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생과 장애

 

나의 대부분의 하루 일과는 책과 PC를 갖고 씨름하는 일이다. 그리고 오후에 사각 목발을 짚고 동네를 한바퀴 도는 산책이 주요 일과라고 할 수 있다. 그 모두가 홀로 배우기의 축적물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홀로 배우기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이렇게 판에 박힌 생활을 지루한 줄 모르고 오히려 바쁘다며 지낼 수 있게 된 것은 어머니의 정성이었기 때문이다. 심한 난산으로 힘들게 태어났지만 돌까지는 아주 건강하게 잘 자랐다. 돌이 지나서도 걸으려고 하지도 못하고 기는 동작만 해서 그저 늦되다고만 여기고 있다가, 그래도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비로소 뇌성마비 장애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어머니에게도 기나긴 도전의 세월이 시작된 것이다. 어떻게든 고쳐 보기 위해 병원이나 침술원은 물론이고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나를 업고서 좋다고 하는 데는 다 쫓아다니셨는데, 사람들의 얘기만 듣고 먼길을 힘들게 찾아가면 어이없이 돌아서야 하는 경우를 당하는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네 살 때 세브란스 재활원에 몇 달 동안 입원시키셨다. 그 당시엔 단순히 수용 시설에 불과해 별로였고, 유난히 순응(?)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어서 할머님이 빼내 주셨다. 그래서 내게는 재활 치료보다 가족의 사랑이 중요한 힘이 되어 주었다.

일곱 살 쯤엔 성모 병원에서 물리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 옆에 세를 얻어 1년 동안 살았다. 매일 병원에 가서 목욕부터 하면서 수압 마사지를 받고 물리 치료를 받았다. 몸이 상당히 부드러워졌지만 전세기간이 끝나는 1년이 되어도 목표였던 걷는 것에 진전이 없자 그만 두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다녔던 세브란스 병원에서 사각 목발을 짚고 혼자서 걷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각 목발은 나말고 쓰는 사람을 이제까지 못보았고, 재활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처음 본다며 신기해 할 정도다.

그 때 세브란스 물리치료과에는 외국 여자 치료사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아마 새로 개발되었다고 없어진 것 같다. 1년 간 다니다 다니기 힘들어 그만두게 되었고, 그 이후 병원과 담을 쌓고 살게 되어서 재활 치료를 받을 기회가 없어서 고립된 채 나 혼자만 계속 쓰게 된 것 같다

어머니는 아무리 바빠도 매일 공부와 함께 걷는 연습을 시키셨다. 거기에만 온 정성을 기울인 덕에 습관이 되어서 지금도 책과 목발을 잡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되어 버렸다. 그렇지만 그런 나머지 손동작과 말하기 연습에 너무 등한히 한 것이 일상 생활에서나 모든 면에서 불균형이 되어 지금에선 더욱 아쉬워지게 한다.

뇌성마비 장애란 더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는 비진행성이지만, 어렸을 땐 목도 제대로 못 가눌 정도였었는데 자라면서 상태가 나아져 간 것 같다. 자라면서 몸에 힘이 생기고 정신의 집중력도 늘어나면서 할 수 없었던 것도 곧잘 하게 되어 갔다.

그래서 뇌성마비 장애아의 치료는 생활의 모든 면에서 해야 된다고 하고 있다.(이어짐)