미안한 마음이였는데 피날레를 바베큐가 되어 장식하게 된 것 같아 감사할 뿐이다.

 

      1993.  8.  12.    木.      흐리고비.

4시가 넘어 겨우 순서가 끝나 자리에 들어서 눈을 한번 감았다가 뜨니 아침이다. 밖에 나가 산책하는데 모두들 꾸벅 꾸벅 졸거나 아침에 할 성경 암송 때문에 중얼 중얼 외우기 바쁘다. 어제 양전도사님에게 아침마다 늦장을 부린다고 기합을 받아서 오늘은 일찍 시작하려고 보니 밤에 늦게 잤다고 식당에서 식사를 늦게 준비하는 바람에 또 늦어지게 되고 말았다.

성경 암송 대회, 우리 조가 먼저 시작했다. 조장인 고민숙자매가 무난히 야고보서의 서두를 암송했다. 내가 2번 타자, 마이크를 밀어 버리고 눈을 감고 발음도 무시 박자를 맞추듯 따발총처럼 외기 시작했다. 몇 군데 더듬자 옆에서 훈수를 두어 줘 단숨에 끝내 버렸다. 가장 긴 분량을 맡겨서 며칠동안 고민하며 외워야 했었는데, 역시 기억력 하나는 끝내 준다.

세월아 가라 하듯 마냥 한가롭게 외우니 두 조가 마치자 관광에 나설 시간이 되어 버린다. 짐을 챙겨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를 나와 버스에 올랐다. 마지막 관광지로 木石園을 찾았다. 수집광의 오랜 집념이 감탄스럽다.

나흘동안 봉고로 휠체어를 싣고 따라 다니며 점심을 제공하신 엄목사님의 시온산 교회에 가서 점심을 들었다. 이층에 세든 개척 단계인 작은 교회에서 그렇게 크게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놀라움마저 든다. 물론 사모님들 사이에 인연이 깊은 탓이긴 하지만 큰 교회들이 그런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하는 의아함이 든다.

시간에 쫓기듯 공항으로 나와 3시 15분 비행기에 올랐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고 제주와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언제 누구와 다시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